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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56화 (156/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56화>

타다다다다닥!

날이 꾸물꾸물하더니 여지없이 비가 쏟아진다.

"아, 그 양반."

최기룡 경찰청장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 윤경수 소장이 동원한 국회의원 인맥.

종혁은 그가 누구인지 최기룡에게 넌지시 물었으나, 최기룡은 종혁이 이런 정치질에 휘말리기 원치 않는다는 듯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때린 놈이 누군지 모르고 넘어갈 순 없었다.

-강원도 철원, 양구 등을 지역구로 삼은 사람인데, 2선이에요.

"재밌네요. 2선 국회의원이 경찰청장을 다 압박하고."

-거기가 그쪽 텃밭이잖아요.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찰 쪽도 그러지 않았던가. 어른들의 사정이라고.

최기룡 청장은 2선 국회의원이 아니라, 그 윗선을 보고 감찰이라는 결정에 동의를 한 것일 터였다.

-그런데 최기룡 청장의 사과는 받으셨어요?

종혁은 피식 웃었다.

"네. 감찰 끝나자마자 받았습니다. 먼저 전화도 주셨고요."

-섭섭하진 않으세요?

"섭섭하긴요."

최기룡 청장은 정말 많은 배려를 해 주고 있다.

순환 근무임에도 경제팀에 들리지 않고 부서를 골라 갈 수 있다는 것부터 그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아무리 경찰대 수석이고, 불러 주는 곳이 많다고 해도 어겨선 안 되는 조직의 룰을 어겨 가며 배려해 준 거다.

그에겐 큰 리스크였을 터.

이번 감찰에 본인의 손이 닿은 사람을 보낸 것도 말이다.

장난이었어도 미리 전화를 해 준 마당이니 섭섭함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일단은 묵혀 둬야죠."

이쪽에서 얻어 낼 건 다 얻어 낸 이후 터트린다.

누구의 부탁이건 칼을 휘둘렀다면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종혁의 생각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혹시 권&박 회원 중에 군인도 있습니까?"

-몇 분 계시긴 한데…… 그분들이 윤경수 소장의 반대 파벌인지는 모르겠어요. 한번 알아볼까요?

"일단 알아봐 주시고, 군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도 좀 알아봐 주세요. 병무청 쪽으로요."

그녀가 만들어 놓은 인맥이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이 국회의원 양반과 대척점에 선 분도 좀 알아봐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건 쉽죠! 알았어요!

전화를 끊은 종혁은 긴 한숨을 내뱉으며 침대에 누웠다.

"정작 문제는 판사인데……."

확실한 끈이 없으니 애매하다.

윤경수 소장 쪽에서 작정하고 덤벼들면 첫 공판까지 가는 데만 한 세월이 걸릴 수 있다.

그사이 윤영철의 군 면제가 풀리고 입대를 시켜 버리면?

윤영철은 영영 손을 떠나 버리게 되는 거다.

"윤경수 소장이야 평생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퇴역을 하거나 죽으면?"

윤영철은 다시 사회로 나오게 될 것이다. 그것도 그를 억제하던 유일한 족쇄가 사라진 채로.

그사이에 정말 군정신병원 안에 갇혀 미쳐 버린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만, 종혁은 그렇게 낙관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감시를 벗어나기 위해 몇 년 동안 끓어오르는 욕구를 눌러 참은 윤영철이다. 군정신병원 안에서도 정신줄을 꽉 붙든 채 버틸 확률이 높았다.

회귀 전, 윤영철은 사형 선고를 받은 직후에도 자신의 죄를 조금도 뉘우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느냐며 뻔뻔한 태도를 일관했다.

종혁은 그런 놈을 인간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고 여겼다.

놈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었다.

윤영철은 사회로 나오는 순간, 그가 저질렀던 악행을 몇 번이고 반복할 놈이었다.

그런 놈들에겐 자신이 저질렀던 행위의 무게감을 깨닫게 하고, 절망을 안겨 줘야 했다.

그때였다.

똑똑똑.

"들어가도 돼?"

"네, 들어오세요."

스륵.

문을 열고 들어오던 고정숙은 침대에 누워 있는 아들을 보고 살짝 놀랐다.

씻지 않고서는 절대 침대에 눕지 않던 종혁.

그런 종혁이 외출복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있는 탓이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냐 자신을 쳐다보는 아들의 옆에 앉아 손등을 쓸어내렸다.

"많이 힘들어?"

"힘들긴. 이제 겨우 4개월도 안 됐는데."

"원래 그때가 제일 힘든 법이야."

"그렇다고 해도 아들 체력엔 이상 없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종혁의 얼굴을 빤히 본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오늘 일 때문이겠지.’

1층 카페에 있었던 일은 그녀도 전해 들었다.

군복에 별이 두 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고 한다.

"아들, 앞으로도 쉽지 않은 사람들을 상대하게 될 일이 많을 거야."

남편도 그랬다.

그때마다 힘들어했던 남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하지만 어떤 장애물이 가로막고, 어떤 방해가 들어와도 네 생각을 꿋꿋이 밀고 나가. 난 그런 내 아들 응원할 거니까."

남편도 살아 있었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자신도 생전에 그랬으니까.

"……하핫!"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가던 종혁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어머니에게 걱정을 시켰다는 자책감보다 어머니의 응원이 더 크게 다가온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힘들면 말하고. 이깟 건물, 돈 없어도 되니까."

"옙! 충성."

"그럼 푹 쉬어. ……아, 그보다 먼저 씻고! 집에 오면 씻기부터 해야지! 내가 24살 처먹은 아들한테 이런 것까지 지적해야 되니?"

"어? 어어어! 알겠습니다!"

화장실로 달려가는 종혁의 낯빛은 방금 전보다 한결 가벼웠다.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렇게 힘이 되었다.

* * *

채팅 살인?

채팅이 불러온 끔찍한 범죄!

얼굴 없는 애인! 과연 가능한가?

윤 모 씨. 그는 범죄자인가, 정신병자인가?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윤영철 사건을 때린다.

애초부터 살인을 목적으로 채팅으로 여성을 끌어들인 윤영철.

경찰의 한발 빠른 대처가 아니었다면 끝내 피해자가 발생했을 거라는 기사 내용에 온 국민이 분개하고 손가락질했다.

그러다 후속으로 이어진 기사에 멈칫했다.

한국 최초의 사이코패스?

범죄심리학자가 말하는 사이코패스란?

한국인으로선 생소한 병명, 사이코패스. 반사회적 인격장애.

반사회적 행동, 공감 능력과 죄책감 결여, 낮은 행동 통제력, 극단적인 자기중심성, 기만 등.

누가 봐도 정신병자다. 정신병자가 병을 못 이겨 범행을 저지른 거다.

이에 찬반 논란이 일었다.

정신병자니까 정신병원에 가둬야 한다.

아니다, 범죄를 저질렀으니 교도소에 넣어야 한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경찰, 검찰, 법원까지 뜨거운 논쟁을 이어 나갔다.

"부장판사님, 이 기사 보셨습니까?"

삼십대 젊은 판사가 내민 신문을 본 백순재는 피식 웃었다.

"내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가 궁금한 거야?"

"아하하……. 죄송합니다."

저 멀리 고개만 내밀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숨는 다른 후배 판사들을 보니 다시 웃음이 터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그는 곧 진지해졌다.

"흠. 나라면 징역을 때리겠지. 한 15년."

커피에 근육이완제를 타서 먹인 것도 모자라 중함마망치로 뒤통수를 내려쳤다. 명백한 살인 의도를 가졌으나 운이 좋아 피해자가 산 케이스다.

이런 범죄자에게 판사로서 내릴 수 있는 판결은 세상과의 격리다.

역지사지. 이런 놈은 교도소에 들어가 비슷한 꼴을 당해 봐야 후회를 할 놈이다.

"오히려 형량을 이것밖에 주지 못해서 좀 짜증 나지."

"어, 그러십니까?"

"왜? 공 프로는 정신병원이야?"

"예.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이잖습니까."

"아니, 절대 나올 수 없는 곳은 아니지."

젊은 판사의 눈이 동그래진다.

"범행 대상을 끌어들이기 위해 몇 달 동안 다정한 남자친구를 연기했을 정도로 똑똑한 놈이야."

즉, 행동 통제력이 낮다고 해도 목적을 위해 참고 견딜 줄 안다는 거다.

"이런 놈이 몇 년 버티다 정상인인 것처럼 연기를 하면 어떨까? 무조건 나와."

"아……."

한국인에겐 생소한 단어지만, 외국에선 제법 흔한 단어인 사이코패스.

해외 판결문들을 공부한 백순재는 이들에 대해 잘 알았다.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이 꼭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도.

"그리고 무릇 판사라면, 이 나라의 헌법을 수호하는 판사라면 윤영철에게 어떤 판결을 내릴지가 아니라 다른 걸 주목해야지. 이것만 판결할 거야?"

"예?"

백순재는 기사의 한 대목을 가리켰다.

"온갖 혈흔들로 가득했던 화장실에서 동물의 종류와 숫자를 분리한 이거. 이 기술."

온갖 혈흔에서 DNA를 추출 및 분리했다.

화장실 천장에선 약 10년 전 죽인 병아리의 혈흔까지 발견했다.

DNA 증폭 기술까지 물이 올랐다는 소리다.

"엄청난 기술이지 않아? 분명 이 기술로 인해 과거의 사건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할 거야."

일감이 밀려오는 소리에 젊은 판사의 얼굴에서 혈액이 빠져나갔다.

"지금 쉬어 둬. 앞으로 이럴 시간은 없을 테니까."

툭툭.

백순재는 젊은 판사의 어깨를 두들긴 후 자신의 사무실로 발길을 향했다.

이내 자신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그는 소파에 앉아 얼굴을 쓸어내렸다.

눈을 감은 그의 머릿속에 한 소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18살, 꽃다웠던 여동생.

평택 그 작은 시골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똑똑했던 여동생. 늦둥이라 딸처럼 예뻐했던 여동생.

"순영이. 우리 순영이."

아직도 선명히 떠오르는 늦둥이 막냇동생의 미소에, 논두렁에서 하얗고 파랗게 식어 버렸던 그 모습에 결국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빠!

명절날에만 찾아오는 오빠 따위가 뭐 그리 좋다고 밝게 부르던 여동생의 외침이, 옆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린다.

‘내가 법관으로서 행실을 똑바로 했다면 살 수 있었을까.’

당시 선배 판사들의 명령에 부당하고 불의한 일을 눈감아야 했던 그에게 하늘이 내린 것 같았던 벌.

-순재야, 그놈 꼭 잡아야 한다. 제발, 제발 부탁한다.

가슴 깊숙이 남겨진 상처가 벌어져 다시 피를 울컥 토해 냈다.

그는 결국 전화기를 들었다.

"예, 서울 고법 백순재 부장판사입니다. 어제 부탁드린……."

-아, 판사님! 안 그래도 조사 결과가 나와서 연락드리려던 차였습니다!

철렁!

"저, 정말입니까?! 누굽니까! 어떤 자식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여동생을 처참하게 죽인 범인.

대한민국 모든 검경이 달라붙었어도 결국 놓쳐 버렸던 범인.

자신에게 힘이 있었다면 잡았을 거란 한을 남긴 범인.

-이범재라는 사람인데 지금 교도소에 있습니다.

"이범재? ……이범재!"

백순재는 벌떡 일어났다.

이범재. 기억에 있는 이름이다.

당시 옆 동네에 살았고, 네 번째로 유력했던 용의자.

몰라서 놓쳤다는 분노보다 눈물부터 울컥 솟았다. 이제야 여동생도 편히 눈 감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여러분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크흐흑!"

-솔직히 말하자면 저희의 노력이 아닙니다.

"예?"

-판사님께서 부탁하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DNA 기술이 한국에 유입될 수 있었던 건, 모두 경찰대 임성원 교수님과 최종혁 경위 이 두 사람 덕분입니다.

‘최종혁? 설마 그 최종혁 경위?’

백순재는 예상치 못한 인물의 이름이 거론되자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이야기는 이 뒤에 이어졌다.

새로운 수사 기법을 창시해 세계 각국 유명 범죄심리학자나 연구소 수사기관 등이 매달리게 만든 두 사람.

그 두 사람에 의해 결국 미국의 DNA 증폭 및 분리, 추출 기술을 들여올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 교도소 수감자들의 DNA 데이터베이스까지 구축됐다는 사실은 도무지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허어……."

끊긴 전화기를 망연히 바라보던 백순재는 테이블 놓인 신문들을 멍하니 응시했다.

-윤 모 씨를 검거한 최 모 경위.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길 바란다고 말해…….

백순재는 다시 신문을 살폈다.

교도소냐, 정신병원이냐로 싸우는 언론들.

그 사이에서 교도소행을 외치는 종혁.

분명 좋게 맺은 인연은 아니다.

호신용 방범벨 설명회에서도 그저 인사만 나누고 헤어지지 않았던가.

분명 종혁은 자신의 일을 한 것이지만, 아들이 큰 죄를 저지른 건 맞지만 그래도 좋게 생각할 순 없었다.

"하지만…… 이 빚은 갚아야겠지."

그는 전화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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