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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31화 (131/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31화>

    딱, 딱, 딱!

    오늘따라 더 조용한 프로파일링수사과의 화이트보드에 몇 장의 사진이 붙는다.

    "이름 이희선. 나이 26세. 1남 1녀 중 막내로, 회사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가 있습니다. 교우 관계는 원만, 주변 탐문 결과 남편에게 헌신하는 아내로 칭송이 자자합니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브리핑하던 종혁이 눈을 질끈 감는다. 종혁이 할 말을 알아차린 무로이와 미하일도 마찬가지다.

    "현재 쥐약에 중독되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까드득!

    이 가는 소리가 울린다.

    살의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숨을 고른 종혁은 정천우의 사진을 가리켰다.

    권순호 경사가 손을 들어 브리핑을 막았다.

    "됐어, 그 새끼는 넘어가자."

    종혁은 마지막 인물 사진을 가리켰다.

    "이름 이효정. 나이 25세. 강남에 빌딩 2채를 가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아버지는 17살 때 사망……."

    "이것도 됐어."

    화이트보드에 다 적혀 있다.

    굳이 들어서 귀까지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돈 많은 불륜녀와 결혼하기 위해 아내를 죽이고 있다는 거잖아? 병원을 개원하기 위해?"

    "아무래도 그런 이유로 불륜을 저지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확신은 아니지만 정황이 그렇다.

    아내 보다 젊고, 자산까지 대단한 불륜녀.

    반면 평범한 회사원을 아버지로 둔 아내.

    그리고 곧 개원 자격을 얻는 전문의가 되는 정천우.

    척하면 착이다.

    형사로서 많이 보아 온 불륜 사건 케이스다.

    하지만…….

    "이거 증명할 수 있겠어?"

    정천우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증거, 아내를 살해하려 했다는 확실한 직접 증거가 부족했다.

    정천우가 정말 영양제인 줄 알았다며 발뺌을 한다면 살인미수가 아닌, 과실치상죄로 처벌이 끝날 가능성도 약간이나마 존재했다.

    일말이나마 그러한 가능성이 남겨져 있어서는 안 됐다.

    이 끔찍한 악마는 반드시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권순호는 그 부분을 짚고 있었다.

    "그건 일단…… 피해자 목숨부터 구하고 알아봐야죠."

    "음?"

    종혁은 전화기를 들었다.

    "예. 거기 도착했죠? 그럼 내가 말한 차의 사이드미러를 부숴 버리세요."

    정천우가 타고 다니는 차량의 사이드미러 파손.

    이번 수사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  *  *

    토요일, 이희선은 급한 환자가 생겼다는 남편 대신 서비스센터에 도착했다.

    사이드미러가 파손되자 수리 기간 동안 타고 다니시라며 센터에서 렌트해 줬던 차를 몰고 온 그녀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한 달 사이에 차가 두 번이나 파손됐다.

    "보험료 오를 텐데."

    남편이 말하길 차를 자주 수리하게 되면 보험료가 오른다고 했다. 빠듯한 살림에 고정 지출이 몇 만 원 추가될 걸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콜록, 콜록."

    또각또각!

    서비스센터를 내려오는 여성의 모습이 화인처럼 망막을 파고든다. 백옥같이 하얀 피부에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한 젊은, 아니 어린 여성.

    마치 홀린 듯 이희선의 시선이 그녀를 좇아 움직였다.

    "수고했어요. 여기 팁."

    "헛! 안녕히 가십시오!"

    수표와 차키를 맞교환한 여성이 남편이랑 똑같은 외제차를 몰고 사라졌다.

    마치 딴 세상에 사는 것 같은 어린 여성.

    순간 울컥한다.

    ‘저 사람은 나처럼 보험료, 돈 걱정 안 하겠지?’

    아웃렛에서 싸게 샀다고 기뻐했던 만오천 원짜리 저가 명품 티셔츠가 갑자기 후줄근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삶이 초라해지고, 몸마저 아프니 내가 왜 이 어린 나이에 이렇게 살고 있나 우울해졌다.

    "엄마! 자동차다, 자동차야!"

    "엄마, 이상한 냄새 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 영우와 희설.

    두 아이의 해맑은 목소리에 시선을 돌린 이희선에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내가 너희 때문에 산다, 살아.’

    "우리 영우, 설이. 이쁜 짓!"

    "이쁜 짓!"

    양볼에 검지를 대고 배시시 웃는 아이들처럼 배시시 웃은 그녀는 서비스센터로 향했다.

    하지만 온통 대리석인 프런트에 들어서자 어깨가 움츠러든다.

    남편이 일이 있어 차를 찾기 힘들 때 몇 번 와 본 곳이지만 여전히 이런 곳은 낯설다. 직원 말곤 아무도 없어서 더 그랬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안녕하세요. 영우, 설이 인사."

    "안녕하째요!"

    "어머, 귀여워라. 안녕?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예뻐요!"

    자식이 예쁘다는데 싫어할 부모가 어디 있을까.

    이희선의 어깨가 솟았다.

    "차 반납하고, 차 찾으러 왔는데요."

    "네. 차량 번호가 어떻게 되시죠?"

    이희선은 차량 번호를 말했고, 프런트 여직원은 깜짝 놀랐다.

    "축하드려요, 고객님!"

    "네?"

    "이벤트에 당첨되셨어요!"

    "이, 이벤트요?"

    "저희 센터를 이용한 만 번째 고객님부터 만 일곱 번째 고객님까지 무료로 블랙박스를 설치해 드리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거든요!"

    이희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내가 당첨을?’

    주위에서 듣기만 했던 이벤트 당첨.

    그녀는 당혹스러우면서도 행복했다.

    "지금 바로 설치해 드릴까요?"

    "자, 잠시만요!"

    그녀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정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 참. 왜 이렇게 안 받아."

    몇 번 더 전화를 건 그녀는 활짝 웃었다.

    -여보세요?

    시끌시끌. 왁자지껄.

    "오빠!"

    -응. 무슨 일이야?

    이희선은 얼른 사정을 설명했고, 정천우는 화들짝 놀랐다.

    ‘얘가 이런 운이 있었어?’

    이 당시에는 흔치 않던 블랙박스.

    이게 필요한가 싶어서 설치하지 않았는데, 공짜로 설치할 수 있다면 당연히 환영이었다.

    -정말? 어, 설치해. 얼른 설치해 달라고 해.

    "네! ……그런데 왜 이렇게 시끄러워요?"

    -아, 잠깐 뭐 사러 나와서 그래. 그럼 그만 끊을게.

    "잠시만요, 아버님!"

    여직원이 얼른 핸드폰을 넘겨받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가 무료로 증정 이벤트를 해 드리는 거지만, 혹여 법적인 문제가 생길 경우가 있어서 녹음을 하고 있어요. 괜찮으신가요?"

    -예? 음…….

    와아아!

    왜인지 함성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예. 동의할 테니까 그렇게 해 주세요!

    "아니요! 동의하셔야 할 부분이 더…….

    -전 뭐든 일단 다 동의하고, 나머진 아내에게 말하세요. 끊습니다.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황망하게 응시하던 여직원이 이희선을 쳐다봤다.

    "오, 오빠가 많이 바쁜가 봐요."

    이희선은 어색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가져왔고, 표정을 수습한 여직원은 아래서 블랙박스와 녹음기를 꺼냈다.

    "방금 전 남편 분께도 동의하셨지만, 혹여 법적인 문제가 생길 경우가 있어서 녹음을 하고 있어요. 괜찮으신가요?"

    "네!"

    약간 꺼림칙했지만 정천우도 동의를 했기에 이희선은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블랙박스를 빤히 바라봤다.

    활짝 웃은 여직원은 발랄하게 말했다.

    "지금부터 말하는 모든 내용은 법적인 증거가 된다는 걸 명시합니다. 인정하시나요?"

    "네!"

    "지금부터 녹화되는 모든 것들은 법적으로 쓰일 수 있으며, 혹여 기기 결함 등의 이유로 녹화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저희 측의 책임은 없습니다. 인정하시나요?"

    블랙박스를 두드리는 여직원의 손을 본 이희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여직원은 이희선을 진지하게 응시했다.

    "법적인 문제가 생길 시 언제든 협조해 주실 건가요?"

    "네? 아, 네!"

    "네, 확인되셨습니다. ……아차."

    여직원은 아래에서 커다란 약통과 까만 사탕이 가득 담긴 유리병을 꺼냈다.

    "이것도 증정해 드린다는 걸 깜빡했네요."

    여직원은 이희선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이게 여자에게 정말 좋은 거거든요."

    깜짝 놀란 이희선이 그녀를 본다.

    "거기다 여자에게 참 좋은데 어디에 좋다고 말은 할 수 없고…… 고객님은 제 말이 뭔지 아시죠? 같은 여자잖아요."

    순간 얼굴이 발그레해진 이희선이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아직은 부끄러운 이야기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방금 전 스쳐 지나갔던 여성이 떠오른다. 뽀얗고 하얀 피부를 명품으로 치장한 어린 여성.

    "호, 혹시 피부도 좋아지나요?"

    "그건 기본이죠."

    "아."

    "알약 형태로 드실 수 있는 것과 사탕처럼 드실 수 있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사, 사탕이요? 이런 게 사탕으로도 나와요?"

    "애들 키 크는 약도 젤리로 나오는데요 뭘. 그리고 여자가 집에서 약 같은 거 먹으면 남자들이 싫어하잖아요."

    흠칫!

    ‘알약이면 오빠가 싫어할 거야.’

    기침약을 처방받았을 때도 왜 말하지 않고 병원에 갔냐며 방방 뛰던 남편이다.

    "참고로 사탕은 커피맛이에요."

    그게 결정타였다.

    "사탕으로 주세요."

    "네에."

    다 안다는 듯 웃은 그녀는 사탕이 가득 담긴 유리병까지 종이백에 담아 내밀었다.

    "그럼 가실까요? 차까지 안내해 드릴게요."

    "네!"

    밖으로 나오니 렌트한 차에 달아 놓았던 애들용 카시트가 원래 차로 옮겨진다.

    "그런데 애들이 참 예뻐요. 아드님이 아빠 닮았나 봐요."

    "헤헷. 정말 그렇게 보이세요?"

    "그럼요. 그리고 애들이 구김살이 없는 게 아빠가 엄청 잘해 주나 봐요."

    부러움이 서린 눈에 이희선의 콧대가 으쓱인다.

    "제가 제 남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닌데, 애들 아빠가 진짜 잘해 줘요. 퇴근하면 막 놀아 주고, 만날 목욕도 같이해 주고!"

    "어머머, 정말요? 와, 남자가요?"

    "그럼요. 그치, 영우야? 아빠가 막 같이 목욕해 주지?"

    "아닌데. 아빠 우리랑 목욕 안 하는데."

    "으응?"

    "아빠 이제 어푸아푸 같이 안 하는데…… 그치?"

    "응."

    이희선의 눈이 크게 흔들린다.

    "호, 호호호. 어제도 했잖아! 왜 그래."

    "블랙박스까지 설치 다 됐습니다. 차키 여기 있습니다."

    "네, 네! 어, 얼른 타자! 안녕히 계세요!"

    "언니 빠빠-!"

    당황한 이희선은 얼른 애들을 태우고 떠났고, 숙였던 허리를 편 여직원은 미간을 좁힌다.

    뚜벅뚜벅.

    그녀의 등 뒤에서 긴 머리카락들이 담긴 투명 봉투를 든 종혁이 다가와 옆에 섰다. 권순호 경사나 미하일 등은 프런트에서 무언가를 떼어 내고 있었다.

    "……후아! 나 잘했어?"

    종혁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배우 하셔도 되겠던데요, 선배님?"

    "흐히히. 그래?"

    선배, 현재 소년계에서 근무하는 이하나.

    4인조 망치 뻑치기 사건 때 중부서 상황통제실에서 혁혁한 공을 올렸던 그녀는 종혁에게 진 빚을 갚고자 그의 부탁에 흔쾌히 응했다. 내막을 듣곤 전력을 다해 협력했다.

    "……너도 들었지?"

    방금 전 영우가 했던 말.

    편견이 생겨서 그런지 마치 자식에게 정을 뗀 모습처럼 보여 더 화가 났다.

    "듣다 뿐일까요."

    이희선이 프런트에 들어오는 모습부터 모두 CCTV로 지켜봤다.

    이하나와 대화를 하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아들딸에게 머물러 있었다.

    "제발 그 개새끼 찢어 죽여 줘. 어떻게 저런 조강지처를……."

    으드득!

    그녀의 몸에서 살의가 뿜어져 나온다.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당연하죠."

    그러기 위해 준 사탕, 아니 쥐약 해독제와 비타민K3 등 몸에 좋은 걸 버무린 뒤 커피향을 입혀 만든 사탕이다.

    그것이 죽어 가는 그녀의 몸을 정상으로 되돌릴 거다.

    나탈리아에게 구한 해독제이니 쥐약을 한꺼번에 치사량만큼 섭취하지 않는 이상 이희선이 죽을 염려는 없었다.

    혹여 아이들이 섭취해도 이상은커녕 오히려 몸에 좋을 거라 했기에 그런 상황이 생겨도 안심이다.

    ‘쥐약이 담긴 통 옆에 놓여 있던 커피맛 사탕 봉지.’

    분명 쥐약의 쓴맛을 가리기 위해 가져다 놓은 사탕일 거다. 아이들 간식과 따로 놓여 있었으니 거의 백 퍼센트다.

    ‘개새끼!’

    이제 남은 건 정천우가 차 안에서 혼잣말이건 전화건 범죄에 관련된 말을 지껄이는 걸 기다리는 것뿐이다.

    정천우는 뭐든지 동의를 한다는 바보 같은 말을 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권리를 아내에게 양도까지 했다.

    법적 효력이 발생된 거다.

    ‘이래서 약관을 다 읽어 보라는 건데…….’

    차가운 미소가 종혁의 입가에 피어났다.

    "어이구, 다 끝나셨습니까!"

    센터의 센터장이 권순호 경사와 함께 다가오자 종혁은 센터장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적극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경찰 일인데 당연히 협력해 드려야죠. 그리고……."

    센터장이 목소리를 낮춘다.

    "저희 브랜드를 다섯 대나 가지고 계시는 오너신데요."

    한국 지사에서 특별 관리하는 오너고, 이번 공문도 지사에서 내려왔다.

    그래서 오늘 하루 센터를 쉬며 청소도 깨끗이 했다.

    "하하. 홍보 많이 할게요. 여기 센터도."

    "아이고, 그런 걸 바란 건 아닌데."

    헤벌쭉 웃은 센터장은 수고하라며 돌아섰고, 권순호 경사는 혀를 내둘렀다.

    "넌 진짜……."

    종혁이 수사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어도 서비스센터 전체를 하루 대여할 만큼 막대한 돈을 쓸 거라곤 생각 못한 그다.

    "아무튼 수고했다. 저분이 살아난다면 네가 살린 거야."

    종혁의 어깨를 두드린 권순호는 종혁이 손에 쥔 이희선의 머리카락이 든 증거물 보관 봉투를 봤다.

    "이제 그걸 국과수에 넘기면 되겠네."

    락스까지 뿌려 깨끗이 청소한 프런트이기에 오염도가 희박하다.

    이하나는 똥머리로 머리를 고정시켰고, 직원으로 위장했던 다른 경찰들도 젤과 스프레이로 머리를 굳혔다.

    바닥에 머리카락이 있다면 이희선과 두 아이의 것이다.

    "네. 이게 확실한 증거가 되어 줄 테죠."

    그녀의 몸이 정상이 되면서 사라질 중독 증거. 그리고 지금 그녀의 몸 상태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나타낼 증거다.

    그래서 법적인 문제가 생길 시 언제든 협조해 줄 거냐는 말도 덧붙였던 거다. 그게 비록 기만이라도 이희선과 영우, 희설을 살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최 동지!"

    "종혁아!"

    종혁은 프런트에 설치해 뒀던 초소형 카메라 등을 수거해 다가오는 미하일과 무로이를 보며 핸드폰을 들었다.

    "어, 차 가지고 와."

    희선이 센터에 도착했을 때 스쳐 지나갔던 명품녀.

    가출청소년 센터에서 섭외한 아이였다.

    탤런트가 꿈인 아이.

    -오빠! 나 이거 조금만 더 타면…….

    "뒤질래?"

    전화를 끊은 종혁은 파란 하늘을 보며 담배 연기를 뿜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네.’

    죽을 뻔한 피해자를 살렸으니 이제 용의자의 살해 의도를 알아낼 차례였다.

    ‘제발 하찮고 찌질한 이유가 아니길 빈다.’

    종혁의 이에서 담배 필터가 뭉개졌다.

    *  *  *

    이른 아침, 번쩍 눈을 뜬 이희선은 잠시 멍해져 있다가 이내 명치를 매만지며 활짝 웃었다.

    그동안 콱 막힌 것처럼 답답하고 통증이 느껴지던 심장과 명치가 요 며칠 사이 아프지 않다.

    몸도 가볍고 개운하다.

    모두 서비스센터에서 받은 찐한 블랙커피맛 사탕, 아니 사탕처럼 만든 약을 복용한 이후부터다.

    커피맛이 너무 진해서 애들도 한 번 맛보곤 학을 뗐던 약.

    ‘역시 엄마 말처럼 산후 부작용이 뒤늦게 찾아온 거였나?’

    "으으!"

    기지개를 편 그녀는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통통통!

    귀를 두드리는 소리와 구수한 된장냄새에 눈을 뜬 정천우가 이희선이 누워 있던 자리를 바라보다 안방을 빠져나갔다.

    "아, 일어났어요? 얼른 씻고 나오세요."

    정천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저렇게 안색이 좋지?’

    며칠 전부터 아내의 안색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온 음료에 섞는 쥐약의 양을 더 늘렸는데도 나빠지기는커녕 더 좋아지고 있었다.

    ‘왜? 대체 왜?’

    정천우는 급격히 마르는 입술을 혀로 핥았다.

    "여보, 요새 뭐 좋은 거 먹어?"

    "아니요?"

    ‘들키면 안 돼!’ 또 방방 뛸 거다.

    남편을 속이는 게 양심에 찔리지만, 이희선은 얼른 산후 후유증을 털어 내고 남편을 더 열심히 내조하고 싶었다.

    ‘그래야…….’

    이희선은 갑자기 욱신거리는 가슴을 애써 무시하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평소처럼.

    "왜요?"

    "……아니야. 그냥 예뻐서."

    "피이. 화장도 안 했는데. 얼른 씻어요! 오늘도 출근한다면서요!"

    일요일에 출근하는 게 싫지만, 환자 때문이라니 어쩔 수 없이 이해하려는 그녀다.

    "……아, 맞아. 그랬지."

    고개를 끄덕인 정천우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다녀오째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아직 졸린 건지 눈을 비비는 아들딸과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 정천우는 차에 시동을 걸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흠. 양을 더 늘려야 하나."

    흠칫!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화들짝 놀란 그는 블랙박스를 봤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설령 자신의 목소리가 녹음이 된다고 한들 상관없었다.

    누가 자신의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겠는가?

    여차하면 한 번씩 데이터를 삭제하면 그만인 문제였다.

    띠리링!

    -오빠, 어디쯤이에요?

    "네, 효정 씨. 지금 출발해요. 오늘 어디 갈지 정했어요?"

    미소 피어나는 얼굴로 차를 빼는 그는 몰랐다.

    그가 맨션 주차장을 나서자마자 검은색 승합차가 따라붙었다는 걸.

    정천우는 이 모든 걸 꿈에도 모른 채 효정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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