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77화 (177/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77화>

53. 새로이 잡은 꼬리

겨울이 스쳐 지나간 강원도의 어느 작은 해변 마을.

대문 옆에, 도로가에 눈이 쌓여 있다.

강원도의 겨울은 올해도 일찍 찾아온 것 같았다.

"어흐. 시원하네."

"올겨울은 좀 따뜻하겠는데요?"

"오곡리나 서성리는 괜찮을까?"

강원도에서도 외진 곳에 위치한 이 마을.

오곡리와 서성리는 거기서도 더 외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한 번 눈이 쌓이면 기본 일주일은 고립되어 버리는 마을.

그런 오곡리와 서성리에 들어가려면 꼭 이 철량리를 거쳐야 하는지라 마을 주민들의 얼굴에 걱정이 서린다.

그들 철량리도 이보다 더 눈이 내리면 고립되는 건 마찬가지임에도 말이다.

"뭔 일 있으면 연락했겠죠."

"그렇겠지?"

순박한 마을 주민들이 일할 준비를 시작한다.

"순덕 할매! 날 추워요! 조심해요!"

"걱정 마라, 이놈들아! 내가 너희 태어나기 전부터 물질을 했던 년이야!"

더 날이 추워지면 물질도 멈춰야 하기에 철량리 할머니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오늘도 구수한 욕설에 마을 주민들은 옅게 웃으며 아침 차가운 공기를 데운다.

그렇게 밤사이 적막했던 철량리가 깨어난다.

그런 철량리 마을로 SUV 한 대가 들어선다.

외지인이 거의 찾지 않은 철량리. 당연히 바로 눈에 띈다.

마을 주민들은 철량리 서서히 멈춰 서는 차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스르륵!

탁! 타악!

"끄으으!"

"끄아!"

기지개를 펴며 내린 종혁과 김종두 과장이 풀썩 웃는다.

차가운 공기가 긴 운전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 살랑 불어오는 공기가 가슴 깊은 곳까지 씻어 낸다.

"여긴 벌써 한 겨울이네요."

새하얀 입김이 허공으로 뿜어진다.

"그러게."

김종두의 목소리가 나른하게 풀려 간다.

서울과 비교하면 소음 자체가 없다 할 수 있는 시골 마을. 그냥 보고만 있어도 어깨를 짓누르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동네라고?"

정확히는 여기가 아니다.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이 마을 외곽에 살고 있다.

이곳 강원도 철량리에서 온 편지는 경찰다운 경찰이라는 종혁에게 도움을 요청한 편지였다.

"이야, 시골이라고 못사는 게 아니네."

김종두는 각 집마다 세워진 차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각 집마다 최소 차가 두 대는 주차되어 있는 탓이었다.

"뭐, 요즘 시골이라고 해도 차는 필수니까요."

걸어서 마을을 나가려면 한세월에, 버스는 겨우 하루에 한 번 오는 이곳.

이런 시골이기에 오히려 자동차는 필수였다.

"일단 배부터 채우시죠."

"그러자."

종혁은 슬그머니 앞을 지나는 사십대 중년인을 멈춰 세웠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이 동네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중년인이 눈을 빛냈다.

"서울에서 왔나 봐요? 이런 외진 곳까지 무슨 일로 오셨대?"

"하하. 세월 좀 낚으러 왔습니다."

"전 여기 과장님께 잡혀 왔습니다."

"이 자식이?"

"낚시?"

김종두의 말에 중년인의 눈이 가늘어진다.

"채비는 다 갖추셨고?"

종혁은 손을 저었다.

"뭘요. 이 양반이 갑자기 낚시에 꽂히셔 가지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왔잖아요. 이런 깊은 곳까지."

"야, 죽을래? 싫으면 사표 써."

"과장님의 영원한 딸랑이가 되겠습니다."

"흐하핫! 재밌는 분들이네."

중년인의 얼굴이 활짝 핀다.

"그런 거라면 잘 왔어요. 우리 철량리가 조용히 낚시하기엔 참 좋거든."

철량리에 외지인이 찾아온다면 대부분 이런 이유다.

한 번 오면 제법 이것저것 팔아 주는 낚시꾼들.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따라와요. 내가 식당으로 안내해 줄게요."

"아, 아뇨. 그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미안하면 이따가 내 가게에서 많이 팔아 주기만 하면 돼요."

"……혹시 하시는 가게가?"

"낚시용품 가게요."

종혁과 김종두는 어이없다는 듯 풀썩 웃었다. 뭐 이런 우연이 있나 싶었다.

둘은 그를 따라 근처의 주택으로 들어갔다.

쿵쿵쿵!

"할매! 할매 살아 있어요?"

-시끄러워, 이놈아! 너 때문에 놀라 죽겠다!

"살아 계시네. 나와 봐요. 손님 왔어요!"

-이 아침부터 뭔 손님이…….

벌컥!

씩씩거리며 문을 열었던 칠십대 할머니는 뚱한 눈으로 종혁과 김종두를 봤고, 종혁은 싱긋 웃었다.

"10인분 가능하실까요? 제가 좀 많이 먹거든요."

"어서 오세요, 손니임-!"

역시 뚱한 얼굴을 웃게 만드는 건 금융치료였다.

*   *   *

"숙소는 저기 펜션에 잡으면 될 거예요."

안내해 준 값으로 아침 식사도 사 주고, 낚시용품도 한가득 사서 그런지 낚시용품 가게 사장 박씨는 참 친절히 이것저것을 알려 줬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곳 펜션이다.

이따가 낚시 포인트도 안내해 주기로 했다.

"이야, 이런 곳에도 펜션이 있네."

겨우 2층짜리에 두 개 동밖에 안 되지만, 바다가 보이는 데다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아서 제법 잠잘 맛이 날 것 같다.

하지만 김종두의 눈빛이 차갑다.

종혁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곳에 그들을 부른 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점검하죠. 저흰……."

"서울에서 휴가 내고 온 회사원."

"들키면?"

"형사라는 걸 알면 껄끄러워할까 봐 그랬다."

"오케이. 들어가죠."

둘은 물고 있던 담배를 던지며 안으로 들어갔다.

"계십니까? 계세요-?!"

쿠당탕!

마치 모텔의 그것처럼 꾸며진 프런트 안쪽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욕설이 들리더니, 배불뚝이 오십대 장년인이 술 냄새를 풍기며 작은 구멍을 통해 고개를 내민다.

그에 종혁과 김종두 과장의 눈이 빛났다가 가라앉는다.

‘이놈이 김덕술이구나.’

종혁에게 도움을 요청한 이는 김덕술, 이자의 용의를 주장하고 있었다.

"뭐요?"

"방 좀 빌리려고요. 두 명이요."

"얼마나?"

"열흘이요. 1년 휴가를 모아서 왔거든요."

"70만 원. 카드 안 되고, 현금만."

"아, 아니……."

"싫으면 딴 데 가시고. 그런데 차 타고 40분 거리 안에 내 펜션 말고 없지 아마?"

근데 거기도 비슷할 거란 말에 종혁과 김종두는 이를 악물며 지갑을 꺼냈다.

펜션 주인 김덕술은 심드렁히 101호 키를 내려놨다.

"바다가 잘 보이는 곳인가요?"

"쯧. 별걸 다 따지네."

김덕술은 신경질적으로 203호 키를 던졌다.

"이런 씨!"

"네, 감사합니다. 자, 과장님. 올라가요."

"놔 봐. 아 놔, 진짜! 내가 내 돈 내고, 어?!"

"자, 자. 올라갑시다. 수고하세요."

종혁은 등을 떠밀었고, 그런 둘을 빤히 보던 김덕술은 콧방귀를 뀌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소란을 일으키며 2층에 올라선 그들은 맞은편 복도에서 한쪽 다리를 끌며 걸어오는 한 청년을 보곤 멈춰 섰다.

방을 청소하고 나왔는지 한 손에 쓰레기가 담긴 봉투를 든 20살가량의 청년.

그가 종혁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최, 최종혁 형사……."

하지만 종혁과 김종두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빛냈다.

"너구나? 나한테 편지를 보낸 사람이."

이름 유경조.

편지를 통해 누나를 찾아 달라며 간곡히 애원하던 청년이 바로 그였다.

"네…… 읍?!"

"쉿."

다급히 유경조의 입을 막은 종혁은 검지를 입가에 가져가며 방금 그들이 나온 곳을 가리켰다.

방금 전 자신이 뭔 짓을 할 뻔했는지 알아차린 유경조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끄덕였고, 종혁은 따라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203호의 문을 열고 들어와 닫은 셋은 방 한가운데로 모였다.

유경조는 종혁을 보며 불신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종혁이 자신의 앞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종혁은 절대 환상이 아니었다.

"저, 정말 왔어……. 정말로……."

이런 시골에 살아도 경찰 본청이 어떤 곳인지 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악질들만 잡는 곳.

그럼에도 편지를 보낸 이유는 종혁밖에 믿을 사람이 없어서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기에, 그 누구도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기에 유경조는 마지막 희망을 걸어 봤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통했다.

종혁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꼼지락거리는 유경조의 손등에 손을 올렸다.

"그렇게 절박하게 외쳤는데 당연히 와야지."

"아……."

유경조는 순간 터지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고, 종혁은 그런 그의 손등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럼 이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겠니? 편지엔 다 담지 못했던 모든 이야기를."

"네. 그게……."

그렇게 경조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의 누나 유경순은 이미 한 번 결혼한 전적이 있는 김덕술에게 시집을 가게 됐다.

유경조는 정말 참 많이 반대를 했었음에도 누나 유경순은 결국 김덕술과 혼례를 올려 버렸다.

옛날부터 황소고집이었던 누나.

상황이 그렇게 되어 버리자 유경조는 어쩔 수 없다며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결혼한 지 고작 2년 만에 누나 유경순이 철량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누가 마을을 나가거나 들어오면, 다음 날엔 온 마을 사람들이 그 소식을 알고 있는 철량리.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를 보았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게 벌써 약 1년 전의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김덕술의 지랄 맞은 성격을 못 이겨 도망친 거라고 말했고? 김덕술도 그렇게 말했고?"

유경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 작년 11월 즈음부터 둘은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죽고 못 살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언성 한 번 높이지 않았던 두 사람이 말이다.

누나가 사라지는 그날에도 김덕술과 누나는 아주 크게 싸웠고, 그날 누나는 철량리에서 사라졌다.

정황상 마을 사람들의 의견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누나는 정말 저에게 말없이 사라질 사람이 아니거든요."

너무 어릴 적에 부모님을 여의었기에 두 남매는 죽고 못 살았다. 누나는 학교조차 안 다니며 마을 일을 도와 유경조를 키웠고, 유경조는 그런 누나를 엄마처럼 생각했다.

그러다 유경조가 교통사고를 당하며 다리를 크게 다쳤고, 그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서 다리를 절게 됐다.

그 충격에 유경조는 학교를 관뒀고, 유경순은 자신이 지키지 못했다 한탄했다.

그런 누나이기에 절대 말없이 사라질 리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연락 한 통조차 없었기에 유경조는 점점 누나가 자신을 버렸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을 테니까 이젠 놓아주기로 생각했다.

"그런데……."

반년 전 보험사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누나 앞으로 거액의 보험이 가입되어 있다는 전화였다. 수령자가 남편인 김덕술로 되어 있는 거액의 보험이.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보험에 가입한 시기였다.

누나가 자취를 감추고 실종 신고가 되기 몇 개월 전부터 갑자기 차례차례 가입된 보험들.

둘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한 이후다.

그제야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유경조는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해 봤지만,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다리병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던 그때 TV에서 종혁을 보게 되었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간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어이구…….’

김종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래. 고맙고 수고했다. 그동안 버티느라 정말 고생했어."

"아……."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에게 맡기렴."

결국 유경조의 눈에서 눈물이 터졌다.

*   *   *

겨우 울음을 수습한 유경조가 방을 빠져나갔고, 종혁과 김종두는 서로를 쳐다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코앞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기에 경찰로서 애써 잡고 있던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그때였다.

-야, 이 새끼야! 어디에 있었어! 한참 찾았잖아!

-그, 그게 오늘 오신 손님들이 짐을 좀 정리 해 달라고…….

-……에이, 씨부럴. 따라오기나 해!

"저 개새끼가!"

"참으세요."

종혁은 다급히 김종두를 붙잡았고, 이를 간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엉덩이를 다시 붙였다.

"후우. 그럼 정리해 보자."

둘의 눈은 삽시간에 차가워졌다.

이제부터는 감성이 아니라 이성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 새끼는 배가 불렀어."

"예. 보셨죠?"

입고 있던 셔츠가 구찌였다.

펜션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차는 벤츠.

제아무리 이런 폭리를 취하는 펜션 주인이라지만 이런 시골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 이 새끼 지금 돈맛을 제대로 본 거야."

지금 김덕술은 갑자기 많은 돈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직 유경순 씨의 사망 보험금을 받은 것도 아닐 텐데 말이죠."

일반적인 실종의 경우, 법원에서는 실종 기간이 5년이 지난 이후에야 실종자가 사망한 것으로 선고한다.

즉, 아직 실종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유경순의 사망은 인정되지 않으니 사망 보험금을 받는 건 불가능했다.

"대출? 사채?"

"둘 중 하나겠죠. 문제는……."

아직 유경순의 생사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출이나 사채를 써 가면서까지 사치를 부린다?

이건 유경순의 사망을 확신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보험금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길로 김덕술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질 테니까.

"하. 아무리 봐도 이 새끼가 죽인 게 분명한 것 같은데……."

종혁도 같은 생각이지만, 결론은 내리지 않았다.

사건이 끝날 때까지 확신을 하지 마라. 그의 철칙이었다.

그러나 김종두는 이미 거의 확신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의 촉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시체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그게 당면한 과제긴 하다.

일단 시체부터 찾아야 한다.

그런데 주위가 온통 산과 바다다. 시체를 유기할 곳은 넘쳐 난다고 봐야 했다.

"차라리 산이라면 낫겠지만, 바다라면……."

김종두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고, 종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후. 일단 짐부터 풀죠."

그렇게 말했지만, 썩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아 구석에 짐을 대충 던져 버린 종혁은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푸른 바다처럼 푸르른 겨울바람이 들어와 둘의 머리를 식힌다. 둘의 어깨가 아주 잠시나마 가벼워지는 순간이었다.

띠리링! 띠리링!

-나와요! 지금이 물때예요!

종혁은 피식 웃었다.

"일단 주변 탐문 조사부터 하는 건 어때요?"

"……그래. 복잡할 땐 그게 최고지."

일단 김덕술이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정말 김덕술이 그런 짓을 저지를 만큼 악독하고 치밀한 인간인지 아닌지.

유경조가 많은 걸 말해 줬지만, 그건 그의 시각일 뿐이었다.

둘은 낚시용품 가게에서 산 낚시가방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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