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23화 (123/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23화>

38. 삼성클럽

새하얀 속옷을 입은 여성이 전신 거울 앞에 선다.

잡티 한 점 없는 순백의 나신이 시궁창에 빠진 것처럼 더럽게 느껴진다.

"모두 성공하기 위해서야. 성공하기 위해서……."

그녀는 결국 청바지를 쥔 채 무너졌다.

그러나 도망치진 못했다. 도망쳐 봤자 더럽혀진 몸뚱이 밖에 남지 않기에.

강제적으로 위를 볼 수밖에 없었다.

쿵쿵!

"다 입었어?"

문 밖에서 들려오는 악마 앞잡이의 목소리.

겨우 셔츠까지 입은 그녀는 문을 열었다.

사장이 청초한 여대생 차림을 보며 잠시 넋을 놓았다.

그녀는 치솟는 토악질을 겨우 눌렀다.

"오늘은 호텔이 아니야."

호텔이 아니라 이상한 장소다. 무슨 모임이라고 했다.

"일단 출발하자."

뚜벅뚜벅.

소속사 사무실인 건물 반지하를 나선 그들은 당장 며칠 전까지 타고 다니던 봉고 승합차가 아니라 소나타에 올라탔다.

그 악마가 준 돈으로 산 최신형 소나타.

부르릉!

차창 너머로 서울 저녁의 가로등 불빛이 부셔져 내렸다.

그렇게 그들이 떠나간 자리.

건물 근처에 세워져 있던 외제차 운전석에서 누군가 몸을 일으켰다.

종혁이었다.

"어후. 역시 외제차가 좋아."

종혁은 이제 막 코너를 꺾으며 사라지려는 소나타를 보며 시동을 켰다.

부르릉!

종혁의 차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그 미행이 끝난 건 소나타가 한 건물 앞에 도착해서였다.

마치 호텔이나 컨벤션 센터처럼 생긴 5층짜리 건물.

리딩 때 김영진에게 눈초리를 받은 단역 배우가 로비 입구에 멈춰 섰다.

차를 멀찍이 세운 종혁은 카메라를 들었다가 의아해했다.

"뭐야, 저 검둥이들은?"

검은 양복을 입은 이들이 단역 배우를 고개 숙여 맞이하고, 단역 배우는 뭔가를 설명한다.

조폭?

아니다. 본청 광수대에 들어가며 전국 조폭의 얼굴을 말단까지 싹 다 외웠는데,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다.

서 있는 자세도 다르다.

‘보디가드?’

이윽고 다른 차가 도착하며 누군가 내린다.

배불뚝이 50대 중년인.

모르는 얼굴이다.

그는 단역 배우의 옆구리를 끌어안으며 로비 안으로 들어갔다.

찰칵! 찰칵!

플래시가 터지지 않도록 개조한 카메라가 로비로 들어가는 둘뿐만 아니라 이후 속속 도착하는 얼굴들을 모두 찍는다.

‘어?’

종혁은 다섯 번째 도착한 차에서 내린 한 남성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

‘사장?’

오늘 김영진에게 간단히 소개받은 영화사 사장이다.

다 옆구리에 젊은 여성을 끼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영화사 사장만 아무도 없이 잔뜩 굳은 얼굴을 한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입구에 있던 검은 양복들이 이쪽을 쳐다봤다.

"어이구. 빠르기도 하다."

종혁은 차를 출발시키는 대신 옆에 놔둔 소주병을 꺼내 몸에 뿌리고 가글을 했다. 그리고 카메라와 소주병을 숨긴 후 운전대에 머리를 박았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퉁퉁퉁! ……쿵쿵쿵!

"아 누구야……."

쿵쿵쿵!

종혁은 졸린 눈으로 창문을 내렸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던 검은 양복이 코를 막았다.

"뭐야……."

"단순 취객이다."

-칙! 알았다.

"어이, 여기서 자지 말고 집에 가서 자. 괜히 아버지 차 박살 내지 말고."

"어으. 뭐야, 여긴 어디야. 에이."

종혁은 그제야 차를 출발시켰다.

그렇게 약간을 달린 종혁은 다시 차를 세웠다.

들켰다고 차를 바로 출발시키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었다. 미행을 했단 걸 자백하는 꼴이니 말이다.

차에서 내린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후. 살 것 같네."

술 냄새는 종혁도 괴로웠다.

-어머.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저녁 10시, 전화를 받은 권아영이 놀란다.

종혁은 방금 전 있었던 건물의 위치를 말했다.

-보스가 거긴 어떻게 아세요?

권아영의 음성에 미약한 경멸이 서렸다.

건물이 누구 소유인지, 누가 주로 이용하는지 알고 싶어 전화했던 종혁으로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하는 곳인지 알고 있습니까?"

-원랜 군사독재시절 지방의 군 장성들이 서울에 왔을 때 편히 머물 수 있게 만든 호텔이었는데, IMF 때 망하면서 연회용으로 대여해 주는 곳으로 바뀌었어요.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아니다. 세상을 제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누구 눈치 안 보고 여자랑 뒹구는 곳 중 하나다.

-요즘엔 삼성클럽? 걔네들이 자주 쓰는 걸로 알고 있어요.

"삼성클럽?"

-뭐래더라…… 음. 아, 여기 있다. 가요계에서 어깨 좀 펴고 다니는 인간들인데 영화계, 드라마계에서도 별이 되고 싶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라네요.

"그런 단체가 있었군요."

처음 듣는 이름이다.

종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생긴 지 오래된 단체는 아니에요. 한 7년? 권력자에게 연예인 상납을 하는 쓰레기들로 구성된 단체죠.

권아영은 PB였던 시절, 삼성클럽에 속해 있던 인물 중 하나가 그녀에게 돈을 맡기러 오며 그곳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꺼림칙한 돈을 맡기 싫어 거절했지만 말이다.

"권력자요?"

-대기업 전무, 1선 의원 같은 이들이요. 돈 많은 복부인에게 남자 연예인을 상납하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흠…… 얼핏 듣기로는 요즘엔 대선 캠프의 누군가에게 선을 대고 있다더군요.

흠칫!

종혁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대선 후보요?"

정말 그렇다면 이건 게이트까지 번질 사건이다.

검찰총장과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의 목을 날린 그 사건과 연관이 있을 확률도 커진다.

-그것까진 잘 모르겠어요. 한번 알아볼까요?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후후. 걱정 마세요.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빠질게요.

권아영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었다.

"권 이사."

-네.

"그 건물, 매입할 수 있겠습니까?"

-……네?

회귀 전이었다면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웨이터든 요리 보조든, 경호원이든 별의별 짓을 다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돈이 있는데 왜 그래야 돼?’

종혁은 씩 웃었다.

*  *  *

그곳은 연회장이라기보단 추악한 욕망의 늪이었다.

나이 든 남자들의 손이 어린 여성들의 가슴과 엉덩이, 엉덩이 골을 오간다.

주무르고 쥐어짜고 긁는다.

그러며 다른 한 손으론 위스키 잔을 잡고, 그 눈과 입은 옆의 여성이 아니라 앞의 남성에게로 향한다.

그럼에도 서로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더 흥분한다.

여성들은 필사적으로 신음을 참는 모습을 보인다. 더럽고 역겹지만, 억지로 연기한다.

"이번에 이 호텔 주인이 바뀌었다는 소리 들으셨습니까, 김 부장님?"

"아, 분당 개발 때 돈 좀 만진 졸부라지?"

"무려 200억에 팔렸답니다. 200억!"

거기다 20억을 투자해서 리모델링을 한다고 한다. 연회를 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만들기 위해.

"……휘유. 그 돈이면 쉬리 같은 영화를 두 편이나 찍을 수 있겠네."

한국 역대 최고의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 영화인 쉬리.

무려 100억이 넘었던 제작비.

지금은 공동경비구역 JSA에게 그 위명을 넘겨줬다지만, 그래도 당시엔 충격이었던 액수였다.

"어? 그렇게 생각하니 얼마 안 되네요?"

"그러게? 여기가 그렇게 싼 곳이었나?"

연회장 안으로 막 들어오는 누군가를 발견한 김 부장이란 이가 혀를 찬다.

"여기도 아무나 받으면 안 되는데."

고작해야 영화사 사장이다. 제작비를 투자받지 않으면 굶어 죽어야 하는.

그런 이가 자신들과 같은 곳에서 논다는 게 썩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도 귀엽잖습니까. 이렇게 우리들 사이에 끼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솔직히 우리도 저랬을 때가 있었잖습니까."

김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연예인에겐 신이나 다름없을만큼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방송국 PD, 기자, 기획사 대표 및 임원.

잘나가는 선배들 수발 들며 꼭 저렇게 되겠다고 매일 다짐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이룩해 냈다.

지금 가요계에서 자신들을 무시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아, 모두 잘 즐기고 계십니까!

고개를 돌린 김 부장은 활짝 웃었다. 그건 안에 있던 다른 클럽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인물 덕분이었다.

원래부터 파워가 셌던 자신들이지만, 이렇게 무리를 이루면서 가요계에서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을 얻게 만들어 준 존재.

이 삼성클럽의 회장 덕분에 가요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젠 영화계와 드라마계를 정복할 일만 남았다.

높은 콧대를 꺾을 일만 남았다.

그렇게 희열에 물드는 이들을 쭉 훑어본 사내, 단상에 선 50대 사내는 입술을 핥았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올라온 이유는 새로운 회원을 소개하기 위해섭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뚜벅뚜벅.

몸이 딱딱하게 굳은 이가 올라온다.

그의 얼굴을 본 이들이 웃음을 흘린다.

가요계 관계자라면 모를 리가 없는 얼굴. 90년대를 휩쓴 삼인조 아티스트 중 한 명인 안홍석이다.

한국 대표 춤꾼 중 한 명이며, 지금은 한 기획사의 어엿한 대표다.

"아, 안녕하십니까. 꼭 들어오고 싶었던 클럽에……."

단상을 내려온 회장은 연회장에 흩어져 있던 몇 명을 불러 안쪽의 룸으로 향했다.

바깥과 달리 조용한 룸.

한 인물이 회장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꼭 저 기회주의자를 회원으로 받아들였어야 했나?"

"80퍼센트가 찬성한 일이잖아. 그만 받아들여, 박 국장."

"쯧."

삼성클럽은 기존 회원의 80퍼센트가 동의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멤버를 가입시킬 수 없다.

"아무튼 내가 여러분을 모은 이유는 클럽을 후원해 주시는 분들 중 가장 높은 분께서 성의를 원하시기 때문이야."

"성의라면…… 선거 자금?"

그들과 연관된 이들 중 성의라는 단어를 쓰는 인물은 딱 한 부류다.

정치인.

"하.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얼마 전에도 뜯어 가 놓고 또?"

"아니, 그분은 재벌이라 돈도 많으면서 왜……."

"알아보니 현몽준……."

"쯥! 입조심!"

"뭐 어때. 여기엔 우리뿐인데."

"그래도 언제나 조심해야지. 지금 검찰에서 우리 이름이 돌아다닌다는 거 몰라?"

정식 수사 단계는 아니지만, 찍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실수라도 그분이 언급되면 우린 다 죽는 거야. 다른 분들은 몰라도 그분이 다치면 안 돼."

그들 다섯 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 있는 클럽 회원들보다 위에 있는 그들.

같은 클럽 회원이라고 다 똑같은 건 아니다.

"여자는? A급으로 뽑아?"

"아니, 20살. 칼츤호텔 1303호. 모레 새벽 1시."

"거 선거 때문에 바쁜 분이 그럴 정신은 또 있나 보네. 알았어."

"그럼 이야기 끝난 건가?"

"열 장씩 모레까지 준비해. 같이 딸려 보내야 하니까. 자, 그럼 나가기 전에 건배 한번 하지."

그들은 잔을 들었다.

"우리 삼성클럽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채채챙!

호박빛 술이 가득 든 술잔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리고 이틀 후 칼츤 호텔.

"어머. 또 오셨네요?"

로비의 프런트.

여직원이 선글라스를 낀 종혁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반 고객님?"

그녀의 러시아어에 종혁도 러시아어로 답했다.

"귀국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어딜 갈까 고민했는데 여기가 제일 먼저 떠오르더군요."

"후훗. 한국은 즐거우셨나요?"

"한국에 온 김에 거래처를 찾아갈까 했는데, 주소가 너무 어렵더군요. 그걸 제외하곤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어딘지 알려 주시면 제가……."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또 올 텐데 그때 들르면 됩니다. 그리고 몰라야 당신과 또 이렇게 이야기 나누지 않겠습니까?"

종혁은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윙크를 했다.

웃음을 흘린 그녀는 종혁이 내민 여권을 받았다.

"어머. 또 1303호시네요?"

"마음에 들더군요."

"여기 있습니다. 다시 저희 호텔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키를 받아 든 종혁은 1303호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이틀 전 숨겨 놓았던 카메라와 저장장치를 수거했다.

그리고 어젯밤 녹화된 걸 보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음. 으음."

지이잉! 지이잉!

"예, 아이반입니다."

종혁은 치밀하게도 핸드폰마저 선불폰을 구매했다.

-후훗. 무슨 일을 하고 돌아다니는 건가요?

FSB가 만든 아이반의 여권과 카드가 한국에서 쓰였다. 나탈리아는 그걸 확인하자마자 연락한 거다.

"그냥 평소와 같죠. 범인 잡으러 돌아다닙니다."

-생도가요?

"그렇게 되더라고요."

종혁은 웃음을 흘리며 저장장치 속 녹화 파일을 클릭했다.

그리고.

"……이건 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예상과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의아해하던 종혁은 이내 곧 입술을 비틀었다.

"이것 봐라?"

-무슨 일인가요? 최?

웃음을 참는 종혁의 배가 끅끅 흔들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