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66화 (166/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66화>

    종혁이 거친 숨을 진정시키며 공터 안으로 들어온다.

    "어후. 쎄빠지네."

    "후욱! 후욱! 주, 죽을 것 같아."

    "그러니까 운동 좀 하시라니까."

    "시끄러워."

    종혁뿐만 아니라 김종두 과장과 형사들도 함께 들어온다.

    "……아주바이?"

    ‘대체 어떻게?’

    종혁은 이쪽을 멍하니 보는 순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어."

    "너흰 뭐네?"

    ‘쳇!’

    모른 척 순철에게 다가가던 종혁은 막아서는 정찰총국 요원들의 행동에 혀를 찼다.

    그러다 히죽 웃었다.

    "나? 대한민국 경찰청 특수범죄수사과 소속 경위 최종혁."

    "……남조선 경찰?"

    삼십대의 사내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다하다 이젠 남한의 경찰과도 얽히고 있다.

    "네들이 생각하는 그런…… 아니, 됐다. 정찰총국의 일이다. 외교 문제 일으키고 싶지 않으면 끼어들지 말라. 뭐하네? 날래 가져오라!"

    움찔!

    ‘정찰총국? 외교 문제?’

    정찰총국이라하면 북한의 정보국이다.

    한국의 국정원 같은 곳.

    김종두의 낯빛이 하얗게 질리고, 다른 형사들의 표정도 어두워진다.

    ‘지랄 염병 났네.’

    종혁은 순철을 봤다.

    희망을 포기하려는 지 자조적인 미소를 짓는 그.

    그 모습을 보자 울컥한다.

    고작 16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정찰총국에서 잡으러 온 걸까.

    일단 단순한 탈북 문제가 아닌 건 깨달았지만, 고작 십대다.

    어젯밤 꾀죄죄한 모습으로 구걸을 하던 소년과 순희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친다.

    ‘이 어린것들이 뭐가 그리 간절해서 여기까지 온 걸까…….’

    "니미럴. 과장님, 이거 제가 사고 치는 겁니다. 과장님과 삼촌들은 여기 안 계신 거예요."

    "뭐? 야, 잠깐……."

    "어이, 꼬마야."

    "……."

    "살려 주랴?"

    "……!"

    순철은 고개를 들고, 순간 불안함을 느낀 삼십대 사내는 다급히 외쳤다.

    "더 이상 입 열지 말라! 외교 문제 일으키고 싶네?"

    "꼬마야!"

    순철은 간절히 쳐다보는 종혁의 모습에 살포시 웃었다.

    ‘저런 아주바이라면 순희는 잘살겠구나야.’

    그거면 되었다.

    순철은 밝게 웃었다.

    "순희를 부탁드립네다."

    "오케이!"

    "진짜아! ……뭐하네! 저 아새끼들도 치우라!"

    결국 폭발한 조장의 말에 정찰총국 요원들이 품 안에서 짧은 단봉을 꺼내 들었다.

    그에 다급히 품 안으로 손을 가져갔던 형사들이 낭패어린 표정을 짓는다. 휴가라 총은커녕 목단봉도 없다.

    그러나 종혁은 사납게 웃었다. 그리고 하늘에 대고 크게 외쳤다.

    "라차논-! 언제까지 지켜보고 있을 거냐! 이러다 네 친구 맞아 죽는다-!"

    "뭐?"

    "응?"

    공터에 모인 사람들이 갑작스런 태국어에 당황할 때였다.

    타다다다닥!

    사방에서 들리는 발소리.

    깜짝 놀라 주위를 향해 총구를 겨눴던 정찰총국 요원들은 이내 곧 출입구에서 쏟아지는 검은색 옷의 군인들과 그들이 든 소총에 양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프리즈! 돈 무브!"

    순간 침묵이 내려앉은 공터에 뚜각뚜각 묵직한 구둣발 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특공대 옷을 입은 라차논이 입에 담배를 문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웃는 눈으로 정찰총국 요원들을 노려봤다.

    "지금부터 이 현장은 우리 NIA가 통제한다. 모두 손들어."

    태국 국가정보국 NIA.

    "네들은 또 왜 나오네-!"

    태국 내의 범죄는 태국에서 해결한다는 이유로 주 태국 북한대사관 근처에서부터 순철의 확보를 방해했던 NIA.

    "Hi? 오랜만이야?"

    ‘음?’

    종혁은 왠지 심각해 보이지 않는 둘의 분위기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   *   *

    상황은 빠르게 정리됐다.

    그리고 종혁은 아주 큰 오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인신매매?"

    종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특수범죄수사과 형사들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을 무작위로 인신매매를 해서 남자는 가족에게 돈을 뜯어내고, 여자는 콜걸로 쓰고 있는 조직을 쫓고 있는 중이야. 계속 위치를 옮기고, 연락처도 계속 바꾸는 통에 두목 얼굴이나 조직원의 구성조차 불명인 정체불명의 조직이지."

    놈들이 범죄 행각을 벌인 건 3년 전부터다.

    꼬리를 잡을 뻔했으나 번번이 놓친 것만 수차례.

    정말 이가 갈리는 놈들이었다.

    종혁은 정찰총국의 조장을 봤다.

    그는 한숨을 탁 내뱉었다.

    "북조선도 3명이나 납치됐다."

    해외로 파견되는 사람의 숫자가 적은 북한. 그중에서 3명이나 납치를 당한 거다.

    "그래서 우리가 나선 거다. 그러니 NIA는 빠져라."

    "어이, 여긴 태국이야. 어디 허락도 받지 않은 놈들이 남의 나라에서 분탕을 치려고 해? 너희만 아니었다면 우리도 개입 안 했어!"

    "……이래서 자본주의 미국 놈들 말은 상스러워. 이렇게 위아래가 없잖나?"

    "뭐야?"

    종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수첩 속 암호를 해석하고 있는 순철을 봤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면……."

    태국 내에서 분탕을 치는 인신매매 조직에게 태국 경찰들이 물을 먹던 와중에 순철이 등장했다.

    처음에는 혹시 순철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까 미행을 붙였다. 그런데 누나를 찾는다고 움직이던 순철의 행적을 누가 봐도 뭔가 이상했다.

    식당, 호텔, 그리고 술집 등등.

    연관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장소들을 드나드는 그 모습에, NIA와 정찰총국은 그제야 암호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뒤늦게 NIA와 정찰총국은 서둘러 순철에게 접근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서로를 방해하며 견제했고, 그 탓에 두 집단 모두 좀처럼 순철과 접촉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까지 이른 것이다.

    "이거 맞지?"

    "응."

    "자본주의에 물든 남조선 경찰답지 않게 똑똑하군."

    종혁은 둘을 한심하다는 듯 보았다.

    "애초부터 공조를 했으면 될 일 아니야?"

    그럼 이렇게 얼굴을 붉힐 일도 없었을 거다.

    "공화국의 자존심과 연결된 문제다! 어찌 공화국의 일을 남의 손에 맡긴단 말인가!"

    거기다 순영은 다음 행적에 대한 암호를 남겼다.

    이는 그녀가 국가에 보내는 구조 신호였다.

    "들었지?"

    ‘……지랄한다.’

    정찰총국이나 NIA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 순철이와 순희가 그동안 겪은 고통은?"

    순간 종혁의 눈이 사나워진다.

    "저 어린 것들이 당신들 두 조직의 자존심 싸움 때문에 길거리를 전전하며 온갖 고생을 한 건 어쩔 건데?"

    말을 하다 보니 울컥 뜨거운 게 솟는다.

    이들이 자존심 싸움을 하지 않았다면 북한이, 자신의 나라가 누나를 팔아먹었다는 오해를 하지 않았을 거다.

    순철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화국을 좀먹는 돼지들이 인민을 팔아 제 살을 찌우려고 했다’.

    최소한 이런 참담한 오해는 하지 않았을 거다.

    거기다…….

    "지금도 그 인신매매 조직에 사로잡혀 고통받고 있을 피해자들은 어쩔 건데! 이 철없는 새끼들아-!"

    "아, 아니, 나름 편의는 다 봐줬……."

    변명을 하려던 라차논은 종혁의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종혁은 정찰총국의 조장을 봤다.

    "공화국의 자존심? 지랄 염병을 하세요. 그 공화국도 저 국민들이 있기에 존재하는 거예요, 이 븅신아."

    "……어이, 남조선 경찰. 말 함부로 하지 말라."

    "꼬우면 한판 붙든가. 어때? 계급장, 나이 다 떼고 한판 붙어?"

    "하!"

    정찰총국 조장의 눈빛이 살벌해진다.

    "죽고 싶네?"

    "죽여 보든가."

    사납게 웃은 종혁은 한 발 뒤로 물러났고, 정찰총국의 조장도 재킷을 벗었다.

    "리동수다."

    종혁은 중지를 세우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일촉즉발의 상황에 다급히 형사들과 정찰총국 요원들이 달려들었다.

    "에헤이! 왜 갑자기 싸우려고 해!"

    "가만있으시라요. 왜 저런 허약한 얼빵이와 싸우려 합네까? 령도자 동지의 위대함을 어찌 저런 부르주아들이 알갔습네까?"

    "뭐? 허약한?"

    "맞지 않네? 자본주의에 물든 너희 남조선 아새끼들이 정찰총국의 특급전사를 이길 수 있갔어?"

    "하, 나 이 씨발. 야, 종혁이 놔 봐. 오늘 저 북한 새끼들 모가지 꺾고 금의환향한다."

    뿌득뿌드득.

    한국 형사들과 정찰총국 요원들이 사납게 웃으며 자세를 잡았고, 공터에 살벌한 기운이 내려앉았다.

    그때였다.

    "나왔습니다! 이름…… 응?"

    달려오던 NIA 요원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눈을 데구루루 굴렸고, 남북태 사람들은 그를 주목했다.

    형사들과 정찰총국의 요원들은 좀 이따가 보자고 노려보며 요원에게로 향했고, 라차논은 그 요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 나라의 이름에 똥칠을 한 자식의 이름이 뭐야?"

    요원은 다급히 이름을 말했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입안에서 읊조렸다.

    하지만 요원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희가 파악한 거 말고도 피해자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두목부터 말단 조직원까지의 신상이 적혀 있던 수첩.

    그런데 그 끝자락엔 이들 외에도 다른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이름 정동영. 32세. 한국 회사원. ……사망."

    "한국?"

    모두의 시선이 종혁과 형사들에게 돌아갔다.

    어느새 그들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   *   *

    "어! 난데! 태국에서 실종신고된 거 있는지 찾아 봐! 이름 정동영!"

    "김소영! 23세! 여대생!"

    "예, 청장님! 저 김 과장입니다! 아무래도 태국에서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특수범죄수사과 형사들 전원이 핸드폰을 붙들고 외친다.

    한국 국적의 피해자만 무려 11명.

    피해자가 이렇게나 발생했는데도 몰랐다는 것에 그들은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꼈다.

    이런 피해자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휴가를 즐겨서 더.

    그건 종혁도 마찬가지였다.

    종혁은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라차논과 리동수를 쳐다봤다.

    "공조합시다. 못하겠다면 우리는 따로 움직이고."

    그땐 결코 이들을 봐주지 않을 거다.

    수사에 방해가 된다면 싹 다 앉은뱅이로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갈 거다.

    그러다 쫓겨나면 돈으로 난장을 피울 거다.

    돈으로 사람을 사고.

    돈으로 이들을 방해하며 놈들을 쫓을 거다.

    종혁의 이런 각오를 느낀 라차논과 리동수는 혀를 찼다.

    종혁에게 빚이 있는 태국과 자본주의에 타락한 국가라고 폄하하지만 한국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아는 북한.

    둘이 내놓을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순철 동무나 내놓으라."

    종혁은 순철을 봤다.

    라차논과 리동수의 시선을 느끼고 시선을 피하는 그.

    당연한 반응이다.

    누나가 남긴 단서를 찾은 후 이런저런 의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힘들게 푸켓까지 왔는데, 알고 보니 그게 모두 NIA의 수작이었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부모님을 잡아가다 못해 그들로 하여금 결국 탈북을 결심하게 만든 북한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순철은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일 게 분명했다.

    그저 누나를 찾기 위한 일념 하나로 협조하고 있을 뿐.

    "그건 이놈들 잡고 이야기합시다."

    "어이, 남조선."

    "이봐, 리동수 씨. 내가 너희 북한을 어떻게 믿고 쟤를 맡기는데?"

    언제나 한 입으로 두말하는 북한.

    벌겋게 달아오른 리동수는 종혁을 죽일 듯 노려봤다.

    "……일 끝나고 꼭 보자."

    "그러든가."

    코웃음을 친 종혁은 순철을 옆으로 끌어당기며 라차논을 봤다.

    "그런데 내가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3년 전부터 활동한 이 새끼들이 너무 은밀히 움직이는 바람에 태국 경찰과 정찰총국, 한국 경찰들이 물먹고, 정체도 파악 못하고. 그래서 여기 순철이가 유일한 희망이었고. 그래. 다 알겠다 이거야. 그런데……."

    종혁은 순철의 양 귀를 막았다.

    "이 새끼들이 납치한 여성들로 성매매를 시킨다는 건 대체 어떻게 안 거냐?"

    종혁은 라차논과 리동수를 빤히 응시했다.

    아직 둘이 오픈을 하지 않은 게 있었다.

    *   *   *

    태국 어느 주택가의 2층 주택.

    2층 창가의 방에서 몇 명의 태국인들이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모니터에선 화려한 빛들이 쏟아진다.

    타다다다닥!

    "오픈까지 5분 남았습니다."

    "IP 우회했습니다!"

    한 태국인의 말에 그들의 뒤에 서 있던 사십대 태국인이 박수를 친다.

    "자, 5분 후에 사이트 열고 회원들에게 문자 보낸다."

    다크웹. 결코 검색에 걸리지 않는 사이트 주소를 알리는 문자다.

    회원들은 이 사이트에서 사진을 통해 마음에 드는 여성을 고르고, 이쪽에서 예약한 호텔 등에서 아가씨와 원하는 연애를 하게 될 거다.

    "회원 명단 확실하게 검토했지?"

    지금까지 경찰이 추적을 해 온 게 몇 번이던가.

    모두 회원들이 배신을 해서다.

    어차피 운반책이야 걸려도 이쪽에 닿을 수 없는 놈들을 쓰지만, 계속 잘라 내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또 금전적 손해도 막대했다.

    "예!"

    "시간 됐습니다!"

    "좋아. 사이트 열어. 시간은 지키고."

    사이트 오픈 시간은 무조건 30분.

    30분이 흐르면 사이트는 폐쇄된다.

    사십대 태국인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화장실 문을 열었다.

    "잘되고 있어?"

    화장실 중앙, 재갈이 물린 채 의자에 결박되어 있는 동양인 남성과 망치 따위를 든 태국인 둘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으읍! 으으읍!"

    "얼마나 뽑았어?"

    "앞으로 300만 바트는 더 뽑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십대 태국인의 입가가 비틀어진다.

    이래서 한국, 일본, 중국 등 부유한 동아시아가 좋다. 한 명당 최소 천만 바트의 소득을 올리기 때문이다.

    화장실 문을 닫은 그는 안쪽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현관문이 열리며 배불뚝이의 오십대 동양인 남성이 들어왔다.

    "여, 차이 사장."

    "박 사장."

    비즈니스 파트너일 뿐만 아니라 이 비즈니스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박 사장.

    이름은 모른다.

    "이번엔 얼마나 모았어?"

    "얼마 못 모았어. 볼래?"

    "당연하지. 고객의 니즈를 맞추기 위해서 우량 제품을 선별하는 건 오야로서 당연한 일이니까."

    여자 관리는 모두 박 사장의 몫이다.

    이 선별에서 탈락된 여성들은 옆의 화장실로 들어간다.

    차이 사장은 따라오라 손짓하며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벌컥! 스스슥!

    어두운 방, 빛을 피해 구석으로 몸을 숨기는 동서양의 다섯 여성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을 감싼 채 이쪽을 바라보는 동양인 여성.

    한 마디가 부족한 왼손 새끼손가락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순영.’

    바보 같은 여자다.

    ‘푸켓에서 그 수첩만 잊어버리지 않았어도.’

    고객과 데이트를 나갔을 때 맨날 들고 다니던 수첩을 잃어버렸다. 시 따위를 쓰던 수첩이었으나 그 누구도 믿지 않은 박 사장은 푸켓 사업장을 폐쇄했고, 순영의 손가락을 잘라 버렸다.

    그리고 이곳으로 보냈다. 그냥 죽여 버리기엔 능력 있는 여자였으니까.

    "뭐야. 이번엔 상태가 영 메롱이네?"

    무심한 어투지만 여성들에겐 사형 선고다.

    그 말에 순영이 일어선다.

    "저마다 매력이 있슴네다. 씻겨 놓으면 회원들도 만족할 겁네다."

    "오, 순영이가 그렇게 말한다면 믿어 줘야지. 다들 일어나. 에브리바디 스탠드 업."

    동서양 여성들은 눈치를 봤고, 순영은 애써 웃으며 그녀들을 달랬다.

    바로 이런 능력이다. 납치해 온 여성들을 다독이는 능력.

    "그럼 수고하라고, 차이 사장. 이번 영업 끝나면 본부 옮길 준비하고."

    차이 사장은 대문 앞까지 배웅하고 돌아온 순영을 봤다.

    하지만 순영은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다시 그 방으로 들어갔다.

    ‘대체 뭐가 문제냐.’

    푸켓에서의 일 전까지만 해도 모두에게 사근사근 대했던 그녀.

    특히나 차이 그에겐 입안의 혀처럼 살갑게 굴었다.

    박 사장에게도 그랬기에 이렇게 본부에 올 수 있지 않았던가.

    순영은 납치를 당한 주제에 오히려 웃던 이상한 여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얼음장보다 차갑다.

    이유야 알겠지만…….

    "쯧."

    콰앙!

    차이 사장은 문을 닫고 떠났고, 방 한구석으로 향한 순영은 무릎을 끌어모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박사장에게 끌려간 여성들이 떠오른다.

    "험한 꼴을 당해도 저승보단 이승이 낫지 않네. 참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꼭 구하러 올 거다.

    그들이라면 자신이 남긴 암호를 해독해 낼 거다.

    동생 순철도 있지 않은가.

    사이버해커 부대의 컴퓨터열중자, 해커 순철.

    그 영특하고 뚝심 있는 아이라면 분명 누나를 포기하지 않을 거다.

    순영은 그날이 오길 기다리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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