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53화 (153/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53화>

그렇게 길지만 짧았던 휴일이 끝나고 복귀한 그들.

너무도 큰 진실을 알았지만 사건, 사고는 그런 그들의 사정을 모른다는 듯 넘쳐 난다.

"사거리 마트 앞에서 폭행 사건이 벌어졌다니까 출동해!"

"예!"

"아이 씨. 경찰이면 다야? 다냐고! 너희 소장 불러!"

"저…… 길 좀 물으려 왔는데요."

오늘도 떠들썩한 홍익파출소.

경찰들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바쁜 하루를 보낸다.

일할 땐 정말 가지 않았던 시간도 퇴근 시간이 되니 이렇게 짧았나 싶다.

"종혁아, 오늘 한잔 어때?"

"아, 좋죠. 오 경위님은 어떠세요?"

"네가 사냐? 아니면 안 먹고."

"……한 번쯤은 사는 게 어떠십니까?"

평상복으로 환복을 마친 그들은 웃으며 파출소를 떠났다.

그런 그들에게 낯빛이 어두운 한승연과 최재수가 다가왔다.

이제 정말 며칠만 지나면 정식 순경이 되는 그들. 그래서인지 마음이 조급하다.

"저…… 최 경위님."

둘의 얼굴을 본 종혁은 오택수를 봤다.

"자! 우린 여기까지! 내일 봅시다!"

"뭐야? 같이 한잔 안 하고?"

"야! 너희 요새 우리 따돌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냐?"

"그럼 수고하십쇼! 가자."

오택수는 종혁과 한승연, 최재수의 등을 떠밀며 파출소에서 멀어졌다.

그런 그들이 향한 곳은 종혁이 차를 주차하는 유료주차장이었다.

"윤영철 때문이에요?"

한승연과 최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하루 낯빛이 어둡다 싶더니 역시나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한승연이 이를 악물었다.

"윤영철…… 지금 못 잡는 거죠?"

"못 잡죠."

당연히 못 잡는다.

"왜요! 그 새끼가 범죄를 저지를……."

오택수가 발끈하는 최재수의 입을 때렸다.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놈을 어떻게 검거해, 이 똘빡아!"

"그럼 어쩌자고요, 씨발! 이러다 피해자가 생기면! 그제야 잡을 거야, 뭐야!"

"반말, 이 새끼야. 반말."

종혁은 얻어맞는 최재수를 보며 씁쓸히 웃었다.

최재수의 말이 옳다.

경찰은 결국 사건이 터지고 피해자가 생겨야 범인을 잡을 수 있다.

이래서 지랄 맞은 거다.

범인을 알아도 잡을 수 없다는 게.

‘진짜 이럴 때마다 그 영화처럼 되고 싶지.’?

2002년에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마이너 리포트.

예언가들의 예언으로 미래에 누가 어떤 범죄를 저지를지 사전에 알아차리고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검거해 버리는.

솔직히 경찰 중에서 이 영화 속 경찰을 부러워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거다.

물론 찬반 논란이 참 많았다. 범죄를 저지르기 전까지 이 사람이 저지를지 저지르지 않을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거니까.

"나도 알아요. 다 아는데!"

최재수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인다.

"최 경위님이 그랬잖아요. 억울한 피해자는 만들지 말라고."

보다 많은 범인을 잡는 것보다 단 한 명이라도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마라.

"이 새끼가 사고를 칠 게 뻔히 보이는데! 사건 터지면 늦는데! 막을 수 있으면 막아야 하는 게 우리 경찰이 할 일이잖아요!"

종혁은 고함을 지르는 최재수의 모습에 오택수를 봤다. 초조한 건 이해하겠는데, 그렇다고 해도 반응이 너무 과하다.

그에 오택수가 담배를 물었다.

"너 오기 전에 관내에 살인 사건이 있었어."

나이 든 아들이 노모를 죽인 사건이다.

이유는 돈을 주지 않아서.

술 먹고 행패 부리기로 동네에서 유명한 아들은 파출소 신세를 자주 졌는데, 그때마다 엄마가 달려와 무릎 꿇고 사정을 해서 겨우 풀려났다.

"그때 노모가 빌고 빌어도 처넣었다면 막을 수 있었겠지. 그때 술 취한 아들과 노모를 집까지 데려다준 게 재수였어. 그리고 그다음 날…… 쯧. 염병."

"최 시보는 집어넣자는 쪽이었고요?"

"어. 승연이도 함께 데려다줬지."

한승연을 보니 주먹을 꽉 쥔 채 떨고 있다.

종혁도 담배를 물었다.

"지랄 염병 났네. 니미럴."

그렇다면 이런 모습도 이해가 간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직접 돌려보낸 사람이.

마치 자신의 잘못 같았을 거다. 아니, 결국 최재수 본인이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래서 그렇게 제 몸뚱이 사리지 않고 뭐든지 달려든 것이었다.

"진짜 지랄이네요."

"지랄이지."

그리고 이 지랄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견디며 다른 이들을 구해야 되는 게 그들 경찰이다.

"최 경위님."

종혁은 뭔가 각오를 한 듯한 그녀의 눈빛에 갑자기 불길해졌다.

그때였다.

띠리링! 띠리링!

핸드폰을 꺼낸 종혁은 미간을 좁혔다.

윤영철의 집 근처에 박아 놓은 흥신소 직원이다.

"잠시만요. ……예, 여보세요?"

-말씀하신 그 집 앞에 웬 여성이 서성이는데 어떻게 할까요?

‘여성? 설마?’

순간 종혁의 머릿속에 첫 번째 피해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렇기에 말이 안 된다.

그녀가 윤영철의 집에 오는 건 내일이다.

방학이라서 아르바이트 구하러 간다고 집을 나섰던 그녀. 그녀는 그런 핑계를 대고 윤영철의 집으로 향한다.

그 전까지 얼굴 한 번 맞대지 않았던 남자의 집으로.

때마침 부모는 일이 있어 지방에 갔던 상황.

딸과 연락이 닿지 않기 시작한 게 모레부터다.

즉, 내일까지는 연락이 닿았단 소리다.

‘왜? 대체 왜?’?

머릿속이 뒤엉켰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자, 잡아요! 일단 잡아!"

오택수와 한승연, 최재수가 종혁을 의아해하며 본다.

그러다 오택수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야, 설마?"

"타요, 얼른!"

"씨발!"

한승연과 최재수도 다급히 종혁의 차에 올랐다.

* * *

요새 한창 유행인 김윤희 패션을 쫙 빼입은 이지혜가 거울 앞에 서서 몸을 이리저리 비튼다.

그동안 모은 용돈을 모두 투자해 산 김윤희 패션.

그녀는 목에 걸린 넓고 두꺼운 패션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자주하는 게임에서 증정 이벤트로 당첨된 패션 목걸이. 핸드폰을 연결해도 되고, 연결하지 않아도 충분히 톡톡 튀는 패션이다.

일명 김윤희 목걸이줄.

이게 당첨이 됐기에 큰마음을 먹고 김윤희 패션을 지른 거다.

그래서 얼른 보여 주고 싶었다.

오늘 처음으로 얼굴을 볼 남자친구 영철 오빠에게.

"실제로 만나도 사진처럼 잘생겼겠지?"

그녀의 가슴속에서 기대감이 확 차오른다.

목소리와 매너뿐만 아니라 위트까지 좋은 영철.

가끔씩 박력적인 모습을 보일 땐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설렌다.

‘실제로도 그런 모습일까.’

그렇게 기대하던 그녀는 갑자기 침울해졌다.

"하루 일찍 만나자고 떼쓴 것 때문에 싫어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얼른 이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서 떼를 써서 약속을 하루 앞당긴 그녀. 윤영철도 흔쾌히 그러자 했지만, 그녀는 그랬던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떼쟁이로 비춰졌을까 봐.

안절부절못하던 그녀는 이내 질끈 눈을 감으며 윤영철에게 지금 출발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몇 초 후 답장이 아니라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이보다 밝을 수 없다는 듯 전화를 받은 그녀.

하지만 돌아오는 목소리가 어둡다.

-하아. 지혜야 어쩌지?

"왜, 왜요?"

그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발목을 삐끗해서 말이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그녀의 얼굴에 걱정이 서린다.

"괜찮아요? 이번엔 어쩌다가요?"

가끔 넘어지고 다쳐서 매번 애만 태우는 영철.

-너 만날 준비를 하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발목을…….

"아……."

이지혜의 낯빛이 흐려진다.

그녀 본인의 탓이 아니건만 죄책감이 차오른다.

"그럼 오늘 못 만나는 거예요?"

-……미안.

"우리 오늘 처음 만나는 건데……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대했는데……."

-나도…….

"히잉."

-그, 그럼 우리 동네로 올래?

화들짝!

"오, 오빠 동네로요?"

-기대하던 데이트는 못하겠지만 나도 널 보고 싶어서……. 우리 동네에 예쁜 카페 많아!

"……풋. 그렇게 만나고 싶어요?"

-넌 나 안 보고 싶어?

그 박력적인 말투에 지혜의 심장이 흔들린다.

이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져 버릴 수밖에 없다.

"피이. 알았어요. 도착하면 연락할게요. 쪽!"

-나도 사랑해.

배시시 웃으며 전화를 끊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슬쩍 티셔츠 안을 봤다가 깜짝 놀랐다.

"흠흠. 그럼 가 볼까?"

그녀는 윤영철의 동네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윤영철이 찍어 준 주소의 집 앞에 서자 갈등이 생긴다.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작은 의문이 든 것이다.

사진과 실물이 다르면 어쩌지.

성격이 다르면 어쩌지.

걱정이 든다.

"오빠라면 별일은 없겠지만……."

그녀는 목에 건 핸드폰 목걸이를 매만졌다.

김윤희의 그것과 똑같지만, 다른 점이 있는 핸드폰 목걸이.

여기서 생긴 안도와 영철에 대한 믿음으로 걱정을 누른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만나 보고 생각하자!"

그녀는 다시 설레는 얼굴로 핸드폰을 들었다.

그 순간.

"거기 잠깐만."

‘힉?’ 그녀는 앞에서는 험악한 인상의 남자에 그대로 얼어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그녀는 곧이어 도착한 경찰들에게서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듣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러니까 영철 오빠가……."

주택가에서 멀리 떨어진 카페 안.

종혁은 파랗게 질린 채 불신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이지혜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일명 채팅 연쇄살인마, 윤영철의 첫 번째 피해자. 여대생 이지혜.

이렇게 그녀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고, 또 다행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지금 한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윤영철은 저희 경찰도 예의 주시하는 인물로……."

지이잉!

"……확인해 보세요."

문자를 확인한 이지혜는 헛숨을 삼켰다.

지혜야, 늦니? 라는 짧은 문자.

평소처럼 다정한 말투지만, 종혁의 설명을 들어서인지 괜히 오싹해진다.

"장담합니다. 윤영철을 만나게 되면 분명 험한 꼴을 당하게 될 겁니다."

"그, 그럼 어떡하죠?"

동물을 죽였단다. 그것도 실수로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고양이, 병아리, 토끼, 강아지. 그 귀여운 아이들을.

그런 사람이 자신을 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사람에겐 그렇지 않을지라도 여차하면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다.

그녀는 그게 무서웠다.

"이대로 돌아가셔서 연락을 끊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원래 살아가던 대로 계속 살아가면 된다.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 이후엔 계획대로만 움직이면 된다.

목표로 삼았던 먹잇감이 코앞에서 도망쳐 눈이 뒤집힐 윤영철에게 새로운 먹잇감인 것처럼 접근을 한다.

그러면 윤영철은 함정인 것도 모른 채 달려들 터.

그때가 검거의 순간이다.

마침 같은 것을 떠올린 건지 오택수가 신호를 보낸다.

둘은 잠시 양해를 구하고 카페를 나섰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종혁은 본인이 세운 계획을 말했고, 오택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시나리오 좋네. 심플하고, 깔끔하고. 배우는?"

"본청에 아는……."

"제가 할게요."

어느새 뒤따라 나온 건지 한승연이 굳은 눈빛을 보내고 있다.

"제가 하고 싶습니다."

종혁이 윤영철을 감시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결국 아들이 노모를 죽인 사건처럼 됐을 거다.

‘그랬다면 견딜 수 있었을까?’

아니다. 견디지 못했을 거다.

‘그러니.’

"그놈을 꼭 제 손으로 잡고 싶어요."

그래서 가슴속에 진 이 응어리를 풀고 싶었다. 이번엔 막았다고 노모에게 말하고 싶었다.

종혁은 그녀의 눈빛을 보곤 깨달았다. 그녀가 결코 물러나지 않을 거란 걸.

그 마음이 이해가 가서 더욱 안타까웠다.

하지만 말릴 수 없다.

지금 말려 버리면 가슴에 진 응어리가 독이 되어 버릴 것이고, 훗날 이와 비슷한 사건을 해결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거다.

먼 훗날 시간이 지나야 가능할까.

그 독이 얼마나 지독한지 알기에 종혁은 차마 말릴 수 없었다.

"가능하겠어요?"

"맡겨 주세요. 꼭 해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 보죠."

"충성!"

한승연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렇게 합의를 본 그들은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아, 그런데 경위님. 꼭 다른 사람으로 접근해야 되나요? 어차피 윤영철이나 이지혜씨는 사진만 교환했잖아요."

"음?"

"저랑 이지혜 씨 얼굴형이 비슷한데……."

눈을 껌뻑인 종혁과 오택수는 한승연과 이지혜를 번갈아 봤다.

* * *

"죄송해요. 갑자기 엄마 때문에…… 네, 그럼 3시간 후에 봐요!"

전화를 끊은 이지혜의 얼굴이 급격히 무너진다.

"돼, 됐어요. 그, 그럼 전 이만 가 봐도 되는 거죠?"

"……죄송합니다. 지혜 씨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까 오늘 하루는 저희와 함께 있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해 주셔야 할 말도 많고요."

이를테면 채팅을 할 때 나눴던 대화.

완벽을 기하기 위해선 그녀의 협조가 무척이나 필요했다.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

종혁은 낙담하는 그녀의 모습을 애써 외면했다.

주어진 시간은 겨우 3시간뿐이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럼 움직이죠."

종혁은 인맥을 동원해 겨우 스케줄을 잡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로 향했다.

* * *

어느새 어둑해지다 못해 소음마저 조용해진 주택가.

종혁은 옆에 앉은 한승연을 봤다.

뒷자리에 앉은 이지혜와 비슷한 옷차림을 한 그녀.

어두운 곳에서 보니 이지혜와 똑같이 보인다.

긴장을 한 것인지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다.

"힘들다면 지금이라도……."

"아뇨, 괜찮습니다."

종혁은 빤히 그녀를 응시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해요. 놈이 덤비는 순간, 그 목걸이줄을 당긴 다음 몇 초만 버티면 돼요."

권&박 홀딩스가 제품 설명회에서 처음 공개된, 일명 김윤희 목걸이줄이라 불리는 호신용 방범벨.

작년 말 정병규 상해미수 사건과 밀실살인 사건 해결 이후 종혁은 조금이라도 피해자를 줄이고자 이것을 만들고자 했다.

누구나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디자인까지 신경 써서.

이지혜가 이걸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본 종혁은 뿌듯함을 느끼는 한편, 이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걱정 마. 넌 꼭 우리가 구할 테니까."

"이 동기를 믿어, 승연아."

"……예. 그럼 안에서 뵙겠습니다."

최재수의 말은 딱히 힘이 되진 않았지만, 각오를 다진 그녀는 핸드폰 목걸이줄을 어루만지며 차에서 내렸다.

종혁은 윤영철의 집으로 접근하는 한승연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부디 조금만 다치길…….’

그렇게 되길 종혁은 간절히 바랐다.

"저…… 제 핸드폰이랑 김윤희 목걸이줄은 괜찮겠죠?"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여 더럽혀 지면 물어 드릴게요. 아니, 오늘 협조해 주셨으니 모두 다 새 걸로 사 드릴게요."

"저, 정말요?"

"쉿! 나온다."

오택수의 경고에 모두 숨을 죽였다.

절뚝거리며 나온 윤영철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

‘터지지만 마라. 지금 터지지만 마라.’

종혁은 간절히 바랐다.

한편 울컥울컥 치솟는 분노를 겨우 누르던 한승연은 이어지는 말에 정말 터질 뻔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잖아. 근처에 여는 카페도 없고, 커피라도 마시고 가."

정말 종혁이 말한 대로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이 개자식!’

"으으음."

한승연은 정말 초인적으로 치솟는 분노를 내리눌러야 했다.

"알았어요……."

"그래, 어서 들어와."

활짝 웃은 윤영철은 한승연을 집 안으로 들였다.

돌아선 그의 눈에 희열이 스쳐 지나간다.

거실 소파에 앉은 그들.

윤영철이 커피를 내려놓으며 다정히 물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좀 다르네?"

"네, 네?"

"아니, 전화랑 목소리가 다른 것 같아서."

"아, 그런 말 많이 들어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윤영철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좀 일찍 왔네? 3시간 걸린다며?"

"오빠 만나고 싶은 생각에 얼른 끝냈죠! 엄마랑 통화도 했으니까 이제 집에 늦게 가도 돼요!"

무척이나 집이 엄하다던 지혜.

윤영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만 남았다.

"그런데 걸리진 않을까? 잘못하다간……."

한승연의 눈도 반짝였다.

"걱정 마세요! 부모님은 나 여기 온지도 모르니까!"

"아, 그래? 그럼 조금 오래 있어도 되겠네?"

한승연은 순간 희번뜩 떠진 윤영철의 눈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럼요."

"하하. 좋네. 더 오래 볼 수 있어서. 마시고 있어. 부엌에서 먹을 것 좀 가져올게."

"네!"

한승연은 안으로 향하는 윤영철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앞에 놓인 머그컵을 봤다.

갈색 커피가 든 머그컵.

‘최 경위님이 수면제를 쓸 수도 있다고 했지.’

실제로 그런다.

윤영철은 근육이완제나 수면제를 써서 피해자의 몸과 정신을 몽롱하게 만든 뒤 범행을 저질렀다.

‘한 모금 마셨는데…… 괜찮겠지?’

윤영철이 쳐다보기에 어쩔 수 없이 마신 한 모금.

그녀는 괜찮을 거라 애써 마음을 다독였지만 몸은 그렇지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조, 졸음이?’

머리가 조금 멍해진다.

덜컥 두려움이 든다.

"오, 오빠, 아직 멀었어요?"

"다 됐어. 금방 갈게!"

부엌에서 나온 윤영철은 그녀의 뒤로 접근해 어깨 너머로 음식을 내밀다 멈칫했다.

"커피를 별로 안 마셨네?"

"네, 그게……."

"마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아프지 않았을 텐데……."

오싸악! 퍼억!

"어?"

반사적으로 피하려던 한승연은 순간 멍해졌다.

방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왜 눈앞이 흐려지고 눈이 감기려는 걸까.

‘아, 혹시라도 뒤에서 공격할 수 있으니 경계하라고도 하셨는데…….’

"미안. 네가 완전히 잠들 때까지 참으려고 했는데 더 이상 못 참겠어. 이런 날 이해해 줄 거지? 이따가 봐."

‘좆…… 까!’

그녀는 목에 쥔 김윤희 목걸이줄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 순간.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김윤희 목걸이줄에서 맹렬하게 터지는 고음.

"뭐, 뭐야!"

고음에 귀가 꿰뚫린 윤영철이 당황하다 상황을 깨달았다.

"이런 씨발!"

윤영철은 다급히 김윤희 목걸이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띵동! 띵동!

쿵쿵쿵!

"경찰이다! 문 열어!"

"미친?!"

흔들리는 현관문을 응시한 윤영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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