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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22화 (122/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22화>

    숨이 막힌다.

    심장이 내려앉고,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 같다.

    언젠간 꼭 돈 모아서 올 거라 다짐했던 고급 호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꿈에서나 그리던 풍경이 반겨 줄 거라 기대해야 되는데, 1404호 문이 닫혀 있는 악마의 아가리를 보는 듯 두렵다.

    살을 스치는 몇 십만 원 이브닝드레스 실크 감촉이 마치 도마뱀이 혀로 핥는 것처럼 끔찍하다.

    그녀는 양손을 꽉 쥐며 사장을 바라봤다.

    몇 번이고 물은 물음.

    그리고 이제 마지막 묻는 물음.

    "아, 안 하면 안 되죠? 정말…… 안 하면 안 되죠?"

    사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는 억지로 입술을 비틀었다. 차라리 자신을 원망하고 증오하길 바라며.

    그래서라도 성공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 원망 증오 모두 감내할 수 있다. 지금처럼 무명으로 살다 사라지면 그조차도 못할 테니까.

    "왜 이래? 성공 안 할 거야? 언제까지 이렇게 찌질하게 살래? 어? 같은 시기에 데뷔한 다른 애들은 다 TV에 나오고 팬들한테 둘러싸이는데 언제까지!"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요! 그, 그냥 지금처럼……."

    행사 공연 가고, 거리 공연을 하면 된다. 홍대 작은 무대도 괜찮다.

    그러면 언젠가…….

    "이걸 거부하면 그것도 못해! 알잖아!"

    "……."

    "눈 한번만 딱 감으면 돼. 딱 한 번만."

    ‘흡!’ 검지를 들며 애원하는 사장의 얼굴이 괴물 같다.

    몸에 닿는 사장의 손길에 구역질이 치솟는다.

    언제나 아빠의 응원처럼 따뜻했던 손인데, 귀여운 표정인데 악몽에서나 등장하는 괴물의 그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뿌리칠 수 없다. 어깨를 잡은 손이 때릴 것 같아서.

    그녀가 알던 사장은 이제 없어서 무서웠다.

    "더 할 말 없지? 문 연다."

    사장은 떨리는 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끼기긱!

    손잡이 부품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에 구역질이 나온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성공시켜 달라고 찾아와 드러눕던 당찬 16살 소녀.

    그 모습에 반해 성공시켜 줄게 외친 36살 초보 사장.

    서로에게 길었던 5년 무명의 궁핍은 결국 힘들었어도 웃음이 가득한 순수했던 추억을 검게 물들였다.

    이젠 그 미소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문을 열며 허리를 깊이 숙였다. 일그러진 얼굴을 보이지 않고자.

    스륵.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얼음송곳이 되어 귓속을 파고들었다.

    "어, 그래. 양동현이 영화 있잖아. 그거 배역 하나만 준비해 줘."

    양동현.

    이 바닥에서 그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연예인이 있을까.

    "뭐해, 안 들어오고? 네 얘기잖아."

    알몸에 가운만 걸친 악마가 다리를 벌린다.

    어서 이 안으로 기어 들어오라는 듯 손짓한다.

    무섭고 두렵다.

    반사적으로 뒤를 본 그녀는 깨달았다.

    사극 드라마 속 간신배처럼 등을 보이고 있는 사장.

    ‘벗어날 수 없구나.’

    벗어나는 순간 이 덫은 악마가 되어 그녀의 모든 것을 앗아 갈 테니.

    5년의 고생, 노력, 추억 모두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여성은 눈을 질끈 감으며 어깨끈을 잡아 갔다.

    그녀의 등 뒤로 문이 닫혔다.

    쿵!

    사장은 닫힌 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미안하다. 내가 무능해서 미안해!’

    가증스러운 변명이다.

    그래서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는 소리 없이 오열했다.

    *  *  *

    새벽 장사를 나오던 노인이 4인조에게 망치를 맞고 중상을 당한 장소에 도착한 감독은 혀를 내둘렀다.

    ‘이거 완전히 내가 생각했던 그 장소인데?’

    새벽녘.

    놈들을 쫓던 두 주인공이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다시 순찰을 돌기 위해 나선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장소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주인공 둘은 분노한다.

    몇 분만, 몇 분만 더 있었으면…….

    좌절하고 절망하고 분노한다.

    "이야아, 뻑치기하기 딱 좋은 장소네."

    "그래요?"

    "그럼요! 주택가라 새벽에 사람이 있을 리도 없고……."

    영화 자문으로 위촉된 종배수가 어깨를 거만하게 세우며 설명하자 감독과 두 배우가 눈을 빛낸다.

    그걸 힐끗 본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이번엔 절대 끼어들지 마래이. 경고했데이."

    강철선이 정색하며 말했다.

    웬만하면 얼렁뚱땅 같이 움직였을 텐데 못을 박았다.

    "……높은 곳까지 선이 닿았다는 거겠지."

    서울지방검찰청이 나선 일이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거나 정재계의 일이 아니라면 나서지 않는 그들이 나선 거다.

    거물이 얽혀 있단 뜻이다.

    정영탁도 강철선이 말하지 말랬다며 입을 다물었다.

    "흠."

    스윽!

    "형님! 감독님이 대본 읽는다고 이동하잡니다! 가시죠!"

    종혁은 자신의 팔을 공손히 잡아끄는 종배수를 빤히 봤다.

    "……죄, 죄송합니다."

    혀를 찬 종혁은 감독에게로 향했고, 그걸 보던 종배수는 머리를 긁으며 뒤따랐다.

    "종 사장님이 마음에 드셨나 봐요?"

    김영진 감독이 활짝 웃는다.

    "마음에 들다 뿐일까요."

    뻑치기 사건을 다루는 영화라 안마방 사장 역할도 그쪽 관련 과거가 있는 인물로 하려고 했는데, 종배수가 딱 그에 해당했다.

    "크. 내가 연예인을 다 보네! 성공했다, 배수야!"

    아니, 밉지 않은 수다쟁이라 캐릭터도 다시 짜고 있다.

    그렇게 신나게 말하던 김영진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아, 음…… 괜찮으십니까?"

    "네? 아, 괜찮습니다. 감독님 영화인걸요. 감독님은 영화만 신경 써 주십시오."

    경찰에 협조 요청까지 받은 영화다.

    경찰 이미지를 개선에 도움이 되는 영화이니만큼 개인적인 감정은 잠시 접어 둬야 했다.

    "허허.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습니다. 그럼 이동하실까요?"

    그들은 충무로의 한 건물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감독님!"

    "배우들은?"

    "감독님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벌써?"

    대본 리딩 시작까지 30분이나 남아 있어서 느긋이 들어왔던 김영진은 다급해졌다.

    "그리고……."

    종혁과 종배수를 힐끔 본 직원이 그를 한 곳으로 데려간다.

    "뭐?!"

    "그게 사장님이……."

    얼굴을 쓸어내린 김영진이 종혁을 힐끔 봤다.

    때마침 핸드폰을 보고 있는 종혁. 다행히 듣지 못한 것 같았다.

    "후. 일단 알았어. 그보다 두 자문님 자리 만들어 놔. 내 옆으로."

    "네!"

    김영진 감독이 웃는 낯으로 다가왔다.

    "하하. 가시죠."

    그제야 핸드폰에서 시선을 뗀 종혁은 김영진의 뒤통수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

    종혁은 일단 입을 다문 채 뒤를 따랐다.

    그렇게 3층 어느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앉아 있던 배우들이 황급히 몸을 일으킨다.

    종혁은 눈을 빛냈다. 낯이 익은 배우들이 제법 있었다.

    ‘저 배우는 경찰 역할로 많이 나온 분이고, 저 배우는…… 응?’

    누군가를 발견한 종혁은 굳어 버렸다.

    종혁과 눈이 마주친 한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정수 삼촌?’

    특수범죄수사과의 형사, 김정수.

    그가 배우들에게 물을 나눠 주고 있었다.

    ‘삼촌이 여기 왜 있어?’

    김정수도 눈이 크게 흔들렸다.

    "왜요. 아는 분이라도 있어요?"

    "아니요. 나이 많으신 분이 저런 허드렛일을 하시기에……."

    "아아, 나이가 많든 적든 신입이면 저런 일부터 해야죠. 그게 이쪽 바닥 룰이에요."

    "신입이요?"

    "이쪽 바닥 저렇게 나이 먹고 들어오는 사람 제법 있어요. 어렸을 때 영화를 좋아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뒤늦게 꿈을 찾는 거죠."

    김영진은 손뼉을 쳤다.

    "자자, 곧 리딩 시작이니까 배우 아닌 사람은 모두 나갑시다! 우리 스태프도."

    우르르!

    종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김정수를 일견했다.

    어떤 상황인지 알아차렸기에 계속 쳐다볼 수가 없었다.

    ‘특수가 위장 잠입을 하고 있다?’

    하필이면 이 영화 사무소에.

    며칠 전, 통화를 하며 화를 냈던 김영진과 오늘 직원에게 무슨 말을 듣고 표정이 굳었던 김영진의 반응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 세력이 영화에도 투자를 한다는 정영탁의 말도 스친다.

    ‘그 세력이 이 영화에 투자한 거구나!’

    백 퍼센트였다.

    ‘설마 여기 사장이?’

    그 세력의 일원이거나 관계된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는 박종수가 여기 있는 게 말이 안 된다.

    "이쪽은 우리 영화의 모티브가 된 4인조 망치 뻑치기 사건을 해결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경찰대학교 최종혁 생도입니다. 자문으로서 많은 도움을 주실 예정이니 만큼 현장에서 만나도 당황하지 마시라 소개시켜 드리려 초대한 겁니다."

    "아."

    정신을 차린 종혁이 고개를 숙였다.

    "최종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웅성웅성!

    종혁의 나이가 너무 젊다 보니 모두 당황한다.

    그 순간.

    짝! 짝짝짝!

    양동현이 박수를 치자, 눈치를 보던 다른 사람들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곧 박수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종혁과 김영준은 양동현을 보며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쪽은……."

    "반갑소. 자문을 맡은 종배수요."

    "……크흠. 하여튼 바뀐 대본에 큰 영향을 주신 분이니 몇몇 배우님들은 이분의 조언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그렇게 말한 김영진 감독은 눈빛을 굳혔다.

    "진짜 리딩 전 서로 안면을 익히자 만든 자리라고 해도 아닌 사람은 무조건 털어 낼 거니 진심으로 임해 주길 바랍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한 여성을 봤다가 시선을 거뒀다.

    종혁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아시겠습니까?!"

    "예!"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씬 넘버 1-1!"

    그렇게 친목 도모를 겸한 리딩이 시작됐다.

    *  *  *

    "쯧. 30분간 쉬겠습니다."

    김영진 감독이 일어서자 배우들이 모두 한 단역 배우를 바라봤다. 그녀의 대사가 끝나자마자 일어섰기에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생각이 맞는 듯 단역 배우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를 응시하던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생도님, 어디 가십니까. 물 빼러…… 합!"

    종혁이 빤히 쳐다보자 종배수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저은 종혁은 주차장에 세워 둔 차에 올라타 핸드폰을 들었다.

    -예. 특수범죄수사과 김종두 과장입니다.

    "저예요, 삼촌."

    -……그래. 너 거기 있다고 정수가 문자 보내더라. 어떻게 된 일이야?

    "이번 영화 자문이에요. 4인조 뻑치기 사건을 해결한 게 저잖아요. 그리고 정영탁 대표님과 강 검사님을 연결시켜 준 게 저고요."

    -끙. 그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알아차렸다는 뜻이네.

    "여기 사장이 그들 중 한 명이죠?"

    -업무상 기밀이야, 인마.

    "그 세력이 이 영화에 누굴 꽂았는지도 알아차렸는데도요?"

    -뭣?! 누, 누군데!

    종혁은 그 반응에 씩 웃으며 말을 툭 내뱉었다.

    "삼촌부터요. 누가 여기에 끼어 있는 거예요?"

    서울지방검찰청 형사부 부장검사인 강철선이 먼저 이들에 대해 인식했는데도 굳이 경찰인 특수범죄수사과를 끌어들였다.

    즉, 정식으로 수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란 거다.

    검찰 내부든 아니든 강철선을 찍어 누를 수 있는 거물이 연관된 일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김정수의 잠입도 정식 허가를 받지 못했을 확률이 크다. 검찰도 못 믿는 상황에서 경찰이라고 믿을 순 없을 테니.

    "대체 어떤 거물이 얽혀 있기에 정수 삼촌이 정식 허가조차 못 받은 채 이렇게 잠입 수사를 하는 거냐고요."

    -쿠당탕!

    슬쩍 떠본 말인데 반응이 격렬하다.

    -너란 놈은 진짜…….

    김종두 과장은 미쳤다는 말을 꾹 삼켰다.

    -후우. 그래도 말 못하는 거 알지? 끊는다.

    뚝!

    종혁은 갑자기 끊겨 버린 전화를 가만히 응시했다.

    "거물……."

    그동안의 정이 있어 대충이라도 말해 줄 법한데도 입을 다문다. 자칫 종혁이 다칠 걸 우려하는 거다.

    그만큼 대단한 거물이 얽혀 있는 거다.

    "대체 누굴까. 대체 누구기에 두 분 모두 이렇게까지 조심하는 걸까."

    어떻게 생긴 놈인지 면상이 보고 싶어진다.

    저 위에 앉아 전지전능한 신처럼 구는 놈의 멱살을 잡아다 시궁창에 처박고 싶어진다. 하지 말라니까 더 하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심보가 오랜만에 기지개를 편다.

    "그리고 왜일까."

    창문을 내리며 담배를 물던 종혁의 눈빛이 탁해졌다.

    "갑자기 그 사건이 떠오르는 건."

    다음 달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경악스러운 사건이 터진다. 병원에 입원해 골골 거리던 종혁조차도 너무 놀라서 기억에 남은 사건이다.

    조사를 받던 살인 용의자가 물고문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

    1980년도도 아닌 2002년에 벌어진 고문치사 사건.

    이 사건으로 인해 검찰총장과 서울지방검찰청의 검사장 목이 날아간다.

    "진짜 왜……."

    단 1퍼센트조차 서로 연관된 일이 아닐 텐데도 왜 이렇게 코가 간지러울까 종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종혁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찰칵! 치지직!

    복잡한 심경을 담은 담배 연기가 흩어졌다.

    한편 주차장 밖.

    입구 옆 담벼락에 숨어 고개를 내민 종배수가 혀를 찬다.

    "지금 갔다가는 얻어터지겠지?"

    한평생 경찰에게 쫓기며 단련된 육감이 그렇게 외친다.

    그 무서운 박 전무가 벌벌 떨 만큼 막강한 배경을 가진 인물에 성격도 지랄 맞다.

    "이건 좀 있다가 드려야겠네."

    종혁이 주차장으로 향하기에 피곤했나 싶어 산 비타민 음료.

    종배수는 쪼그려 앉으며 담배를 물었다.

    "에휴. 이 나이 먹고 이게 뭔 지랄인지."

    곧 쉰인데 가진 거라곤 안마방 하나랑 당구장, 오락실 하나다.

    누군가는 성공했다 말하겠지만 딸린 식구가 5명이다.

    조직이 와해됐음에도 지금까지 곁을 지키며 형님, 형님 하며 따르는 바보 같은 놈들.

    여기에 명동파에 상납도 해야 된다.

    그러고 나면 막상 손에 쥐는 돈은 얼마 없다.

    "최소한……."

    ‘명동파와 깔끔하게 갈라지면 좋을 텐데.’ 그럼 동생들에게 치킨집이라도 하나씩 차려 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애초부터 얽히지 않았으면 모르되 얽힌 이상 깔끔하게 갈라지는 건 무리다.

    ‘안마방을 차리는 게 아니었어.’

    그동안 벌인 일에 대한 대가라도 치르는 것일까.

    출소 후 없는 돈까지 끌어모아 차린 안마방.

    하필이면 그 안마방을 차린 곳이 명동파의 영역이었다.

    그 순간 종배수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뿐이었다. 명동파에게 박살이 나거나, 명동파의 그늘 밑으로 들어가거나.

    그 뒤로는 벌어들이는 수익의 대부분을 명동파에 상납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안 그럼 다 뺏겼겠지.’

    그렇기에 종혁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줘야 한다. 입 안의 혀처럼 굴어야 한다.

    그래야 명동파와 깔끔하게 헤어질 수 있다.

    그에겐 불가능에 가깝지만, 종혁에겐 겨우 말 한마디면 되니까.

    ‘진짜 뭐든지 해야 한다! 그러려면…….’

    "최소한 뭐요?"

    "씨발!"

    종배수는 기겁하며 넘어졌다가 고개를 돌리곤 활짝 웃었다.

    "어이구, 양 배우님이 여기까진 어쩐 일로 오셨어?"

    "뭐……."

    종혁을 힐끔 본 양동현은 말을 얼버무렸다.

    "내가 보고 싶었구나? 에이, 그럼 말을 하지. 또 뭐가 궁금한데?"

    "아니……."

    "뭐야, 둘이 여기 왜 있어요?"

    "아이고, 형님! 피곤하시죠? 여기 피로 회복에 좋은 비타민입니다!"

    끼리릭!

    종혁은 비타민 음료를 응시하다 피식 웃었다.

    오는 길에 있던 슈퍼에서 산 게 분명한 비타민 음료에서 물방울이 흐른다. 여기에 도착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단 소리다.

    촐싹거리는 모습을 보면 눈치가 없을 것 같은데 의외로 있다.

    만약 전처럼 생각 없이 행동했다면, 이를테면 방금 전 종혁 본인의 생각을 방해했다면 가만두지 않았을 거다.

    "에헤헤. 자자, 쭉. 쭈욱!"

    ‘그래. 이렇게만 해라.’ 그러면 영화 촬영 기간 동안 사람대우는 해 줄 거다.

    어떤 의도가 있다 한들 들어주지 않으면 그만이니 말이다.

    종혁은 비타민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다.

    "어이구, 그래요. 아이고, 맛있다!"

    "일절만 합시다. 그리고 여기 천 원이요."

    "아니, 이건 제 성의……."

    "난 범죄자한테 뭐 안 받아먹습니다. 가시죠, 양 배우님."

    종혁과 종배수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눈을 빛내던 양동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사는 범죄자를 이렇게 취급하는구나.’

    종배수가 내민 비타민 음료를 보던 종혁의 눈빛.

    비타민 음료를 받아 들 때까지 일어난 감정의 변화.

    ‘그 반장님이 이분을 보고 형사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했지.’

    즉, 종혁이 이런 행동들 전부를 앞으로 연기할 배역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거다.

    ‘정말 재밌어!’

    형사라는 게 생각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양동현은 종혁의 옆을 걸으며 종혁을 살폈다. 종혁의 모든 걸 알기 위해.

    종배수는 그렇게 멀어지는 둘, 아니 종혁을 멍하니 쳐다봤다.

    "들켰네?"

    속내까진 들키지 않았지만, 의도가 있단 걸 눈치챘다.

    눈빛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밀어내지 않는다. 아직 가능성이 있단 뜻이다.

    ‘진짜 뭐든지 한다!’

    그러려면 종혁이 뭘 좋아하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그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같이 가시죠,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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