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43화 (143/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43화>

    "어으……."

    "무울……."

    다음 날, 주간 근무를 시작해야 되는 대부분의 경찰들이 책상 위에 엎어져 흐느적거린다.

    "어휴. 어제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우리 빼고 환영회 하니까 좋았어요?"

    "몰라……. 5병 이후로 기억이 안 나."

    1차 한우집, 2차 노래방, 3차 호프집.

    그 이후로 기억이 없다.

    집에 들어간 게 용했다. 아니, 깨어나서 가족에게 듣기로 종혁이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고 한다.

    ‘그놈은 주량도 괴물인가?’

    그들이 기억하기로 종혁이 마신 소주만 10병이 넘었다.

    "자기들만 오지게 마시고. 에라이."

    "이 사람들 이제 동료 아니야."

    벌컥!

    "곧 날 잡을 테니 선배님들도 오시죠! 어젠 제대로 인사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최종혁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죽어 가던 모두와 달리 쌩쌩한 종혁이 멍하니 쳐다보는 경찰들을 향해 싱긋 웃어 주었다.

    "자, 사망하신 분들은 숙취해소제랑 시원한 배 음료 받아 주시고."

    "뭐야? 러시아 거야?"

    숙취해소제에 적혀 있는 러시아어.

    KGB 요원들이 술 상무 작전을 펼칠 때 복용했던 제품이라며 나탈리아가 적극 추천한 숙취해소제다.

    "패잔병 선배님들을 위해 특별히 공수한 거니 얼른 드시고 정신 차려 주십시오. 업무 시작해야죠."

    "저런 씨!"

    "어휴. 그래 젊음이 무기다, 무기야."

    어젯밤 환영회로 부쩍 친해진 그들에게 종혁은 알약과 배 음료를 나눠 줬다.

    최재수만 빼고.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는 최재수를 외면한 종혁은 탈의실로 향했다.

    덜컥!

    "크?"

    고약한 술 냄새가 코를 찌른다.

    탈의실 중앙 평상에 오택수 경위가 팬티 차림으로 누워 있다. 숙취를 이기지 못하고 뻗은 것 같다.

    "선배님, 숙직실 가서 주무세요. 선배님."

    흔들었지만 깨어나질 않는다. 혼절한 것 같았다.

    한숨을 내쉰 종혁은 배정받은 철제 캐비닛을 열었다.

    ‘흠. 여자도 여기서 환복하나 보네.’

    한승연이라 적힌 이름표가 옆옆 캐비닛에 걸려 있다. 어젠 첫 출근이라 흥이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탈의실 분리를 건의해야 되려나."

    미래엔 당연한 일.

    굳이 여경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공간이 분리되면 남성도 편하기 때문이다.

    남자라서 내색을 안 했을 뿐, 사사로운 대화나 옷차림 등 남성도 여성만큼 신경을 쓴다.

    아마 이 외에도 불편한 게 많을 것이다.

    앞으로 고쳐야 할 게 많을 듯했다.

    ‘이렇게 고칠수록…….’

    "수석아."

    "깨셨으면 얼른 옷 입으십시오. 곧 근무 시작입니다."

    "재수 미워하지 마라. 걔가 멍청하고 눈치 없어도 하나를 가르치면 그건 기억하는 놈이야."

    종혁은 오택수를 봤고, 벌떡 몸을 일으킨 오택수는 옷을 갈아입고 탈의실을 나갔다.

    쿵!

    종혁은 닫힌 문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사수라고 챙기시네."

    겉으론 쌀쌀맞고 예민해도 이렇게 잔정이 많은 오택수.

    하지만 일에 관해선 그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경찰이다. 방금 그 말 덕분에 최재수에 대한 평가가 살짝 상향됐다.

    "……뭐 지켜보면 알겠지."

    솔직히 크게 미워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건데!’라고 꼬장을 부리더니 ‘진짜 신고식은 이거다’며 술 싸움을 걸기에 글라스에 소주를 가득 담아 상대해 줬다. 그랬는데 고작 다섯 잔 만에 기절했다.

    최재수는 그냥 나이 많은 애였다.

    아이를 진심으로 미워할 어른은 없었다.

    환복을 마친 종혁은 탈의실을 빠져나갔다.

    쿵!

    오늘은 부디 별일 없기를 바라는 근무가 시작됐다.

    *   *   *

    "오늘 저녁 10시부터 음주운전 단속하는 거 알지?"

    야간 근무 회의를 위해 모인 회의실에 폭탄이 떨어진다.

    탄성을 터트린 경찰들이 고개를 숙인다.

    종혁도 마찬가지다.

    야간 근무로 돌아서자마자 음주운전 단속이다.

    기분이 썩 좋을 리 없었다.

    그들은 누가 나갈지 눈치 싸움을 시작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누가 너희 몸 챙겨 주는 거 아니잖아."

    "옙!"

    그렇게 회의가 끝나자 모두 일지를 들고 일어섰다.

    그런 그들을 보며 담배를 물던 장철호 소장이 순간 아차 했다.

    "아, 그리고 내일부터 탈의실 공사할 거니까 그렇게들 알아."

    몸을 돌린 경찰들은 눈을 껌뻑였다.

    "남녀탈의실 분리 이용 시범케이스로 우리 파출소가 선정됐대."

    "왜요?"

    "몰라. 청장님 특별 지시래. 아무튼 이제부터 탈의실을 따로 쓰게 될 테니까 그렇게들 알고. 괜히 여경들에게 눈치 주지 말고."

    "아니, 왜 그런 귀찮은 짓을 하는지 모르겠네."

    "예산이 넘치니까 뭐라도 하려나 보지."

    "어휴. 이렇다 커피 심부름도 못 시키는 거 아냐?"

    "커피는 네 손으로 타 먹어, 새꺄. 넌 손이 없냐, 발이 없냐?"

    경찰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오택수는 종혁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0시.

    어두운 밤, 곧 여름임에도 제법 쌀쌀한 찬바람을 맞으며 종혁이 캔커피를 홀짝인다.

    "삑! 삐익!"

    공간을 두고 세워진 라바콘들과 흔들리는 경광봉.

    그 앞에서 속도를 늦추는 차량들.

    헤드라이트 불빛에 연두색 조끼가 반짝인다.

    빵빵! 빵빵!

    병목 현상이 일어난 4차선 도로에 경적 소리가 울린다.

    ‘음주 단속도 오랜만이네.’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언젠 곱게 자라서 아무거나 못 먹는다며?"

    다가온 오택수가 눈을 가늘게 뜬다.

    "이거 러시아에도 수출되는 겁니다."

    "……아, 그래서 먹는다? 또라이냐?"

    "드실래요?"

    종혁은 주머니에서 캔커피를 꺼냈고, 오택수는 순순히 받았다.

    "초콜렛 같은 거 있음 줘 봐. 아오, 스트레스 쌓여."

    오늘도 사고를 예쁘게 친 최재수.

    그냥 사고를 하나씩 칠 때마다 매뉴얼을 외우는 것 같다.

    키득 웃은 종혁은 다른 주머니에서 초코바를 꺼내 줬다.

    "수석 네 조끼는 또라에몽 주머니냐? 이게 빠져 가지고."

    "아, 조카가 7살이랬죠?"

    "너한텐 조카 아냐."

    매정하게 선을 그은 오택수는 초코바를 우물거리며 열심히 경광봉을 흔드는 최재수를 봤다.

    ‘저걸 언제 사람으로 만드냐’라는 듯한 눈빛.

    ‘욕보십쇼.’

    종혁도 최재수를 가르칠 자신이 없었다.

    "너지?"

    "뭐가요?"

    "탈의실. 지금 청장님이 경찰대 학장이셨잖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오택수는 미간을 좁혔고, 종혁은 무시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쯧. 그래, 맘대로 해라. 네가 뭐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럼 전 일하러 가겠습니다. 이건 대신 버려 주시고."

    "이 자식이?"

    빈 캔을 오택수의 손에 쥐여 준 종혁은 한승연에게 다가갔다.

    차를 나온 취객에게 윗가슴이 찔리며 뒤로 밀리는 한승연.

    주위 경찰과 지원 나온 의경들이 안절부절못한다.

    "치워.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이러시면 안 되십니다, 선생님."

    "내가 인마, 어? 어제도 너희 청장이랑……."

    툭툭.

    꼬부라진 혀와 눈으로 한껏 짜증을 부리다 돌아선 음주 운전자는 종혁의 큰 덩치를 보고도 겁먹기는커녕 얼굴을 구겼다.

    "넌 또 뭐야. 이 새끼……."

    덥썩! 부웅! 퍼억!

    "끄헉?!"

    경찰들도, 차 안에 있던 사람들도 기겁하며 바라본다.

    눕힌 상태에서 팔을 꺾어 뒤로 돌린 종혁은 그 손에 수갑을 채웠다.

    "지금부터 선생님을 음주측정 불응, 공무집행 방해, 경관 폭행으로 현장 체포합니다."

    정말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

    이젠 이 말도 법적효력을 가지는 진짜 경찰이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놔, 씨. 안 놔…… 악! 자, 잠깐 허리! 허리-!"

    종혁은 더 강하게, 취객의 허리를 누르는 무릎에 더 체중을 실으며 나머지 절차를 밟았다.

    텅텅!

    "자, 출발."

    음주 운전자를 태운 경찰차가 파출소로 복귀하자 종혁은 한승연을 봤다.

    그의 눈은 꽤 매서웠다.

    "뭘 잘못했는지 알죠?"

    "……예. 음주 운전자가 도로에서 밀쳤을 땐 강력하게 제압했어야 합니다."

    언제 차가 빠르게 지날지 모르는 도로 위다. 이럴 땐 곧바로 제압해야 하는 게 매뉴얼이다.

    "그래요. 다음부턴 그렇게 합시다."

    종혁은 수고했다며 한승연의 어깨를 두드렸다.

    윗가슴을 찔리며 밀쳐졌는데 뺨을 때리지 않은 게 어딘가. 정말 잘 참은 거다.

    그 순간.

    끼긱!

    "어? 어어?"

    고개를 돌린 종혁은 눈을 크게 떴다.

    "마, 막아!"

    부아아아앙!

    갑자기 속도를 내며 달려드는 승용차.

    종혁은 다급히 한승연을 끌어당기며 뒤로 뛰었고, 차는 그들이 있던 자리를 스쳐 지나갔다.

    종혁은 다급히 오택수를 봤다.

    "재수야!"

    하얗게 질린 얼굴로 최재수를 부르며 다급히 경찰차에 오르는 그.

    그럴 수밖에 없다.

    "으아아아악!"

    종혁은 다른 차를 향해 뛰며 어깨에 달린 무전기를 들었다.

    "순 31! 음주측정 불응 후 경관을 매달고 도주 사건 발생! 흰색 승용차! 번호는……!"

    한밤에 추격전이 시작됐다.

    *   *   *

    부우웅!

    음주 운전자를 태운 순찰차가 떠나고 한승연에게 말을 거는 종혁을 본 최재수는 입술을 이죽거렸다.

    첫날부터 괴물 같은 면모를 보인 종혁.

    며칠 지나지 않은 지금엔 모두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

    오택수도 일하는 걸 보더니 3일 만에 임시 사수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정작 배알이 꼴리는 건 간식부터 시작해, 파출소를 조금씩 바꿔 가는 종혁의 행동에 모두가 뭘 해 주지 못해 안달 났다는 점이다.

    ‘난 아직도 혼이 나는데! 쟤는 청소도 안 하는데!’

    "아주 바보들이야. 돈으로 인심 사는 게 안 보이나?"

    그런데 정말 화가 나는 건 종혁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점이다. 마치 없는 사람처럼.

    그런데 그의 동기들에겐 그렇게 다정할 수 없다.

    ‘아주 나만 미워하지! 나만 미워해!’

    "그래, 나도 당신 따위 필요 없어. 누가 당신한테 인정받으려고 경찰 하는 줄 알아?"

    최재수는 신경질적으로 경광등을 흔들었다.

    그러다.

    "음?"

    다가오던 흰색 외제 승용차가 갑자기 멈칫한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최재수는 매뉴얼에 따라 의경과 함께 그 차로 다가갔다.

    똑똑!

    운전석 창문을 두드리는 의경.

    그러나 운전대를 꽉 잡은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지 않는다.

    ‘뭐지?’

    최재수는 열려 있는 보조석 창문을 통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선생님…… 흡?!’ 차 안에 술 냄새가 가득하다.

    음주 운전이다.

    "선생님, 술을 드신 것 같으시네요. 일단 내리셔서……."

    "씨발!"

    부아앙! 끼긱!

    치고 나가려 했지만, 앞 차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는 운전자.

    "어?"

    뒤늦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아니, 거의 반사적이었다. 최재수는 보조석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선생님! 얼른 내리세……!"

    운전대가 틀리더니 중앙선을 넘어 치고 나가는 승용차.

    눈을 부릅뜬 최재수는 보조석 시트를 잡았다.

    그리고.

    부아아앙!

    "으아아악!"

    경찰을 매단 한밤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   *   *

    삐이이잉!

    -4885 갓길에 정차하세요! 4885!

    "세워요! 세우라고!"

    ‘씨발! 씨발!’ 어느덧 술이 다 깨 버린 음주 운전자는 이를 악물었다.

    벌써 투 아웃이다.

    "한 번만 더 사고를 쳤다간 모든 지원을 끊어 버리겠다."

    한 번 한다면 무조건 하고 마는 아버지의 경고.

    ‘씨발! 그냥 대리 부를걸!’

    이놈의 습관이 문제였다.

    "주말이 아니니 괜찮아. 내 운전 실력 못 믿어?"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호기롭게 말했던 주둥이를 쳐버리고 싶다.

    "절대 걸릴 수 없어! 절대!"

    -재수야, 꽉 잡아! 꽉 잡으라고, 인마!

    "예-! 으흡!"

    이를 악문 최재수가 시트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몸을 더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며 운전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내가 해야 돼. 여기서 멈춰 세워야 해!’

    곧 큰길이다.

    이 속도, 이 상황이라면 무조건 인명 사고가 난다.

    최재수는 정말 사력을 다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걸 본 음주 운전자는 하얗게 질렸다.

    "씨발! 제발 꺼져, 좀-!"

    그는 사거리가 나타나자 다급히 핸들을 꺾었다.

    끼기기기긱!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좌회전하는 차.

    "아아악!"

    -빵빵! 야, 이 새끼야!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음주 운전자의 눈에 맞은편에서 커져 가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인다.

    너무 꺾다 보니 중앙선을 침범한 것 같다.

    "미친!"

    순간 섬뜩해진 그는 얼른 핸들을 반대쪽으로 꺾었다.

    하지만 늦었다.

    꽈앙!

    "컥!"

    "아악!"

    차가 아니라 몸이 옆으로 튕겨져 나가는 것 같다.

    뭔가 거대한 게 짓누르고 부수는 것 같은 느낌.

    마치 청룡열차에 탄 듯 앞이 흔들린다.

    그와 동시에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다.

    ‘좆됐다.’

    음주운전인 상태에서 측정을 거부하고 도주한 것도 모자라 사고를 냈다.

    정말 끝인 거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며 다시 액셀을 밟았다.

    ‘도망만 치면 돼. 도망만!’

    부아아아앙!

    "아아악! 세워! 세우라고-!"

    흠칫!

    옆을 본 음주 운전자는 기겁했다.

    "이, 이 거머리 같은 새끼! 제발 꺼져 좀-!"

    "좆까!"

    밖으로 튕겨져 나갈 뻔했던 최재수는 다시 몸을 안으로 욱여넣었다.

    "이 씨발 새끼야!"

    정신없는 와중에 저러니 정말 더 돌아 버릴 것 같다.

    그러다 저 멀리 다시 보이는 사거리.

    ‘어디야! 어디로 틀어야 해?!’

    어디로 가야 도망칠 수 있을까.

    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삐요요요용! 끼기기기긱!

    사거리 양측에서 지원을 나온 두 대의 경찰차가 달려오다 차를 가로로 돌리며 멈춰 선다.

    "씨발!"

    음주 운전자도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는다.

    끼이이이익!

    "컥?! 으아아아악!"

    -최재수-!

    그리고 뒤에서 달려오는 두 대의 경찰차.

    사면초가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경찰이 튕겨져 나가서 기분은 좋지만,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떠올리니 눈앞이 아찔해진다.

    ‘이렇게 된 이상!’

    이를 악문 그는 경찰차와 경찰차 사이를 보며 액셀을 강하게 밟았다.

    부아아앙!

    그 순간.

    꽈아앙!

    "커허헉?!"

    강력한 충격과 함께 차가 돌아가는 걸 느끼며 그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