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57화>
47. 특수범죄수사과
"……윤영철에게 징역 15년 형을 선고한다."
땅땅땅!
무죄와 유죄.
앞으로의 인생이 판가름되기에 언제나 침묵을 강요받은 서늘한 공간, 법원.
오늘도 한 사람의 인생이 판가름되었다.
살인을 목적으로 여성을 채팅으로 꼬드겨 집 안으로 끌어들인 악마, 윤영철.
그는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게 됐다.
"뭐?"
윤영철은 다급히 아버지 윤경수 소장을 봤다.
방청석,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는 아버지.
"아니죠? 아니잖아요!"
윤경수는 넋이 나간 아들의 모습에 결국 눈을 감아 버렸다.
"이거 아니잖아! 나 빼 준다며! 나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준다면서요! 아버지! 아빠-!"
세상에서 가장 무섭지만, 가장 믿었던 아버지.
입 밖으로 뱉은 건 뭐든지 해냈던 아버지.
그래서 믿었다.
더럽고 못 배운 놈들이나 가는 교도소가 아니라, 정신병원에서 편히 지낼 거라고.
하지만…….
"뭐라고 말 좀 해 보라고! 날 좀 봐! 이럴 거면 날 왜 가뒀는데-! 가두지나 말지-! 그럼 벌써 죽여 봤을 건데-!"
"미친! 저, 저거 지금?"
땅땅땅!
"얼른 끌고 가세요!"
"씨발, 넌 뭐야-! 닥쳐!"
땅땅땅! 땅땅땅!
강요받던 침묵은 오늘도 인정할 수 없는 범법자의 발악에 시끄러워졌다.
방청석을 가득 채웠던 기자들 때문에 더.
"난데! 15년 형이야! 빨리 써서 올려!"
"갇혀 살지만 않았으면 벌써 사람을 죽였을 거다! 이 새끼가 한 말이야! 얼른 올려!"
"조용히 하세요! 조용히!"
혼란과 소란으로 가득한 공간.
눈을 뜬 윤경수는 끌려가는 아들의 모습을 가슴에 새겼다.
* * *
판결이 끝난 후 법원 밖.
기자들이 담배를 문 채 혀를 내둘렀다.
"사법부가 웬일이래?"
"내 말이."
고작 17일.
윤영철이 경찰의 재치로 계획했던 범행을 저지르지 못하고 검거된 후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박영일 기자는 옆에 선 종혁을 봤다.
"이번에도 너냐?"
예전부터 꼭 종혁이 얽혔다 하면 판결까지 가는 속도가 빨랐다.
한두 번이야 우연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이라면 절대 아니다.
"무슨. 저 그런 능력 없습니다."
"얼씨구? 귀신을 속여, 이 자식아."
"진짜예요."
실제로 종혁 또한 놀라고 있었다.
윤경수 소장, 그리고 그에게 도움을 주는 국회의원의 압력을 무시할 수 있는 누군가가 힘을 쓴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게 누구인지 그 또한 알지 못했다.
"헛! 윤경수 소장이다!"
"윤경수 소장님!"
"종혁아, 나중에 보자!"
종혁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도 여전히 꼿꼿한 윤경수를 빤히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아그작아그작.
법원의 주차장, 운전석에 앉아 아이스커피의 얼음을 씹어 먹던 종혁은 옆을 봤다.
똑똑똑.
그때, 육군 정복을 입은 군인이 차창을 두드렸다.
종혁은 차문을 열고 내렸다.
방금 전, 하나뿐인 아들을 교도소로 보내서 그런지 약간은 흐트러진 윤경수 소장이 무심한 눈으로 종혁을 바라보았다.
"군대와 사회가 얼마나 다른지 여실히 느꼈습니다. 언론의 힘이 무섭더군요."
사회에 만들어 놓은 모든 끈을 움직였다.
그러나 언론이 집중포화를 쏟아 내자 모두 등을 돌려 버렸다.
국회의원, 시의원, 기자, 휘하에 있다가 예편한 퇴역 군인들 등 가진 인맥을 모두 동원했지만 모두 쓸모가 없었다.
정말 겨우겨우 찬반 여론을 만들었지만 의미가 없었다.
‘일개 경위가 판사까지 움직일 줄이야.’
겨우 경찰 경위의 인맥에 밀 려버린 거다.
오해였지만 윤경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종혁의 생각은 좀 달랐다.
‘솔직히 위험했지.’
첨예하게 대립했던 찬반 여론.
누구인지 모를 사람이 힘을 써 주지 않았다면, 사법부는 분명 사태의 추이를 관망했을 거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주기엔 너무 뜨거운 감자였으니까.
그랬다면 윤경수 소장의 뜻대로 흘러갔을 거다.
‘역시 힘 있는 판사가 필요해. 그리고…….’
종혁은 이번에 윤경수 소장 지인들의 힘을 막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패를 써 버리고 말았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권&박 홀딩스와 종혁의 관계가 들통날 수밖에 없게 된다.
‘역시 제대로 된 정보팀도 필요하겠어.’
종혁은 한 번 더 생각을 다졌다.
"언론이라…… 항소하실 생각입니까?"
윤경수는 고개를 저었다.
"예편을 할 생각입니다."
종혁은 깜짝 놀랐다.
윤경수는 씁쓸히 웃었다.
"아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매일같이 찾으며 사과할 생각입니다. 그 아이가 그릇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대체 왜 그런 선택을……."
사과를 한다고 윤영철이 받아 줄까.
아니다. 놈은 그럴 인간이 아니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윤경수에게 원망을 쏟아 낼 거다.
제 잘못을 모르는 놈이니, 교도소 안에서 겪을 불합리한 일들마저 모두 윤경수의 탓으로 돌릴 거다.
윤경수는 그걸 각오한 것이었다.
"아직 결혼 안 하셨지요?"
"예……."
"자식을 낳아 보면 이런 제 마음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그럼 나중에라도 만나지 말길 바랍니다. 세월이 흘러도 경위님과는 술잔을 기울이지 못할 것 같군요."
고개를 숙인 윤경수 소장은 저 멀리 세워진 관용차를 향해 다가갔고, 종혁은 주차장을 나서는 그를 응시하다 담배를 물었다.
"씁쓸하네."
이번 사건, 윤영철을 징치했다는 것만 빼면 씁쓸함만 가득한 사건이었다.
이전에 해결한 사건들과 달리 개운하지가 않았다.
"이젠 진짜 경찰 밥을 먹게 돼서 그런 걸지도……."
회귀 전에도 이런 상황들은 참 많았다. 가족 한 명의 그릇된 결정에 의해 온 가족이 괴로워하는.
이제 앞으로 이런 사건들을 자주 만나게 될 거다.
다시 경찰이 됐으니까.
뚜벅, 뚜벅, 뚜벅.
고개를 돌린 종혁은 얼른 담배를 껐다.
백순재 부장판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경위님."
"예,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어떻게 판결됐는지 구경을 좀 왔습니다. 그런데 늦었군요."
"그러셨습니까……."
"……."
"……."
"수현이는 3년 형을 선고받을 겁니다. 집행유예 없는."
"……힘든 결정을 하셨습니다."
종혁은 혀를 찼다.
사건의 경중에 비해 판결의 수위가 좀 낮지만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백순재가 마음에 걸린다. 방금 전 ‘자식을 낳아 보면 알거다’라는 말을 들어서 더욱.
자식을 위해 어려운 선택을 한 윤경수 소장.
백순재도 편한 마음은 아닐 거다.
"원망은 안 하던가요?"
백순재는 씁쓸히 웃었다.
왜 원망을 안 하겠는가.
"그보다 알아보니 대단한 분이셨더군요. 생도 시절부터 대단하셨다고요?"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떤……."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 겁니까."
일본에서 큰 사건을 해결했음에도 결국 과학기술 교류를 선택한 종혁.
"본인을 위해서라면 더 나은 선택지도 있었을 텐데요."
‘거기까지도 조사한 건가. 뭐 다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경계심이 들 수밖에 없다. 좋은 인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혁은 당당했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섭니다. 오늘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거리를 당당히 활보할 그놈들을."
"역시……."
"음?"
"아닙니다. 그럼 앞으로도 이 나라의 치안을 부탁드립니다. 그럼."
돌아선 백순재의 얼굴엔 제법 상쾌한 미소가 걸렸다.
‘이런 사람이라서 다행이군. 주목할 가치가 있겠어.’
종혁은 그렇게 멀어지는 그를 보다 대체 뭐냐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정말 개운하지 않아."
종혁은 고개를 저으며 차에 올랐다.
* * *
‘대체 왜! 씨발! 씨발!’
"조용히 해. 처맞기 싫으면."
교도관의 뒤를 따르던 윤영철이 그 위협에 이를 악물었다.
‘너도 내가 죽여 버린다.’
그렇게 싸늘한 교도소 복도를 걷던 둘은 어느 방 앞에 멈췄다.
덜컹! 끼이익!
"신입이다."
윤영철은 헛숨을 삼켰다.
창문 같은 창살에 묶은 수건을 잡아당기는 거구의 문신 남자.
바닥에 앉아 책을 보다 고개만 돌려 이쪽을 보는 매서운 눈빛의 남자.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는 안경 낀 사내 등.
7명의 시선이 모인다.
‘앞으로 이딴 곳에서 이런 놈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숨이 턱턱 막힌다. 앞으로 15년을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에 눈앞이 아찔해진다.
"괜히 신고식 같은 거 해서 오밤중에 시끄럽게 굴지 말고. 야, 방장."
인적 사항이 적힌 서류를 문신 돼지에게 넘긴 교도관은 윤영철의 등을 떠밀곤 매정히 문을 닫았다.
끼이익! 쿵! 저벅 저벅.
"……갔습니다, 방장님."
"그려?"
문신 돼지가 몸을 편다.
"뭐허냐. 싸게 와서 인사 안 허고."
"후…… 나 사람 죽이려다 실패해서 왔거든? 나 건드리지 마. 그러다 죽어."
순간 분위기가 싸해진다.
그걸 겁먹었다는 걸로 착각한 윤영철은 가장 좋은 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그때였다.
"푸하하하하핫!"
"크크크크큭!"
"이야, 오랜만에 또라이가 하나 들어왔네."
‘무, 무슨?!’ 윤영철은 당황했다.
문신 돼지는 싱크대를 봤다.
"야! 안경! 넌 뭐 때문에 들어왔다고 했냐잉?"
"헤헤. 망치로 뻑치기 하다가 들어왔습니다."
"얼마 전에 이감되어 오신 우리 아자씨는?"
"노모를 죽였습니다……."
윤영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들었냐잉? 그랑께……."
쩍!
‘어?’
"눈에서 후까시 풀어, 이 씹새끼야."
그렇게 정신을 잃은 윤영철이 깨어난 건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불 한 점 없이 깜깜한 공간에 당황한 그.
‘대체 내가 왜?’
왜 목과 볼이 터질 듯 아픈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역겨운 구취가 확 풍겨 왔다.
"일어났냐잉? 그람 이제 시작해야제? 뭐혀, 엎어."
"흡!"
순간 누군가 뒤를 덮치더니 입에 수건을 쑤셔 넣고 담요를 덮는다.
그리고 그 위로 주먹과 발이 쏟아졌다.
퍽! 퍼억! 팍! 팍!
‘읍! 으읍!’
"씨벌놈이 어디서. 내가 앞으로 예뻐해 줄랑께 기대혀. 넌 아주 좆같이 찍혀브렀응께."
윤영철.
그의 교도소 생활은 시작부터 꼬이게 됐다.
* * *
어느덧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여름도 다 가고 가을이 됐다.
열대야가 사라지며 욱해서 일어난 범죄도 급감하자 숨을 돌리게 된 홍익파출소에 슬픈 소식이 찾아들었다.
"정말 가시는 거예요?"
종혁은 눈물을 글썽이는 한승연을 봤다.
이제 어엿한 순경인 그녀.
그녀는 홍익파출소 잔류를 택했다.
종혁은 싱긋 웃었다.
"애초부터 갈 사람이었잖아."
"하지만……."
"나중에 현장에서 봐."
"……."
대답 없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린 종혁은 최재수를 봤다.
한승연과 마찬가지로 잔류를 택한 그.
뺀질거리는 최재수도 오늘만큼은 입을 다문다.
"사고치지 말고요."
"에이 씨."
키득키득 웃은 종혁은 장철호 소장이나 이경숙 경장 등 지금까지 함께했던 경찰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정말 많은 걸 배우고 갑니다. 앞으로도 치안의 최전방에서 이 나라의 치안을 지켜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충성!"
"……충성!"
"잘 가, 종혁 씨!"
"우리 여경들 우정 끈끈한 거 알지? 힘든 일 있으면 어디에 있든 언니들에게 부탁해 봐!"
아쉬움에 눈물을 찔끔하는 그들.
짧은 기간이었지만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씩 웃은 종혁은 잔을 높이 들었다.
"홍익파출소를!"
"……위하여!"
그들은 종혁과의 마지막 잔을 기울였다.
술자리는 깊어지지 못했다. 홍익파출소의 경찰들은 내일도 동네의 치안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어디선가 또 만날 이들이기에 종혁은 아쉬움을 접고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찰칵! 치이익!
"후우우."
네온사인 불빛이 화려하게 부서지는 저녁.
모두가 떠난 자리 남겨진 종혁은 약간은 공허해진 가슴을 담배 연기로 채웠다.
아쉬움은 접었지만,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게 되니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저벅저벅.
"야, 나도 담배."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오택수가 쪼그려 앉으며 손을 내밀었다.
얼마나 마신 건지 초점이 풀려 있다.
"좀 사서 피라니까."
"시끄러워, 이 새끼야."
피식 웃은 종혁은 그의 입에 담배를 물려 줬다.
찰칵! 치이익!
둘은 잠시 말없이 지나는 사람을 응시했다.
"가서 자리 잡고 있어. 나도 금방 갈 테니까."
"얼른 오기나 하세요."
"재촉하지 마, 인마. 간다!"
"수고하셨습니다!"
손을 흔든 오택수는 인파 사이로 사라졌고,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종혁은 다 편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발을 내디뎠다.
"자, 그럼 이제 나도 가 볼까?"
언제 칼이 들어오고, 피가 튀길지 모르는 강력 현장.
드디어 그 세상에 복귀를 한다.
그렇게 종혁의 파출소 순환 근무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