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52화 (152/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52화>

치이익!

하얀 지방과 붉은 살결이 뜨거운 불판 위에서 익어 간다. 얇게 잘린 얼린 고기가 숨을 죽이며 허연 거품을 토해 낸다.

"이거 가만 보면 처음에 했던 말은 싹 다 구라야. 뭐? 곱게 자라서 아무거나 못 먹어? 에라이."

녹아들듯 익어 가는 대패삼겹살.

1인분에 3800원.

이곳은 서민들의 사랑방, 사랑방 고깃집이다.

종혁은 코웃음을 쳤다.

"돼지에 고급이고 저급이고가 어디 있습니까. 다 맛있지. 안 그래요, 한 순경?"

"아하하."

군침을 꼴깍꼴깍 삼키던 한승연은 어색하게 웃었다.

최재수는 이 와중에 오직 불판만 볼 뿐이다.

오늘은 그들끼리 다시 조를 짜게 된 걸 축하하기 위한 환영회.

한승연도 나름 같은 조라서 꼽사리 끼게 됐다.

"또라이 새끼."

"술이나 드세요."

종혁은 무시하며 대패를 한 젓가락 크게 떴다.

입안 가득 뭉쳐 들어와 눅진하게 뭉개지는 돼지 육향의 향연.

바삭하게 익은 부위들이 식감을 더하며 절로 술을 부른다.

"크아! 이모, 여기 소주 세 병이랑 대패 10인분 추가요!"

혀를 찬 오택수는 담배를 물었고, 종혁은 냉큼 그걸 뺏었다.

"어디 밥상머리에서. 지금이 90년대입니까?"

"이게 진짜!"

"술이나 받으세요."

"……넌 이 새끼야, 사수가 당하는데 뭐하고 있어?"

"고기 먹습니다. 방해하지 마세요."

"……내가 꼰대인지, 니들이 또라이인 건지."

고개를 저은 오택수는 술을 주욱 들이켰고, 종혁은 그 입에 크게 싼 쌈을 넣어 줬다.

결국 풀썩 웃은 오택수는 검지와 중지를 입에 가져다대며 몸을 일으켰고, 마침 담배가 몰린 종혁도 따라 일어섰다.

딸랑!

문을 열고 나가니 가게 안과 느낌이 다른 열기가 몰려왔다.

그래도 약간은 시원한 바람.

둘은 폐부로 스며드는 담배에 잠시 말을 멈췄다.

부웅. 빵빵.

어디론가 향하는 차들은 오늘도 바쁘다.

"……192번지."

종혁은 말을 꺼내는 오택수를 봤다.

거슬리는 게 있는지 미간을 찌푸리는 그.

"뭔가 이상하지 않디?"

종혁은 눈을 빛냈다.

역시 베테랑다운 촉이었다.

"이상하죠."

"그렇지? 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아니, 그렇게 계속 들이면 원래 키우던 애들은 어떻게 한다는 건데?"

석 달마다, 아니 지금은 한 달 주기로 새로운 동물을 들인다고 한다.

여기서 거슬리는 점은 동물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건 본 사람이 많은데, 나가는 걸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전부 계속 키우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나, 192번지의 평수가 그 많은 동물들을 전부 수용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게다가 처음엔 병아리."

"그다음은 토끼."

지금은 강아지다. 그마저도 점차 대형견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또한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지만, 경찰인 그들의 시선에는 달리 보였다.

오택수는 딱딱하게 굳은 눈빛으로 종혁을 봤다.

"난 왜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새끼가 그 동물들을 죽인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까? 짐승 짖는 소리가 안 난다잖아. 아니, 안 났어. 주인이 들어갔는데도."

그것이 오택수가 의심을 품은 결정적인 이유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그 많은 동물이 전혀 울음소리를 안 낸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종혁은 담배를 깊게 빨았다.

이래서 유능한 베테랑은 함께 일하기가 편하다. 굳이 단서를 안 줘도 알아서 정답에 근접해 버리니까.

종혁은 차갑게 웃었다.

"그렇게 궁금하면 확인해 볼까요?"

"음? 어떻게?"

"거슬리는 점부터 확인한다. 기본이잖아요?"

"……아. 하핫. 그러네. 맞네. 이야, 내가 너무 현장에서 떨어져 있었나? 날짜 맞춰서 콜?"

"콜."

둘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가 깜짝 놀랐다.

언제 나왔는지 한승연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저, 저도 함께 갈 수 있을까요?"

종혁와 오택수는 눈을 껌뻑였다.

*   *   *

정말 어렵게 날짜를 맞춘 휴가 날.

오늘은 가볍게 A사의 외제차를 끌고 나온 종혁은 약속 장소로 향했다.

미리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던 오택수는 혀를 내둘렀다.

"넌 대체 차가 몇 대냐?"

"스무 대 넘어간 뒤로는 세어 보지 않아서……. 그보다 최 시보는 왜 여기 있어요?"

종혁과 오택수, 한승연이 휴가 날짜를 맞추던 날 자기도 기어코 쉬겠다기에 무슨 일이 있나 싶었는데, 여기서 볼 거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당장 그제까지 파출소 내 모든 당직을 도맡으면서까지 휴가에 대한 집착을 보인 그.

"에이. 왜 그러세요. 저도 한 팀이잖아요."

종혁은 네가 말했냐며 한승연을 봤고, 그녀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한 명이다.

"어쩌겠냐, 사순데. 키워야지."

"……진짜 욕보십니다."

"흐흐. 그래서 어디로 가실 건가요?"

자기를 욕하는데도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최재수의 모습에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님 근성이 좋은 건지.

아님 둘 다인 건지.

"차 출발하면 다들 눈 좀 붙여요. 철원까지 가야 하니까."

윤영철이 어렸을 적 살았던 동네, 철원.

오늘의 목적지는 그곳이었다.

셋이 차에 오르자 종혁은 차를 출발시켰다.

스르륵!

"습! 벌써 다 왔어요?"

"죄, 죄송합니다."

서울을 벗어나자마자 본격적으로 속도를 높였는데도 꾸벅꾸벅 졸더니 결국 잠들어 버린 최재수와 한승연.

"어떻게 160km를 넘기는 속도에서도 자냐. 어제 뭐했냐?"

오택수의 타박에 두 사람의 얼굴이 빨개진다.

‘그러는 오 경위님은요?’

보조석 매너를 잊고 깜빡 졸았던 오택수가 더 나빴다.

그런 종혁의 시선을 알아차린 오택수는 모른 척 기지개를 쭉 켰다.

"어으-! 여기가 걔가 살았던 동네야?"

"예. 윤영철은 이곳에서 4년을 살았습니다."

당시 대령이었던 아버지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함께 살았다.

"우리 동네보다 더 낙후된……."

"쉿! 쉿!"

이런 시골에 와 본 건 처음인지 눈을 빛내며 주위를 둘러보던 최재수와 한승연이 의아해하며 종혁을 본다.

종혁은 그들의 시선을 외면하며 근처의 낡은 슈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과자나 음료수 등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그런 통 큰 행동에 슈퍼와 연결된 방에 앉아 있던 노인이 화들짝 놀랐다.

"아이고. 처음 보는 양반들 같은데 어디서 왔어요? 면회 왔어요?"

"예. 서울에서 왔어요."

"그 먼 곳에서? 좋은 사람들이네."

"하하. 그런데 면회 때문은 아니에요, 할아버지."

종혁은 의아해하는 그에게 혹할 수밖에 없는 단어를 던졌다.

"어떤 나쁜 놈이 저희에게 사기 치고 도망쳤거든요. 그놈 쫓는 중이에요."

노인의 눈이 퉁방울만큼 커진다.

"영철이? 윤영철? 아버지가 대령이었고?"

‘어, 어떻게?!’ 최재수와 한승연은 기겁했지만, 발을 치는 오택수의 행동에 얼른 표정을 수습했다.

"얼마 전에도 그놈 찾는 사람들이 있던데 젊은이들도 그런 거야?"

‘윤영철을 찾는 사람이 또 있다고? 왜?’ 최재수와 한승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들은 심각해졌다.

"예. 잘 아세요?"

"알지. 왜 몰라. 전에 온 사람들에게도 말했지만, 내 여태껏 살면서 그런 놈은 처음 봤어!"

그러면서 꺼낸 말이 경악스럽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짝꿍의 팔을 찰흙 칼로 그어 버렸다. 미술 시간에 짝꿍 팔이 자기 책상을 넘어왔다는 사소한 이유로.

당연히 이 좁은 동네가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외에도 전학 가기 전까지 상해 사건만 총 17건을 일으켰고, 이유는 모두 사소했다.

"이 동네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 그때 그 어린놈 하나 때문에 동네가 쑥대밭이 됐으니까."

"그 정도였어요?"

얼마나 충격적이었기에 20년 전의 일이 아직도 기억이 날까.

종혁은 치미는 구역질을 억지로 눌러 내렸다.

"미치다 못해 아주 저주받은 놈이었지. 그놈이 동네에 온 이후로 동네 고양이들이 죽어 나갔거든. 쥐약 먹고."

"흡?!"

그러다 윤영철이 전학을 가자 그런 일이 뚝 끊겼다고 했다.

최재수와 한승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국민학교에서도 뭔 일이 있었다고 하던데…… 잠깐만."

노인은 얼른 누군가로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어, 그래? 알았어."

노인은 종혁을 봤다.

"당시 닭 같은 거 키우던 학교 사육장도 없어졌다는구만. 동물들이 싹 다 죽어서. 봐, 이놈은 정말 저주받은 놈이야. 아무튼 그놈이 다시 이 동네 왔다는 말은 없는데…… 혹시 모르니까 청년회 사무소 찾아가 봐. 거기 청년회장이 알려 줄 테니까."

종혁은 눈을 빛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방금 하신 말을 다시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나중에 그놈 잡아서 감옥에 처넣으려면 꼭 필요해서요."

종혁은 그러며 슬그머니 옆 냉장고에서 막걸리 몇 병을 꺼내 내려놨다.

"이건 친구분들과 나눠 드시고요."

"어흠. 그게……."

종혁은 냉큼 녹음기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놈 꼭 잡아!"

그렇게 그들이 떠나자 노인은 종혁이 내려놨던 막걸리를 슬그머니 냉장고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후 청년회장도 만나 이야기를 나눈 그들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윤영철이 다녔던 국민학교였다.

경찰공무원증을 내밀자 생활기록부를 살피는 건 쉬웠다.

그런데.

성적 우수우수수.

성격이 밝고 쾌활하며 반의 중심이 되는 아이다.

약간 조급하지만, 솔선수범하여 친구들을 이끄는 경향이 있다.

오택수와 최재수, 한승연은 말을 잃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당연히 이상했다.

방금 전 그들이 들은 것과 완전히 다른 내용.

그들의 머릿속에 대령이었던 윤영철 아버지가 떠올랐다.

군인들로 인해 먹고사는 강원도 철원.

오택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놈 중학교 어디 나왔냐?"

"논산이요. 타세요. 오늘 다 돌려면 시간 없으니까."

그들은 논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듣게 됐다.

*   *   *

"영철이? 아, 갸? 갸가 숫기는 별로 없어도 사람은 참 착했지. 지금 뭐하고 사나 몰라?"

"사기를 쳤다고? 그럴 리가. 잘못 안 거 아녀?"

그렇게 탐문을 마친 그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철원과는 전혀 상반된 증언.

사고를 치기는커녕 굉장히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5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논산에서 산 윤영철.

온통 칭찬뿐이었다.

심지어 그 3년 동안 계속 반장을 했다.

"야, 이거 뭐냐? 뭐가 이렇게 앞뒤가 안 맞아?"

사소한 이유로 17번이나 친구를 해한 놈이 갑자기 바뀌었다.

달라진 점은 이사를 했다는 것 뿐이다.

말이 안 된다. 사람의 본성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다.

끓는점이 낮은 인간은 작은 자극에도 터지는 법이다.

더욱이 겨우 국민학교 5학년이다. 이성보다는 본성이 앞설 시기다.

실제로 이들은 윤영철이 전학을 왔을 때부터 동네 고양이들이 쥐약을 먹고 죽어 나갔다고 말했다.

철원에서야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논산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우연이라고 볼 수 없었다.

"야, 내놔 봐."

"음?"

최재수와 한승연이 종혁과 오택수를 본다.

그러나 오택수는 종혁을 볼 뿐이었다.

"조사한 거 내놔 보라고."

종혁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번졌다.

"들켰어요?"

"그럼 안 들켰겠냐? 이 타이밍에 윤영철을 찾는 놈이 또 있을 리가 없잖아."

최재수와 한승연은 깜짝 놀라며 종혁을 봤고, 종혁은 운전석 차문에 꽂아 둔 두꺼운 A4 뭉치를 꺼냈다.

<윤영철 보고서>

"헉!"

그 제목을 본 최재수와 한승연은 경악했다.

의문이 그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머리 안 굴러가냐? 탐문의 기본을 가르쳐 준 거잖아."

정답이다.

종혁은 의아해하며 쳐다보는 둘을 향해 푸근히 웃었다.

"오직 내가 보고 들은 것만 믿어라. 그래야 경찰입니다."

경찰이라면 그래야 한다. 그래야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다.

종혁은 이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미 모든 조사를 마쳤는데도 이 먼 철원까지 왔던 것이다.

"아……."

종혁은 멍해지는 그들의 모습에 오택수를 째려봤다.

‘이 타이밍이 아니었는데.’

오늘 저녁까지 끌고 다닌 후에 그들이 지쳤을 때 보고서를 내밀며 말하려 했던 종혁으로선 오택수가 조금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거봐! 말이 안 되잖아!"

버럭 소리를 지른 오택수가 보고서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이후 전학을 간 학교에서도 모범생으로 반장을 지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교부회장 선거에도 나간 그.

그러나 부회장 자리를 경쟁하던 친구와 크게 다투다 중상을 입힘. 그리고 전학.

"결국 이렇게 친구를 박살 낼 놈이 그동안 참았다고? 어떻게?"

폭력은 중독되기 쉬운 행위다.

한 번 맛을 들이면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 그것만큼 손쉽게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는 없으니까.

종혁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 욕구를 더 큰 폭력으로 찍어 눌렀다면요?"

"……군인 아버지!"

최재수와 한승연도 탄성을 터트렸다.

종혁의 표정은 더욱 차가워졌다.

"아마 윤영철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폭력성을 이미 진즉에 깨닫고 있었을 겁니다."

"그랬겠지. 아버지니까. 그리고……."

"예. 동네에서 들고양이들이 죽어 나가는 것도 알았을 겁니다."

남들과는 다른 아들.

윤영철의 아버지는 그걸 폭력으로 찍어 누른 거다. 윤영철이 더 이상 남을 해치지 못하도록 강하게.

그때부터 윤영철은 새장에 갇힌 새처럼 살게 됐다.

그러다 윤영철이 부회장 자리를 놓고 겨루던 친구에게 중상을 입힌 이후 현재 사는 동네에 이사를 오면서 감시는 더욱 심해졌다.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군대도 면제를 받았다.

실탄과 수류탄 등 살상 무기를 다루는 군대.

군부대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누구보다 잘 아는 윤영철의 아버지이기에 면제를 시킨 게 분명했다.

심지어 인터넷조차 올해 초에 설치됐다.

이런 감시가 풀린 건 윤영철의 나이가 28살인 작년이다.

거의 10년. 그동안 별다른 사고를 치지 않는 아들이었기에 윤영철의 아버지는 이젠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분명했다.

그게 오판이었다는 것도 모르고.

윤영철은 감시가 사라지자 다시 동물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감시가 사라진 게 맞을까 두려웠을 거다. 그래서 3개월에 한 번으로 참았던 걸 테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한 끝에 감시가 사라졌다는 확신이 생기자, 결국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어든 것이다.

"돌겠네."

섬뜩하다. 그로선 난생처음 보는 타입의 인간이지만, 놈이 뭘 원하는지 알 것 같다.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동물의 크기가 커지고 있다.

이젠 작은 생명체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거다.

오택수는 그에 하지 말아야 할 상상을 하고 말았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놈이 더 이상 동물로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거냐?"

"겨, 경위님!"

최재수와 한승연이 파랗게 질린다.

"아니지? 내가 생각하는 그게 아니지?"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를 갈았다.

"놈은 분명 사람을 노리게 될 겁니다. 그것도 빠른 시일 내에."

"최 경위님!"

"왜요! 이 새끼도 사람이라면……."

"사이코패스. 이런 놈들을 두고 사이코패스라고 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죄책감이 없으며, 본인의 안위를 위해선 스스럼없이 거짓말을 하는. 그리고 본인의 욕구를 참지 못하는.

즉, 주위에 비치는 참한 모습은 모두 연기인 거다.

그게 바로 사이코패스의 특징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게 문제가 아니다.

"아무튼 놈은 지금까지 억압된 채 살아왔을 겁니다. 밖과 제대로 된 소통도 못한 채 감시를 받으며 살았죠."

욕구를 풀지도 못한 채.

"그러던 와중에 족쇄가 풀렸죠. 억눌러 왔던 만큼 어렸을 때처럼 동물만으로 만족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이미 타깃을 고르는 중일지도 모르죠."

"뭐? 하지만 조사해 봤을 때 최근 행적에 별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잖아."

그랬다.

이미 두 사람은 192번지 주변을 탐문하여 그의 행적을 어느 정도 파악해 둔 상태였다.

그러나 어떠한 이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있잖아요."

"……인터넷? 채팅?"

오택수와 두 사람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   *   *

"끼이잉."

귓가를 아련하게 울리는 죽음의 소리.

죽이다 못해 방금 전 시신을 묻고 왔는데도 환청처럼 들린다.

죽음을 피해 도망치려 했지만 도망치지 못한 생명체의 겁먹은 눈빛. 숨통이 끊기는 순간 토해 낸 마지막 비명.

"흐으……."

화장실 거울 속 윤영철의 얼굴에 한가득 미소가 피어난다.

살아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금 더 키운 후에 죽여야 했는데."

그래야 반항을 하지 않는다.

골통이 부서지고 심장이 찢겨도 안겨 온다.

그때의 그 짜릿한 쾌감.

만지려면 도망가는 닭이나 고양이, 토끼 따위에게선 느낄 수 없었던 쾌감.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아."

반항하고 도망치는 것도 제법 맛이 있다.

쏴아아아!

"룰루."

윤영철은 콧노래를 부르며 손에 잔뜩 묻은 피와 흙을 씻어 냈다.

샤워까지 마친 그는 개운한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우우웅.

이젠 지워 낼 소리조차 없는데도 컴퓨터 본체는 맹렬하게 돌아간다.

아버지가 감시를 거두겠다 했지만, 혹시 모를 감시자를 찾기 위해 시작한 인터넷.

그런데 이곳에서 예상치도 못한 별세계를 발견했다.

인터넷 채팅.

그곳에선 조금만 잘해 주면 마치 전에 키우던 강아지처럼 아양을 떨고 나 좀 봐 달라고 난리다.

-오빠 일어났어요?

지금 막 메시지를 날리는 이지혜가 그렇다.

꿀꺽.

"큰일 났네."

다시 갈증이 솟는다.

피를 본 지 얼마나 지났다고.

"정말 큰일이야. 이젠 참지 못하겠어."

-지혜야, 우리 집에

"아냐. 아니야. 이렇게 바로 물으면 안 돼."

천천히. 옆에 놓인 책, 연애하는 법에서 말하는 것처럼 타이밍을 봐서.

하지만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그래. 조금만 참자. 조금만……."

그는 애써 그렇게 자신을 달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