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30화 (130/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30화>

    ‘역시 사람이 늘어나니 이렇게 편하구나.’

    무로이가 아니었다면 아마 더 깊게 생각하고 나서야 깨달았을 부분. 수사에 큰 진전이 생겼다.

    "자, 그럼 다시 정리해 보자."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희미한 CCTV 사진을 가장 위에 놓인 채 온갖 글이 써진 화이트보드.

    권순호 경사는 그걸 하나씩 짚으며 개요를 정리했다.

    "범인은 범행 대상이 언제 집을 비울지 어떻게 알았지?"

    무로이와 미하일이 바로 입을 연다.

    "1박 2일 리조트 숙박권이나 연극, 뮤지컬 티켓."

    이놈들은 놀랍게도 범행을 위해 투자까지 했다.

    범행 대상이 자리를 비우기를 막연히 기다린 게 아니라 위장한 신분, 즉 보험 회사나 인터넷 회사 이름으로 티켓을 줘 버렸다. 쓰지 않고 버리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티켓을.

    종혁과 권순호의 추리 덕분에 이 사실이 드러났다.

    "자, 이제 그러면……."

    "범행들이 일어난 용산구 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의사들 리스트를 뽑으면 되겠네요."

    그리고 혹시나 이미 놈들의 손길이 뻗어, 최근 보험설계사나 인터넷 설치기사에게 티켓을 받은 사람이 얻는지 찾으면 된다.

    범위가 확 줄여졌다.

    권수호 경사는 핸드폰을 들었다.

    "예, 프로파일링수사과 권수호 경사입니다. 놈들의 다음 범행 대상을 추론했기에 연락드렸습니다."

    *  *  *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놈들의 다음 범행 대상이 누군지 추려진 이상 이제 잡는 건 시간문제다.

    하지만…….

    "프로파일링이 있다고 해도 결국 발로 뛰어야 하는군."

    약간 실망하는 미하일의 모습에 종혁은 씁쓸히 웃었다.

    "이건 수사 기법이 아니라 제도적인 문제니까."

    전화라도 쭉 돌리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겠지만, 용산구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의사들의 개인 정보를 넘겨받기란 무리가 있었다.

    종혁과 권수호는 확신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그들의 추리는 여전히 추론에 불과했으니까.

    ‘확 씨. 그냥 국정원에 연락해?’

    그들이라면 전화번호를 뽑아 줄 수도 있을 거다.

    갈등하던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여기까지나마 범위를 좁힌 걸 다행으로 여겨야죠 뭐."

    "알았어, 동지. 흠. 그런데 여긴 며칠 전에 사건이 일어난……."

    "아, 맞네. 그 동네."

    ‘딴 데 갈까?’ 제아무리 간 큰 놈이라도 털었던 동네를 며칠 만에 또 털진 않는다. 하지만 백 퍼센트는 아니라서 종혁은 주변을 훑으며 느릿하게 걸었다.

    "음? 최 동지, 저기."

    "응? 뭐가……. 하."

    세 번째가 필연이라면, 네 번째는 대체 뭘까.

    "누가! 어떤 나쁜 사람이! 오빠 차를! 콜록, 콜록!"

    옆 유리가 깨진 차를 보고 방방 뛰는 여인.

    "어? 겨, 경찰 아저씨! 여기요! 여기예요!"

    종혁은 이쪽을 보며 손을 흔드는 여성 이희선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아, 맞아. 나 지금 정복이지.’

    순간 종혁은 눈을 빛냈다.

    ‘잠깐 이거?’

    방금까지 이야기하던 것과 아주 흡사한 장면.

    종혁은 귀신에 홀린 듯 그녀에게 다가갔다.

    "예, 신고하셨죠?"

    "네! 그런데 진짜 빨리…… 아."

    종혁은 갑자기 휘청이는 그녀를 재빨리 부축했다.

    "쿨럭, 쿨럭! 웨엑!"

    "이봐요! 괜찮으세요?!"

    심장을 두드리며 괴로워하던 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제가 몸이 안 좋아서요…… 아무튼!"

    마치 일상이라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긴 그녀는 상황을 설명했지만, 종혁은 그녀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갑작스런 차량 파손.

    주위를 둘러본 종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댁에 혼자 계시나요?"

    "네? 아, 아뇨. 인터넷 속도를 점검하러 오신 기사님이랑 같이 있는데…… 그건 왜요?"

    의아해하는 그녀.

    종혁은 왜 홀린 듯 그녀에게 다가섰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차에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지 않네요."

    "블랙박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단 사건을 접수하고 주위 CCTV를 뒤져 볼 테니 신고자분 성함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네!"

    개인 정보를 순순히 말한 그녀는 꼭 부탁한다고 고개 숙여 부탁하곤 맨션으로 올라갔고, 종혁은 그녀의 등을 빤히 응시하다 돌아섰다.

    ‘역시 안 좋아.’

    좋지 못한 낯빛과 잦은 마른기침.

    입안에서도 치약 냄새와 함께 묘한 냄새가 난다.

    이 외에도 그녀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신호가 가득하다.

    ‘이런데도 의사 남편이 가만둔다고?’

    "최 동지."

    종혁은 여성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뭔가 말하려는 미하일을 멈춰 세웠다.

    "쉿. 우릴 보고 있어. 일단 내 차로 가자."

    돌아선 그는 용산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다.

    "예, 수고하십니다. 방금 신고 접수된 파크맨션 차량 파손 사건 때문에 연락드렸는데요."

    한편 그녀의 집 안.

    안경을 낀 평범한 인상의 수리 기사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를 맞이한다.

    "정말 감사해요. 기사님 아니었다면 누가 오빠 차에 돌을 던졌는지도 몰랐을 거예요."

    삐용삐용 경보음 소리에 댁의 차일 수도 있으니 확인해 보라고 말한 수리 기사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젓는다.

    "점검 모두 끝나셨고요. 이제 인터넷을 본래 속도로 이용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 그럼 우리 애들 동화도 막 빠르게 나오는 거죠?"

    "네? 아, 네. 그럼요. 아차. 사모님 저희 인터넷에서 우수 이용 고객을 선별해서 선물을 드리고 있는데……."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 가장 유명한 뮤지컬 1인 동반 티켓이다. 비싸서 갈 엄두도 못 내는 뮤지컬.

    "쉿! 아시죠?"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정천우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고, 모자를 고쳐 쓴 수리 기사는 집을 나섰다.

    마스크까지 쓴 그는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여자가 외제차를 끌기에 따라와 봤더니……."

    결혼 예물과 돌 반지 등 귀금속이 한가득이다.

    집안에 한의학 서적이 있는 걸 보면 남편은 한의사.

    우연도 이런 우연일 수 없다.

    맨션 입구나 근처에 CCTV도 없다. 여태까지처럼.

    있어 봤자 저런 화재감지기뿐이다.

    입술을 비튼 그는 핸드폰을 들며 맨션을 빠져나갔다.

    "어, 지금 어디야?"

    입구 바로 옆에 세워진 차 안에 종혁이 있는 줄도 모르고.

    둘은 그가 사라지자 뒤로 젖혔던 의자를 세웠다.

    "지금 검거하지 않는 거야?"

    "증거가 없으니까."

    맨션 건물 입구를 향해 있던 블랙박스를 뜯어내 살피던 종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하일에게 보여 줬다.

    모자와 마스크를 썼지만, 얼굴 윤곽이 제법 잘 보인다. 그가 아는 베테랑 형사라면 이것만으로도 잡을 수 있을 정도다.

    "한국은 정말 놀라워."

    듣기로 러시아보다 못살았던 나라였다는데, 러시아에도 없는 물건들이 만들어진다.

    또 높은 빌딩과 깨끗한 거리는 어떻던가.

    "일단 나머지도 수거하자."

    차문을 열고 나온 종혁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혹여 지문이 겹쳐질까 박박 닦아 놓았던 1층 버튼에서 지문을 채취하던 종혁은 혀를 찼다.

    "이 새끼 계단으로 내려왔네."

    역시 치밀한 놈이다. 아마 계단을 뒤져도 유의미한 지문이나 머리카락 등은 습득하지 못할 거다.

    그래도 상관없다.

    띠잉! 스르릉!

    이희선의 집이 있는 층에 도착한 그는 맞은편 집 앞에 놔둔 작은 택배 박스를 집어 들며 전화를 걸었다.

    귀퉁이에 작은 구멍이 뚫린 박스.

    "예, 대장님. 지금 유력한 용의자의 얼굴을 땄는데요. 어디세요?"

    이희선의 집을 빤히 바라보던 종혁은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종혁은 일단 여기에 신경 쓰기로 했다.

    미하일은 종혁이 대체 왜 이런 걸 가지고 다니는 건지 의문이었지만, 덕분에 유력한 용의자의 얼굴을 확보할 수 있어서 넘기기로 했다.

    *  *  *

    예쁘게 차려입은 이선희가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렇게 좋아?"

    "오랜만에 오빠랑 단둘이 보는 뮤지컬인걸요!"

    이게 대체 몇 년 만일까.

    결혼 하고 처음 가는 뮤지컬 관람이었다.

    애들을 이미 시댁에 맡겨 놓은 상황.

    그녀는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정천우의 생각은 달랐다.

    ‘쯧. 알리바이만 아니라면.’

    가정과 아내에게 정말 충실했다는 알리바이.

    속으로 혀를 찬 그는 입을 열었다.

    "그럼 갈까?"

    그녀는 대답 대신 냉큼 정천우의 팔짱을 꼈고, 움찔했던 정천우는 이내 평소처럼 다정히 웃으며 집을 나섰다.

    딸각.

    불이 꺼졌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드르륵!

    현관 열쇠가 돌아가며 문이 열리며 파마할 때 쓰는 캡 같은 걸로 신발을 감싼 남성이 들어온다.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마스크에 장갑까지 낀 사내는 곧바로 안방으로 향하여 서랍장의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커다란 보석함이 그의 망막에 맺힌다.

    "흐흐."

    그는 챙겨 온 가방에 보석함을 집어넣고는 화장대로 향했다.

    달그락, 달그락.

    안방부터 작은방까지 모두 훑은 그는 거실에 서서 핸드폰을 들었다.

    ‘역시 자식들은 없군.’

    노린 일이라 웃음만 나온다.

    자식들의 연령대를 확인한 후 선물로 줄 티켓의 종류를 달리했던 그.

    "어, 난데. 차 시동 걸어 놔. 바로 출발하게."

    전화를 끊은 그는 현관문을 잡고 문을 열었다. 마치 자기 집을 나서듯 자연스럽게.

    그런데.

    "어?"

    웬 30대 사내가 서 있다. 아니, 사내들이다.

    죄다 험상궂은 인상들.

    "이런 씨?!"

    "안녕하세요.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빠아악!

    턱을 얻어맞은 그는 정신을 잃으며 신발장을 굴렀다.

    "헉, 헉!"

    도둑이 들었단 전화에 뮤지컬을 보다 말고 달려온 정천우는 집 현관에 쳐진 폴리스라인에 파랗게 질렸다.

    ‘안 돼! 그게 들키면 안 돼!’

    "정천우 씨 되십……."

    "비켜!"

    "억?!"

    경찰을 밀치며 안으로 들어온 정천우는 부엌 식탁에 놓은 하얀 통을 발견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러다.

    "……아."

    거실에 있던 형사들이 모두 그를 멍하니 보고 있다.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반응.

    "오빠!"

    "……여보!"

    "이, 이게……."

    웬 남자들이 소중한 보금자리를 뭉개고 있다.

    이희선의 얼굴은 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나가자. 형사님들 수사하실 수 있게……."

    "으응."

    "아,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용산 경찰서 형사 4팀의 반장이 둘에게 다가서며 패물들을 보여 준다.

    거실 한편에 선 종혁이 그런 그녀를 본다.

    "애, 애들 돌 반지!"

    마치 세상 가장 소중한 보물을 찾는 듯 눈을 뒤집으며 살피다 1돈 금반지 두 개를 들고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그녀. 그제야 콜록콜록 기침이 터진다.

    그리고 정천우는 그런 이희선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독이고, 그런 정천우를 보는 종혁의 눈빛이 차갑다.

    ‘집 안에…….’

    "최 동지."

    "쉿."

    "……."

    "일단 나가자."

    종혁은 반장의 손에 이끌려 안방으로 향하는 둘을 보며 맨션을 빠져나갔다.

    탁! 치익!

    혼란한 얼굴을 한 미하일의 입에서 뿌연 담배 연기가 흩어졌다.

    그는 한 번 더 생각을 하곤 입을 열었다.

    "……집 안에 약이 거의 없더군."

    그렇게 아파 보이는데 집에 있는 약이라곤 알약이 하나씩만 든 약 봉지뿐이다. 가벼운 감기라도 약을 두 개, 세 개 처방받는데 하나뿐이었다.

    이건 뭔가 이상했다.

    더 의심스러운 건 그녀의 신체에서 나타난 반응이다.

    미하일은 그게 어떨 때 일어나는 반응인지 알고 있었다.

    "최 동지, 이거…… 음?!"

    미하일은 종혁이 내민 약봉지와 하얀 가루가 담긴 작은 봉지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그걸 언제?"

    "아까."

    이미 의심하고 있던 상황에서 약이 하나씩만 든 약봉지를 발견했다. 거기에 마치 비타민통 같은 것에 정체불명의 가루가 있었다.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네, 팀장님. 저 종혁인데요."

    국정원 팀장. 종혁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머릿속을 강하게 흔드는 예상이 맞다면 하루, 아니 단 1분 1초라도 급한 상황이다.

    국과수는 너무 늦다.

    "성분 분석을 좀 부탁할까 하는데 가능할까요?"

    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난 후.

    -최 생도. 하나는 기침약인데, 다른 건…… 허 이게 왜 다른 가루랑 섞여 있지?

    예상이 맞았다. 혹시나는 역시나가 되었다.

    ‘빈집털이를 당한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라 해야 할지.’

    종혁은 맨션을 올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까드득!

    "미하일, 소리 없는 암살자라고?"

    "……우리 러시아에선 그렇게 불리지."

    누군가가 정말 싫을 때 먹이는 독약.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효과가 확실한 독약.

    극소량으로 천천히 장복시키면 딱 이희선처럼 시달리다 죽기에 부검을 해 보지 않은 이상 알 수조차 없다.

    옆집 할아버지가 그렇게 시달리다 죽었기에 미하일도 의심했던 거다.

    하지만 원래 쓰이는 용도는 다르다.

    "그리고 이것의 원래 이름은……."

    "알아."

    종혁은 이가 부셔져라 악물었다.

    "쥐약."

    얼마 전, 이희선의 입에서 맡았던 희미한 냄새.

    그건 쥐약을 먹고 사망한 사람의 그것과 비슷했다.

    즉, 정천우는 명백한 살인의지를 가진 채 살해 행각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것도 아내를 대상으로.

    두 자식을 영종대교에서 던져 죽이며 ‘죄는 회개할 수 있다’라는 희대의 망언을 지껄인 악마가 아내마저 죽였던 것이다.

    종혁의 눈이 살의를 머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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