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42화>
동급생의 돈을 갈취하고 괴롭힌 고등학생들로 인해 파출소가 시끄러워졌다.
"한 번만 봐주세요! 아빠 알면 저 죽어요!"
"진짜 오늘이 처음이에요!"
종혁은 앞에 앉아 징징거리는 일진들을 한심하다는 듯 응시했다.
결국 이런 놈들이다.
강약약강.
또래의 약자에겐 한없이 강하지만, 저희를 짓누를 강자 앞에 서면 이렇게 애로 변해 버리는.
그래서 사람대우를 하기가 싫었다.
이렇게 자기들이 잘못한 걸 아는데도 반성하는 기미조차 보이는 놈이 하나도 없어서 더.
"시끄러워, 이 새끼들아. 시끄러워. 시끄러워."
딱! 딱! 딱!
휘둘러지는 서류철에 감정이 담겼다.
"악! 아악!"
서류철 모서리로 얻어맞은 일진들이 정수리를 붙잡은 채 끙끙거린다.
"그렇게 돈이 좋으면 알바를 할 것이지. 쯧. 이름."
일진들의 눈이 데구루루 구른다.
"씨, 씨발! 경찰이 이래도 돼요?! 막 사람 때려도 돼요?!"
"씨발?"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그래요. 씨발!"
쾅!
무리 중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책상을 발로 차며 벌떡 일어난다.
"……하아. 내가 너무 좋게 대했나?"
‘나 때는 그래도 경찰과 어른은 무서워했는데.’ 청룡 쇼바를 장착한 오토바이로 빠라빠라빠라밤 정도는 해야 일진 축에 껴 줬던 90년대.
쇠파이프에 목검, 각목으로 패싸움을 벌이며 경찰과 목숨을 건 추격전을 벌여도 일단 잡히면 그래도 이렇게 대거리는 하지 않았다.
‘아…… 하면 맞았지, 참.’
그래도 90년도에서 몇 년이나 지났다고 십대들이 이러는 걸 보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걸 느낀다.
천장을 보며 허허롭게 웃던 종혁이 몸을 일으켰다.
"왜, 왜? 치시게? 쳐 봐. 쳐봐! 경찰이 학생 치고 좋겠네!"
"후우우. 앉아."
"쳐 보라……."
"앉으라고."
오싹!
순간 일진 대장과 일진들의 등골을 타고 소름이 내달렸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동자.
마치 호랑이가 코앞에 있는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꿀꺽!
"씨, 씨발……."
슬그머니 앉으면서도 끝까지 가오를 지키려는 일진 대장의 모습에 고개를 저은 종혁은 다시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말로 할 때 좋게 가자. 알았지? 이 아저씨가 정말 화나면…… 어휴, 말해 뭐하냐. 됐고. 너부터 이름."
"……김승광이요."
"학교."
이때부턴 쉬웠다.
맹수 앞의 토끼가 된 일진들은 모든 걸 순순히 말했고, 빠르게 마무리를 지은 종혁은 손을 저었다.
"다 됐으니까 저기 가서……."
‘뭐야, 쟤 왜 아직도 저기 있어?’ 피해 학생이 파출소 구석의 벤치에 앉아 눈치를 보고 있다.
순간 골이 띵해진 종혁은 최재수를 봤다.
왜인지 종혁을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고 있는 그.
‘아니, 저건 아직까지 매뉴얼도 숙지 못했나!’
피해자와 가해자는 절대 같은 공간에 두지 않는다.
기본 매뉴얼이다. 물론 이걸 지키지 못하는 경찰이 많다지만, 그래도 시보라면 당연히 떠올렸어야 할 일이다.
"……한 순경, 저기 피해자를 회의실로 안내해 줘요. 그리고 달달한 것도 좀 드리고. 부탁할게요."
"네? 아, 네!"
최재수와 동기인 한승연 시보 경찰.
그녀가 피해자를 달래며 안으로 데려가자, 종혁은 멀뚱히 쳐다보는 일진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보호자들 올 때까지 저기 가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
"……씨이, 쪽 팔리게."
따악! 딱! 딱!
"구시렁거리지 말고 얼른 가."
얼굴이 구겨진 일진들은 입술을 비죽이며 종혁이 가리킨 곳으로 향해 무릎을 꿇고 양팔을 번쩍 들었다.
"거기서 1센티만 내려와 봐. 아주 그냥. 그리고 김승광, 너는 여기 책상 기물파손 혐의도 추가될 테니까 그렇게 알아."
"아오, 씨발."
종혁은 구시렁거리기 시작한 일진들을 뒤로하며 안쪽 회의실로 향했다.
그러다 가는 길을 막고 서 있는 최재수의 도전적인 눈빛에 종혁은 살짝 혈압이 오르는 걸 느꼈다.
‘이 모자란 놈은 아까부터 뭐가 이렇게 불만이지?’
분명 오늘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계속 이런 눈빛으로 쳐다봤다. 사과를 할 때도 억지로 하는 티가 팍팍 났다.
"왜 그러십니까?"
종혁은 오택수 경위를 찾았다.
마음 같아선 늘씬 패 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최재수가 오택수의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부부, 마누라.
파트너를 혼내고 가르칠 수 있는 건 사수뿐이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이 그 권한을 넘봐선 안 됐다.
종혁은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키는 오택수의 모습에 다시 최재수를 봤다.
"덕분에 여기 계신 분들이 얼마나 착한지 알 것 같네요, 최재수 시보."
"예? 그게 무슨……."
"정말 참 좋은 사람들과 일하네요. 정말 참…… 좋은 사람들과."
우드득!
"악! 아아악!"
최재수의 승모근을 잡아 비튼 종혁은 씩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고, 이내 ‘따라와, 새끼야’라고 중얼거린 오택수가 최재수의 귀를 잡아 비틀며 위층으로 향했다.
"악! 자, 잠시만요!"
버둥거리면서도 끝까지 노려보는 최재수를 무시하며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따뜻한 커피 냄새와 함께 한승연이 활짝 핀 얼굴로 맞이한다.
많이 어색했던 것 같다.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학생을 향해 고개를 내밀며 푸근히 웃었다.
"미안해요, 학생. 많이 기다렸죠? 이 아저씨는 최종혁이라고 해요. 이름이 뭐예요?"
"……염상철이요."
너무 작게 말해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종혁은 용케 캐치했다.
그러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달달한 믹스커피가 움츠리고 겁먹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펴 준 것 같아서.
이래서 달달한 걸 주라고 했던 거다.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덴 단것만큼 좋은 게 없었다.
"어이구, 멋진 이름이네. 나이는요?"
"17살이요."
"크. 나도 17살이었던 적이 있는데. 부럽다, 부러워. 피부가 진짜…… 어휴."
고개를 숙인 소년의 입가가 꿈틀거리는 걸 목격한 종혁은 피식 웃으면서도 치미는 한숨을 겨우 눌렀다.
170cm를 살짝 넘기는 키에 왜소한 몸.
움츠린 어깨와 이리저리 흔들리는 눈동자에선 불안과 초조가 가득 느껴진다.
그 모습에 몇 달 전 입대한 친구 박수호의 학창 시절이 오버랩됐다.
‘왜 매번 피해자만 이렇게 무서워해야 되는 거냐, 진짜.’
이래서 일진을 사람대우 할 수 없는 거다.
‘개새끼들.’
종혁은 애써 웃었다.
"하하. 간단하게 조사만 마치면 바로 가게 해 줄 테니까 조금만 협조해 줘요. 그렇게 해 줄 거죠?"
……끄덕.
"자, 그럼 이름부터 시작해 볼까요?"
그렇게 시작된 염상철의 진술은 정말 종혁의 말처럼 빨리 끝났다.
"수고했어요, 염상철 학생. 이제 그만 가 봐도 돼요."
진술을 다 끝냈건만 왜인지 우물쭈물거리던 염상철은 이내 울상을 지으며 일어섰다.
뭔가를 포기했는데 그게 억울하고 또 뭔가에 화난 표정.
"……안녕히 계세요."
한층 더 낯빛이 어두워진 염상철은 회의실을 나섰고,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할 말 있는 것 같은데 해 봐요."
움찔!
몸을 굳히며 갈등하던 그녀는 곧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전 염상철 학생이 돈을 뺏긴 적 없다고 말했잖아요. 그런데 왜……."
그랬다. 염상철은 맞긴 맞았는데 그냥 친구끼리 장난이라고, 돈을 뺏긴 게 아니라 빌려준 거라고 말했고, 종혁은 그걸 그대로 받아 적었다.
"분명히 저 학생은 밖에 있는 애들에게 돈을 뺏긴 거 맞잖아요! 신고도 접수됐고요!"
"그래서? 그걸 말하면?"
"……네?"
종혁은 한승연을 봤다.
당신도 똑같구나라는 듯 실망으로 물들어 가는 그녀의 시선.
"그래요.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서 진술하게 했다 칩시다. 그러면 저 밖에 있는 새끼들이 소년원에 갈까요, 안 갈까요?"
안 간다. 그냥 봉사 활동이나 하다 끝날 거다.
선생들이 어떻게든 합의를 보려고 덤빌 테니까.
혹여 소년원에 간들 2개월이나 살다 나올까.
그때부턴 염상철에겐 지금보다 더한 지옥이 펼쳐질 거다.
"여기까진 생각 안 했지?"
생각 없이 말하는 그녀를 보니 절로 반말이 나온다.
"……."
"한 시보, 당신이 뭐에 실망한 건지는 알겠는데……."
아마 한승연은 이 파출소에 있는 동안 이런 모습을 많이 봤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시선을 보낸 것일 터였다.
"최소한 그런 거에 실망할 거면 자신이."
종혁은 그녀의 가슴팍에 달린 경찰 명찰을 가리켰다.
"경찰로서의 자신이 뭘 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말합시다. 저기 밖에 계시는 선배님들이 이걸 몰라서 저런 새끼들을 가만 두는지 알아?!"
"흡!"
깜짝 놀란 그녀는 이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종혁은 묘한 눈빛으로 그런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어, 그래. 형이야. 잘 지냈지? 나도 잘 지냈지. 아,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청일고 졸업한 놈이 있으면 나한테 전화 좀 달라고 해 줄 수 있을까?"
"……!"
종혁이 통화를 하자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던 한승연이 깜짝 놀라 그를 본다.
청일고는 염상철과 밖의 일진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이번에 형이 이쪽으로 발령 왔는데, 청일고 쪼꼬미들이 지랄을 하네? 누구? 김동현? 아, 우리 유도 상비군 2군 중에 그 학교 출신이 있어? 막내야? 잘됐다. 시간 한번 만들어 봐. 어, 그래. 수고."
전화를 끊은 종혁은 멍하니 쳐다보는 한승연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왜요? 더 할 말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충성!"
경례를 한 한승연이 후다닥 회의실을 빠져나가자 종혁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배우긴 제대로 배웠나 보네."
방금 전 혼이 났어도 끝까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은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다.
경찰이라면 응당 저래야 한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시민을 보호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라면 제 몸뚱어리가 부서진다 해도 무엇이든 하는 것.
설사 그게 상급자에게 대드는 일이라도.
그게 경찰로서의 사명감이다.
그녀는 그 사명감대로 말한 것뿐이기에 아무런 잘못이 없는 거다. 그저 불타는 사명감에 시야가 좁은 것일 뿐.
이걸 넓혀 주는 건 바로 종혁 본인 같은 선배 경찰들이 해야 할 일이다.
많은 범인을 잡는 것보다 단 한 명이라도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마라.
경찰이라면 응당 가슴에 새겨야 할 말이다.
"거참, 시보만 아니라면 제대로 가르쳐 주련만은……."
법과 매뉴얼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시보 생활.
어르고 달래며 가르치다가는 결국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버릇을 기르지 못한다. 중요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의지하게 될 테고, 그러면 결국 현장에서 대형 사고가 터지게 된다.
현장에서 사고는 인명 사고.
그 꼴을 너무 많이 겪으며 범죄자도 많이 놓쳤던 종혁으로선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문제였다.
"뭐, 고작 이런 질책조차 견디지 못한다면 경찰을 할 자격조차 없는 거지."
부딪치고 박살 나며 깨지고 깨져야 한 사람 몫을 하는 경찰이 되는 법이었다.
"그나저나 계속 신경 쓰이네……."
삥을 뜯기는 아이들을 볼 때면 항상 예전 수호의 일이 떠올라서 그런지 더 눈에 밟혔다.
당시 수호가 몇 년간 지독하게 갈취를 당했던 것처럼 스케일이 크다면 가해자들이 확실하게 처벌을 받도록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의 경우엔 경찰들이 제아무리 나서도 단속하기 쉽지 않기에 더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방금 전처럼 힘이 있는 학생들로 하여금 단속을 해 달라고 부탁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오늘따라 한숨이 많다고 생각한 종혁은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다.
흠칫!
소장과 몇몇 나이 든 경찰들이 회의실 옆에 서서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냐, 아냐. 일해."
"어후. 조서 쓰는 거 보니까 안 가르쳐도 되겠던데? 역시 수석이라 똘똘해?"
어깨를 툭툭 치며 흩어지는 그들.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왜 저래?"
뭔가 찝찝했다.
* * *
시끌시끌. 왁자지껄.
사방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가득한 한우집.
주간 근무조 13명이 한우의 영롱한 선홍빛 자태에 눈을 붉히고 있다.
‘짠돌이 소장님이 웬일이래?’
‘회비로 감당되려나?’
환영식이라고 하기에 장난으로 한우를 외친 그들이지만, 정말 올 줄은 몰라서 당황한 그들이다.
"자자, 주목!"
모두의 시선이 소장에게로 향했다.
"오늘 모두의 의견에 따라 한우집에 왔지만, 누구 덕분에 한우를 씹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냐."
이번엔 종혁에게로 시선이 옮겨진다.
"여기, 오늘부터 한 식구가 된 최종혁 경위가 본인 환영식을 위해 거금 85만 원을 투척했으니까 모두 박수로 맞이해 주도록 해."
화들짝!
"워후!"
"역시 경찰대 수석은 통부터 다르네!"
‘어이구, 그걸 또 왜 말하시나.’ 살짝 난처해졌던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오늘 저를 지켜보시며 만족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경찰들의 몸이 살짝 굳고, 종혁은 미소를 지었다.
아침의 일진 사건부터 퇴근 전까지 거의 모든 업무가 종혁에게 부담됐다. 민원 업무부터 시작해 총 14번의 출동까지.
오늘 주간에 있던 사건 중 60퍼센트를 종혁이 감당했다.
신고식이었던 거다.
종혁이 이걸 모를 줄 알았기에 놀랐던 그들은 이내 묘한 눈으로 종혁을 봤다.
파출소 베테랑도 힘들어하던 진상들을 단숨에 제압하고 진정시켰던 종혁.
이게 과연 가능한가 싶었다.
하지만 하난 알 수 있었다. 파출소에 괴물 같은 신입이 들어왔다는 걸 말이다.
"여러 선배님들의 기대에 부흥하는 똘똘한 후배가 될 테니 부디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홍익파출소를!"
종혁이 소맥이 말린 잔을 들자 모두도 황급히 잔을 든다.
"위, 위하여."
"홍익파출소를-!"
"……위하여-!"
채재재챙!
"캬흐!"
"좋다!"
"뭣들 해! 얼른 불판에 고기 안 올리고!"
"옙!"
회식 자리는 곧 시끌벅적해졌다.
"고기가 부족하진 않아? 더 가져다줄까?"
슬그머니 다가온 사장이 웃으며 묻는다.
"아뇨, 아뇨. 부족하면 더 시키겠습니다."
"어허. 최 주장이 우리 딸애에게 어떤 걸 해 줬는지 아는데, 내가 이런 것도 못 사 줄 것 같아?"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 딸을 둔 한우집 사장.
그에게 있어 태릉 피트니스를 세워 많은 수많은 상비군 선수들을 트레이너로 고용한 종혁은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오늘 첫 발령을 받은 것 같은데 내가 이 정돈 해 줘야지."
"예, 그러니까 더욱 안 되죠. 뇌물로 걸려요."
그 법이 없는 시기라도 위험하다.
"융통성 없다고 생각하시더라도 이해 부탁드릴게요."
"끙. 그럼 서비스는 괜찮지?"
"팍팍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돈 안 받으시면 평생 여기 안 올 겁니다!"
"……쯥! 오케이!"
만족스럽게 웃은 사장이 떠나자 시선을 돌렸던 종혁은 흠칫 몸을 굳혔다. 장철호 소장을 비롯한 주위 경찰들이 묘한 눈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철호 소장은 종혁에게 술을 따랐다.
"작년 연말에 그 사건은 어떻게 된 거야? 우리나라 최초의 밀실 살인이었다며?"
주위 경찰들의 눈빛이 돌변한다.
"맞아. 이란성 쌍둥이 동생이 범인이었다며?"
종혁은 얼른 말해 보라는 시선에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흥미가 가득했던 그들은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되자 한숨을 푹 쉬며 술을 들이켰다.
"지랄이네, 지랄이야."
"밀레니엄 지난 이후부터 사건이 좀 괴악해지지 않아?"
"그러게. 하, 진짜 세상이 어찌 되려는지."
종혁도 동감이었다.
언론 등 대중매체, 인터넷 등을 통해 개개인이 받아들이는 정보가 많아질수록 더 진화하는 범죄들.
경찰 된 입장으로서 입맛이 쓸 수밖에 없었다.
"아, 그리고 곧 경찰 전용 메신저가 도입될 테니 알고 계세요."
"메신저? 아, 그 넷틱온처럼?"
"버디프랜드에서 제작한 건데, 늦어도 이번 달 안에 배포될 겁니다."
밀실 살인 사건의 피해자였던 구성훈.
그가 고맙다며 만들어 준 선물이다.
기어코 선물을 주고 싶다기에 종혁이 부탁했다.
"뭐야, 그럼 이제 지시도 그걸로 내려야 하는 거야?"
"아, 그건 소장님 마음이시죠. 그냥 일할 때 동선을 줄이자는 의미로 청장님이 채택한 거예요."
이걸 시작으로 신고 접수나 전달 체계도 차츰 바뀌게 될 거다.
미래처럼.
"이야. 기룡 선배가 지휘봉 잡으니까 뭔가 달라도 달라지네."
"그러게요. 예산도 증대됐고. 요새 일하기 편한 것 같아."
종혁은 생각에 잠기는 그들을 뒤로하며 다른 테이블로 옮겼다.
종혁 본인의 환영회다. 여러 사람과 친해져야 했다.
"오 경위님? 제 술 한 잔 받으시죠?"
"그럼! 경찰대 수석 환영회인데 수석의 잔을 안 받을 수 없지!"
‘……이 양반 끝까지 수석이라고 하네.’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한 거다.
뭐 고작 하루니 당연한 거지만, 얼른 제대로 불리고 싶다는 열의가 솟는다.
종혁은 그걸 꾹 누르며 활짝 웃었다.
그렇게 오택수뿐만 아니라 같은 테이블 경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종혁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어이구, 제가 좀 늦었죠?"
술이 몇 잔 돌자 슬그머니 따로 자리를 만든 여경들이 환한 미소로 반긴다.
"어서 와. 얼른 와. 후딱 와. 자, 여기 내 옆으로."
"오. 그럴까요?"
이경숙을 포함한 여경과 시보들이 꺄르르 웃는다.
이래서 잘생긴 게 중요한 것 같았다.
그러다 이경숙이 눈을 빛냈다.
"최 경위. 소장님이 그러시던데 원두커피 살 거라면서?"
여경들이 눈을 크게 떴다.
원두커피.
생각지도 못했던 거다.
예산이 쥐꼬리만 한 파출소라 꿈도 못 꾼 게 아니라 아예 생각조차 안 했다. 그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어이구. 말을 먼저 꺼내 주시네.’
경찰 전체를 따졌을 때 그 비율이 굉장히 낮기에 더욱 끈끈한 네트워크를 가지는 여경들.
이들의 신임은 당연히 얻어야 했다.
"왜요? 이 경장님 것도 사 올까요? 아니, 아예 다 드실 수 있도록 대량으로 사 올까요? 뭐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뭐? 정말? 여기 순경들 것까지?"
비싼 원두커피기에 경장 이상 간부만 마시게 될 줄 알았던 그녀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순경은 식구 아닌가?"
이건 진심이었다.
종혁은 놀라는 그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됐네.’
자고로 먹을 거 주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그렇게 회식은 깊어졌다.
부어라 마셔라 1차에서 끝장을 보자 모두가 취해 갔다.
그러던 가운데.
텅!
최재수가 빈 술잔을 강하게 내려놓으며 앞에 앉는다.
"오늘 나한테 왜 그러신 겁니까? 우리 초면 아닙니까? 예? 나에 대해 대체 뭘 알기에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건데!"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풀린 눈.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새끼 선 넘네?’
파출소 생활이 생각보다 더 다이나믹해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