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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75화 (175/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75화>

허허 웃음을 터트린 현몽준이 손을 젓는다.

"아닙니다. 저도 방금 막 왔습니다. 앉으시죠."

그의 맞은편에 앉은 종혁은 챙겨 온 소나무 분재를 내밀었다.

"다시 한번 당대표가 되실 걸 축하드립니다. 많이 늦었습니다."

"호오. 이런 것도 하실 줄 아시는 분이셨나요?"

"협조를 해 주시는 분께는 최대한 은혜를 갚으려고 합니다."

"으하하하핫……!"

한 방 맞은 표정을 짓던 현몽준이 무릎을 치며 웃었고, 종혁도 피식 웃었다.

‘이런 청년이었던가.’

그가 조사한 종혁은 치밀하면서도 사나운 맹수다.

몸을 낮춰야 할 땐 쥐 죽은 듯 웅크리고 있다가, 한 번 사냥을 시작하면 가진 바 모든 것을 이용하여 먹잇감을 찢어발기는 맹수.

고고하면서도 존재 자체가 재앙인 호랑이다.

그런 것에 비추어 보면 정말 의외의 면모다.

하지만 마음에 들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이 선물에 사심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기에 더.

‘좋군.’

현몽준은 앉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저도 감사합니다. 최 경위님 덕분에 망신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울산 대현타이거.

대현중공업을 비롯해 그가 지닌 거의 모든 계열사가 스폰을 하는 축구클럽이다.

또한 그는 축구협회 명예회장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손길이 닿은 곳에서 약쟁이가 나왔다?

아마 야당이 사냥개를 풀었을 거다.

대선 중 시기적절할 때 후보에서 물러나며 박노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 줬기에 야당에겐 현몽준도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오히려 당대표님의 결단을 더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현몽준은 마약과 병역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 전원을 퇴출시켜 버렸다. 그러며 축구협회를 움직여 이들의 선수 및 코치 자격을 박탈하게끔 만들었다.

이에 언론들이 현몽준을 칭찬하고 있었다.

"후후. 아닙니다. 제가 최 경위님 덕분에 얼마나 많은 걸 얻었는지 아시면 그런 말은 못하실 겁니다."

이번 사건에서 전북 대현FC, 지금은 사이가 나빠진 큰형 현몽구에게도 빚을 지게 만들었다.

현몽구도 선수 및 코치 전원을 퇴출시켰고,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축구협회를 성토 중이었다.

이에 언론은 역시 큰 사람들은 다르다며 칭송을 하는 중이었다.

명예.

나이가 들면서 더 찾게 된 명예를 종혁이 준 거다.

‘이 빚을 대체 어떻게 갚아야 할까.’

대선 때부터 매번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 현몽준이가 줄 게 없어서 더…….’

눈앞의 사내는 자신의 반도 못 산 스물네 살 젊은 청년인데도 줄 게 없다. 그게 무척이나 어이가 없었다.

"생각이 깊으시군요."

"음?"

현몽준은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음식이 차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종혁은 싱긋 웃으며 옆에 놓인 술 주전자를 들었다.

"한 잔 올리겠습니다."

"이런, 내가 초대를 해 놓고 이 무슨 결례를……. 이리 주시죠. 제가 먼저 따라 드리겠습니다."

"누가 먼저 따르면 어떻습니까."

"허어……."

나지막하면서도 고집이 가득한 음성과 졸졸졸 술잔을 채워 가는 맑은 호박빛 술처럼 따뜻한 온기가 경직된 어깨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한순간 종혁이 이십대 청년이 아니라 비슷한 또래처럼 느껴졌다.

‘……정말 대단한 친구군.’

술 주전자를 넘겨받은 현몽준도 종혁의 잔에 술을 따랐다.

챙!

기분 좋은 고요함 속에 청아한 소리가 울린다.

‘오?’

마치 전국 팔도 맑은 청주의 장점만 모아 정종으로 우려낸 듯한 다채로운 맛이 목젖 뒤에서 역류하는 폭포처럼 쏟아져 나온다.

"……좋군요."

이 말 외에는 이 맛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종혁은 자신의 부족한 어휘력에 자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흐허허. 저도 여기 술이 만큼 맛있는 술을 마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 전복죽도 일품이죠."

"그렇습니까?"

곧바로 전복죽을 맛본 종혁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고, 현몽준은 그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푸흐흐."

"음?"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니다.

‘내 앞에서 이렇게 편히 구는 사람이 대체 얼마 만이지?’

없었다. 최소한 그가 대현중공업의 회장이 된 이후부터 종혁처럼 편하게 대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마치 그 옛날, 까마득히 먼 옛날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 현주영과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과 식탁에 앉아 서로 장난을 치며 식사를 하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다.

"제아무리 밉고 싫어도 밥은 꼭 함께해야 하는 거이야. 그래서 식구라 부르는 거 아니갔어? 아, 거 아새끼들! 아바이가 지금 말하고 있잖네! 안 들리네?!"

이북이 고향이신 아버지 현주영.

괜스레 그때가 떠올라 실웃음이 나온다.

"고맙습니다."

"……같이 알면 안 되는 겁니까?"

"으하하하하핫! 이건 저만 아는 걸로 하죠. 다른 것도 드셔 보십시오. 젊은 분 젓가락이 많이 느립니다."

"흠. 그렇게 도발하시면 안 될 텐데…… 지갑 속 카드의 한도는 넉넉하시죠?"

"으하하하하핫!"

장난이었다는 듯 웃은 종혁은 젓가락을 들었고, 현몽준은 이 반찬, 저 반찬 가리키며 웃음을 흘렸다.

꼭 친구에게 맛집을 소개하는 사람처럼 심장을 두근대면서 말이다. 그렇게 웃음과 온기가 가득한 식사가 시작됐다.

달그락.

마무리 차까지 완벽한 식사였다.

현몽준은 흡족해하는 종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곧 소년법을 개정할 예정입니다."

"음?"

"이후엔 음주 운전 처벌에 관한 형량을 높일 예정이고, 음주 및 정신병 등의 심신미약에 관해 다룰 예정입니다."

"대표님?"

"납치, 살인, 마약 등도 모두 다룰 겁니다."

종혁은 미간을 좁히며 현몽준을 봤다.

그는 종혁을 향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 나라의 치안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외에는 제게, 그리고 저희 정치인에게 맡겨 주십시오."

‘진심인가?’

아니, 진심이다. 그게 아니라면 일개 형사에게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없다.

생각을 정리한 종혁은 마주 고개를 숙였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부디 아주 잊지만 말아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꼭 그러겠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들의 식사는 마무리까지 훈훈했다.

*   *   *

부우웅.

달리는 차 안. 대리기사에게 양해를 구한 종혁은 차창을 열고 담배를 물었다.

치이익!

"푸후우."

빠르게 달리는 차 뒤로 빠르게 사라지는 연기.

그걸 가만히 바라보던 종혁은 돌연 실소를 터트렸다.

"이거 정치적 후원자가 생긴 건가?"

나쁘지 않다. 아니, 오늘 파악한 현몽준 정도의 정치인이라면 오히려 어떻게든 선을 만들었어야 할 정도다.

회귀 전 그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이었던 실수를 하지 않음으로써 언제든 대선에 도전할 자격을 갖춘 인물.

‘현몽준이라…… 한번 밀어 봐?’

종혁의 생각이 깊어져 갔다.

한편 종혁이 떠나가고 한정식집 주차장에 남겨진 현몽준은 담배를 물었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정말 대단한 친구란 말이지."

종혁은 자신이 기대했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꾸며진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그 정도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라면 대현중공업의 회장 자리에는 결코 오르지 못했을 터였다.

종혁의 말과 표정에서는 어떠한 거짓도, 가식도 느낄 수 없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군."

현몽준은 종혁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정치인으로서 해야 될 일이 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대체 젊은 친구가 어떻게 그런 정력을 갖춘 걸까. 흠…… 그분이라면 아시려나."

순간 충동이 든 현몽준은 품속 수첩을 꺼내 아주 오래전에 적어 두고 잊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예. 권회수올시다.

권회수. 한때 아버지 현주영도 고개 숙여 돈을 빌려야 했던 명동 사채업자들의 정점이자 밤의 황제.

그리고 종혁의 가치를 학창 시절부터 알아보고 돌봐 온 인물이었다.

"아저씨, 오랜만입니다. 저 몽준입니다. 잘 계셨습니까?"

-엥? 당대표님이 어쩐 일이신가? 혹시 돈 빌리시겠단 말은 하지 마시게. 손 뗐으니.

"하하하. 요새 선행을 하신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이미지를 위해 동참을 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십니까?"

-오호. 내 그런 거라면 아껴 둔 술이라도 꺼내야지. 언제 오시겠는가?

그렇게 약속을 잡은 현몽준은 다른 누군가에게 또 전화를 걸었다.

"예, 경찰청장입니까? 나 현몽준입니다."

현몽준은 그제야 차를 향해 발을 뗐고, 그의 비서관이 허리를 숙여 차문을 열어 주었다.

그렇게 그마저도 떠나면서 한정식집의 불이 꺼졌다.

*   *   *

"아주바이!"

"형이라고 불러라, 짜샤."

어느덧 순철과 순희가 국정원에 들어간 지도 3주라는 시간이 지났다.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사람들은 슬슬 코트를 벗어나 점퍼를 꺼내 들고 있었다.

종혁은 전보다 살이 더 오른 순철과 순희를 보며 피식 웃었다.

"국정원 밥이 정말 입에 맞았나 보다?"

"내래 남조선 인민들이 이리 부자일 줄은 몰랐슴네다!"

"나도 마찬가지야요!"

매일같이 하얀 쌀밥에 고깃국, 소시지와 고기반찬이 나왔다.

국정원 요원들이 맛없다고 먹지 않는 코다리조림조차도 둘에게는 황홀 그 자체였다. 그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한 맛. 밥 두 공기가 뚝딱이었다.

"엥? 순철이 넌 해커인데도 몰랐다고?"

"남조선 해킹은 함부로 못합네다. 드라마만 봤시요!"

"나도 드라마라서 다 후라이 까는 줄, 아니 거짓말하는 줄 알았시요!"

"아, 그래. 춥지? 일단 이것들 좀 입어. 대충 골라 오긴 했는데, 시간 내서 제대로 맞추자."

"아, 아니……."

"입어, 인마. 감기 걸린다."

점퍼가 든 종이백을 순철과 순희에게 안긴 종혁은 둘을 따라 나온 국정원 요원을 봤다.

"이야, 트레이닝 끝났다고 이젠 코치에게 인사도 안 하네요?"

종혁과 인연이 깊은 국정원 팀장이다.

"죽을래?"

"흐흐. 잘 계셨죠?"

"나야 잘 있지. 너는 아주 날아다니더라?"

"흐흐. 어쩌겠습니까. 사건이 저를 부르는데요."

"그래, 잘하고 있더라. 하. 나도 너처럼 돈 걱정 없이 수사하면 얼마나 좋을까."

"원장님께 건의하세요."

"그랬다간 잘려. 아무튼 얼굴 봤으니 됐다. 조심히 가. 난 간다."

"다음에 한잔해요!"

손을 흔든 팀장은 국정원 안으로 사라졌고, 종혁은 점퍼가 너무 따뜻하고 부드러워 굳어 버린 둘을 두드렸다.

"가자. 집으로."

종혁은 둘을 데리고 자신과 어머니의 보금자리인 정혁빌딩으로 향했다.

"자, 여기가 이제부터 너희가 살집이야."

축구를 해도 될 듯 넓은 거실을 지나 방문을 여니 족히 스무 평은 될 법한 커다란 방이 나온다.

"아니, 정확히는 네가 쓸 방이지. 순희는 옆방."

옆문을 활짝 여니 온통 분홍빛과 레이스로 꾸며진 공주방이 두 남매를 반긴다.

"와아! 와! 오라바니! 내 방이랍네다! 히익! 바, 방 안에 뒤, 뒷간도 있습네다!"

정혁빌딩의 꼭대기 층 절반을 쓰던 종혁과 고정숙.

종혁은 나머지 절반 중 절반을 터서 이 둘의 방을 만들었다.

"아주바이! 이, 이건 너무……."

종혁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울상을 짓는 순철의 머리를 헤집었다.

"내가 말했잖아. 너흰 내가 품기로 했다고."

그러기로 했는데 어디 집 하나만 달랑 던져 줄까.

성인인 순철이라면 어찌 버틸 수 있을 테지만, 9살인 순희는 아직 어른의 손길과 케어가 필요할 나이다.

"아, 아니……."

띠디디디디! 띠리릭!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정숙에 순철과 순희가 굳어 버린다.

깡마른 둘을 보는 고정숙의 눈에 작은 슬픔이 스친다.

"얘들이니?"

"아, 안녕하십네까!"

"처음 뵙겠습네다! 리순희, 9살입네다!"

성큼성큼 다가온 고정숙이 따뜻하게 웃는다.

"그래. 아줌마는 여기 사고부터 냅다 치고 보는 멍청한 곰탱이의 엄마인 고정숙이라고 해. 나이는 44살이고."

"얼씨구? 아줌마가 웬일이래? 그렇게 따뜻하게 말을 다 하고?"

콱!

고정숙의 손끝이 종혁의 옆구리에 박힌다.

"억? 자, 잠깐. 뼈, 방금 뼈 스쳤어."

"닥치렴."

"……예."

고정숙은 다시 순철과 순희를 봤다.

"아마 당분간은 서로 어색할 거야."

여태껏 단 한 번도 서로를 보지 못했는데 어찌 어색하지 않을까. 고정숙 본인의 틱틱거리는 성격도 문제다.

"아직은 서로를 알지 못하기에 오해도 많이 쌓일 거야. 하지만 이 아줌마가 너흴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는 말아 줬으면 해."

"아주마이……."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지? 일단 푹 쉬렴. 이야기를 나누는 건 저녁에 해도 되니까. 아들은 어떡할래? 복귀해야 돼?"

"오늘 휴가 냈어요. 그러니 저녁엔 오랜만에 여사님표 돼지갈비나 씹읍시다."

"……그런 건 아침에 좀 말하면 안 될까? 넌 꼭 일을 두 번 하게 만들더라?"

"사랑합니다."

"난 사랑 안 해. 알았어. 쉬어."

"수고해요."

손을 휘적인 고정숙은 다시 집을 빠져나갔고, 종혁은 순철과 순희를 봤다.

"저 아줌마가 좀 틱틱거리고, 뚱한 표정을 지을 때가 많을 거야. 하지만 방금 봤듯이 좋은 사람이니까 지레 겁먹지 마."

"저, 정말 저희가 여기서 살아도 되는 겁네까? 정말로?"

"나중에 방이 좁다고나 하지 마, 인마. 그땐 확 독립시켜 버릴 테니까. 조사받느라 힘들었을 텐데 쉬어."

종혁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걸어갔고, 순철은 그 모습을 떨리는 눈으로 응시했다.

그러나 소매를 툭툭 잡아당기는 손길에 고개를 내렸다.

"오빠, 일단 씻읍시다. 그게 예의입네다."

국정원에서 배워 교정한 단어 오빠.

"알았다. 그러자. 그런데 너 그 큰 곳에서 혼자 씻을 수 있갔네? 같이 씼을까?"

"오빠, 순희도 여자예요. 일없습네다."

"……돌았네?"

입술을 삐죽 내민 순희는 호다닥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그걸 보던 순철도 고개를 저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쿵!

따뜻한 베이지색의 벽지와 따뜻한 솜이불의 침대가 눈에 들어온다.

한쪽엔 태국에서 썼던 컴퓨터가 보이고, 책장엔 한국어 관련 서적과 컴퓨터 서적이 가득하다. 커다란 옷장엔 사계절 입을 옷과 신발이 가득 들어 있다.

"끄윽."

이런 온정.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크게 다가온다.

황급히 눈가를 훔친 순철은 혹여 이 울음이 밖에 들릴까 화장실로 잰걸음을 옮겼다.

이후 저녁 식사도 서로 말은 별로 없었지만 참 따뜻했다.

고정숙은 안 그런 척 순희를 옆에 낀 채 이 반찬, 저 반찬 입에 물려 줬고, 순철의 술잔이 비면 그녀도 술을 마셔 종혁에게 잔을 채우라 재촉했다.

북에 있는 아버지처럼 무심하지만, 어머니처럼 세심했다.

종혁은 큰누나 순영같이 듬직하고 장난기가 많았다.

이런 복을 받아도 될까.

괜스레 북에 있는 부모님이 생각났다.

‘오늘은 저녁이라도 드셨습네까?’

스르륵!

"오빠."

레이스 베개를 끌어안은 순희가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와 그라네? 잠이 안 오네?"

"바, 방이 너무 크지 않습네까. 오빠가 무서워할 것 같아서 왔시요."

"……그래. 안 그래도 무서웠던 참이다. 이리 오라. 같이 자 자."

그에 뽀로로 달려온 순희가 이불 안으로 파고들자, 순철은 자장자장 순희의 배를 두드렸다.

"참 좋은 분들입네다. 오마니랑 언니야 같았시요."

"……."

"하아암. 안녕히 주무시라요."

"그래. 너도 잘 자라."

곧 순희는 고롱고롱 코를 골았고, 그 소리에 생각이 많던 순철도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렇게 새 가족을 얻은 두 남매의 하루가 저물어 갔다.

한편 종혁은 어머니를 찾았다.

로션과 스킨을 바르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어머니의 모습에 종혁은 풀썩 웃었다.

"고마워요."

"……됐어. 안 그래도 집이 쓸데없이 넓어서 외롭던 참이었어. 자식이라곤 하나 있는데 사건이 터졌다 하면 며칠씩 집에 안 들어오지……."

"오케이, 스탑. 죽을죄를 졌습니다."

"에혀. 이 집에 사람이 들어오면 며느리가 들어올 줄 알았는데……."

"알았다니까."

"너 진짜 고자니?"

"아니라고!"

"아니면 나가. 나도 자야 돼."

"사랑해요."

종혁은 퉁명스런 어머니를 꼭 안아 주곤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문을 닫을 때 화장대 거울을 보던 고정숙이 입을 열었다.

"애들이 눈치 많이 보더라. 그 어린 것들이…… 에혀."

"네. 저도 노력할게요."

"알면 됐어. 나가."

"……안녕히 주무세요."

방으로 돌아온 종혁은 어둠에 잠긴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다 피식 웃으며 돌아누웠다.

그렇게 새롭게 가족이 된 네 사람의 밤이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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