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50화>
염상철 사건이 마무리되자 파출소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와 같아졌다.
아니, 애초부터 변하지는 않았다. 다만 퇴근 후, 그리고 쉬는 날에 바빴을 뿐이다.
"예. 거기는요. 밖으로 나가셔서 저기로 쭈욱-!"
"이거 저희 주사님이 가져다주라고 해서 왔는데요."
"아, 동사무소 공익? 주민등록 자료지? 이리로 줘."
어느덧 6월.
날이 슬슬 더워지고 있음에도 선풍기조차 꺼내지 못해 구슬땀을 흘리며 업무에 매진하는 경찰들.
이제 좀 있으면 파출소도 여름이다.
"순찰 다녀오겠습니다."
"어, 수고."
쿠당탕!
순찰 나갈 준비를 하던 경찰들과 다른 경찰들이 파출소 입구를 본다.
등 뒤로 수갑을 찬 채 땅바닥을 구르는 웬 남성.
그 뒤로…….
"악! 놔! 안 놔?!"
종혁이 웬 어린 여성과 삼십대 남성의 머리채를 잡은 채 들어온다.
"걘 뭐냐?"
"원조교제 및 몰카범? 얘들은 원조교제 집단이요."
딱 봐도 어린애랑 모텔에 들어가기에 현장을 덮쳐 잡아 왔다.
그런데 핸드폰에 몰카 사진이 가득이었다.
"……그래. 우리 동네 치안은 네가 다 지켜라."
순찰을 나갔다 하면 꼭 범죄자 한 명씩을 잡아 오는 종혁.
그의 뒤로 나이 많은 경위, 박 경위가 미소 가득한 얼굴로 십대 후반 청년을 밀며 들어온다.
종혁과 같은 순찰조인 박 경위.
종혁과 함께 있으면 실적이 알아서 들어오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최 경위는 수고했으니까 올라가서 쉬어. 나머진 내가 할게."
"아니, 제가……."
"괜찮아.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
"……예, 그럼."
목을 긁은 종혁은 2층 숙직실로 향했다.
움찔!
"끄으. 으으."
남녀가 따로 분리되어 좀 좁아진 숙직실.
최재수가 그 중앙에서 원산폭격을 하고 있고, 오택수는 심란한 얼굴로 담배를 펴고 있다.
"또 뭔 사고를 친 거예요?"
"내 컴퓨터에 커피 엎었어. 본체에다가. ……펑 터지데? 아니, 어떻게 자빠지는데 책상 아래 놔둔 본체에다가 엎을 수 있지?"
"아."
그렇다면 이럴 만했다.
컴퓨터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 들어 있던 자료들이 문제다.
‘역시 착하다니까.’
종혁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반 죽여 놨을 것이다.
"내 사건 자료들 어쩔 거야. 내 승진 시험 자료들 어쩔거야-!"
"죄, 죄송합니다! 제, 제가 어떻게든……!"
"어떻게? 어떻게!"
고개를 저은 종혁은 남자 숙직실에 설치된 컴퓨터들 중 하나의 앞에 앉았다.
파출소 인터넷과 별도로 설치한 인터넷.
종혁은 편안하고 쾌적한 숙직을 위해 컴퓨터들과 인터넷 외에도 침대나 냉장고 등 여러 개를 들여놓았다.
"어후, 씨발. 왜? 게임하게?"
벌이 끝났는지 최재수도 쭈뼛거리며 다가온다.
‘가만 보면 이놈도 참 근성 있어.’
이렇게 혼이 나는데도 오택수 곁에 붙어 있는 걸 보면 최재수도 정상은 아니다.
"아니요. 채팅이요."
"여자 사귀게? 넌 그런 거 없어도 만날 수 있지 않아?"
"그냥 취미 맞는 사람들끼리도 채팅하는 거예요. 동호회 같은 거죠."
"아, 그래? 혹시 낚시 동호회도 있어?"
"많죠. 알려 드려요?"
"어."
종혁은 옆자리를 가리켰고, 그동안 같이 낚시 갈 사람이 없었던 오택수는 확 밝아진 얼굴로 냉큼 앉았다.
"여기 채팅 목록 보시면……."
"오우! 올드 팝!"
"이렇게 라디오처럼 방송을 하는 애들도 있어요."
"미쳤네."
"이런 채팅 사이트뿐만 아니라 에이버 블로그나 넥스트 카페에 가면 이런 동호회들 많아요. 번개팅도 많이 하고요."
"진짜 미쳤네. 난 왜 그동안 이런 걸 몰랐지?"
오택수는 모니터 안으로 들어가려는 듯 고개를 쭉 내밀며 마우스를 클릭했고, 눈치를 보던 최재수는 슬그머니 그 옆자리에 앉아 별들의 전쟁 게임을 켰다.
빠악!
"넌 가서 일해, 새끼야. 확 씨, 그냥."
"아니, 자기들만 쉬려고 해……."
"안 나갈 거면 저기서 대가리 박고 있든가."
"충성!"
뛰어나가는 최재수를 보며 동시에 고개를 저은 둘은 다시 모니터를 봤다.
"와, 진짜 미쳤네. 헉! 갯바위?"
종혁은 완전히 몰입한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채팅사이트의 사람 찾기 버튼을 눌렀다.
탁 타탁 탁! 달칵!
검색결과 없음.
‘쯧. 아직인가?’
놈의 아이디가 검색되지 않는다.
혀를 찬 종혁은 채팅 사이트를 끄고 핸드폰을 열었다.
-알러뷰 돌에서 신제품이 나왔습니다. 이에 설명회를 열려고 하니, 투자자 여러분들께서는…….
‘달링 알러뷰’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인형을 제작한 봉제회사 알러뷰 돌.
권&박 홀딩스에서 보낸 장문의 문자 메시지에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나왔나.’
옅게 웃은 종혁은 에이버를 켰다. 회귀한 직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아진 포털 사이트.
종혁은 인터넷 서핑을 시작했다.
* * *
주말 저녁이 되자 종혁은 정장을 차려입고, 권&박 홀딩스가 제품 설명회를 여는 5성급 호텔로 향했다.
"이야, 역시 있는 놈들 사는 세상은 다르구나."
종혁은 보조석에 앉은 오택수를 봤다.
며칠 전 왔던 문자를 보고 ‘나도 갈 수 있겠냐’고 물어 온 그의 얼굴이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있는 놈들은 무슨. VVIP도 아니고."
"VVIP?"
"VVIP는 이런 설명회에 참석 안 해요."
정체가 들통날 수 있기에 참석 안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게 사람의 이치.
이들은 권&박 홀딩스 측에서 보내는 카달로그를 통해 투자를 할지 말지를 결정 한다.
즉, 오늘 참석하는 건 VIP급 이하 회원들.
권&박 홀딩스에 30억원 이하의 자산을 맡긴 회원들이 대상이다.
"넌 씨바 30억이 뉘집 애 이름이냐?"
"이 동네에선 뉘집 애 이름 맞아요."
"……."
슬쩍 기가 죽은 오택수는 입을 다물었고, 킥킥 웃은 종혁은 호텔 안으로 진입했다.
1인 동반 초대장을 보여 주고 들어선 연회장.
웅성웅성.
VIP 이하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에 오택수의 눈이 돌아간다.
‘어? 저 양반은? 또 저기 저 양반은?’
교수나 방송국 PD 등 그도 얼굴을 아는 이들이 중간중간 섞여 있었다.
"여기야! 여기!"
한 손에 와인이나 샴페인 따위를 든 채 돌아다니는 백여 명의 사람들 가운데 있던 강철선이 종혁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종혁은 냉큼 그에게로 향했다.
"와, 이리 얼굴 보기가 힘드노. 니 서운하게 이럴끼가?"
종혁은 머리를 긁었다.
"죄송해요. 저도 일이 바빠서."
"글나? 파출소가 그리 힘드나?"
"말해 뭐해요. 어후."
강철선은 욕본다며 어깨를 두드렸다.
"근데 이쪽 분은?"
"저희 파출소 오택수 경위님이요. 오 경위 님, 인사하세요. 이쪽은 중앙지검 형사 3부장 강철선 검사님이세요."
눈을 부릅뜬 오택수가 얼른 손을 내밀었다.
강철선의 이름은 그도 많이 들었다.
중앙지검 차기 특수부장에 가장 유력한 검사.
"오택수입니다."
"반갑습니데이. 강철선이라예. 오다가다 만나믄 인사합시데이. 그라고 이쪽은 우리 대장님. 종혁이 닌 처음 보는 거 아니제?"
"그럼요."
이 냉랭한 인상을 잊을 리가 없다.
종혁은 강철선 옆에 선 중년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검사장이 되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중수부장님. 아니, 중앙지검 검사장님."
안경 속 중앙지검 검사장의 매서운 눈이 빛난다.
"오랜만입니다, 최 선수. 아니, 최 경위라고 불러야겠군요. 그때 보낸 선물은 지금도 잘 아끼고 있습니다."
그가 검사장이 되자 종혁은 축하 선물로 난을 보냈었다.
‘이 양반도 회원이었나.’
회원 유치 및 관리에 대핸 권아영에게 모두 맡겨 놓은 터라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번 설명회가 끝나면 아무래도 회원 명단을 훑어봐야 할 듯했다.
"그래 주신다니 선물한 보람이 있는 것 같네요."
"최 경위가 우리 검찰에 왔다면 더 좋은 선물이 됐을 텐데……."
"아하하."
검사장은 피식 웃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보다 최 경위를 이런 자리에서 볼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24살인 종혁이 무슨 돈이 있어 투자를 했느냐는 말을 돌려서 표현하고 있었다.
그에 종혁은 서둘러 진실을 섞어 포장했다.
"친구 이모께서 이곳의 권아영 이사님이신데, 그 소개를 받아 어머니께서 투자를 조금 하셨었습니다. 저도 따라서 조금 돈 좀 넣어 봤고요. 덕분에 개천을 탈출할 수 있었죠."
"운도 능력이죠. 후후."
검사장은 낮게 웃으며 종혁을 빤히 살폈다.
‘권&박 홀딩스의 초기 투자자.’
종혁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었던 검사장은 이미 그와 관련된 내용을 이미 파악해 둔 지 오래였다.
외한위기로 대한민국이 휘청일 때 등장한 권&박 홀딩스.
종혁의 모친 고정숙은 권&박 홀딩스가 창립한 동시에 투자를 한 창립 멤버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그 돈의 대부분이 아들의 합의금이라는 점이다.
‘혼자 아들을 키우던 여자가 느닷없이 전 재산을 함부로 투자한다? 그것도 아들의 합의금으로?’
말이 안 된다.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알아본 고정숙은 결코 아들의 돈을 함부로 손댈 인물이 아니었다.
‘그 투자는 이 친구가 결정한 걸 거야.’
마치 대오각성을 한 듯 17살부터 남다른 행보를 보여 준 종혁.
또 그 견식은 얼마나 좋던가.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아니, 흥미는 이전부터 있었다. 그동안은 종혁이 사회에 진출하지 않아서 내색을 못했을 뿐이다.
"언제 밥 한번 먹죠. 감사 인사도 해야 되고."
"감사 인사요? ……제게요?"
"할 이야기가 제법 많습니다."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검사장은 그런 종혁을 보며 살포시 웃었다.
‘국정원이 조사하고 있다는 그 미지의 단체.’
작년에 크게 망신을 당한 국정원이 어떤 범죄 단체를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조직 이름이나 구성원조차 불명인 미지의 범죄 조직.
마치 사건이 따라다니는 듯 여러 사건과 얽히는 종혁이라면 그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정말 우연이라도 그렇게만 된다면…….’
검찰총장으로 향하는 길에 큰 보탬이 되어 줄 거다.
"아, 이번 사건은 잘 마무리할 테니 너무 걱정 마시고."
오택수도 눈을 크게 떴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검사장은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번 왕따 사건에 관심이 많았다.
‘그 마포서장과 이어진 인간들이…….’
"어머. 여기들 계셨네요? 종혁이도 왔니?"
때마침 권아영이 다가온다.
종혁은 이모 하며 손을 흔들었고, 검사장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거 권 이사가 참석할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 권&박 홀딩스에서 첫 번째로 투자한 회사잖아요. 당연히 참석해야죠. 검사장님도 잘 계셨죠?"
"나야 권 이사 덕분에 돈 걱정 없이 잘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부탁드려야 할 말이죠. 앞으로도 모쪼록 저희 권&박 홀딩스를 이용해 주세요."
강철선과도 안부 인사를 나눈 권아영이 종혁을 노려봤다.
"실망이야, 종혁아."
"……갑자기요?"
"그동안 배고프다면 밥 사 줘, 겨울 되면 추울까 옷 사 줘, 금이야 옥이야 키워 놨더니 경찰 됐다고 한번 찾아오질 않아?"
"아니……."
"따라와!"
"악! 잠시!"
종혁의 귀를 잡아 비튼 권아영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안쪽으로 향했고, 종혁은 살려 달라 사람들을 쳐다봤지만 그들은 슬그머니 모두 외면했다.
그렇게 종혁은 안쪽 룸으로 끌려갔다.
탁!
"죄송해요, 보스. 뭔가 난처한 상황 같아서……."
"아뇨. 잘했습니다."
구하려 했다는데 안 좋은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보다 제가 어디까지 드러난 겁니까? 검사장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던데요."
"초기 투자자 등 드러낸 부분만요."
권아영의 눈이 냉정하게 빛났다.
"그 이상을 파고들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종혁은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 정도라면 신경을 꺼도 되겠군요."
권아영은 걱정 말라는 듯 웃었다가 이내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이건 왜 만들라고 한 거예요?"
오늘 설명회를 개최하게 만든 제품은 작년 말 정병규 상해미수 사건과 밀실살인 사건 해결 이후 종혁이 부탁해 만든 거다.
"전에도 말했듯 꼭 필요한 거니까요. 여성과 아이들에게."
"보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만……."
종혁의 사이즈에 맞지 않는 사소한 제품이다.
물론, 말하는 인형이 종혁의 아이디어이긴 했지만…….
"일선에서 일하다 보니 이것의 필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더라고요."
"아."
그제야 종혁의 속내를 알게 된 그녀는 활짝 웃었다.
‘역시 보스는 좋은 사람이야.’
"알았어요. 그럼 플랜대로 진행하면 되는 거죠?"
"예. PPL뿐만 아니라 광고, 메이저 채팅 및 게임들에서도 증정 이벤트를 진행해 주세요."
"네."
지이잉! 지이잉!
"풋. 정인철 사장님이네요. VIP도 대상으로 한 제품 설명회라 긴장이 되시나 봐요. 한번 만나 보시겠어요?"
알러뷰 돌의 사장이자, 회귀 전 말하는 인형의 원제작자 정인철.
종혁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럼……."
룸을 빠져나온 종혁은 재떨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선객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살짝 떨어진 곳에서 오택수가 멍한 얼굴로 담배를 물고 있었다.
"왜 여기 계세요?"
"심란해서. 대체 강철선 검사와 검사장님은 어떻게 아는 거냐?"
학창 시절 운동선수였고, 경찰대에 입학한 종혁.
그리고 중앙지검의 검사장과 부장검사.
아무리 생각해도 접점이 없다.
"한상원 사건 기억하세요?"
"……아. 아아아, 그랬던 거야?"
"네. 그때 친분을……."
"불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아, 예. ……어?"
오택수는 순간 깜짝 놀랐다.
"허허. 여기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경위님."
푸근히 인사하는 장년인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이자, 얼마 전 음주운전도주 사건 때 만난 백순재였다.
"저도 정말 놀랍네요, 판사님."
‘이 양반도 권&박 홀딩스 회원이었어?’ 정말 회원 명단을 훑어봐야 할 것 같았다.
-오늘 제품 설명회를 찾아 주신 내빈 여러분들께 알립니다.
"……인사는 일단 나중에 하도록 할까요?"
"그럴까요?"
그들은 연회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음악이 울리며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모델들이 연회장 중앙에 설치된 런웨이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종혁은 그들의 목과 손을 보며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