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34화 (134/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34화>

    -그냥 마음만 받으시겠대요, 아빠.

    이대철은 막내딸 이희선의 말에 난처해했다.

    정천우의 끔찍한 악행이 밝혀진 이후, 이대철은 그토록 반대한 결혼을 하며 의절했던 막내딸을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딸아이가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데 모른 척할 수 있는 아비는 세상에 없을 터였다.

    "허허…… 거참."

    조사한 바에 따르면, 딸과 손자손녀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은 경찰대학교의 생도였다.

    그 은인은 목숨을 구해 준 것으로 모자라, 한국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로펌의 변호사로 변호인단까지 꾸려 줬다.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빚.

    그런데 정작 그 은인은 밥 한 끼 대접하는 것조차 거절하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

    "한사코 거절하시니 어쩔 수 없구나. ……영우와 설이는 잘 있니?"

    그동안 외면했던 손자 손녀를 부르려니 민망하고 부끄러워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요. 오늘도 할아버지집에 언제 가냐고 노래를 부르던걸요? 바꿔 드릴까요?

    "그, 그럴래?"

    -영우야, 할아버지야.

    -하부지-!

    이대철의 얼굴이 활짝 폈다.

    그렇게 한참 통화를 하던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의인에게는 응당 보답을 해야 하는데…… 어휴."

    지이잉! 지이잉!

    답답한 가슴을 치던 그는 다시금 전화가 진동하자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어이구. 또 할애비가 보고 싶었…… 응? 김 과장?"

    -휴일 늦은 밤 전화를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부장님.

    "아냐, 아냐. 무슨 일이야?"

    -방금 전 1차로 블랙박스 30만 대 계약을 완료해서 보고 차 연락드렸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오늘은 푹 쉬고 자세한 보고는 내일 받지."

    -예! 편히 쉬십시오!

    전화를 끊은 그는 생각에 잠겼다.

    딸의 재판에 갔을 때, 증거 자료로 제출됐던 블랙박스 영상.

    정천우의 끔찍한 말에 속에서 천불이 끓고, 이성이 끊길 것 같으면서도 그 영상을 보니 저런 걸 차에 달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재판이 끝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서둘러 계약을 진행시켰다.

    무슨 일인지 위에선 단번에 승인이 떨어졌다.

    "현오성 상무님께서 후계자 자리를 굳히시려 드는 건가."

    이걸 왜 이제야 알았나 싶을 정도로 구매할 수밖에 없는 디자인과 퀼리티를 지닌 제품이었지만, 뭔가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중공업에 있는 동기도 그 회사에서 CCTV와 블랙박스를 다량으로 구매한다고 하던데…… 흐음."

    대현중공업 회장님의 특별 지시라고 들었다.

    블랙박스는 직원들에게 별도로 주는 보너스라고 했다.

    그래서 더 뭔가 있는 것 같았다.

    이대철, 그는 대현자동차그룹의 부장이었다.

    *  *  *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다. 북으로는 강성 대군이 버티고 있다. 즉, 놈들이 도망칠 곳은 없다.

    범인을 쫓는 양동현의 모습이 멀어지며 영화는 끝을 맺었다.

    짝짝짝짝짝!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며 불이 켜지자 박수가 쏟아졌다.

    지난 몇 달간 공들여 찍은 영화의 시사회.

    우레처럼 쏟아지는 박수에 그동안의 노력히 헛되지 않았구나 작게 안심하는 배우들과 감독에게 사회자가 몇 가지 질문을 건넸다.

    몇 차례 이어진 질문 뒤에, 사회자가 감탄을 토하며 물었다.

    "이번 영화는 특히 디테일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엄청난 디테일을 살려 낼 수 있었던 비결이 있으실까요?"

    사회자의 질문에 서로를 본 김영진 감독과 주연 배우들은 피식 웃었다.

    "이번 저희 영화는 저기 계신 최종혁 자문님의 도움을…… 어?"

    없다.

    분명 아까 인사도 나눴는데 자리에 없다.

    그들은 당황하며 종혁을 찾았고, 시사회장은 잠시 어수선해졌다.

    한편,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시사회가 열리는 극장을 빠져나온 종혁은 무로이와 미하일을 봤다.

    "이제 가는 거지?"

    무려 5개월의 연수가 끝났다.

    무로이와 미하일은 진하게 아쉬워했다.

    빈집털이 연쇄 절도 사건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전국을 누비며 프로파일링 수사를 곁에서 지켜보고, 또 어쩔 땐 의견도 내며 개입을 했던 나날들.

    이런 날이 거듭될수록 그들은 프로파일링에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종혁과 권순호 경사가 모이니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이 없었다. 가끔 임성원 교수가 합류하면 사건이 해결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한 명보다 두 명이 모일 때, 두 명보다 네 명이 모일 때 보다 더 완벽해지는 집단지성의 수사 프로파일링.

    ‘조금만 더 배우면 완벽해질 것 같은데.’

    정말 고국으로 돌아가는 게 안타까울 정도다. 그래서 연수가 일주일 전에 끝났음에도 계속 남았던 거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그들은 악수를 나눴다.

    "다음엔 현장에서 만나자, 종혁아."

    "우리나라 범죄자가 일본까지 도망치게 만들지 말아야지."

    "그건 맞는 말이네. 음."

    "그래. 다음에 봐, 형."

    "……그래."

    남자의 이별은 짧고 굵게다.

    언젠가 다시 만날 걸 알기에 무로이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공항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다시 경시청 소속 경부보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출국 게이트로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종혁은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았다가 혀를 찼다.

    언제나 이별은 씁쓸했다.

    또각또각!

    가까워지는 구둣발 소리에 고개를 돌린 종혁은 옅게 웃었다.

    "왔어요?"

    나탈리아다.

    그녀가 요원들을 대동한 채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엔 딱 맞춰서 도착했죠?"

    "하하."

    러시아에서 피지컬 트레이닝 전수를 마치고 돌아오던 날 살짝 늦었던 그녀.

    "그럼 갈까요?"

    "예. 가시죠."

    그들의 연수가 끝나면서 종혁도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정말 놈들을 잡으러 갈 시간이었다. 종혁의 눈이 매섭게 떠졌다.

    그렇게 그들은 러시아로 향했다.

    어리둥절해하는 미하일과 함께.

    *  *  *

    징벌이라는 이름을 지닌 시베리아의 작은 마을.

    토요일 저녁 7시가 되자, 김 대리의 집으로 일라이자 채굴 러시아 지사 직원들이 모여 파티를 벌였다.

    "하하하!"

    "호호호!"

    캐도 캐도 끝없이 나오는 금에 근처 도시에서 채용했던 직원들이 계속 이렇게만 같아라 기도한다.

    이 떠들썩함에 동네 주민들도 기웃거렸다.

    "자자, 주목!"

    김 대리의 외침에 직원들이 쳐다본다.

    "오늘 이렇게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파티를 열게 되어 모두 궁금할 거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이렇게 파티를 열게 된 이유는 바로!"

    "질질 끌지 말고 말하세요, 대리님! 러시아 스타일 모르시나!"

    "……에이. 넌 좀 이따가 봐."

    김 대리는 근처 대도시에서 모집한 직원들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저희 일라이자 채굴의 정직원이 되신 걸! 방금 전 본사에서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순간 거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들은 잘못 들은 건가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와아악!"

    "꺄아악!"

    실업률이 심각한 러시아.

    각자 가정이 있는 그들로서는 간절히 바라 왔던 소식이자,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이었다.

    그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앞으로 우리 러시아 지사는 계속 러시아의 금을 캘 것이니, 모두 이 기쁜 날을 마음껏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이상! 아, 특별히 수요일까지 휴가니 집에 가서 푹 쉬시고 목요일에 봅시다! 정말 끝!"

    "으아아악! 감사합니다, 매니저!"

    "정말…… 정말 감사해요, 킴!"

    "이런 날엔 보드카가 빠질 수 없지! 매니저, 내 보드카를 받아 주십시오!"

    "하하. 술은 좀……. 전 이 포도주스로 대신하겠습니다."

    "매니저는 다 좋은데, 러시아 사람 같지가 않아."

    보드카를 싫어하는 러시아 사람은 없기에 직원은 김 대리를 별종 보듯이 봤다.

    하지만 이내 곧 신경을 껐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정직원이 된 날이다. 취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 술 파티가 시작되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새벽 2시, 술에 취한 직원들이 눈물 어린 감사 인사를 연신 하고 돌아간 뒤 조용해진 집에서 잠을 취하던 김 대리가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비비며 잠기운을 쫓은 그는 방에 불도 켜지 않은 채 옷장에서 커다란 스포츠백을 꺼내 들었다.

    쿵!

    "……빠트린 건 없지? 음. 다 챙겼어."

    지난 1년간 정들었던 집을 쭉 훑어본 그는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찰칵! 치익!

    담배를 입에 물자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은 자동차가 집 앞에 선다.

    김 대리는 트렁크에 스포츠백을 던져 넣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운전석엔 파견 직원이, 뒷좌석과 보조석엔 지원과 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빠트린 거 없이 다 챙겼습니까?"

    "예. 노트북, 컴퓨터 본체, 영수증 빠트린 건 하나도 없습니다."

    "돈은 월요일에 은행 문이 열리는 즉시 이체될 겁니다."

    해외 은행 송금 시스템이 아직은 미비한 러시아.

    이 부분만 빼면 모든 게 완벽했다.

    어차피 일이 잘못됐단 걸 깨닫는다고 해도 목요일이 될 테니 별 의미는 없었다. 저들이 그걸 깨달을 땐 돈은 이미 모두 인출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될 테니 말이다.

    고개를 끄덕인 김 대리는 직원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여러분들의 수고 덕분에 목표했던 금액을 일찍, 그것도 초과 달성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본디 시뮬레이션 프로젝트라 최소 2년을 기한으로 잡았다.

    그런데 1년 일찍 끝났다.

    종혁이 예상했던 대로 대략 1년 만에 프로젝트를 끝낸 거다.

    사람들은 그들의 예상보다 더 빨리 돈에 미쳤고, 파리지옥처럼 부모와 형제, 지인을 끌어모았다.

    "지난 1년간 정말 수고 많으셨고, 서울에 도착하면 진하게 한잔합시다."

    막대한 보너스와 휴가가 예약되어 있다.

    한 잔, 아니 앞으로는 몇 잔이라도 마실 수 있었다.

    그들의 몸이 흥분으로 떨렸다.

    "김 대리님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냥 다 수고했다고 하시죠?"

    "그럴까요?"

    그들은 혹여 주민들을 깨울까 소리 낮춰 웃었다.

    "자, 그럼 출발합시다."

    이제 그들은 근처 대도시에서 대여한 비행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밀항을 할 예정이었다.

    러시아에서 감쪽같이 증발을 하는 거다.

    스르르륵!

    차가 출발하자 김 대리는 창문을 내려 담배를 던졌다. 더 이상 여기에 남길 건 쓰레기 밖에 없다는 듯.

    빨간 불똥이 짙은 밤에 그림을 그렸다.

    그런 김 대리는, 조직원들은 몰랐다.

    멀리서 그들의 차를 뒤쫓는 이들이 있다는 걸.

    그리고 모두 잠들었다 여긴 마을 주민들은 결코 자고 있지 않다는 걸.

    부우우웅!

    달리는 차 안, 다리를 꼬고 앉은 나탈리아가 핸드폰을 들었다.

    "광산 인부들과 지사 직원들 모두 확보해. 지사 직원은 201호에 있는 요원의 도움을 얻으면 더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을 거야."

    일라이자 채굴 러시아 지사에서 인근 대도시에서 직원을 모집한다기에 겨우 두 명 넣을 수 있었다.

    즉, 김 대리들이 챙긴 노트북과 본체에 있는 자료들은 진작 확보를 끝내 놨단 소리였다.

    -러시아에 영광을.

    전화를 끊은 나탈리아는 종혁을 봤다.

    김 대리들을 태운 차가 보일 리가 없는데도 앞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종혁.

    "한숨 자요. 놈들을 잡을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인근 대도시에서 비행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밀항할 거라는 정보까지 확인했다. 관제탑 직원에게 뇌물까지 줘서 이륙했다는 기록조차 남지 않을 비행기.

    놈들은 정말 치밀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놈들이 나온 걸까?’

    하는 짓이 정보국 뺨을 치는 수준이다.

    그녀는 더욱 이 조직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한편 종혁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이제 늦어도 나흘 안에 놈들을 잡을 수 있다. 정식 절차를 밟아 교도소에 가둬 놓고, 심도 깊게 추궁할 수 있다.

    그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어 가슴이 답답해진 종혁은 차창을 내리며 담배를 물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

    놈들의 정체를 알아낼 시간이.

    작게나마 복수할 시간이.

    그러나…… 진짜 복수하고 싶은 놈은 따로 있었다.

    ‘어머니와 날 죽인 그놈!’

    사지를 찢어 잘근잘근 씹고 싶은 놈.

    곧 확보할 몸통에 놈이 있을 거다.

    종혁의 주먹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쥐어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