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33화>
41. 만나서 반갑다
용산서 강력계 형사 2팀 반장이 머리를 긁는다.
"어이구. 정말 이걸 우리에게 넘겨도 되는 거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따라온 박영일 기자의 모습에 욕심을 낸다.
피식 웃은 권순호 경사가 옆에 서 있는 종혁의 등을 떠밀었다.
"이놈 의견이니 이놈한테 들으세요."
시선이 몰린 종혁은 턱을 긁었다.
"뭐, 프로파일링수사과가 직접 범인을 체포해서 어디다 쓰겠어요. 전국에 저희를 필요로 하는 사건도 넘쳐서 시간도 없고, 괜히 같은 식구 밥그릇 뺏으면 좋지도 않고."
같은 식구 밥그릇.
반장을 비롯해 형사들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허허. 생도가 벌써 그런 걸 생각해?"
"본청 특수에게 제대로 배웠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저도 내년이면 정말 한 식구잖습니까! 막내의 애교 섞인 뇌물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허리를 깊이 숙였던 종혁은 고개를 빼꼼 들었다.
"대신 이번 사건에 저희 과가 도움이 많이 됐다고 첨언을……."
"뭐?"
멍해졌던 반장은 웃음을 터트렸다.
"오케이, 콜! 받았다! 이런 뇌물이라면 아가리를 찢어서라도 받아야지! 프로파일링 대단하다고 칭찬도 막 할게!"
‘그렇지!’ 사건을 넘기면서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다.
아직까지는 경찰 개개인의 통찰력과 연륜을 우선시해서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프로파일링수사과.
불러 주는 곳은 제법 있지만, 아직도 대원이 충원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소문이 퍼져야 한다.
프로파일링수사과를 부르면 좋은 일이 생긴다.
프로파일링을 하면 범인을 한 놈 잡고도, 또 하나 더 잡을 수 있다. 이렇게라도 프로파일링 수사를 보급화시킬 수 있다면 사건 한 개가 아니라 백 개도 넘길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반장은 종혁의 뒤통수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특수, 광수대, 마약대 본청 삼대 꽃이 모두 얘를 노린다지?’
확실히 지금까지 쌓은 커리어만 봐도 일선 경찰서 사이즈가 아니다.
그는 아쉬움을 접었다.
"자, 그럼 우리 햇병아리가 차려 준 밥을 먹으러 가 볼까?"
용산서 강력계 형사 2팀과 프로파일링수사과 멤버들은 다 함께 정천우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들어섰다.
"어? 어? 거기 함부로 들어가시면! 힉?!"
험악한 인사들이 다가오기에 다급히 막으려 했던 간호사가 경찰 공무원증을 보고 하얗게 질린다.
반장은 진료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당신들 뭡니까!"
깜짝 놀란 정천우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반장이 체포영장을 꺼내 들었다.
"정천우 씨, 당신을 이희선 씨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합니다. 아셨죠? 야, 수갑 채워."
다가온 형사가 수갑을 채운다.
손목에 싸늘하고 무거운 족쇄가 채워지자 정신을 차린 정천우는 기겁하며 날뛰었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거 얼른 풀어요!"
그 순간.
짜아악!
반장이 정천우의 뺨을 후려쳤다.
"증거 다 확보했으니까 그냥 아가리 닫고 들어, 이 남자도 아닌 새끼야."
"……."
"아무튼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종혁은 멍해진 그를 싸늘하게 쳐다봤다.
한편 이효정도 본인의 집에서 경찰에게 수갑이 채워지고 있었다.
"이효정 씨, 당신을 살인 교사죄로 체포합니다."
"아, 아니야! 아니라고요! 엄마-!"
"당신들 뭐야! 내 딸에게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너희 어느 서야!"
"아, 정정자 씨. 당신도 참고인 조사로 따라오셔야 합니다. 뭐 탈세에 건축법 소방법 위반에 아주 씨발 털 게 많아. 보니까 계약 만료까지 한참 남은 임차인도 협박 폭행해서 쫓아내셨더라?"
"놔! 놔아!"
또 다른 악마들도 벌을 받게 되었다.
* * *
남편이 간통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아내를 독살하려고 했다. 모든 신문 1면이 이 끔찍한 참상을 다루자 사법계도 무거운 엉덩이를 빨리 뗄 수밖에 없었다.
판사가 곧바로 정해졌고, 재판도 고작 3주 만에 판결이 떨어졌다.
"죄질이 너무 악랄한 바 이에 본 판사는 피고 정천우와 피고 이효정에게 각기 19년, 13년 징역형에 처한다."
땅땅땅!
"아, 아니야! 아니라고! 난 그러려는 게 아니었어요!"
정천우와 이효정.
두 악마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하아."
가석방 및 감형이 없는 19년 징역형.
증거로 제출된 블랙박스의 대화 내용으로 인해 이효정이 공범으로서 살인을 교사했음이 드러난 것은 물론, 쥐약을 먹이고 있던 이희선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살해하려 했음이 들통났다.
이 탓에 징역형은 원래 15년이 최대지만 가중 처벌을 받아 형이 4년 더 늘었다.
대학교수인 아버지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항소를 했지만 당연히 기각됐고, 도리어 못난 아들을 둔 대가로 교수직을 내려놓게 되었다.
‘쉰하나.’
형을 모두 마치면, 51세다.
그날이 과연 올까 싶을 정도로 아득했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나 멋진 인생을 살고 싶었던 게 뭐가 나쁜데. 어? 뭐가……."
그는 눈물이 고이는 눈을 가리며 끅끅 울었다. 같은 방 죄수들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줄도 모른 채.
"사천삼백사십오 번. 면회."
‘면회? 엄마인가?’ 거의 매일처럼 들르는 엄마.
정천우는 벽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며 몸을 일으켰다.
촤락!
손목에 채워지는 수갑은 오늘도 싸늘했다.
무거운 걸음을 옮겨 면회실에 도착한 정천우는 눈을 부릅떴다.
"여, 여보?"
이희선, 그녀였다.
‘대, 대체 왜?’
재판을 할 때도 변호사만 보낸 그녀다.
‘서, 설마 나를 아직 못 잊어서? 이제라도 날 용서하려고?’
충분히 그럴 여자다.
미련하고 멍청한 여자.
정천우는 웃음을 삼키며 의자에 앉았다.
희선을 이용할 생각에 달아오른 정천우는 그녀의 옆에 누군가 서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이희선의 눈이 ‘제발’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조차도 인식하지 못했다.
"잘 지냈어? 몸은 좀 어때? 애들은? 아빠 많이 찾지?"
"……."
"……여보?"
흔들리던 이희선의 눈동자에서 온기가 사라진다.
기대감이 사라지고, 실망과 경멸이 들어찬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사람, 종혁에게로 돌아간다.
"형사님 말이…… 맞았네요. 모두 다."
그제야 당황해 시선을 돌린 정천우의 눈에 종혁이 들어왔다.
종혁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제가 뭐랬습니까. 반성 따윈 절대 안 할 거고, 아이들을 걸고넘어져 동정심부터 유발시킬 거라고 말했잖아요."
자신을 향한 사과가 먼저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했건만, 정천우는 종혁이 이야기한 그대로였다.
"네, 그러네요. 정말…… 이렇게 나쁜 사람이었어요."
이희선 본인이 사랑했던 남자는 이런 남자였던 거다. 그녀는 가슴에 남아 있던 마지막 미련까지 털어 냈다.
그 모습에 정천우는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여, 여보!"
"지금부터 제가 할까요?"
"아니요. 제가 말할게요. 결국 저와 제 아이들을 위한 일이니까."
그녀는 고개를 돌려 정천우를 봤다.
"영우 아빠, 아니…… 정천우 씨."
감정이 사라진 인형 같은 표정.
이희선과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다. 아내가 맞는데 아내가 아닌 듯 낯설었다.
오싹!
그는 공포를 느꼈다.
"우린 지금부터 이혼하게 될 거예요."
철렁.
그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여보! 희선아!"
"애들 양육권은 당연히 내가 가져갈 거고, 우리 영우 설이 잘 키우기 위해서 민사 소송이란 것도 걸 거예요."
"희선아! 자, 잠깐만 희선아!"
"이분께서 소개해 주신 변호사님이 말하길, 당신 재산은 모두 나와 결혼한 이후 혹은 우리 결혼을 이유로 형성이 된 거라서 80퍼센트 이상 가져올 수 있대요. 그리고…… 그리고……."
"육체적 정신적 피해 보상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양육비도 지불해야 되고요."
이렇게 되면 정천우의 부모가 정천우에게 준 모든 재산을 가져올 수 있다.
"참고로 이효정 씨에게도 정신적, 육체적 피해 보상을 청구할 예정입니다."
"넌 또 뭐야! 안 닥쳐?! 희선아, 아니지? 희선아 나 좀 봐! 나 정천우야! 네 남편! 네 오빠-!"
듣기 괴로워진 희선은 눈을 질끈 감았고, 종혁은 격벽을 후려쳤다.
꽈아앙!
"흡?!"
놀라 굳은 정천우를 향해 종혁은 싱긋 웃었다.
"아가리 찢어 버리기 전에 입 닫으세요. 아직 말이 다 안 끝났으니까."
놀라는 교도관에게 고개를 숙여 준 종혁은 말을 이었다.
"이분께 들어 보니까 댁 부모님이 꽤 힘들게 하셨더라고요? 그것도 손해배상 청구가 들어갈 예정이니까 기대하세요."
종혁은 손해배상 청구를 할 항목에 대해 몇 가지 더 말했다.
털썩!
망연자실 주저앉은 정천우의 머릿속에 앞으로의 상황이 그려졌다.
이번 사건이 알려지며 의사 면허를 박탈당했고, 평생 의사면허를 취득할 수 없도록 제한됐다. 이 와중에 남은 재산까지 모두 잃게 된다면 정말 아무런 미래도 없는 셈이었다.
그의 얼굴이 점점 공포로 물들었다.
그러면서 불신도 차올랐다.
희선이 이런 악독한 짓을 저지를 리가 없었다.
"희, 희선아! 아니지? 너 그렇게 독한 여자 아니잖아. 맞지? 응? 거짓말이지?"
실성한 것 같은 그의 모습에 종혁은 이희선의 어깨를 감싸 쥐며 일으켜 세웠다.
보여 줄 건 다 보여 줬다.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초라하고 망가진 사랑했던 남자의 말로. 그러면서도 끝까지 용서를 빌지 않는 구제받을 수 없는 모습.
이제 이희선도 마음을 놓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거다.
"가시죠."
"……네."
"너 그러면 나 죽어! 죽어 버릴 거라고-!"
종혁은 양손으로 희선의 귀를 막았다.
"야, 이 새끼야-! 손 안 떼?! 희선아! 나 봐 봐! 아니잖아-!"
무너진 정천우를 힐끔 본 이희선은 발을 뗐다.
‘안녕.’
밖으로 나온 그녀는 화창하게 푸른 늦봄의 하늘을 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곤 종혁에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형사님이 아니었다면 손해배상 청구라는 것도 몰랐을 거예요."
아니, 할 생각조차 안 했을 거다. 종혁이 먼저 경고해 주지 않았다면, 정천우의 연기에 속아 그를 동정하고 결국 탄원서를 썼을 거다.
종혁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보상금을 다 합하면 아이 둘을 키우시는 데 어려움은 없으실 겁니다. 그렇게 되도록 도울 거고요."
수억에 달하는 보상금.
그 정도면 학군 좋은 동네에 보안도 뛰어난 빌라나 아파트를 얻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거다.
종혁은 그렇게 만들기 위해 리스트까지 뽑아 줬고, 자산 관리를 위해 권&박 홀딩스도 연결시켜 줬다.
또 그녀 몰래 영우와 희설에게 후원도 할 예정이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잘 해 주세요?"
"영우, 희설이와 행복하게 잘 사시라고요. 이제부터 아빠 없이 자랄 그 아이들이 그 어떤 부족함도 느끼지 못하며 클 수 있도록. 그 힘들고 어려운 걸 희선 씨가 해낼 수 있도록 돕는 것뿐입니다."
‘경찰이니까.’ 분명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힘들고 괴롭게 살아야 하는 게 맞는데, 지켜보면 힘들게 사는 건 피해를 입은 피해자다.
그 꼴을 보며 얼마나 분통 터졌는지 몰랐다.
그래서 바꾸고 싶었다.
가해자는 괴롭게, 피해자는 행복하게.
이를 위해선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이럴 때 쓰라고 번 돈이야.’
그 조직을 쫓는 것 외에도 돈을 번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저도 편모 가정에서 자라서 어머니가 절 얼마나 힘들게 키우셨는지 알거든요. 아버지 없이, 남편 없이 살다 보면 서러울 때가 정말 많더라고요. 여기에 돈마저 없으니, 어휴. 말도 못했죠. 저도 힘들었지만, 어머니는 더 힘드셨을 거예요."
종혁 본인이야 서러운 일이 있으면 어머니 고정숙에게 칭얼거리기라도 했지만, 어머니는 그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힘들어도 괴로워도 누구에게 하소연 한 번 못하고, 썩어 가는 가슴만 두드리며 사셨던 분이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종혁은 이희선이 울음을 터트리려 하자 등을 떠밀었다.
"어서 가 보세요. 애들이 기다리겠네요."
망설이던 이희선은 결국 차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연신 종혁에게 허리를 굽히며.
차에 오른 그녀는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엄마. 아빠는?
"아빠는 안 와?"
"응. 아빠 안 와. 이제 영우랑 설이는 엄마랑 셋이 함께 사는 거야. 그러니……."
정말 행복하게 살아야 했다.
남부럽지 않게, 남이 부러워할 만큼 잘 키워야 했다.
카가각!
세 가족을 태운 차가 새 출발을 위해 출발했다.
"푸후우."
‘끝났네.’ 이렇게 다 끝내고 나니 어느덧 5월 말이다.
이제 몇 달만 있으면 8월 여름방학이다.
러시아에 갈 시간.
러시아에 있는 놈들을 족칠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거다.
까드득!
종혁은 북쪽을 보았다.
지금쯤 몰려드는 투자금에 기쁨의 비명을 지르고 있을 그 조직의 놈들.
‘그래, 지금을 마음껏 즐겨라. 내가 가면…….’
"지옥이 열릴 테니까."
종혁은 얼른 오라며 손을 흔드는 무로이와 미하일을 향해 발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