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45화 (145/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45화>

44.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

백순재와 백수현이 돌아간 파출소.

종혁과 경찰들의 넋이 나가 있다.

"야, 넌 고법 부장판사 본 적 있냐?"

장철호 소장이 파출소 경력만 20년인 경찰을 보며 묻는다.

"여기서요? 에이, 형님은요?"

"나도 못 봤지. 저런 살벌한 분을 어떻게 봐."

"남대문서에 있었는데?"

"저런 분은 강남서나 가야 봐."

이렇게 그냥 고등법원 부장판사여도 정신이 없는데, 그 부장판사가 자기 아들을 살살 꼬드겨 모든 진실을 토해 내게 만들었다.

여태껏 어떻게든 죄를 축소시키거나 은폐시키려던 사람은 많았어도, 죄를 모두 실토하게 만든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러면서 좋은 싸움 하자며 선전 포고도 했다.

"단체로 꿈을 꿨나?"

쉽지 않았을 결정이라 더 그렇게 느껴진다.

고등법원 부장판사쯤 되려면 저래야 되나 싶을 정도다.

"CCTV 확인해 볼까요? 저거 음성도 녹음되잖아요."

"어, 그래 봐."

종혁은 거리에 CCTV를 깔면서 경찰 내 CCTV도 모두 교체했다. 경찰이건 피해자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녹음까지 되는 걸로 말이다.

딸랑!

"신문이요!"

"어. 가져와, 가져와."

어느덧 벌써 6시.

길었던 하루도 모두 지나간 것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딸랑!

"충성! 시보 최재수! 병원에서 막 복귀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재수야!"

"왜 이렇게 빨리 퇴원했어? 몸은 괜찮아?"

재수를 걱정하는 경찰들과 그런 그들의 관심에 헤벌쭉 웃으며 손을 젓는 최재수.

오택수도 쭈뼛거리며 다가간다.

종혁은 아까 피려고 했던 담배를 다시 물었다.

"푸. 정말 끝났네."

참 길었던 하루였다.

*   *   *

부우웅.

새벽 도로를 달리는 차 안.

숨 막히는 침묵이 내려 앉아 있다.

신호에 멈춰 서자 백순재가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백수현."

차창을 보던 백수현의 몸이 움츠러든다.

"왜, 왜요. 다, 다 말했잖아요. 아버지 의도대로……."

울컥!

말을 하다 보니 속이 뒤집힌다.

언제나 엄했던 아버지.

하나뿐인 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조차 해 주지 않은 채 언제나 법관으로서의 엄한 잣대만 들이밀었던 아버지.

백점을 받아도.

전교에서 1등을 해도.

칭찬보단 앞으로 더 노력하라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이젠 아들을 교도소에 보내려 든다.

"아버지 의도대로 다 됐잖아요! 이제 속 시원하세요? 부족하고 못난 주제에 감히 법관을 욕심내던 아들을 끝내 이렇게 만드시니까 시원하냐고요!"

법대에 합격했지만 기뻐하기보다 어이없어하던 아버지.

너 같은 놈이 무슨 판사고 검사냐 말하던 아버지.

잘못했다. 분명 잘못한 건 맞다.

하지만…….

"정말 내 아버지 맞아요? 세상 어떤 아버지가 자식한테 이러는데!"

"백수현."

"좀! 조옴! 그렇게 내가 싫으면 옛날에 의절하지 왜……."

"무서웠지?"

생전 처음 듣는 한 마디 말에 백수현의 입이 굳는다.

"그걸 말이라고……!"

아버지가 밉다. 정말 밉다.

그런데 왜일까.

너무도 화가 나는데 눈물이 흐른다.

따뜻한 한 마디에, 미안함으로 가득한 눈빛에 상처로 가득한 가슴이 흔들린다.

왜.

왜…….

‘그렇게 보는데!’

"아빠가 그동안 미안했다."

"왜 이제 와 그딴 말을 하는데! 진짜-!"

백수현은 듣기 싫다는 듯 차문을 치며 발버둥 쳤다.

"씨익! 씩!"

"……."

"이제…… 나 어떻게 되는 거예요?"

"못해도 7년은 나오겠지."

음주운전도 모자라 경관을 매달고 달렸다.

공무집행방해뿐만 아니라 자칫 살인미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엄중한 사안이다. 사고가 날 위험성을 인식했으면서도 운전대를 잡았으니 심신 미약도 적용되기 힘들다.

덜컥 백수현의 얼굴이 하얗게 굳는다.

백순재는 그런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진 않을 거다. 어떻게든 노력하고 싸워서 양형에 선처를 구할 거야."

"왜, 왜요? 아버지가 곧 대법에 올라가니까 한 점의 티끌도 있으면 안 돼서요?"

"네가 내 아들이니까."

이 또한 처음 듣는 말이다.

"……."

"일단 징역은 피할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어떻게든 빨리 나올 수 있도록 이 아빠도 노력해 볼 거다. 그러니 너도 각오하고 있어."

"무, 무슨 각오요?"

"네가 저지른 죄에 대한 죗값을 받는다는 각오."

"……안 갈 수는 없어요?"

"안 갈 수 있지. 이 아빠가 고법 부장판사인데."

백수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런데 그러면 너 떳떳해질 수 있냐? 스스로에게 떳떳해질 수 있겠어?"

"……."

이를 악문 백수현은 고개를 돌렸다.

"씨발."

그 말은 너무 반칙이었다.

그런 백수현의 팔을 토닥인 백순재는 다시 차를 출발시켰고, 이윽고 병원에 도착했다.

"들어가. 쉬어."

"……."

우물쭈물하던 백수현은 이내 입을 다물며 돌아섰다.

답을 하기엔 감정의 골이 너무 깊었다.

로비에 들어온 그는 이를 악물었다. 술이 깨니 어제의 일이 다시 떠오른다.

세우라고 소리치던 경찰의 겁먹은 눈빛.

차창을 부수던 경찰의 사나운 눈빛.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거다.

생에 처음으로 저지른 범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정말 교도소라는 곳에 가겠구나.’

무섭고 두렵지만, 왜인지 마냥 절망스럽지만은 않다.

"진짜……."

"안녕하세요."

백수현은 갑자기 앞을 막는 40대 중년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누, 누구세요?"

"어제 도로에서 추격전을 벌이신 분 맞죠?"

능글맞게 웃는 그가 수첩을 꺼내든다.

‘기, 기자?’

파랗게 질리던 백수현은 이내 기자가 꺼낸 말에 낯빛을 굳혔다.

"어제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에 꽤 험한 꼴을 당한 것 같은데 몸은 좀 어떠세요?"

"과잉…… 진압이요?"

백수현은 어리둥절해하며 기자를 봤다.

*   *   *

어제 오후, 백수현과 백순재가 다시 찾아왔다.

최재수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파출소엔 다시 폭풍이 휘몰아쳤었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

종혁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준 오택수를 봤다.

교대 전 마지막 순찰을 나온 그들.

부웅. 빵빵.

출근길 차들의 경적 소리가 아침이 왔음을 알린다.

"고단수인가?"

"이쪽에서 알아서 탄원서 쓰게 만들겠다는 수법이요?"

"그건 또 왜 아냐?"

‘많이 봤으니까요.’ 정말 많이 있다.

정말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윽박을 지르기보단 사과하고 탄원서를 쓰게 만든다.

양형에 선처를 구하게끔.

그런 환경을 조성한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종혁은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아니야.’

정말 순수하게 사과만 하러 왔다. 합의에 대한 말을 꺼내는 건 아직이라는 듯.

정말 아버지로서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수현도 굉장히 반성을 하고 있었다.

‘보통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대부분 그렇지.’

자신이 저지른 짓에 겁먹고 후회하고.

범죄를 저질렀으면서도 배를 내미는 놈들이 미친놈들인 거다.

문제는 그런 이들이 참 많다는 점이다. 종혁이 회귀 후 겪은 범죄자들처럼.

‘지랄 맞게도.’

속으로 혀를 찬 종혁은 커피를 마셨다.

‘그나저나 기자라…….’

어제 아침에야 경찰서로 인계된 사건임에도 그전에 기자가 접근했다고 한다.

엄청난 소동이었으니 오히려 모르는 게 이상했지만, 종혁은 왜인지 꺼림칙함을 느꼈다.

과잉 진압에 대해 물었다는 부분에서.

‘이제 슬슬 기자들 풍조도 바뀌는 건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 참 삐딱하시네요. 정말 회개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허이구, 지랄. 회개하면 다 끝나냐?"

맞는 말이다. 반성하고 후회한다고 해도 저지른 죄가 사라진 게 아니다.

"하지만 여지는 줄 수 있죠. 진심으로 반성하니까."

오택수는 눈을 빛냈다.

‘흠.’

"넌, 인마 네 이야긴데 왜 관심이 없어?"

"네?"

자판기 커피를 마시다 봉변을 당한 최재수가 어리둥절해하다 발끈했다.

"아니, 왜 또 시비신데요?"

"아오! 내가 진짜 너 때문에 늙는다, 늙어."

"난 뭐 괜찮은지 아나."

"뭐 이 새끼야?"

종혁은 오택수와 투덕거리는 최재수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보통 그런 상황을 겪으면 PTSD도 함께 겪는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경향은 없는 것 같다.

‘정말 다행이야.’

마지막 커피를 마신 종혁은 건너편 주택가를 보며 눈을 빛냈다.

그가 굳이 이 파출소에 온 이유.

그게 저곳에 있다.

"혹시 192번지 주택에 대해 아세요?"

"192번지? ……아, 그 별이 두 개라던 장군집? 지금은 아들 혼자 살걸?"

"백수 아들 말하는 거죠?"

"그럴걸? 그런데 그건 왜?"

‘그 새끼가…….’ 순간 튀어나오려던 말을 꾹 누른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버지가 육군 장성인데, 아들은 백수인 게 놀라워서요."

"그럴 수도 있지. 세상사람 어디 너 같은 놈만 있는 줄 아냐?"

"오? 지금 저 칭찬……."

"시끄러워, 이 새끼야. 야, 최 꼴통! 이것도 버리고 와!"

"아니, 내가 심부름꾼이야 뭐야?"

"저 새끼가……."

고개를 저은 종혁은 운전석에 올랐고, 종이컵을 버린 최재수도 경찰차로 다가왔다.

"빨리 와, 이 새끼야! 퇴근 안 할 거야?!"

"아, 간다고요! 가!"

그렇게 최재수도 차에 오르자 종혁은 미소를 지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이제 복귀만 하면 퇴근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치직!

무전이 시동을 걸자 셋의 얼굴이 슬그머니 구겨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청일고에서 자살 사건 발생. 남자 학생이 학교 옥상에 서 있다고 한다. 인근 순찰차 출동 바람.

‘자살? 청일고? 설마……!’

왜일까. 한 명의 얼굴이 떠오르는 게.

눈을 부릅뜬 종혁이 오택수를 본다.

눈이 마주친 오택수도 같은 사람을 떠올렸는지 반사적으로 무전기를 잡았고, 종혁은 재빨리 차를 출발시켰다.

"순마 25. 접수 종발. 다시 말한다. 순마 25 접수 종발. 우리가 출동하겠다!"

웨에에에엥!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아침 8시 30분의 출근길을 꿰뚫었다.

*   *   *

"씨발! 거기 서! 잡히면 뒤져!"

"야, 오늘 끝나고 피방 어때?"

아침 8시 20분.

아침부터 활기찬 청일고의 교정에 발자국 소리가 울린다.

터벅터벅.

계단을 오르는 한 남학생에게 시선이 모인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평범한 키.

평범한 외모와 움츠린 어깨.

"야. 쟤……."

"……신경 꺼. 우리도 당할라."

"킥킥. 저 븅신은 또 어디 가는 거야?"

좋지 않은 시선들이 닿았다가 떨어진다.

하지만 소년은 느끼지 못한 듯, 아니면 포기한 듯 계단만 오른다.

2층. 3층.

웅성거림은 점차 줄어가다 그의 걸음 소리만 남긴다.

어느덧 계단의 끝에 다다른 소년은 잿빛으로 물든 눈을 들어 앞을 가로막은 철문을 본다.

덜컹! 끼이이익!

소년, 염상철은 생각했다.

왜일까. 푸른 하늘보다 회색 시멘트 바닥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상관없으려나."

맞다.

이제 그딴 건 상관없다.

상철은 옥상 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난간 끝을 잡고 발을 올렸다.

"읏챠."

옥상 난간에 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푸른 하늘이 보인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

지이익!

앞으로 돌린 가방에서 빨간색 새 담배가 보였다.

난생처음으로 하는 일탈.

그리고 생애 마지막 일탈.

난간에 걸터앉아 더듬더듬 담배를 뜯은 그는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

"스읍! 켁! 쿨룩쿨룩! 케에엑!"

얼른 담배를 버린 염상철은 고통에 괴로워하다 겨우 몸을 진정시켰다.

그는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던져 버린 담배를 봤다.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었던 것 같다.

울상을 지은 그는 아래를 봤다.

‘아플까? 아프겠지? 아프긴 싫은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젠 이 방법 밖에 없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그리고…….

"야, 인마! 뭐해! 얼른 내려와!"

저 아래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치는 선생님.

그리고 웅성거리는 학생들.

발밑에서도 웅성거림이 느껴진다.

창문에서 고개를 내밀고 이쪽을 보며 놀라는 학생들.

"예, 예! 창문 닫아, 이놈들아! 상철아!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내려와! 내려와서 이야기 하자, 이 자식아!"

상철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게 제 말을 들어 주지 그랬어요. 나 정말 힘들었는데 이제 와서……."

이래서 선생을 못 믿는 거다.

이를 악문 상철은 누군가를 발견하곤 몸을 일으켰다.

이제 막 등교하는 듯 가방 멘 모습으로 모인 악마들.

"너희가 평생 아파하라고 이러는 거야. 나보다 더 아파하라고."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상철은 몸을 일으켰다.

*   *   *

마침 근처에 있었기에 119보다 먼저 도착했다.

"절대 누구도 학교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세요!"

-하, 하지만…….

"걔 떨어지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순찰차를 터트려 버릴 듯한 고함.

-힉! 예, 예! 창문 닫아, 이놈들아!

"그리고 옥상에 그 누구도 접근시키지 마세요!"

‘바보 같은 놈! 대체 왜!’ 전화를 끊은 종혁은 재빨리 후문으로 차를 몰았다.

"야, 왜 이쪽으로……."

"우리가 간다고 광고할 겁니까?!"

"아……!"

오택수는 다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난데! 청일고 오는 119 사이렌 켜지 말라고 해! 자극할 수 있으니까! 아, 씨발! 그냥 통보하라고!"

학교 근처에 접근하자마자 끈 사이렌.

빨리 도착하기 위해 사이렌을 켰었지만, 지금부터는 절대 피해자를 자극해선 안 된다.

후문을 통과해 학교 건물 앞에 차를 세운 종혁은 옥상 쪽을 바라보며 얼른 트렁크를 열었다.

역시나 로프가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무조건 구비해 놔야 하는 로프.

종혁은 로프를 집어 들다 멈춘 오택수를 봤다.

오택수는 갈등하다 혀를 찼다.

"내가 앞에서……."

"제가 주의 끌겠습니다."

종혁과 오택수가 최재수를 봤다.

아직 깁스를 풀지 않은 그.

이를 악문 최재수의 모습이 참 믿음직스럽지 못했지만 말다툼을 할 시간이 없다.

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2분입니다. 부탁할게요."

주의를 끄는 게 문제가 아니다. 혹여 투신을 했을 때 몸을 날려 받아 내야 된다.

119가 제 시간 안에 도착 못하면 최재수가 쿠션이 되어야 한다.

둘은 그런 비정한 선택을 하며 몸을 돌렸다.

"혹여 놓쳐도 자책하지 마. 네 탓 아냐."

"……오 경위님, 그리고…… 최 경위님."

둘은 잠시 멈췄다.

"꼭…… 살리세요."

고개를 끄덕인 둘은 계단을 박차고 올라갔다.

그러다 3층을 넘어서자 소리를 줄였다.

-야! 어이! 내려와라! 내려와서 이야기하자! 뭐 필요한데? 이 경찰 아저씨가 다 해결해 줄게! 전화번호 뭐야!

어설프기 그지없는 네고시에이션.

"……저 꼴통 새끼."

"참 고생하시네요."

피식 웃음을 터트렸던 둘은 이내 낯빛을 굳히며 조심히 발을 뗐다.

누군가 다가가는 걸 느끼게 해선 안 된다. 그에 불안감을 느껴 뛰어내릴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안절부절못하는 선생들도 손짓으로 내려 보낸 종혁은 옥상 문에 다다르자 고개를 내밀었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하지만…….

‘줄을 묶을 곳도 없네.’

수신호를 보낸 종혁은 숨마저 죽이며 계단 난간에 줄을 묶고, 반대쪽을 배에 감았다.

똑같이 한 오택수는 종혁을 봤고, 서로 눈을 마주친 둘은 조심스럽게 옥상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때부터 시간이 점점 느려져 갔다.

‘후우. 후. 제발 하지 마라. 제발…….’

10미터. 8미터.

한 발 한 발 굼벵이처럼 내딛는 걸음에 속이 갑갑해지고,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러다.

"안녕."

‘어?’ 염상철의 발이 앞으로 내밀어진다.

눈을 부릅뜬 종혁은 오택수를 치는 것과 동시에 수갑을 꺼내 들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타다다다다!

"염상철-!"

흠칫!

놀라며 이쪽을 향해 느릿하게 돌려지는 고개.

종혁은 이를 악물며 땅을 더 강하게 박찼다.

그리고 가까워지자마자 몸을 날리며 수갑을 잡은 손을 휘둘렀다.

차알카악!

염상철의 발목에 채워지는 수갑.

그와 동시에 뛰어오른 오택수가 염상철의 뒷목을 잡아끌었다.

"윽?!"

쿠우웅!

벌러덩 드러누운 종혁의 눈에 푸른 하늘이 비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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