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25화>
연회장 안.
뜨겁고 추악함만 가득했던 공간에 혼란과 공포가 넘실거린다.
"뭐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거야!"
"씨발. 이거 우리 좆되는 거 아니야?"
"김 사장! 지금 걔들 데리고 어디 좀 가 있어! 뭐? 촬영? 그건 내가 어떻게 해 줄 테니까 가 있으라고!"
그들이 가장 믿었던 패인 현몽준이 돌연 사퇴했다.
현몽준의 존재는 삼성클럽 회장과 간부만 알고 있던 비밀이라지만, 다른 이들도 알음알음 알고 있었다.
그동안 몇 번의 선거를 겪고, 성의를 모았던가.
또 이번 대선 얼마나 많은 성의를 걷었던가.
누군지 추리하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그런데 그 대통령 당선이 유력했던 후보가 돌연 사퇴를 했다.
일이 어그러진 게 분명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그들은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무기였던 방송과 신문.
여론.
그게 자신들에게 휘둘러질 수 있다.
찢기고, 뭉개지고, 사회에서 매장을 당할 거다.
그게 미치도록 두려웠다.
삼성클럽의 회장은 그들의 반응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빌어먹을! 갑자기 왜!’
당장 며칠 전에도 여자와 성의를 전달했다.
이건 배신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지금 닥친 이 상황을 현명하게 헤쳐 나가는 게 우선이다.
"회장님! 괜찮은 겁니까?! 우리 아무 탈 없는 거 맞죠?!"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회장은 억지로 웃었다.
"일단 저희 클럽 때문이란 게 확실시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일단 좀 더 사태를 관망한 후에……."
뚜벅뚜벅.
갑자기 경호원 중 한 명이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회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그 모습을 본 회원들의 심장이 내려앉는다.
"어, 어. 하하. 밖에 누군가 많이 와 있다네요…… 씨발!"
그는 돌연 몸을 돌려 뛰었고, 이내 회원들은 그 행동의 뜻을 알아차렸다.
"……저 개새끼!"
"도, 도망쳐!"
"가, 같이 가!"
연회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편 호텔 밖 거리.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호텔 입구를 응시하던 강철선이 우르르 몰려 나오는 경호원들을 보며 입맛을 다신다.
"아이코, 들켜 쁫나 보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이곳 도로는 모두 통제되어 있다.
독 안에 든 쥐였다.
‘하, 이 예쁜 썩을 놈.’
강철선은 호텔 입구를 응시하는 종혁을 봤다.
이번에도 종혁은 밥상을 차리다 못해 떠먹여 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개입하지 말라는 말을 무시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단단히 혼을 내야 됐다.
‘좀 있다가 보제이.’
강철선은 서울지방검찰청 수사관들과 경찰 본청 특수범죄수사과 형사들을 쭉 둘러봤다.
"다들 연장 챙겼으요?"
모두 대답 대신 쇠파이프며 야구방망이를 두드린다.
종혁과 강철선은 흐뭇이 웃었다.
‘이게 어딜 봐서 형사야? 깡패지.’
그래도 이러니까 형사다.
험상궂은 사나이 마초들.
"하따 마 든든하네! 그럼……."
강철선이 권총을 꺼내 약실을 확인한 뒤, 호텔 입구를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드갑시다."
"자, 드가자-!"
"……푸흐흐."
"아이고. 오늘 푸닥거리 좀 하겠네."
형사와 검찰 수사관들이 도로를 건너고, 종혁도 우두둑 어깨를 풀며 걸음을 옮겼다.
"짜슥아, 닌 후문 가서 구경해라. 어데 형사도 아닌 게. 콱 씨."
합류를 하라고 했지, 검거를 하라곤 안 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이건 별개의 문제였다.
"에이."
괜히 흥분했다.
혀를 찬 종혁은 몇몇 형사들과 함께 후문으로 달렸고.
"막아!"
"뚫어!"
호텔 입구에서 막아야 하는 자와 뚫어야 하는 자들 사이에 격돌이 벌어졌다.
* * *
툭툭, 탕탕.
후문 중 직원들만 출입하는 쪽문에 선 형사들이 야구방망이로 어깨를 두드리고, 쇠파이프로 땅을 두드린다.
진압조가 진입한 지 30분.
슬슬 지루해졌다.
"종혁아, 검거 끝나면 한잔할까?"
"시간 돼요?"
"……씨부럴. 맞네. 조서 써야 하네."
오늘 집에 들어갈 수 있으면 다행이다.
종혁은 그런 그들은 안쓰럽다는 듯 봤다. 직접 검거를 못해 아쉽지만 이건 다행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늦어? 예상외로 반항이 세나?"
"그러게. 경호원들이 좀 치나……."
치익!
"오. 끝났나 보다."
그들은 긴장을 풀었다.
하지만 이어진 무전에 이내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한 놈 빠져나갔다! 그쪽으로 도망친 놈 없어?
쪽문을 지키길 30분.
아직까지 사람 한 명 보질 못했다.
"니미럴. 쪽문 이상 없습니다."
-후문도 이상 없습니다.
-지하주차장 이상 없습니다.
-하아. 도대체 어디로 튄 거야? 이 새끼가 회장인데……. 다들 두 명씩만 남기고 들어와.
무전기가 조용해지자 후문과 쪽문을 지키고 있던 형사들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객실을 향했다.
건물 밖으로 도망친 게 아니라면 건물 내부, 즉 객실에 숨었을 가능성이 컸다.
형사들은 객실들을 훑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방이 몇 갤까?"
2층부터 5층까지 한 층에 2개씩, 총 80개.
반면 이쪽의 숫자는 고작 30명.
이마저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두긴 해야 하니, 더 적은 인원으로 80개의 객실을 뒤져야 하는 거다.
"씨발 새끼. 어디 잡히기만 해 봐라."
형사들은 이를 갈며 안으로 향했고,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나 포함 두 명이야?’
믿어 주는 건 고맙지만 좀 어이가 없었다.
쓴웃음을 흘린 종혁은 자신과 함께 쪽문을 지키게 된 형사 한 명에게 말을 건넸다.
"담배 피실래요?"
"……그럴까?"
씩 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던 둘의 사이로 담뱃갑이 솟는다.
"에헤헤. 이게 진짜 죽여줍니다, 형님들!"
"……얜 뭐냐?"
"전직 아리랑치기, 현직 안마방 사장이요."
종혁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거북이처럼 숨기는 종배수를 보곤 한숨을 내뱉었다.
몇 번이고 꺼지라 했음에도 기어코 여기까지 쫒아왔다. 마음 같아선 트렁크에 구겨 넣고 싶었으나, 이런 놈에게 시간을 쓸 때가 아니기에 참았다.
그런데 사건 현장 깊숙이 따라 들어온 것도 모자라, 다른 형사에게까지 접근하고 있다.
이건 선을 넘은 거다.
‘하 이걸 진짜 어쩌지?’
종혁의 눈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대충 눈치로 상황을 알아차린 형사는 피식 웃음을 흘리곤 종혁을 달랬다.
"놔둬. 귀엽게 구네."
"……쯧."
"헤헤헤."
불까지 붙여 준 종배수는 눈치껏 물러났고, 신경을 끈 둘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진짜 늦네. 어이! 뭔 일 있어? 왜 이렇게 못 찾아!"
"몰라요, 씨발-!"
5층 객실 중 한 곳에서 들리는 외침.
"흠."
미간을 좁힌 종혁은 뒤로 물러났다.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어? 어, 그래."
종혁은 호텔 안으로 향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난데요. 이 호텔에 비밀 통로나 공간 같은 거 있는지 알아봐 줄래요?"
호텔을 이 잡듯 뒤졌어도 찾지 못했다.
분명 어딘가에 빈 공간이 있는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설계도를 볼 걸 그랬나.’
종혁은 머리를 긁었다.
* * *
통조림이나 라면 따위가 쌓인 좁은 공간.
-회의 중이니 연락하지 마시오.
"의, 의원님! 의원님! 야, 이 개새끼야-!"
콰직!
전화기를 집어던진 삼성클럽의 회장이 손톱을 깨문다.
"이, 이제 어쩌지?"
뒷배가 되어 주던 이들 전부 등을 돌렸다.
돈과 여자를 받아 처먹을 때는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굴던 놈들이, 막상 본인들이 다칠 상황이 되자 외면한다.
지독한 배신감이 그를 감쌌다.
"개새끼들!"
삼성클럽 회장은 눈빛을 굳혔다.
‘일단 버텨야 해.’
경찰이 철수할 때까지.
이후 숨겨 둔 장부를 찾아서 오늘 외면한 놈들의 목에 목줄을 걸어야 한다.
‘그래. 그러면 되는 거야. 그러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그의 입에 미소가 맺혔다.
"후우."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다시 벙커를 둘러봤다.
정말 우연히 발견한 공간.
바깥으로 연결된 전화기나 한쪽에 변기가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호텔이 지어질 당시 혹여 북한과 전쟁이 터지면 장성들이 데려온 가족들을 숨기기 위해 만든 비밀 공간으로 추정됐다.
‘그땐 그냥 대충 넘겼는데, 이게 날 살릴 줄이야!’
먼지가 가득하고, 통조림이나 라면 따위가 모두 유통 기한을 한참 넘긴 걸 보면 호텔 직원들도 모르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 바깥이 주방과 연결되는 복도다. 새벽에 음식을 훔쳐오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다.
마음이 놓이다 못해 든든했다.
바깥을 경계하는 네 명의 경호원까지.
‘하지만…….’
이들도 완전히 믿을 순 없다. 삼성클럽 회장은 가슴팍을 더듬었다.
그런데 경호원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씨불. 이거 공무집행방해로 엮이는 거 아냐?’
‘아니야. 매뉴얼대로 했잖아.’
언제나 의뢰인의 신변을 보호해야 하는 경호원이기에 가끔 이상한 의뢰인이 걸리면 경찰과 마찰을 빚을 때가 있다.
공무집행방해, 폭행, 상해.
이런 죄목들로 엮이면 의뢰인 지키려다 교도소 간다.
하지만…….
‘경찰이 자기들 정체를 밝히지 못하면 공무집행 성립 안 돼.’
험악하게 생기다 보니 조폭과 분간이 안 가는 강력계 형사들.
변명할 거리가 생기는 거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되면 일단 먼저 때리고 보라는 매뉴얼이 생긴 거다. 난전이 되면 경찰은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지 못하니까.
그들은 마음을 놓았다.
그 순간.
띠리링! 띠리링!
깜짝 놀란 다섯은 바깥으로 연결된 전화를 봤다.
아무도 모르는 이 장소, 이 번호.
‘……호, 혹시?’
삼성클럽 회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 너희가 날 무시할 수 없겠지!’
자신의 입이 열리는 순간 다칠 테니 말이다.
그는 얼른 전화기를 들었다.
"예. 방일섭……."
-거기 있는 거 힘들지? 나와. 안 그러면 부수고 들어간다.
"……."
삼성클럽의 회장, 방일섭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편 벙커 입구 밖.
쿠다다당!
"그러게 좀 더 빌려 달라니까."
종혁이 시끄러운 천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자, 강철선에게 요청하여 붙은 수사관 둘이 종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쩌겠냐. 전전 지배인만 겨우 아는 곳이었다며."
"그렇다고 먼저 확인했다가 도망치면 안 되고."
맞는 말이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며 잊힌 비밀 공간이다. 이 호텔의 주인이기는커녕 단순 이용객인 방일섭이 여길 안다고 볼 순 없었다.
그래서 겨우 수사관 두 명만 빌릴 수 있었는데 당첨이었다.
다행이라면 앞으로 몇 십 초만 지나면 형사와 수사관들이 이 복도를 빼곡하게 채울 거란 점이다.
그런데.
그르릉!
"……니미럴."
원래 복도였던 공간에 마법처럼 문이 열리며 검은 양복 네 명이 튀어나온다. 방일섭을 보호하며 주위를 둘러본 넷은 종혁과 수사관들을 보곤 놀랐다가 웃었다.
방일섭을 제외하더라도 이쪽은 넷.
상대가 셋이라면 어떻게든 돌파할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씨불!’
그걸 눈치챈 종혁은 놈들이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얼른 입을 열었다. 수사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우린……."
"막아!"
부웅!
"씨발!"
종혁은 휘둘러지는 주먹을 피하며 방일섭을 찾았다.
경호원 한 명과 주방 쪽으로 도주하는 그.
다급히 쫓으려 했지만 턱을 향해 내리꽂히는 주먹이 먼저였다.
"꺼져, 이 새끼야!"
쩌억!
그것마저 피하며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은 종혁은 땅을 박차며 크게 외쳤다.
"주방-! 주방 쪽문 막아-!"
형사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더 빨라졌다.
"종배수……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하이고. 그냥 흔한 이름이라 그런 거겠죠."
"배수가?"
종혁이 여전히 화장실에 간 줄 알고 있는 형사는 종배수와 대화를 나누며 피식 웃었다.
"그런데 이놈은 화장실 똥통에 빠졌나. 왜 이렇게……."
"주방-! 주방 쪽문 막아-!"
"……씨발!"
저편에서 들려오는 종혁의 목소리.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린 형사는 물고 있던 담배를 던지며 주방으로 연결된 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주방 쪽문이 벌컥 열리며 방일섭이 달려 나왔다.
이쪽을 보며 식겁하는 방일섭의 얼굴.
형사의 얼굴은 활짝 펴졌다.
"잘 걸렸…… 흡!"
퍼억!
형사는 뻗어 가던 손을 다급히 회수하며 가슴팍 앞에서 교차했다. 그 위를 방일섭의 뒤에서 날아온 검은 구둣발이 때렸다.
"큭!"
"도망치십시오, 회장님!"
"으, 응!"
"저 씨발!"
"어딜!"
급소인 목을 노리는 발.
형사는 얼굴을 구기며 다급히 방어했다.
그리고 그사이 방일섭이 빠져나갔고, 형사는 다급히 외쳤다.
"누가 저 새끼 잡아!"
누군가라도 듣길 바라며.
그 외침에 방일섭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그런데 몇 미터 앞에 한 명이 서 있다.
"비켜! 비키라고 씨발!"
그는 가슴팍에 손을 가져갔고, 갑작스런 상황에 몸이 굳은 종배수는 이쪽을 달려오는 이를 보며 주춤 물러섰다.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온 경찰, 검찰 병력이 이 잡듯 뒤지며 찾은 놈이다.
조금이라도 붙들면.
그런 시늉이라도 하면…….
마침 종혁이 주방 쪽문에서 달려 나오는 게 보였다.
"에라이!"
종배수는 눈을 질끈 감으며 날렸고, 얼어붙은 것 같은 모습에 안심했다가 깜짝 놀란 방일섭은 반사적으로 잡고 있던 걸 뺐다.
푸욱!
"어?"
순간 둘의 시간이 멈췄다.
종배수는 뭔가가 쑥 들어온 배와 뭔가를 쥔 방일섭을 번갈아 봤고, 정말 찔릴 줄 몰랐던 방일섭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 씨버랠 놈이……."
"야, 이 새끼야!"
방일섭의 등 뒤에서 터지는 외침.
그리고 커다란 그림자가 그를 덮쳤다.
‘나이스, 종배수!’
눈치 없이 졸졸 쫓아다닌 놈이 결국 사고를 쳤다.
하지만 좋은 사고다.
느려진 시간 속 종배수를 보며 칭찬을 하던 종혁은 배에 칼 같은 걸 꽂고 있는 그의 모습에 눈을 껌뻑였다.
‘어? 저게 왜…….’
쿠당탕!
방일섭과 땅바닥을 구른 종혁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망막에 배를 잡고 무너지는 종배수의 모습이 맺혔다.
"종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