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59화>
달이 하늘 높이 떠오른 새벽.
경기도의 한 불 꺼진 지하 다방.
지하로 향한 계단을 누군가 내려간다.
뚜벅, 뚜벅, 뚜벅!
센서등조차 켜지지 않는 어두운 계단을 핸드폰 플래시에 의지한 채 내려온 그림자가 유리문을 잡아당긴다.
불이 꺼져 있음에도 쉽게 열리는 문.
"드르렁!"
멀리서 우렁찬 코골이 소리가 들려온다.
그림자, 종혁은 플래시에 의지한 채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소파에 구겨 자고 있는 사내.
종혁은 사진과 그의 얼굴을 비교해 봤다.
맞았다.
종혁은 피식 웃었다.
"이게 300만 원짜리란 말이지?"
이름 강병훈. 나이 41세.
절도 및 여타 전과 8범이며, 최고 피해액은 겨우 534만 원일 뿐인 잡범. 소위 말해 개털.
현재 폭행으로 수배 중.
그리고 현재 위치를 고작 300만 원에 팔린 인망 없는 놈이다.
"어음, 치워……."
플래시가 눈부신지 몸을 돌리는 사내.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그를 흔들었다.
"야, 일어나 봐. 일어나 보세요, 선생님."
"으음, 뭐야……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짭새지."
"……뭣?!"
종혁은 다급히 일어나는 사내를 향해 싱긋 웃어 주며 주먹을 들었다.
"안녕?"
쩌어억!
* * *
첫날 사진을 들고 나간 종혁이 복귀하지 않은 지 사흘째다.
"야, 며칠 예상하냐?"
"종혁이요? ……일주일?"
"그렇게 빨리?"
"전 이주일 예상합니다!"
"그래도 종혁이 코가 있는데. 전 8일 봅니다!"
김종두 과장이 종혁에겐 준 시간은 나흘.
특수범죄수사과의 모든 형사들은 그 나흘 안에 종혁이 복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 어떤 정보도 없이 사진만 가지고 나흘 만에 범인을 찾는다?
그건 이 중 반 이상이 불가능한 일이다.
정보원이 많아도 최소 5일.
이름 등을 알아내는 데 이틀이고, 현재 잠수 타고 있는 위치를 아는 데까지 남은 3일. 그래서 5일이다.
김종두도 그들과 비슷한 생각이다.
그럼에도 4일의 리미트를 준 이유는 생도가 되기 전부터 여러 사건을 해결한 종혁에게 진짜 형사 일이 맘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알려 주기 위해서다.
그동안 많은 돈을 바탕으로 기가 막힌 수법을 이용해 범인을 잡은 종혁. 아마 지금쯤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세상 모든 범죄자를 잡을 수 있다고 자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대범하면서도 치밀한 종혁이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라도 방심했다가는 칼 맞는 거지.’
아침에 웃으며 나간 동료가 저녁엔 영안실에 있는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그들 형사다.
여태껏 승승장구 해 왔기에 한 번쯤은 눌러 줄 필요가 있었다.
"자, 그럼 돈 걷겠습니다! 가장 가까이 맞춘 사람이 다 먹고 종혁이 환영회 쏘는…… 아니, 절반 내는 겁니다!"
부자라서가 아니라, 먹는 양 탓에 회식의 사이즈가 다른 종혁.
설령 맞춰서 전부 갖는다고 해도 전부는 무리였고, 절반이면 해 볼 만했다.
"8일에 3만 원!"
"2주일에 5만 원!"
"9일에 4만 원!"
"나도 8일! 7만 원!"
돈은 순식간에 모였다.
모두의 시선이 참가하지 않은 김종두를 향했다.
"……6일. 30만 원."
"오오오오!"
"과장님 돈으로 회식하는 건가?!"
"잘 먹겠습니다!"
형사들이 설레발을 쳤지만, 김종두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짜식들이 그렇게 종혁이를 겪어 놓고도 모르나?’
분명 종혁은 돈을 썼을 거다.
그리고 그 돈은 많은 정보원을 대신하기에 충분했다.
리미트인 4일 안에는 불가능해도, 6일 정도면 충분할 터였다.
‘썩을 놈이 연락을 할 것이지. ……부디 다치지만 마라.’
종혁의 실력은 알지만 여차하면 다치는 곳이 이 바닥이다. 그래도 종혁을 혼자 보냈던 건 강병훈이 잡범 중에 잡범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저은 김종두는 담배를 물며 서류를 봤다.
그 순간이었다.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든 형사들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저 문을 열면 안 되는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얼굴에 시퍼런 멍을 단 그놈을 데리고.
"최종혁, 사흘! 100만 원!"
김종두는 해맑게 웃는 종혁을 보며 입에 문 담배를 떨어트렸다.
* * *
"맛있게 드세요!"
"잘 먹을게!"
"우리 특수에 온 걸 환영한다!"
방금까지 수족관 안에서 힘차게 움직이던 복어가 종잇장처럼 얇게 포 떠져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그 진한 맛에 수십 명의 형사들이 몸을 부르르 떨고, 사장님은 매출이 오르는 소리에 행복에 젖는다.
"와, 복어가 이런 맛이구나."
"국물 먹어 봐. 죽여. 싸장님! 여기 이슬이 추가요!"
절로 소주를 부르는 맛, 복어.
그들은 종혁이 한 식구가 됐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섭섭하다, 종혁아."
"나도."
종혁의 맞은편에 앉은 두 오십대 장년인이 표하는 서운함에 김종두의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광수대! 마약! 너희 아직도 포기 안 했냐?"
그랬다.
오늘 축하 자리엔 특수범죄수사과 말고도 광역수사대와 마약수사대의 형사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종혁이 본청에 왔단 소식에 꼽사리 낀 거다.
"얻어먹으러 왔으면 입 좀 닫지?"
화가 잔뜩 서려 있는 김종두를 빤히 보던 두 사람은 종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수배범 사진을 들고 나갔다가 단 3일 만에 수배범과 함께 복귀한 종혁.
다른 신입 형사들과 격이 달랐다.
"종혁아, 지금이라도 턴 하는 게 어때? 우리 광수대 사건 많다. 지금 파고 있는 사건만 해도…… 어휴. 내가 기밀만 아니면……."
"연예인 마약 어때? 관심 확 오지? 어?"
"이 자식들이 그래도!"
종혁은 아옹다옹 다투는 그들을 향해 소주병을 기울였다.
"한 잔씩들 받아 주세요."
"……그래. 특수에서 3개월만 짧게 하고 광수대로 와."
"그다음엔 마약으로 와. 그때까지 연예인 마약 스톱시킨다. 아직 연예인 손목에 수갑 안 채워 봤지?"
"가! 가, 이 시키들아!"
"아, 거! 좀 나눠 씁시다!"
"순환 근무 기간 한참 남았잖아요!"
"내가 니들 속셈 모를 것 같냐! 그렇게 데려가서 말뚝 박게 만들 생각이잖아!"
"그럼 좋고!"
"야, 이-! 억?!"
키득키득 웃은 종혁은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인사 권한은 청장님 소관이라서."
"아, 청장님 조르면 되는 거야? 오케이. 기다려."
"나도 간다. 잘 마셨다."
"가긴 어딜 가-!"
고개를 저은 종혁은 특수범죄수사과의 넘버2 앞에 앉았다.
"욕봤다. 저 양반들은 낼 모레가 환갑이면서 아직도 저러니…… 어휴."
"수고하십니다. 음식은 입에 좀 맞으세요?"
"그래서 큰일이야. 형사 입이 이렇게 고급스러워지면 안 좋은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젓가락은 연신 복어의 살점을 집어 입으로 나른다.
누구 한 명 싫어하는 사람 없으니 종혁으로선 기분이 좋았다.
"아, 그런데 전 누구랑 파트너예요?"
경찰은 무조건 2인 1조가 기본.
결코 혼자 다니는 형사는 없다.
"아, 그거? 과장님."
"왜요?"
종혁의 입에선 반사적으로 그 말이 튀어나왔다.
"조, 종혁아?"
"푸하하핫……!"
"끅끅끅!"
종혁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김종두 과장. 참 좋은 삼촌이고 좋은 형사다.
하지만 잔소리꾼이다.
당연히 이걸 말할 순 없는데, 김종두는 이미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쳇. 이래서 베테랑 형사는 눈치 빨라서 싫다니까.’
"종혁아, 그거 무슨 말이니?"
"어흠. 과장이시잖아요. 과의 업무를 관리, 감독을 하시느라 바쁘신 과장님께서 어떻게 일개 형사랑 현장을……."
"그거 아니잖아, 인마!"
"사랑합니다!"
"어디 가! 이리 와!"
"푸하하하하핫!"
그렇게 종혁의 환영회는 무르익어 갔다.
"어으. 잘 먹었다.
"2차 가야지, 2차!"
"잘 먹었다, 종혁아!"
안주가 좋아서 그런지 모두의 낯빛이 불콰하게 달아올라 있다.
심지어 눈의 초점이 풀린 형사도 있다.
"그래서…… 우리 종혁이, 첫 사건은 뭐로 할래?"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풀린 김종두가 어깨동무를 해 온다.
그에 종혁의 눈이 빛나고, 신발을 신던 형사들도 귀를 기울인다.
첫 사건. 신고식을 무사히 마친 신입 형사는 원하는 사건을 택해 수사를 할 수가 있는데, 이때 같은 팀 형사들은 그가 사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준다.
미제 사건이건, 수배가 떨어진 사건이건 형사로서 처음 맡는 사건이기에 꽤 중요하게 여겨진다.
실제로 첫 사건을 장기미제 사건으로 택해 평생의 과업으로 여기는 형사도 더러 있을 정도고, 첫 사건을 원활하게 해결하면 승진도 원활하게 이뤄진다는 미신마저 있을 정도다.
어떤 형사들은 첫 사건을 해결해야 한 사람 몫을 하는 형사로 인정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의미가 있는 의식이다 보니 종혁도 오늘 하루 특수범죄수사과의 캐비닛에 잠들어 있는 사건들을 쭉 살펴봤었다.
"글쎄요……."
종혁은 난색을 표했다.
딱히 마음에 드는 사건이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다.
하나하나가 피해자에겐 목숨보다 중요한 사건들. 지금도 마음을 졸이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면 선뜻 하나를 택할 수가 없었다.
형사들은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종혁을 보며 흐뭇해했다.
사건을 실적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종혁의 마음이 참 기특했기 때문이다.
-다음 뉴스입니다. 전국에 만두를 제작 납품하는 한 식품업체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소식에 종혁을 비롯한 형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그에 한순간 시선이 집중되자 라디오를 듣고 있던 사장님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라디오 전원을 껐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맛있게 드셨어요? 부족하진 않으시고요?"
"부족하긴요. 배부르게 아주 잘 먹었습니다! 이러다 단골 되겠어요."
"저야 그럼 좋죠! 그럼 계산은 어느 분께서……."
"종혁아, 계산서 좀…… 종혁아?"
그제야 라디오를 응시하던 종혁의 시선이 거둬진다.
"과장님."
어느새 차가워진 종혁의 눈빛.
"저걸로 하겠습니다."
"응?"
"제 첫 사건이요."
"……?!"
모두가 놀라 종혁을 바라봤지만, 종혁은 그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 이제 기억나네. 쓰레기 만두 파동.’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많은 이들이 피해를 겪은 참혹한 사건.
경찰과 정부의 위신은 똥통에 처박혔고, 이 보도로 인해 결국 사망자마저 발생한다.
그들을 구해야 했다.
종혁의 눈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 *
정부의 감시 소홀.
국민의 입에 쓰레기가 들어갈 때까지 정부는 뭘 하고 있었나.
언론에서 작정하고 때리고 있다.
이에 정부는 다급히 특별수사대책본부를 조직하라 명을 내렸는데, 종혁과 김종두 과장이 한발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부우우웅!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차 안.
김종두 과장이 핸즈프리에 대고 강하게 외치고 있다.
"2차 목록 보냈다고?"
이번 사태의 중심인 최고식품.
최고식품은 만두 체인점이나 전국 분식점뿐만 아니라 지방의 식품업체에도 식재료를 납품했는데, 김종두가 말하는 목록이 바로 최고식품에게 식재료를 납품받은 업체들 목록이었다.
-네! 과장님 메일로 보냈습니다!
"알았어! 더 조사되는 대로 바로바로 보내 줘!"
-예! 그런데 언제 올라오실 건데요?
"몰라! 그건 종혁이 마음이지! 끊는다!"
통화를 종료한 김종두는 종혁을 쳐다봤다.
"의도가 뭐냐?"
이번 사건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최고식품이다.
그런데 종혁은 최고식품을 살피는 건 다른 형사들에게 맡긴 후, 그 자신은 최고식품에게 식재료를 납품받은 지방의 업체들부터 살피러 움직이고 있었다.
"최고식품에게 식재료를 납품받았다는 증거를 확보해야 하니까요."
"그걸 왜 벌써……."
말을 잇던 김종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너 최고식품이 정말 쓰레기를 썼다고 생각하는 거냐?"
언론에서는 이미 최고식품이 납품하는 식재료에 문제가 있다며 알리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직 제대로 된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확실한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상황.
김종두는 종혁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그가 섣불리 확신을 갖는 건 아닐까 우려했다.
"걱정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 우리 일은 항상 만약도 대비해야 하잖아요."
만약 최고식품의 식재료에 정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최고식품에게 납품을 받던 업체들은 너도나도 그 증거를 인멸하려 들 터였다.
종혁은 그것을 염려하여 미리 증거를 확보하는 거라 말하는 것이었다.
"하긴, 네가 그럴 리가 없지."
김종두는 납득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종혁은 그 모습을 보며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억울한 일은 만들면 안 되니까.’
이번 사건의 시발점은 최고식품이 납품하는 식재료에 사용되는 한 재료로, 언론에서는 그 재료가 폐기되었어야 할 유해한 것이라 알리고 있었다.
그러나 종혁이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야기가 왜곡되고, 자극적으로 포장된 잘못된 정보였다.
이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그 때문에 종혁은 일을 확실히 하기 위해 최고식품에게 식재료를 납품받은 업체들을 전부 체크하기 위해 목록을 받은 것이다.
죄가 있는 이들과 무고한 이들을 확실히 나누기 위해.
"지금쯤 도착하셨으려나?"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종혁은 전화를 걸었다.
"저예요, 종혁이. 지금 최고식품 도착하셨어요?"
-어, 지금 막 도착했다. 무슨 일이야.
"최고식품 살피실 때 정문부터 제조 공장까지 모두 캠코더로 찍어 주세요! 구석구석 한 곳도 빠짐없이!"
이미 대중들에게는 최고식품의 식재료가 쓰레기로 낙인찍혀 있었다.
이런 인식을 뒤집기 위해선 사소한 것이라도 긁어모아야만 했다.
-이놈의 자식이! 삼촌들 똥개 훈련…….
"서울 복귀하면 참치 쏩니다!"
-똥개 훈련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고. 급할 거 없으니까 느긋이 돌다가 조심히 올라와.
쓰레기 만두 파동.
이 사건의 쟁점은 최고식품의 무죄유죄가 아니라, 경찰과 언론의 잘못된 대응이었다.
‘싸지르면 그만인 기레기 새끼들.’
아님 말고라는 무책임한 생각 때문에 회귀 전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고통을 겪었던가.
이런 놈들은 초장에 잡아 일벌백계를 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선 날것 그대로의 팩트가 필요하다.
그게 종혁의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