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72화>
웅성웅성.
그렇지 않아도 매일 몰려드는 환자들로 인해 시끄러운 동서병원이 갑자기 찾아온 축구선수들로 인해 더 시끄럽다.
X-ray부터 시작해 심전도 검사, 내시경 검사에 혈액 검사까지 받는 그들.
"하. 발목이나 무릎 괜찮겠지?"
"척추도 문제잖아."
"난 그것보다 간 수치나 신장 수치가……."
"그러게 술 좀 작작 마시라니까."
서른 살이 넘은 선수들의 표정이 어둡다.
이제 막 가정을 이루거나 가정을 이룬지 몇 년 되지 않은 그들. 한창 벌어야 할 타이밍에 명단에서 제외가 된다면 당장 생계부터 문제가 생긴다.
그들은 부디 메디컬 테스트를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진짜 이게 뭔 날벼락인지."
"다음 환자분 앞으로 나오세요."
"후우."
그들은 무거운 마음을 움켜쥐며 혈액채취실안으로 들어갔고, 간호사들과 서글서글한 인상의 사십대 의사가 반겼다.
"따끔합니다. 자, 따끔?"
"윽! 슨생님, 아픈데요."
"아아! 너무 많이 뽑는 거 아니에요? 어지러운데?"
"운동선수들이 뭔 엄살을 이리 부려요. 우리 예쁜 간호사님들 보기 부끄럽지 않아요?"
"……."
"아아아!"
그렇게 시끌벅적한 혈액채취가 끝나자 간호사들이 혈액 샘플을 챙긴다. 검사실로 옮기기 위해서다.
그때였다.
"놔두고 나가 봐요. 내가 할 테니까."
"네? 또요?"
"선생님, 이런 건 저희가 하게 해 주세요!"
서글서글한 인상답게 성격도 좋은 그.
"후후. 한 사람만 움직이면 되는데 뭘 여러 사람이 움직여요. 가 봐요."
"어휴.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부터 이러시면 안 돼요?"
"그래요, 그래."
왠지 다음에도 이럴 것 같은 그의 모습에 한숨을 폭 내쉰 간호사들은 허리를 꾸벅 숙이곤 나갔고, 채취실엔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에 의사는 가지런히 정리 된 혈액 샘플들을 바라보며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달그락.
그의 손아귀 안에 잡히는 서늘한 CBC보틀의 감촉.
그와 동시에 서글서글 웃던 낯이 딱딱하게 굳는다.
의사로서의 양심이 꿈틀거리며 어떤 생각과 맹렬히 싸운다.
하지만.
"후……. 빌어먹을. 그놈의 빚만 아니라면."
보통 빚이 아니다.
도박 빚. 저승사자도 학을 뗀다는 도박 빚이다.
결국 그는 의사로서의 양심보다 생존 욕구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내가 다시 도박장에 얼씬거리면 개다, 개."
눈을 질끈 감은 그는 박상영이란 이름이 적힌 혈액 샘플에 손을 가져갔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의사, 간호사들에게 인사를 하며 주차장으로 향한 그는 차를 몰고 울산의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저녁임에도 제법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버스터미널 안.
보관함 캐비닛 앞에 선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로 한 보관함을 열었다.
"……."
안에 든 가방을 보며 눈을 파르르 떠는 그.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본 그는 가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지이익!
"흡?!"
만 원 다발의 향연.
그의 숨이 멎었다.
한편 터미널 입구 안쪽에 선 종혁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느낌 딱 오네. 아무래도 이쪽 같습니다, 과장님."
뜬금없이 버스터미널 주차장에 차를 세우더니 터미널 안으로 들어온 것도 모자라 보관함 앞을 서성인다.
바로 답이 나왔다.
종혁은 이걸 설명했고, 김종두 과장은 피식 웃었다.
-너무 옛날 방식인데?
"하지만 제법 확실한 방식이잖아요."
김종두는 동의했다. 확실히 계좌이체보다 추적을 덜 당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식엔 치명적인 문제점들이 있었다.
‘어이구, 고마워라.’
함박 미소를 짓던 종혁은 이내 낯빛을 굳혔다.
"문 열었습니다. 따겠습니다."
종혁은 의사가 보관함의 문을 열자 발을 뗐다.
그 순간이었다.
흠칫!
-잠깐.
‘잠깐만.’
동시에 잠깐을 외치는 둘.
-종혁아, 멈……
"멈췄니까 걱정 마세요."
보관함에 돈을 넣고 그 키를 배달하는 옛날 방식으로 거래를 주선한 놈들이다.
지켜보는 놈이 있을 확률이 높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건데, 인마.
김종두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종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곤 눈빛을 가라앉히며 의사에게 다가갔다.
아니, 정확히는 그를 지나쳐 그 옆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러며 귓가에 손을 얹었고, 흠칫 놀란 의사가 보관함을 온몸으로 막았다.
"삼촌! 저 터미널에 먼저 도착했는데, 마실 것 좀 살까요?"
-몇 명 보이냐?
"예? 네 개나요? 에이, 진짜!"
그렇게 안으로 들어온 종혁은 커피를 고르는 척 편의점 바깥을 응시했다.
-넷이나 돼? 못 따지? 미행 가능하냐?
"힘들죠. 이걸 어떻게 혼자 다 들고 가요."
-에이.
잠시 창밖을 주시하던 그때, 의사가 주차장 쪽으로 나가자마자 근처 벤치에 앉아 있던 놈이 터미널 밖으로 향한다.
그 모습을 확인한 종혁은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일단 하나만 들고 갈게요."
-오케이! 그놈이 뭘 타고 어디까지 가는지 확인해!
"옛썰."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종혁은 모자를 눌러쓰며 밖으로 나가는 젊은 놈의 뒤를 밟았다.
탁!
"후우욱!"
지이익!
운전석에 앉자마자 가방 지퍼를 열었던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가방에 가득 든 만 원짜리 지폐 뭉치들.
"이, 이게?"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대충 봐도 약속했던 것보다 많은 액수다.
대체 자신이 도박에 중독된 걸 어떻게 안 건지, 도박 빚 액수를 어떻게 알았는지 딱 그 액수를 제시했던 악마.
띠리링!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에 화들짝 놀란 그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3천 정도 더 챙겨 넣었어요.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아니, 난 이제……."
달칵!
"여보세요! 여보세요!"
끊긴 전화를 망연자실 바라보던 그는 가방 안을 응시했다.
3천만 원.
의사인 그에게도 3천만 원은 큰돈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의사로서의 양심을 저버린 것에 괴로웠는데, 3천만 원의 공돈이 생기니 그 고통이 줄어든다.
"……그래, 상부상조야."
박상영 등은 선수 생활을 이어 가서 좋고, 자신은 도박 빚을 갚아서 좋다.
그렇게 변명하며 지퍼를 닫은 그의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맺혀 있었다. 사람 좋아 보이던 그라곤 생각지도 못할 뒤틀린 미소.
차창을 내린 그는 담배를 물었다.
"푸후우. 이거 밑천이 생겨 버렸네."
3천만 원이면 얼마나 딸 수 있을까.
혈액 샘플을 바꿔치기할 때 했던 다짐을 잊어버린 그는 씩 웃으며 핸들을 잡았다.
그 순간이었다.
저벅저벅!
"어이구. 지랄 염병을 하고 자빠졌네. 상부상조는 개뿔."
흠칫!
"누, 누구…… 윽?!"
쿵!
보닛에 손을 올리며 의사의 멱살을 틀어 쥔 종혁은 사납게 웃었다.
"경찰입니다. 그러니 그 가방 내놔라, 이 개새끼야."
* * *
"스으읍! 후우우."
축구 경기장의 선수 전용 화장실.
손가락으로 이를 훑은 박상영이 거울을 보며 가슴에 손을 올린다.
두근두근 가쁘게 뛰는 심장.
언제나 경기 날이 되면 심장은 가쁘게 뛴다. 모든 신경이 예민해지며 멀리 있는 소리마저 들리고, 정신마저 고양된다.
긴장이나 흥분 때문이 아니다.
박상영은 빨간 가루가 묻은 휴지 뭉치를 보며 씩 웃었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보물.
하지만 아주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보물이다.
극소량으로 섭취하면 엄청난 효과를 내지만, 과하게 먹었다간 도리어 몸과 정신을 망치고 마는 양날의 검. 마약.
흔희 마약은 중독성이 강해 끊을 수 없다지만…….
"그건 모두 의지박약아들의 변명일 뿐이지. 난 그런 놈들과 달라."
이렇게 경기 때만 극소량으로 쓰는데 왜 중독이 되겠는가.
쿠르릉!
변기물에 쓸려 가는 휴지 뭉치를 차갑게 응시하던 그는 볼을 쫙쫙 치며 돌아섰다.
"후아. 가자!"
그는 가슴을 쭉 펴며 대기실로 향했다.
그리고 약 2시간 후.
"형! 오늘 멋졌어요! 진짜 약 빤 수준이던데요?"
"상영이 오늘도 날아다니던데? 진짜 너 따로 먹는 거 있지? 있으면 나도 같이 좀 먹자!"
부러움과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는 선후배들이 던지는 말에 순간 뜨끔한 박상영은 손을 저었다.
"에이, 좋은 거는요. 그런 거 없어요."
"왜? 너희 집 부자라서 그런 거 잘 먹지 않아?"
"똑같이 클럽하우스 식당 밥 먹는데 무슨……."
"박상영!"
"예, 감독님!"
그는 재빨리 감독에게로 향했다.
감독은 후다닥 달려온 박상영을 보며 흐뭇해했다.
‘이제야 포텐셜이 터지는 건가?’
작년부터 갑자기 기량이 확 늘어나더니 올해에 들어선 포텐셜이 터진 것처럼 엄청난 성적을 보이고 있다.
‘연습 게임 때는 참 헤매는 놈이 실전만 들어갔다 하면…….’
실전에 강한 타입이라고 봐야 했다.
"감독님?"
"음? 아, 잘했어. 이대로만 해. 그러면 내가 다음 월드컵에 너 꼭 추천한다."
"헉!"
월드컵 국가대표.
사라진 약발이 다시 솟은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내가 국가대표? 재작년까지 벤치만 달구던 내가?’
"가,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더 열심히 해. 아, 그리고 단장실 가 봐."
"단장님께요?"
고개를 모로 기울이던 박상영은 눈을 부릅떴다.
‘서, 설마?’
재계약 아님 연봉 조정이다.
검지를 입에 가져다 붙인 감독은 손을 저었고, 박상영은 다급히 단장실로 달려갔다.
‘내가 연봉 조정 대상이라니!’
돈이 문제가 아니다.
인정을 받았다는 것. 그게 형언할 수 없는 쾌감을 가져다줬다.
"씨발, 이러다 나도 해외 가는 거 아니야?"
역시 마약이 보물이었다. 정말 보물이었다.
"헉헉헉!"
단장실 앞에서 서서 숨을 고른 그는 손을 들었다.
똑똑똑!
"예, 들어오세요."
‘후.’
숨을 짧게 내뱉은 그는 문을 활짝 열었다.
"단장님, 부르셨다고…… 어?"
박상영은 눈을 껌뻑였다.
단장실 안에 단장뿐만 아니라 익숙한 얼굴이 있다.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한 사람. 코치.
그런 그의 손목에 수갑을 채워져 있다.
오싹!
"어…… 제, 제가 올 타이밍이 아니었나 보네요. 그, 그럼……."
툭!
뒷걸음질을 치던 박상영은 갑자기 등에 벽이 닿자, 같자 고개를 돌렸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얼굴을 덮는 커다란 손.
"자, 들어가자. 뽕쟁아."
한껏 부풀었던 꿈이 터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 * *
울산에 있는 어느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
헤드셋을 쓴 종혁과 김종두 과장이 화상채팅이 켜진 모니터를 본다. 그런 둘의 뒤에 사진과 글이 빼곡하게 적힌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있다.
"자, 그럼 정리하겠습니다."
화면 속 특수범죄수사과 형사들이 눈을 빛내고, 종혁은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이름 미상. 일명 브로커."
신원 미상이라 일단 그렇게 붙였다.
박상영과 의사의 핸드폰에서 일치하는 전화번호를 찾았지만, 대포폰 번호여서 신원을 알 수가 없었다.
아는 거라곤 현재 본청으로 향하는 박상영과 의사를 통해 확보한 몽타주뿐.
그 스스로도 브로커라 칭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종혁의 입술이 근질거렸다.
‘아는데! 이놈이 누군지 아는데!’
이름 김판수. 나이 47세. 전과 없음.
지금 어디 있는지만 빼고, 다 아는데도 말을 할 수 없으니 정말 미쳐 버릴 것 같다.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쉰 종혁은 말을 이어 갔다.
"합성마약의 한 종류인 YABA를 판매하는 놈으로서……."
-뭐? 야바?
-씨불? 야바가 한국에 들어왔어?
형사들이 동요를 보인다.
헤로인이나 필로폰, 코카인 등 흔히 아는 마약이 아닌 희귀한 마약인 YABA. 일명 크레이지 드럭.
암페타민류 마약과 합성한 마약으로, 암페타민류의 특징인 혈압 상승, 심박 증가, 동공 확대, 혈당 증가, 근력 증가 효과에 도취와 흥분, 폭력성까지 동반하는 미친 마약이다.
그래서 크레이지 드럭.
태국과 미얀마가 주 생산지다.
"이놈은 축구선수들에게 야바를 공급하는 한편, 선수들의 병역 문제에도 깊게 개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형사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건 또 뭔 개소리야?
-병역 문제까지 얽혀 있다고? 어떻게?
"알부민이란 약물과 혈액을 소변에 섞은 뒤 소변 검사를 하여 신장 질환을 위장하고, 검사 전에 짙은 농도의 커피를 다량으로 섭취해 고혈압 수치를 높였다고 하더군요."
간장 질환자나 신장 질환자에게 투여되는 알부민.
그것을 혈액과 함께 소변에 섞으면, 소변 검사에서 사구체신염 등 신장 질환을 위장할 수 있다.
그리고 커피를 이용해 사구체신염 환자에게 몹시 위험한 고혈압 증상까지.
이것이 브로커 김판수, 놈의 수법이었다.
병역 관련 브로커로 전전하다, 이내 마약 판매까지 손을 댄 악질적인 놈.
-니미? 면제받는 게 그렇게 쉽다고?
한 형사의 외침이 모든 형사의 심정을 대변했다.
-이거, 그러면…….
"예. 월드컵이나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의 메달로 인한 면제 판정이 아닌 다른 이유로 면제 판정을 받은 선수 전원 용의선상에 올려야 합니다."
쿵!
-와…… 돌겠네.
갑자기 사이즈가 커진다.
현재까지 혐의가 있다고 판단된 용의자의 수는 총 7명이었다.
아니, 울산 대현타이거에서 3명이 추가되어 10명.
혹시나 모두 검거하면 브로커에게 알려질 수도 있기에 일단 박상영과 코치만 검거한 상태다.
그런데 이 숫자가 몇 십 명, 아니 몇 백 명까지도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형사들은 담배를 물 수밖에 없었다.
-……종혁아. 만약에, 정말 만약에 2002 태극전사들도 여기에 얽혀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거냐?
-뭣?! 에이, 설마!
-형님! 그런 말 하는 거 아닙니다! 광화문에서 팬티 바람으로 뛰어다닌 거 벌써 잊었어요?
"뭐 정말 그렇다면 엿 되는 거죠."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힐 거다.
‘다행히 마약에는 얽혀 있지 않지만…….’
병역 비리에는 얽힌 사람이 몇 명 있다. 벤치 멤버였던 이들 중 몇 명이.
씁쓸하게 웃은 종혁은 브로커 밑에 붙은 커다란 명함 사진을 가리켰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름 고현수. 나이 31세. 절도 및 폭력 전과 3범. 서울 출생이며 인출책으로 추정됩니다."
1억 5천만 원이 든 가방에서 몇 개의 지문을 채취했다.
은행원과 이사, 그리고 인출책과 운반책으로 추정되는 놈들의 지문이었다.
이게 바로 옛날 방식의 문제점이다.
지문이나 DNA 증거가 남는다는 것.
지폐 뭉치를 두른 종이띠를 통해 확인된 은행원 지문으로, 놈들이 어느 은행을 이용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덕분에 고현수가 창구에서 현금을 이체하는 CCTV 영상까지 확보했다
다만 아쉽게도 통장은 모두 노숙자의 명의로 만들어진 대포 통장이었다.
"그리고 이름 이경도. 26세. 18살 때 본드 흡입 및 폭력으로 잠깐 소년원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운반책으로 추정됩니다."
가방 손잡이에서 지문이 검출된 이경도.
돈가방을 챙긴 의사가 주차장 쪽으로 나가자마자 터미널 밖으로 향했던 놈이 바로 이놈이었다.
종혁은 이경도의 뒤를 밟으려 했지만 놈이 곧장 택시를 타는 바람에 급한 대로 자동차 번호판을 확인한 뒤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후에 택시기사의 증언에 따라 놈이 내린 장소의 CCTV를 싹 훑었으나, 사람이 바글거리는 번화가에 내린 터라 아쉽게도 행적을 놓쳤다.
‘과장님이 같이 있었다면 놓치지 않았을 텐데!’
너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현수와 이경도, 두 사람의 교차점은 아직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다.
"저희가 조사한 건 여기까지입니다. 현재 라차논에게 한국에 마약을 판매한 조직을 찾아 달라 부탁을 하긴 했지만……."
찾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태국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만약 태국이 아니라 미얀마에서 넘어온 거라면?
그냥 그쪽은 기대하지 않는 게 속 편하다고 봐야 했다.
그에 형사들은 혀를 내둘렀다.
-와, 이 짧은 시간에 이걸 다 알아냈다고? 미쳤네.
-대체 거기서 뭔 짓을 한 겁니까? 야, 종혁아. 너 뭔 짓 했지?
"시끄러워, 이놈들아. 니들 수사력이 부족한 건 생각 안 하냐?
-……하아?
-허허허. 이 양반이 이빨을 까시네. 좋습니다. 그럼 종혁이 보내 봐요. 종혁이 없이도…….
"됐고. 서울팀?"
-에라이.
"이 자식들이?! 야, 나 과장이야!"
-예, 예. 누가 뭐랍니까? 아무튼 번호 추적 결과 브로커가 사용한 대포폰이 개통된 장소를 찾았고, 내일 급습할 예정입니다.
신화전력통신.
누가 봐도 대포폰 업체다.
놈들을 급습하면 다른 몽타주가 나올 수 있었다.
"쯥. 오케이. 부산팀?"
이후 부산, 포항 등 형사들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하지만 딱히 유의미한 정보는 없었다.
그렇게 브리핑이 끝나자 김종두는 박수를 쳐서 시선을 주목시켰다.
"좋아. 그럼 서울팀은 내일 정보 얻으면 바로 연락하고, 나머진 계속 감시. 브로커가 나타나면 바로 검거하지 말고. 들키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쇼!
캠이 모두 꺼지자 김종두는 채팅 사이트를 나갔다.
그리고 화이트보드를 보며 혀를 찼다.
"이야, 이놈을 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지?"
박상영을 통해 김판수를 추적할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품었으나, 김판수는 예상보다 더 치밀했다.
처음 접근할 때를 제외하면 김판수는 철저히 거래 대상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모든 거래는 약을 어느 장소에 숨겨 놓으면 대포통장으로 이체시키는 형태로만 진행되었고, 통화를 나누던 연락처는 대포폰이었다.
결국 아직 놈의 꼬리조차 잡지 못한 셈이었다.
각 경찰청에 협조를 요청하면 편하겠지만, 어디까지 또 누구까지 얽혀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각종 이권이 얽혀 있는 K-리그.
김판수를 검거하기 전까진 절대 비밀을 지켜야 했다.
그래서 검거도 박상영과 코치, 의사만 하지 않았던가.
"찾을 곳이야 많죠."
"어디? 아, 하우스?"
도박장.
김판수가 어떻게 의사의 빚이 얼만지 알았겠는가. 의사가 자주 들른다는 하우스에서 정보를 얻은 거다.
즉, 하우스 직원 중 누군가는 놈과 만난 거다.
절대 전화상으로 만나진 않았을 터.
만약 하우스 직원 중 누군가를 만날 때, 김판수가 차를 타고 왔다면?
그것이 혹시 대포차나 렌트카라고 해도 유의미한 성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종혁의 생각은 좀 달랐다.
"거기도 있지만 뽕쟁이도 있잖아요."
"응?"
"뽕쟁이는 뽕쟁이한테 물어봐야죠."
종혁은 사납게 웃으며 서울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삼촌. 마약반에 울산이나 부산에서 마약 파는 새끼 한 놈만 알아봐 주세요."
마약을 판매하는 장소는 마약을 하는 놈이 가장 잘 아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