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69화 (169/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69화>

불이 꺼진 허름한 주택가.

"후욱! 후욱!"

"진정해."

곧 누나를 만날 생각에 숨이 거칠어졌던 순철이 종혁을 본다.

기어코 우겨서 따라온 순철.

‘종혁 동무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아니다.

정찰총국에 사로잡혔어도 아마 입을 다물었을 거다.

NIA에게 빼돌려졌다 한들 한참 뒤에나 믿었을 거다.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는 오해를 하고 있었으니까.

정말 순수하게 도움을 준 종혁이 아니었다면, 먼 훗날에서야 이곳에 왔을 것이다.

"……한 가지만 묻고 싶습네다."

"왜 잘해 줬냐고?"

순철은 고개를 끄덕였고, 종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냥 오지랖이라고 말하면 편하겠지만, 아마 순철이 원하는 답은 아닐 거다.

"내가 경찰이라서 그랬던 거라고 치자."

"경찰……."

순철에겐 낯선 단어인 경찰.

경찰이 뭔지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경찰은 종혁처럼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인민의 편이 아니다. 인민을 감시하고 인민의 돈을 갈취하는 존재들이지.

보위부에서 근무를 하고 있기에 순철이 가장 잘 안다. 그래서 정찰총국도 믿지 못했던 거다. 솔직히 지금도 완전히 믿지는 못했다.

"정말 감사합네다. 이 은혜 꼭 갚갔시오."

"그 말은 너희 누나 구출한 후에 하자."

"……예."

순철은 그 말에 더욱 감동했다.

그때였다.

지이잉!

모두의 시선이 종혁에게 모인다.

종혁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그 순간.

흠칫!

라차논과 리동수를 비롯한 요원들이 그들도 모르게 종혁에게서 한 발 물러난다.

‘종혁?’

‘이 아새끼래?’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끔찍한 살의.

"예. 이쪽은 저한테 맡기세요. 아주 개아작을 낼 테니까."

전화를 끊은 종혁은 살의를 품은 눈으로 라차논과 리동수를 봤다. 김종두 과장을 비롯한 특수범죄수사과 형사들이 구출한 여성의 숫자는 총 56명.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납치됐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놈들을 찢어 죽이고 싶다는 살의로 변질 된다.

"그쪽은 끝난데. 그러니 시작하자, 라차논. 시작합시다, 동수 씨."

"……시작해."

라차논과 리동수는 저 앞에 보이는 놈들의 아지트를 가리켰고, 이내 곧 어둠에 몸을 숨기고 있던 그림자들이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슥! 착착!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담을 넘는 그들.

그리고 잠시 후.

타다당! 타타탕!

종혁은 총소리가 어둠을 꿰뚫자 저도 모르게 튀어나가려는 순철을 붙잡았다.

-칙! 클리어.

-제압 완료했습네다.

"가자."

저벅저벅.

다시금 조용해진 골목을 그들의 발소리가 울린다.

끼이익.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종혁과 라차논, 리동수는 마당에 펼쳐진 참상을 무심히 바라봤다.

목이나 폐가 꿰뚫려 바닥을 기는 시체들.

"누나!"

더 이상 참지 못한 순철이 주택 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처, 철이?"

정찰총국의 부축을 받으며 가장 안쪽 방에서 나오던 순영이 눈을 부릅떴다.

"철이네? 정말 우리 철이 맞네?"

"누나-!"

"철아-!"

햇수로 약 2년여.

지옥 속에서 살았던 순영와 그녀를 찾기 위해 지옥을 헤쳤던 순철 두 남매가 극적인 상봉을 이뤘다.

그 순간만큼은 냉혹한 요원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종혁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너무나도 크고 길었던 악몽이 끝났다.

쿠당탕!

"이 종간나 새끼!"

모든 게 끝난 주택이 시끄러워진다.

어깨가 꿰뚫린 채 끌려 나온 차이 사장을 덮친 순철이 주먹을 날린다.

"하지 마라, 철아!"

"어찌 하지 말랍니까! 이 종간나 새끼가 누나 손가락을……! 놓으시오! 내래 이 종간나 새끼의 갈비뼈를 혁명적으로 바꾸갔시오!"

아무도 순철을 말리지 않는다.

"큭큭! 그래…… 죽여! 죽여 봐! 네 누나가 나한테 무슨 꼴을 당했는지 모르지?!"

이대로 잡혀 들어가면 무슨 꼴을 당할지 아는 차이는 도발을 했고, 순철은 완전히 눈이 돌았다.

"이 종간나가……!"

그 순간이었다.

순철에게 성큼성큼 다가간 종혁은 그의 뒷목을 잡아 차이 사장에게서 떼어 냈다.

"종혁 동무!"

종혁은 달려드려는 순철에게 이를 드러냈다.

"순철아, 이런 놈은 죽이면 안 돼."

죽이는 건 이런 놈들을 도리어 돕는 거다.

이런 놈들은 종신형이든 사형이든 받게 해서 평생 독방에서 햇빛도 못 본 채 살아가게 해야 한다.

"그렇지?"

"주, 죽여! 제발 날 죽여-!"

"……."

종혁은 라차논을 봤다.

라차논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 마, 순철. 이놈은 태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교도소에 갇히게 될 테니까."

"그, 그렇다면야……."

그렇게 사태가 일단락되자 가만히 있던 리동수가 순영의 앞에 서며 거수경례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정찰총국 요원들도 모두 거수경례를 한다.

시종일관 당당하던 그들이 갑자기 겁에 질려 벌벌 떤다.

"늦어서 죄송합네다, 리순영 소좌! 정찰총국 리동수 대위입네다!"

종혁은 눈을 부릅떴다.

‘소좌?’

한국 군인 계급으로 따지면 소령.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데 소령이다.

"일없습네다. 많이 기다리진 않았시오."

"가, 감사합네다!"

종혁은 순철을 봤다.

"순영 누나는 동남아 특작……."

"철아."

"이것도 비밀입네다."

‘뭔 비밀이 이리 많은지…….’

머리를 긁은 종혁은 순영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남기신 단서 덕분에 이렇게 일망타진할 수 있었습니다. 용기를 내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희망을 놓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순영은 그 진심 가득한 말에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곧 굳어졌다.

"아직 다 끝난 게 아입니다."

"음? 아……."

주위를 둘러본 종혁은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게 없다.

종혁은 차이를 노려봤다.

"야, 니들 사람 죽여서 어떻게 했어?"

흠칫!

사람들이 깜짝 놀라 차이를 보고, 차이는 필사적으로 그들의 시선을 피했다.

그에 순영이 입을 열었다.

"여기엔 없습네다. 하지만 다른 곳들엔 있습네다. 하지만 거기가 어딘지는……."

"너……!"

발작하듯 배신감 가득한 눈으로 순영을 노려보는 차이.

"하, 이 씨발 새끼가……."

빠드득!

다시 살의가 치솟는다. 피투성이가 된 채 구조된 서양 남자의 모습이 그의 살의 더 돋운다.

종혁은 라차논에게 손을 내밀었다.

"라차논 그것 좀 잠깐 줘 봐."

"응? 이거?"

라차논의 권총을 받아 든 종혁은 그대로 차이의 입 안에 쑤셔 넣었다.

"으븝?!"

"최!"

종혁은 라차논의 비명을 무시했다.

"야, 두 번 안 묻는다. 니들 어디에 있었어?"

말을 안 해도 된다. 어차피 대신 말해 줄 놈들은 여기에 널려 있으니까.

끼릭!

공이를 젖힌 종혁은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어디야, 이 개새끼야."

종혁은 차이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   *   *

쿠다다다탕!

태국 북부의 도시 치앙마이 한 주택가의 땅이 중장비에 의해 뒤집어진다.

그뿐만 아니다.

태국 전역, 총 일곱 곳에서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나, 나왔습니다!"

"나왔다-!"

"멈춰, 멈춰!"

소란스러워진 현장.

질끈 감았던 눈을 뜬 종혁은 인부들을 헤치며 안으로 향했다. 김종두 과장을 비롯한 특수범죄수사과 형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들은 곧 볼 수 있었다.

"아……."

둘둘 말린 채 다 썩어 버린 이불들.

그 안에서 삐죽 튀어나온 두 개의 발 뼈들.

이곳에서만 총 열세 구.

얼마나 괴로웠을까.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얼마나 경찰을 찾았을까!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문 종혁과 형사들은 그런 그들을 향해 허리를 깊게 숙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제…… 돌아갑시다."

고향으로.

종혁과 형사들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먼 타향에서 절망과 비통 속에 죽어 간 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이것밖에 없음에 그들은 눈물을 흘렸다.

*   *   *

호다닥!

"언니야-!"

"희야!"

두 자매가 서로를 끌어안는다.

"대체 왜 그렇게 숨은 겁네까. 순희가 보고 싶지 않았시요?"

"보고 싶었디. 와 보고 싶디 않았겠네. 미안하다. 이 언니가 정말 미안하다야."

"아닙네다.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순희는 기쁩네다."

순철이 그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힌다.

2년. 차디찬 두만강을 목숨 걸고 건너 타지를 떠돈 지 2년 만에 드디어 세 남매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 그 개고생을 했구나야.’

"철이도 이리 오라."

"싫습네다. 징하게 뭔 짓입네까."

"사내새끼가 앙탈이네? 얼른 오라."

엄해지는 그녀의 눈에 순철은 못 이긴 척 둘을 품에 안는다. 그렇게 세 남매는 오랜만에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하는 순간이었다.

"흠흠. 소좌 동무."

"아, 갈 시간입네까?"

기이잉!

방콕의 수완나품 국제공항의 활주로.

군복을 입은 순영이 중국 국적의 항공기 앞에 선다.

북한의 국기로 둘러싼 두 개의 납골함. 결국 납치됐던 사람들은 그녀만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동무들."

서글픈 눈으로 함을 쓸어내린 순영은 돌아서서 정찰총국의 요원들을 노려봤다. 그녀의 작은 몸에서 추상 같은 기세가 뿜어졌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다 비명에 가신 전사이고 력꾼들이시다. 모두 예를 갖추라!"

"총원 차렷! 경례!"

척!

절도와 예의를 갖춰 거수경례를 한 그들은 저마다 속으로 사과를 한 후 손을 내렸다.

그 후 순영과 리동수는 종혁과 특수범죄수사과의 형사들에게 다가갔다.

"수고하셨습네다."

종혁이 대표로 악수를 받았다.

"순영 씨가 더 수고했죠. 그럼 이제 평양으로 가는 겁니까?"

"가야디요. 종혁 동무는 서울로 가는 거디요?"

약 이백여 킬로미터.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직선거리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보다 더 짧은 거리건만, 이렇게 다른 비행기를 타야 한다.

"이 은혜 정말 어떻게 갚아야 할디……."

"은혜는 무슨. 됐고, 간첩이나 거둬 가세요. 아니면 잡아서 돌려보냅니다."

"후후. 무슨 말인디 잘 모르겠습네다. 철아, 넌 인사 안 하네?"

순철이 주춤주춤 다가선다.

"고맙습네다, 종혁 동무.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갔시요."

"아쉽네. 같이 한국으로 갈 줄 알았는데."

어린 순희의 손을 꼭 잡고 구걸을 했던 꾀죄죄한 소년 순철. 종혁은 그때까지만 해도 둘이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물론 도움을 요청하긴 했다.

예상과 달랐지만 말이다.

"그, 그거이……."

갑자기 말을 더듬는 순철의 모습에 순영이 눈을 빛냈다.

그에 순철은 하얗게 질렸다.

"아닙네다! 저는 위대한 수령……."

"그만. 그거 우리에겐 썩 듣기 좋은 말이 아니거든. VIP는 다르게 생각하시겠지만."

"끙."

종혁은 순철의 머리를 헤집었다.

"언제든 망명하고 싶으면 연락해. 전력을 다해 도울 테니까."

"남조선, 선을 넘지 말라."

"아, 맞아. 우리 해결해야 될 일이 있었죠, 동수 씨? 어떻게 지금 한판?"

"……그래. 5분이면 돼갔디. 져도 남자답게 약속은 지키는 기야."

태국에서 구입한 빌라들.

그걸 판매한 쁘라윳은 결국 징역을 살게 됐다. 군부장성을 뒷배로 두고 있지만, 사건의 사안이 너무 커서다.

"어이구, 5분씩이나? 한 방이면 될 텐데?"

"그렇게 몸이 약하네, 남조선?"

"그만. 어째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아새낍네까?"

"큼……."

"어흠."

"그럼 우린 가 보겠습네다. 동무들도 잘 가시오."

순영은 종혁의 옆에 선 라차논을 봤다.

"NIA 라차논 동무에게도 신세를 많이 졌시요. 다음에 은혜 꼭 갚겠습네다."

"다신 우리나라에 오지 마세요."

"후후."

그렇게 순영들이 멀어지자 종혁은 라차논을 봤다.

"다음에 또 보자."

"그래. 잘 가. 도착하면 연락해."

친구끼리 이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그렇게 그녀마저 떠나자 종혁은 몸을 돌려 항공기 옆에 놓인 7개의 관을 응시했다.

피해자 총 11명, 사망자 7명.

이제 이들은 그토록 보고 싶었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유족들이 원하는 장례를 치르게 될 거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걱정 마십시오. 안전운행 하겠습니다."

거듭 부탁한 그들은 그제야 돌아섰다.

"이야, 이거 휴가 한번 끝장나게 즐겼네."

"그럼 그렇지. 내 운빨에 무슨 여유로운 휴가야. 니미럴."

"한국에 가면 찌개에 쐬주 한잔 어떠십니까?"

"좋지-!"

종혁은 벌써부터 술 생각을 하는 그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입국하시기 전에 어떤 선물을 살지부터 고민하세요. 바가지 긁히기 싫으면."

움찔!

3박 4일의 휴가. 2박까지는 정말 괜찮았는데, 마무리에서 3박째에서 망쳤다. 완전히. 처참하게.

또 사건이냐며 한심하고 실망스런 눈으로 보던 가족들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이번 휴가로 벌었던 점수를 다 깎아 먹다 못해 아침밥도 못 얻어먹을 상황이었다.

"하 씨……. 무슨 선물을 사야 하지?"

"의무방어전을 빡세게 치러야 하나……."

죽상인 그들은 그래도 킬킬 웃으며 항공기에 올랐다.

한편 그들을 지켜보던 순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최종혁 동무.’

그녀도 어렴풋이만 알고 있는 존재, 최종혁.

사사로이 빅토르 로마노프의 친구이며, 러시아 최고위층과 연관이 있을 거라 추정된다.

"흠."

머리를 긁적이던 그녀는 사라지는 종혁의 등을 빤히 바라보는 순철을 응시했다.

이제 고작 22살에 불과한 순철.

폐쇄된 나라 북한에서 어릴 적부터 감시를 받아 온 불쌍한 아이.

‘만약 내가 재능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이 아이도 평범하게 살지 않았을까.’

리순영의 핏줄이라며 어릴 적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아 재능을 만개해 버려 결국 나라에 귀속된 순철이다.

그런데 그렇게 언제나 미안함의 대상이던 동생이 목숨을 걸고 조국을 탈출해 누나를 구하러 왔다.

제대로 뭐 하나 해 준 것도 없는 못난 누나를.

그녀에겐 언제나 어린아이인 순철이 2년간 겪지 않아도 될 고생을 했다. 그녀로선 그게 너무 못 견디게 괴로웠다.

"자본주의의 맛은 어땠네?"

움찔!

순철은 기겁하며 순영을 봤다.

"무, 무슨 말을 하십네까?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벌써 잊으셨습네까? 그딴 건 느껴 볼 틈도 없었시요!"

"그러네? 그럼 다행이구나야. 그 마음 꼭 간직하라."

"……누나?"

"리순철 중위!"

"예, 소좌 동무!"

"지금부터 동무에게 아주 중요한 임무를 하달하갔어!"

"말씀하시라요!"

"리순희 동무와 함께 남조선에 넘어가서 최종혁 동무를 감시하라!"

"소, 소좌 동무?"

"소좌 동지!"

"걱정 말라. 국장 동지도 허락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 그렇습네까?"

정말이다. 돌아가면 사상 검증 및 교육과 고문을 좀 받겠지만, 그녀의 상관은 이번 일을 칭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의도가 뻔히 보임에도 북한으로선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임에도 말이다.

종혁은 그 정도의 무게를 가진 존재였다.

리동수가 미심쩍어하면서도 물러나자, 순영은 큰 동요를 보이는 순철을 꼭 끌어안았다.

"연락은 자주 해야 돼. 안 하면 죽일 거이야. 희야를 울려도 마찬가지야."

"……미안합네다."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던 2년간의 고생.

하지만 그만큼 개안을 했던 시간이었다.

조국보다 더 발전한 나라들, 그 자유롭던 영혼들.

순영의 말이 맞다.

순철은 이미 자본주의의 자유로움에 물든 후였다. 그래서 의로운 곳에 서슴없이 돈을 쓰는 종혁이 더 멋져 보였는지도 몰랐다.

결국 눈물을 흘리는 순철을 다독인 순영은 무릎을 굽혀 순희와 눈을 마주쳤다.

누가 한 핏줄 아니랄까 봐 어려서부터 범상치 않았던 막내 순희.

"순영 언니, 언니는 같이 안 가십네까?"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순영은 애써 삼켰다.

"내래 우리 희야에게도 명령을 하달하갔어."

순희의 얼굴이 울상이 된다.

"말하시라요……."

‘이것 보라. 너무 영특하잖네.’

이미 요주의 감시 대상인 막내 순희.

혹여 천재성이 개화하지 못해 일반인으로 살아가게 된들 감시는 결코 거둬지지 않을 거다. 순희가 자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조차도 감시를 할 나라가 조국 북한.

순영은 리씨 가문의 장녀로서 이 굴레를 끊기로 마음먹었다.

최소한 동생들만큼은 그 어떤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다하며 살아가길 원했다.

"리순희 동무는 최종혁 동무의 경계심을 무너트릴 장치로 파견되는 기야. 그러니 꼭 자본주의를 무너트릴 첨병으로 성장하라. 알갔어?"

"……알갔시오. 내래 꼭 그라갔시오. 이이잉."

결국 눈물을 터트리는 순희를 마지막으로 안은 순영은 씁쓸히 웃었다.

"이제 언제 다시 안아 볼까. 우리 희야, 철이."

"누나……."

순철마저 강하게 안은 순영은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이별은 짧을수록 좋다고 했디. 적화통일이 됐을 때 서울에서 보자."

"서울에서."

"서울에서."

눈물을 삼키며 돌아선 순철은 순희의 손을 꼭 잡으며 종혁에게로 달려갔다.

"종혁 동무-!"

"아주바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

자유롭게 날기 위해 가족의 품을 떠나는 동생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출 때까지 바라보던 그녀는 몸을 돌렸다.

"갑시다. 우리도 우리의 조국으로."

그들도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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