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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37화 (137/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37화>

    42. 연말의 악몽

    그 러시아의, 그것도 KGB의 후신인 SVR의 정중한 공조 요청.

    러시아에서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한국으로 도망친 놈들을 잡기 위해 도움을 달라는 요청에 파견된 국정원의 어느 팀장은 저 멀리 하얀 양복을 입고 있는 종혁을 보곤 침을 뱉었다.

    "카악, 퉤!"

    목적지를 말해 주기는커녕 핸드폰조차 쓰지 못하게 하며 끌고 옷 것도 모자라, 딱 봐도 마피아로 보이는 놈, 아니 마피아 하나 때문에 소중한 요원들이 모두 죽을 뻔했다.

    최종혁 덕분에 전력 증강까지 이뤄 낸 최정예 요원들을.

    그만큼 생각지도 못했던 폭발이었다. 진입이 10초만 빨랐으면 정말 모두 죽었을 거다.

    그나마 아무도 죽지 않고 검거 작전이 마무리되어서 다행이지, 방금 전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그였다.

    "저 새낀 대체 빽이 얼마나 좋은 거야?"

    러시아 초고위층과 연결된 게 틀림없다.

    그러니 이런 비밀 작전에 따라온 것일 터다.

    ‘어쩌면 그렇게 위장한 비밀 요원일 수도 있지.’

    날아오던 쇠파이프를 권총으로 맞춰 튕겨 낸 기적 같은 묘기. 마피아 따위가 해낼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더 이상 파고들면 왠지 골치 아파질 거라 생각한 팀장은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나저나 이 새끼들은 뭐하는 새끼들이지?"

    이런 강원도 산골에 떡하니 이런 것을 만든 것도 모자라 폭약도 망설임 없이 썼다.

    이딴 놈들이 대한민국에 똬리를 틀고 있는데도 몰랐다.

    아니, 그보단 러시아 요원들이 한국을 제 집처럼 돌아다녔는데도 국정원의 그 누구도 몰랐다는 것이 더 화가 나는 그였다.

    -팀장님! 여기! 여기 좀 와 보세요! 이 새끼들 화장도 하는 것 같습니다!

    화장. 여자가 하는 그 화장은 아닐 거다.

    "씨발! 딱 기다려!"

    지하에서 데려온 누군가를 데리고 승합차 안으로 들어가는 종혁을 일견한 그는 빠르게 달렸다.

    한편 김 대리를 승합차 안에 던져 놓고 문을 닫은 종혁은 멱살을 잡아 올렸다.

    "내 돈은?"

    "켁! 켁켁!"

    종혁은 그를 다시 던졌다.

    쿠당탕!

    "……크흐흐."

    ‘파견 직원 개새끼!’ 멱살을 잡혀 끌려 나오는 길에 확인했다.

    이 연수원을 덮친 게 경찰이 아니라, 특공대 같은 특수부대란 걸. 그것도 러시아인도 있었다.

    아마도 러시아 정보부 요원일 터.

    즉, 눈앞의 젊은 사내는 러시아 정보국까지 움직일 수 있는 인맥을 지닌 놈이란 소리였다.

    러시아 파견 직원은 이걸 알아내지 못했던 거다.

    욕이 절로 나왔다.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건드리지 않았지! 이 미친 러시아 놈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덕분에 살 수 있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몰랐다.

    "어이, 내 돈."

    "……몰라. 나한테 없어."

    "알아. 너한테 없는 거. 그 과장이라는 놈에게 있겠지."

    흠칫!

    김 대리는 다급히 종혁을 봤다.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다 끝났다. 이제 이유만 알면 정말 끝나는 거다.

    몇 년 동안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데도 겉으론 웃어야 했던 복수를.

    어서 너희 조직의 정체를, 돈에 집착하는 이유를 말하라는 말이 입술을 삐져나오려 했지만, 종혁은 겨우 누르며 시거를 물었다.

    "푸후."

    다시 멱살을 잡아서 끌고 온 종혁이 경악한 김 대리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뿜었다.

    "왜? 내가 감시조차 안 할 줄 알았어? 그런 거라면 러시아에서 졸부로 산다는 게 얼마나 개 같은 일인지 몰랐다는 거야. 친구, 아니 배신자 동지."

    "……."

    "걱정하지 마. 너나 네 과장이나 사이좋게 러시아로 갈 테니까."

    러시아. 지난 겨울 차라리 자살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만큼 지독히도 추웠던 시베리아.

    김 대리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검은 돌고래 교도소에 가겠지."

    러시아에서도 악명 높기로 유명한 검은 돌고래 교도소.

    가장 약한 죄목이 살인일 정도로 극악한 범죄자만 수감되는 곳인데, 수감자 전원 독방이며 하루 운동 시간은 겨우 30분.

    하늘을 보거나 다른 죄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는커녕 머리를 숙인 채 빈방을 뱅글뱅글 도는 게 전부이고, 하루 24시간 철통같은 감시를 받아 자살을 꿈도 못 꾸는 곳.

    늙어 죽어야 나올 수 있다는 말이 있기에 러시아 범죄자라면 결코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극악의 교도소다.

    한국의 청송보다 더 인권을 상실한 곳.

    종혁은 하얗게 질리는 김 대리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내 돈을 들고 튄 이상 너희들에게 자유란 없어."

    "……개 같네."

    종혁은 김 대리의 한국어를 알아들었지만 뭐라고 했냐며 쳐다봤다.

    "아니, 안 갈 순 없는 건가?"

    겨우 살아났는데 그런 곳에 간다?

    자살조차도 못하는 곳에?

    회사의 일을 하며 메말랐던 그의 감정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차라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잡혔으면 상관없다. 어떻게든 버텼을 거다.

    어쩌면 그곳까지 찾아왔을 조직의 청소부를 겸허히 받아들였을 거다.

    하지만 회사가 먼저 배신한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럴 순 없었다. 믿고 따랐던 사람에게 은퇴를 지시한 회사에 더 이상의 의리를 지킬 이유는 없었다.

    그는 살고 싶었다.

    ‘희정아, 애들아!’

    언제든 버려야 할 상황이 올 수 있기에 정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던 아내와 자식들.

    그들의 얼굴이 왜 갑자기 떠오르는지 김 대리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을 다시 보고 싶단 욕망이 솟구쳤다.

    아버지 같았던 정지만 과장님도.

    "내, 내가 뭘 하면 될까? 아니, 뭘 하면 될까요?"

    종혁은 갑자기 무너지는 김 대리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바라던 상황인데 의심부터 든다.

    ‘너무 빠른데?’

    이런 상황을 노리고서 그런 작전을 짜고 검은 돌고래 교도소를 언급했지만, 반응이 너무 격렬했다.

    하지만 눈이나 신체 반응을 보면 진실인 것 같다.

    종혁은 생각에 잠겼다.

    "뭘 하면 되냐라……."

    간절함으로 물들어 가는 김 대리의 얼굴을 보며 뜸을 들인 종혁은 이내 시거를 내려놓으며 그의 눈을 또렷이 응시했다.

    "뭐, 내 작은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면 교도소를 옮겨줄 용의도 있지."

    "호기심?"

    "너희 정체가 뭐냐?"

    "……?!"

    "대체 뭐 하는 놈들이기에 그런 돈을 벌었던 네놈이 순순히 통장을 넘기고, 이렇게 널 제거하려 드는 거냐? 그리고 넌 또 왜 순순히 잡힌 거고?"

    예상조차 못했던 질문.

    김 대리의 눈동자가 풍랑을 맞은 듯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말해 주면 네 가족도 러시아로 데려가 주지."

    그 말이 결정타였다.

    ‘그래. 비밀을 지킬 의리는 없다.’

    "우리 조직은……."

    김 대리의 입이 열리자 희열에 젖어 가던 종혁은 이내 눈을 부릅떴다.

    *  *  *

    드르륵! 쿵!

    문을 닫고 나온 종혁의 몸이 순간 휘청거린다.

    "아이반!"

    깜짝 놀라는 나탈리아에게 다가오지 말라며 손을 내민 종혁은 돌아서며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드디어 끝났다. 정말 드디어 끝난 거다.

    오열하고 포효하며 어머니께 사죄하고 기뻐해야 되는데.

    정말 그래야 하는데.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

    ‘어르신.’

    대가리.

    머리가 있었다.

    "……그래. 대가리가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어."

    몸통이 있다면 머리도 있는 법.

    처음부터 예상 범주 안에 넣고 있던 변수다.

    김 대리의 말은 이랬다.

    조직이 버는 돈은 전부 그 어르신을 위해 쓰인다고.

    하지만 어르신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조직원들 대부분 어르신이 아니라, 다른 조직원에게 구함을 받아 그 은혜를 갚는 것뿐이라고!

    "……그랬던가."

    이 조직의 놈들이 왜 그렇게 지독했는지 이젠 알 것 같다.

    소속감을 일으키는 조직의 이름조차 없이 그냥 조직 혹은 회사라고만 불리는데도 지독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생명과 삶을 구원받았는데, 그 은인이 곁에 있는데, 더욱이 일한 만큼 보상도 받는데 목숨을 걸지 않을 리가 없다.

    저 북한 주민이 그러는 것처럼.

    사이비의 광신도가 그러는 것처럼.

    ‘모르는 사이에 세뇌를 당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어.’

    누군가를 맹신해 목숨을 초개처럼 던지는 놈들을 제법 봐 온 종혁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 연수원의 존재가 그런 세뇌를 하는 장소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유를 모두 알게 됐는데도 후련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그 ‘어르신’이란 존재 때문일 거다.

    "이놈을 잡으면 후련해질까?"

    한참을 고민해 봤지만, 쉽사리 답은 나오지 않았다.

    분명 어르신이란 놈만 남았는데 왜인지 그랬다.

    "……그래. 이놈만 잡으면 그럴 수 있을 거야."

    수많은 놈들을 잡았으니 그중엔 어르신에 대해 아는 놈이 분명 있을 거다.

    8부 능선을 넘었다고 봐야 했다.

    종혁은 애써 그렇게 찝찝한 마음을 다독였다.

    "후우우."

    가슴을 태워 가던 불길이 잠잠해진다.

    급격히 식으며 불씨만 남긴다.

    "푸후우우."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몸통을 박살 냈으니 이제 남은 건 그 어르신이란 존재와 몸통에서 뻗어 있을 잔가지뿐이다.

    ‘이제 한숨을 돌릴 수 있으려나.’

    회귀 후 수년.

    그동안 이놈들 탓에 한시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 편히, 조금 더 어머니를 신경 쓰는 나날들을 보낼 수 있을 터였다.

    ‘엄마랑 여행도 더 자주 가고, 좋은 분도 소개시켜 드리…… 아, 이건 빼고.’

    생각만 해도 행복할 나날.

    ‘연애도…… 해 볼까?’

    회귀 전엔 범인 검거와 승진에 미쳐서, 회귀 후엔 이 조직을 쫒느라 꿈조차 못 꿔 본 연애.

    지금도 딱히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생각에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그런데.

    "아이반."

    나탈리아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그쪽도 검거를 완료했다고 해요."

    "오!"

    종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하지만 나탈리아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도 터트린다.

    "그런데 가장 높은 직책이 지부장이라네요."

    "예?"

    "지부장이요."

    "……사장이 아니라요?"

    나탈리아가 들고 온 노트북을 보여 준다.

    그 순간 종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검거한 놈들의 사진이에요. 총 32명. 원래 35명이었다는데……."

    김 대리와 지원부 직원이 빠진 숫자일 거다.

    그런데 죄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대전 어린이 사건 때 그의 부친에게 부탁해 그린 몽타주와 일치하는 놈이 한 명도 없다.

    어머니와 종혁 본인을 죽인 놈도 없었다.

    "이, 이게 무슨?"

    몸이 얼음보다 차갑게 식었다.

    종혁은 다급히 차 문을 열었다.

    "왜, 왜……."

    담배를 피고 김 대리의 눈이 데구루루 구른다.

    종혁은 어이가 없어서 하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와중에도 김 대리는 이걸 숨긴 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수작을 부린 게 확실했다.

    "까드드드득!"

    얼굴이 귀신처럼 일그러진 종혁이 김 대리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허억?!"

    "야, 너희 조직원 몇 명이야."

    너무도 짧은 순간 박살 나 버린 희망찬 미래.

    꺼져 가던 복수의 불씨에 다시 장작이 던져졌다.

    *  *  *

    국정원 비밀 안가에, 국정원 건물에 타국 요원을 들일 수 없기에 이곳 안가에 감금된 정지만 과장과 지부장 등 조직원들은 허탈하게 천장을 봤다.

    독을 보석 형태로 굳혀 만든 장신구도, 어금니에 숨겨 둔 독주머니도 모두 제거당했다. 국정원, 아니 러시아 정보국이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단 소리였다.

    ‘대체 어떻게? 어디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정지만을 미행했다고 해서 알아낼 순 없는 비밀이었으니까.

    ‘설마 우리 중 배신자가?’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급한 게 있다.

    연수원도 들통났을까 하는 의문이 아니다. 그쪽은 그쪽 나름대로 자료를 소각할 준비를 마친 곳이니까.

    ‘이대로 끌려가면…….’

    조직의 정체가 들통 난다.

    지부장과 과장은 2평도 안 되는 작은 방을 둘러봤다.

    자살을 방지하려는지 스펀지로 사방을 감싼 독방.

    "빌어먹을!"

    퍼엉!

    "어?"

    총소리다. 분명 소음기가 달린 총소리다.

    그리고 안가가 조용해졌다.

    뚜벅뚜벅!

    지부장은 빠르게 다가오던 발소리가 멈춘 철문을 보았다.

    스르륵!

    문 중간의 좁은 배식구 문이 열리며 누군가의 얼굴 반쪽이 보이자 지부장은 기겁했다.

    "다, 당신은?"

    들어오는 길에 본 기억이 있다.

    이곳 안가의 관리 요원.

    노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거참. 내가 결국 이 일을 하게 될지, 아니 자네들이 여기에 오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오싹!

    늙은 목소리에 담긴 뜻이 온몸의 솜털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대, 대체 어떻게?"

    "여기가 국정원에서 요인을 많이 보호해야 되는 상황이 생기면 가장 첫 번째로 연락하는 안가일세."

    "아."

    ‘회사는 정말…… 치밀하구나.’ 이런 존재가 숨겨져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한 그였다.

    "뭐 다른 곳도…… 음. 늙어서 주책이군. 아무튼 강원도 연수원이 털리고 이제 막 정리되고 있다고 해."

    꿀꺽!

    연수원도 털렸다면 이젠 정말 자신들만 남은 거다.

    그러자 이 안가에 함께 들어온 요원들이 떠올랐다.

    "다 죽였습니까?"

    "설마. 그랬다간 러시아까지 우리를 쫓을 판인데 그런 멍청한 짓을 할 리 없잖은가. 그냥 재우기만 했네."

    방금 전 총소리는 몸에 이상을 느낀 요원이 발사한 거다.

    덕분에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 자네들도 이만 자야지."

    노인은 지부장에게 알약 하나를 던졌다.

    지부장은 그 알약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각오하고 있었고 또 많은 이들을 은퇴시켰지만, 그 순간이 눈앞에 오자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그러자 노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가족들에게 뭐라 전해 주면 되겠는가?"

    ‘빌어먹을.’ 조직은 가족에게 정을 주지 말라고 가르치고 그도 그렇게 해 왔지만, 사람인 이상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살을 맞대고 정붙이며 산 게 10년이 넘었는데.

    꺄르르, 하하호호 늦둥이 자식들과 아내의 웃는 얼굴이 스쳐 지나가자 지부장은 결국 알약을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께 먼저 가서 죄송하다고 대신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중 배신자가 있을 수 있으니 부디 조심하시라고도."

    눈을 질끈 감은 그는 알약을 씹었다.

    카드득!

    지독하도록 쓴맛.

    그게 그가 느낀 마지막 맛이었다.

    "컥! 케헤엑!"

    "……그래. 내가 살아 있다면 그렇게 하지."

    스륵.

    배식구 문을 닫은 그는 옆방으로 이동했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었다.

    *  *  *

    "하하하."

    다 죽었다. 안가에 감금된 놈들이 다 죽었단다.

    약을 먹고 죽은 놈도 있고, 독가스에 중독되어 죽은 놈도 있다.

    그보다 더 경악스러운 건 국정원 비밀 안가에 이 조직의 조직원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놈들은 대체!’

    혹시나는 역시나가 되었다.

    정말, 진짜 혹시라도 국정원에도 놈들의 손이 뻗어 있을까 우려되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목적지를 말하지 않게 했다. 핸드폰 등을 쓰지도 못하게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를 잘했다.

    조직의 규모가 생각한 것보다 크다.

    경찰청장도 움직였던 놈들이라지만, 설마하니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정원에도 사람이 심어져 있을 줄이야.

    이젠 세상 그 무엇도 믿을 수가 없다.

    뿌드득!

    "이 개새끼들."

    종혁은 러시아로 향할 전용기 좌석에 단단히 묶여 있는 김 대리와 다른 사원들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국정원 안가에서 발견된 과장의 다잉 메시지, 아니 피로 ‘미안하다’라고 써진 글자를 찍은 사진을 꼭 쥔 채 잠든 김 대리의 얼굴에 눈물 자국이 가득하다.

    ‘이제 이놈들뿐이란 말이지…….’

    믿을 구석이라곤 저들밖에 없다.

    몸통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다리 하나에 불과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김길상의 머리에 고무탄을 쏘지 않았을 거다.

    다행히 살았지만, 기억력에 이상이 생긴 김길상 원장.

    종혁은 앞에 놓인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속이 너무 타들어 가서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러시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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