<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78화>
작년에 출시된 검정색 SUV를 타고 온 낚시용품 가게 사장이 알려 준 장소는 포인트가 확실했다.
"으랏챠!"
활처럼 굽은 낚싯대에 달려 맹렬히 돌아가며 낚싯줄을 감아 내던 릴이 곧 팔뚝만 한 물고기를 물 밖으로 끌어 올린다.
"어이쿠. 월척이네! 이 정도면 월척 맞죠, 과장님?"
"뭐, 뭘 그 정도 가지고 월척이야? 피라미지! 방정 떨지 마. 그거 다 초심자의 운이다."
"그러면 어때요? 전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이놈은 회를 뜰까나, 탕을 끓일까나. 아저씨는 뭐가 좋으세요?"
같이 놀자는 종혁의 권유에 옆에 자리를 폈던 낚시용품 가게 사장이 억지로 웃음을 참다가 현명한 말을 꺼낸다.
"추우니까 반은 탕으로 진하게 끓입시다."
"그런 묘수가! 이 추운 날씨에 쫄깃한 회에다가 뜨끈한 국물. 거기다 소주를, 캬!"
"푸하하핫! 젊은 분이 먹을 줄 아시네!"
"시끄러워! 물고기 도망가잖아!"
‘그러는 과장님이 제일 시끄럽습니다’라는 말을 꾹 누른 종혁은 능숙하게 회와 매운탕을 끓이기 시작했다.
곧 보글보글 매운탕이 뜨겁고 매콤하게 끓으며 소주가 든 아이스박스로 손을 뻗게 만든다.
"드시고 하세요. 우리가 낚시하다 죽으러 왔어요? 즐기면서 먹으러 왔지?"
"……에잇!"
쿵쾅거리며 다가온 김종두 과장이 잔을 내민다.
"난 또 낚시 가자고 그렇게 조르셔서 잘하시나 했더니……."
그 말에 김종두의 얼굴이 진심으로 구겨진다.
낚시가 취미인 김종두 과장.
오늘 망신을 제대로 당하고 있었다.
"이놈들이 고수를 몰라보는 것뿐이야, 인마! 내가 어?"
"예, 예. 술 받으세요."
"썩을 놈의 시키. 아, 사장님도 받으시죠."
"하하. 상사와 부하 직원이신데 사이가 좋으시네요."
"이놈이 능글맞은 겁니다."
"제가 아니면 놀아 줄 사람이 없는 외로운 분이라서요."
"이거 봐요."
"푸하하하핫!"
그렇게 피어나는 웃음꽃과 함께 술자리가 시작됐다.
한 잔, 두 잔. 겨울의 찬 바닷바람이 불어오는데도 몸에서 열이 나자 종혁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아, 덕분에 방 잘 얻었습니다. 그런데……."
사장이 씁쓸히 웃는다.
"그 형님이 좀 그렇죠?"
종혁이 눈에 불을 켠다.
"원래 성격이 그러십니까?"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럴 거예요. 평소엔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방값도 많이 비싸던데……."
"여기가 워낙 외지잖아요. 어쩔 수가 없어요. 그 형님도 먹고살아야지."
"그래도 펜션을 짓을 정도면 돈이 많은 거 아니에요?"
"많죠. 많았죠. 그 형님 집이 여기서 어떤 집안이었는데. 그런데 그거 싹 다 까먹고 그거만 남은…… 어흠."
눈을 빛낸 종혁은 사장이 입을 다물려고 하자 얼른 술을 따라 줬다.
"꿀꺽. 크."
"여기 회도 드세요. 그런데 낚시용품이 그렇게 다양한가요? 비싼 것들도 많던데."
다시 김덕술에 대해 질문하면 의심을 살 수 있기에 종혁은 의도적으로 말을 돌렸다.
그런데…….
"어, 어흠. 외지에서 오는 낚시꾼들이 제, 제법 많아서 그래요."
‘응?’
김종두도 사장을 본다.
지금 반응은 분명 이상했다.
"그러시구나. 과장님은 아셨어요? 아, 맞아. 알았으니까 여기로 오자고 했구나."
"그걸 이제 알았냐? 생각 좀 하고 살자."
"그래요. 드디어 날 혼낼 거리를 찾았네요. 한 잔 드세요. 네, 한 잔 더 드세요."
"이, 이 자식이?! 날 죽일 셈이야?!"
"시체는 잘 묻어 드리겠습니다. 아니, 바다에 던지면 되려나?"
"그래, 오냐. 오늘 죽자, 그냥!"
김종두는 종혁에게 달려들었고, 사장은 다시 웃기 시작했다.
종혁과 김종두는 그런 그의 반응을 곁눈질로 살폈다.
그렇게 가져온 소주도 모두 떨어져 가고, 해도 지려고 하자 그들은 철수 준비를 했다.
둘은 숙소로 복귀하기 전 방광을 가득 채운 물을 빼기 위해 구석으로 향했다.
그런 둘은 그렇게 마셨는데도 눈동자에 흔들림 하나 없었다.
쏴아아아아아!
"확실히 뭔가 좀 이상하다 싶긴 했어."
"낚시용품 가게요?"
"어. 원래 이런 오지에 오는 낚시꾼들은 출발 전부터 다 갖춰서 오니까 산다고 해도 줄이나 바늘 따위의 채비나 밑밥만 겨우 사거든?"
그런데 이런 시골의 낚시용품 가게에서 볼 거라곤 생각지 못했던 가격대의 물품들이 있었다.
오늘 사장이 썼던 낚싯대만 해도 무려 150만 원짜리.
돈 많은 전문 낚시꾼들이나 겨우 사는 명품이다.
사장은 그런 걸 무려 세 개나 썼다.
"확실히 과유불급, 아니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네요."
"거기다 가게 물건들에 쌓인 먼지도 얼마 없었어. 가게 여기저기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는데도."
물건을 들여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소리다.
"이거 아무래도……."
"예. 저 양반도 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골 마을에 그런 호재가 뭐가 있을까.
순간 두 눈에 살기를 품었던 둘은 이내 지워 내며 지퍼를 올렸다.
그렇게 둘은 2차를 위해 펜션으로 복귀했다.
"덕술 형님!"
"뭐야! 넌 왜 왔어!"
"이 서울분들이 초대해서 왔수다! 됐고, 숯이나 피워 봐요!"
"너도 돈 내면!"
"아니,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래도 같은 마을……."
"같은 마을이 뭐? 그러니까 더 공짜를 바라면 안 될 텐데?"
"그, 그건…… 에이, 알았어요. 주면 될 거 아니에요!"
종혁과 김종두는 둘의 의미심장한 대화에 다시 한번 눈을 빛냈다.
"흥. 진작에 그럴 것이지! 야, 경조야! 유경조 이 새끼야-!"
"네-! 네, 네-!"
펜션 뒤에서 유경조가 달려 나온다.
"헉헉! 왜, 왜 그러세요?"
"내가 왜 불렀겠냐? 여기 손님들 안 보여?"
눈이 마주치자 종혁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까딱였다. 모두의 시선이 경조에게 쏠려 있는지라 들키지 않았다.
"그, 그게……."
어쩔 줄 몰라 하는 유경조의 모습에 김덕술은 얼굴을 구겼다.
"숯 피우라고, 새끼야!"
"아……!"
김덕술은 검지로 청년의 머리를 밀었다.
"대가리가 멍청하면 눈치라도 빨라야지. 어? 아직도 내가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해? 너도 인간이라면 내가 너 먹이고 재워 주는 값은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죄, 죄송합니다."
"꼴 보기 싫으니까 어서 피워!"
"네, 넷!"
김덕술은 청년이 다시 펜션 뒤로 달려가자 종혁들을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고는 펜션 뒤에 있는 본인의 집으로 향했다.
"저런 씨!"
사장이 다급히 김종두를 말린다.
"와, 진짜 성격 안 좋네."
"하하. 참으세요, 참아. 술 마셔서 그래요."
사장은 김종두에게 술병을 기울였고, 종혁은 김덕술이 들어간 집을 바라봤다.
‘흠. 저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빨리 고립될 텐데…….’
시골에서 같은 마을에 산다고 다 친한 건 아니다. 저렇게 가시를 세울수록 더 빨리 고립될 뿐이다.
‘시골 사람들은 이걸 잘 알아.’
그래서 귀찮아도 손이 남으면 이 집, 저 집 도움을 주거나 편의를 봐주는 거다.
그런데 김덕술은 그러지 않았고, 사장도 김덕술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분명 사장은 펜션에서 2차를 하자고 했을 때 그리 내켜 하지도 않았다. 방금 전도 억지로 웃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거기다 둘이 나눈 의미심장한 대화.
뭔가가 이상했다.
종혁은 담배를 들며 일어섰다.
"그럼 전 숯 피우는 거 구경하고 올게요."
"아니, 그런 건 왜 구경해?"
"어이구. 서울분께선 숯불에다 고기 안 구워 먹어 봤나 보네. 자자, 저희는 한잔하시죠."
"어흠. 그럴까요?"
종혁은 김종두에게 고개를 끄덕이곤 펜션 뒤편으로 향했다.
화르르르르!
유경조가 토치를 이용해 숯에 강렬한 불을 쏘고 있다.
담배를 문 종혁은 유경조에게 다가갔다.
"안 더워?"
"아!"
"뭐 좀 묻고 싶은데, 원래 김덕술하고 저기 사장하고 사이가 나빠?"
"세용이 아저씨뿐만 아니라 이 마을에서 매형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철량리 마을 사람들은 그런 김덕술에게 약하다.
"원래부터?"
"으음…… 아니요. 그건 아니었어요."
어렸을 때를 떠올려 보면 마을 사람들 전체가 김덕술을 좋아하진 않았다. 만날 술 먹고 행패 부리고.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김덕술의 부모가 죽고 난 이후에는 사람 취급도 안 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네 누나도 그랬어?"
유경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도 엄청 싫어했죠. 만날 치근덕거렸으니까요."
"그래? 언제부터?"
"제 다리가 이렇게 된 이후부터요? 아마 그쯤부터 그랬을 거예요."
"뭐?"
그렇다면 벌써 6년 전이다.
6년 전이면 유경순이 고작 19살이었을 때다.
‘개새낀가?’
그랬다.
김덕술과 결혼할 당시 유경순의 나이는 고작 22살.
꽃다운 나이의 여자였다.
이번 사건, 이해가 안 되는 점이 너무 많았다.
뭔가 비밀이 있었다.
* * *
낚시용품 가게 사장도 돌아가면서 조용해진 펜션.
"푸후!"
술 냄새가 가득한 숨결이 203호 안에 퍼진다.
"종혁아, 이거 뭔가 이상하다."
용의자와 유경조, 낚시용품 가게 사장만 만났을 뿐이다.
고작 이것뿐인데도 뭔가 뒤틀려 있다는 게 느껴진다.
"난 김덕술 이 새끼가 유경순씨를 죽였고, 그걸 낚시용품 사장이 목격하고 입막음 조로 돈을 받은 건 아닌지 의심했거든?"
그렇다면 낚시용품 사장의 사치가 이해된다.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종혁 본인도 아주 잠시나마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입막음을 당한 목격자와 범죄자의 사이라 보기 힘들었죠."
"맞아."
제아무리 김덕술이 망나니라도 살인을 목격당했다면 목격자가 갑이다. 그런데 오히려 김덕술이 뻗댔다.
이상했다.
그에 종혁은 유경조와 나눴던 대화를 들려줬다.
어느새 몸을 일으킨 김종두는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뭐야. 그건 더 이상하잖아."
마을 사람들이 김덕술에게 약해지기 시작했을 때와 김덕술이 유경순과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을 때의 시간대가 비슷하다.
이걸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둘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둘의 촉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이거 뭔가 있는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모르겠다.
"아, 씁. 골통 깨지겠네."
"그래도 확실한 건 두 개 있잖아요."
하나는 김덕술과 사장의 사이에 어떤 비밀이 있다는 점.
나머지 하나는…….
"김덕술이 개새끼라는 거?"
"그냥 개새끼가 아니라 개호로 잡놈의 새끼죠."
김덕술과 유경순이 결혼했을 당시의 나이는 각자 51살, 22살.
무려 29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다고 하니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유경조의 이야기에 따르면 김덕술은 유경순이 미성년자였을 당시, 그러니까 29살이나 어린 미성년자에게 추파를 던졌다는 게 된다.
그것도 끈질기게.
"하. 이 새끼가 서울에서 이랬으면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처넣었을 텐데."
"흐흐. 동감입니다. 내일 해장으로 라면 어떠세요?"
"계란은 네 개 풀어."
"옙! 씻으세요. 전 좀 더 마시다 잘 테니까."
"오냐."
종혁은 김종두가 화장실로 들어가자 벽에 등을 기대며 맥주캔을 입에 가져갔다.
그런 그의 눈빛은 어느새 무심해져 있었다.
‘왜일까.’
유경조를 장애인으로 만든 교통사고와 김덕술이 연관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되는 건.
김덕술이 추행을 시작한 때와 유경조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의 시간대가 비슷하다. 그 전까지는 김덕술과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않았다는 유경순.
‘……에이, 아니겠지.’
정말 그렇다면 김덕술은 구제할 수 없는 쓰레기다.
물론 지금도 재활용을 못하는 쓰레기지만.
다른 맥주캔을 따는 종혁의 눈빛은 방금 전보다 더 깊어져 있었다.
* * *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해장을 하고 난 후 한숨 더 자니 낚시용품 가게 사장이 전화를 해 왔다.
-오늘도 세월을 낚으러 가야죠! 제가 다른 포인트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어제 거하게 대접받았던 게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어이구, 어쩌죠? 오늘은 근처 산에나 갈 생각인데."
-산이요? 이 겨울에?
"전 낚시보다 등산을 더 좋아하거든요."
종혁은 얼굴을 구기고 있는 김종두를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헉! 헉! 헉!"
길조차 제대로 없는 산, 뜨거운 입김이 가쁘게 쏟아진다.
"조, 종혁 헉! 아! 좀, 좀만 헉! 쉬다 가자!"
"운동 좀 하세요, 과장님. 나이 드셨다고 너무 풀어지신 거 아니에요?"
"시끄 헉, 러! 네가 헉헉, 괴물 헉, 인 거야!"
고개를 저은 종혁은 푸른 하늘을 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후아-!"
깎아지르는 듯 경사가 미친 땅을 딛고 하늘을 보자니 어제처럼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씨, 씨부랄. 여기에 없기만 해 봐라."
분명 김덕술과 낚시용품 가게 사장의 사이엔 어떤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이 혹여 김덕술이 저질렀을지도 모를 범행과 연관이 되어 있다면? 사장이 목격자가 아니라 공범이라면?
아니 유경순을 죽인 게 사장이고, 김덕술이 그걸 알았다면?
둘이 보이던 모습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억측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생각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런 가정하에 생각했을 때, 어제 낚시용품 가게 사장의 반응 중 하나를 단서로 생각할 수 있다.
"시체는 잘 묻어 드리겠습니다. 아니, 바다에 던지면 되려나?"
이런 종혁의 말에 낚시용품 가게 사장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체’에선 반응을 했는데, ‘바다’에선 재밌다며 웃기만 했다.
즉, 시체 유기 장소는 바다가 아니란 뜻이다.
그래서 이렇게 길조차 나지 않은 산을 오르는 거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산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그랬다면 필사적으로 막았을 거다.
이 점은 김종두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오르고, 또 저런 말은 하는 건 일단 어느 정도까진 올라갔다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쪽의 알리바이를 위해서 말이다.
"아호. 진짜 운동을 해야 되려나."
"저희 집 근처로 이사 오실래요? 아침마다 같이 운동 가게?"
"아니, 매일 아침은 좀 그렇고……."
이사를 하면 정말 매일 아침마다 찾아올 놈이 종혁이다.
"이젠 나이 드셔서 잠도 빨리 깨실 텐데……."
"……그래. 애들이 요새 날 왜 그렇게 무시하나 했더니 네 그 방정맞은 입 때문이었구나?"
"먼저 가겠습니다. 조심히 올라오세요."
"거기 서, 이 시꺄!"
"미끄러워요!"
종혁은 절대 잡히지 않기 위해 비탈진 땅을 박찼다.
* * *
"어이구, 죽겠다. 사람 죽네……."
다리를 두드리며 슈퍼 안으로 들어오는 김종두의 모습에 안쪽 방에 앉아 있던 슈퍼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처음 보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아, 덕술이 펜션에 묵으신다는 서울 양반들이에요?"
"이야. 그게 벌써 소문났어요?"
"호호. 원래 이런 시골은 소문이 빨리 돌아요. 뭐 사시게?"
"막걸리 좀 살까 하는데…… 음?"
주위를 둘러보던 종혁은 주류냉장고에 붙어 있는 표를 보곤 눈을 빛냈다.
"혹시 여기서 음식도 파시나요?"
그에 할머니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왜요? 옹심이 좀 끓여 줄까요?"
종혁은 피식 웃었다.
"아뇨. 다 주세요."
"……응?"
"여기 있는 메뉴 다."
할머니는 입을 떡 벌렸고, 흐흐 웃은 종혁은 부탁한다고 말하며 돌아섰다.
그런 종혁과 김종두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종혁은 슈퍼 앞에 놓인 평상에 눕다시피 골골거리는 김종두에게 막걸리를 따라 내밀었다.
그런 종혁을 죽일 듯 노려보던 김종두는 이내 혀를 차며 잔을 낚아채듯 가져왔다.
꿀꺽 꿀꺽!
"크으으!"
"여기 부침개도 좀 드세요."
"너 이따가 무조건 마사지해. 내일 나 근육통 있으면 너 죽고 나 사는 거야. 알았어?"
"충성."
"……썩을 놈. 술이나 더 따라 봐."
"흐흐."
그런 그들에게 감자옹심이 죽이 담긴 그릇을 든 슈퍼 할머니가 다가온다.
"입에는 좀 맞아요?"
"어이구."
황급히 받은 김종두가 짓궂게 웃는다.
"맛있다 뿐일까요. 아예 여기서 살고 싶습니다."
"호호. 서울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넉살이 좋네. 그런데 춥지 않아요? 여기서 마시면 감기 걸릴 텐데."
"잠만 안 들면 되죠. 오히려 저희가 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뭘요. 나야 돈 버니까 좋지.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줘요?"
"아, 할머니! 부침개 좀 더 만들어 주세요!"
"어이구. 벌써 이걸 다 먹었어? 역시 덩치처럼 먹성도 좋네. 기다려 봐요!"
그렇게 할머니가 안으로 들어가자 종혁과 김종두의 표정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종혁아, 봤냐?"
"네."
"나만 여기도 이상하다 생각되는 건 아니지?"
종혁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낚시용품 가게처럼 진열 상품 전부가 깨끗했다. 마치 새로 들여 놓은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한 번 물건을 들이면 다 팔고 나서야 겨우 물건을 들일 수 있는 이런 시골의 구멍가게가.
그런데 상품뿐만 아니다.
냉장고나 진열장, 안의 테이블, 하물며 안쪽 방도 도배와 장판, 이불 모두가 바꾼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보였다.
저 슈퍼에서 허름한 건 오직 건물뿐이었다.
이는 분명 이질적이었다.
"예. 마치 큰돈이라도 생긴……."
아니면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사람이나 보일 수 있는 모습.
거기까지 생각한 종혁과 김종두는 고개를 번쩍 들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그제야 보였다.
이질적인 마을의 풍경이.
슈퍼뿐만이 아니다. 눈에 밟히는 모든 게, 아니 마을 전체가 이질적이었다.
"야, 야 이거……."
그때였다.
스르륵.
그들의 앞으로 웬 검은색 중형차 한 대가 선다.
차문을 열고 내린 선한 인상의 사내가 슈퍼 안쪽을 향해 할머님 친근하게 부른다.
그러자…….
"어이구, 왔어요!"
버선발로 뛰어나오는 할머니의 모습.
하지만 그건 놀랍지 않았다. 그보다 더 경악스러운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흡!’
종혁은 그가 왼손에 낀 반지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