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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21화 (121/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21화>

    일단 시간이 걸릴 것 같기에 식사부터 했다.

    형사들은 중부서로 복귀했고, 종혁과 김영진 감독, 주연 배우 둘만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협조하는 명동파를 배려한 거다.

    곧 그들 빼곤 손님 한 명 없는 카페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한 명은 성매매 알선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풀문나이트를 관리하던 박 전무였고, 다른 한 명은…….

    ‘어? 저놈은?’

    놀랍게도 아는 얼굴이었다.

    ‘종배수?’

    뻑치기, 아니 아리랑치기 전문인데 90년대 초 아리랑치기 조직을 크게 결성했다가 경찰과 조폭에게 박살이 난 전과 15범 범죄자다.

    당시 조직원 수만 무려 55명. 압구정을 비롯한 강남 전체가 놈의 구역이었다.

    경찰에겐 요주의 감시 인물이었다.

    ‘이 새끼가 명동파 소속이었어? 거기다 안마방 사장?’

    꽤나 규모가 큰 조직을 구성했다지만 그래 봤자 아리랑치기, 잡범에 불과했다.

    당시 본청 광역수사대였던 종혁이 그와 얽힐 일이 없었기에 이런 속사정까지는 몰랐다.

    머리를 빠글빠글 볶은 40대 키 작은 종배수가 뚜벅뚜벅 걸어와 종혁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그러며 다리를 꽜다.

    "안녕하…… 흡?!"

    인사를 하던 박 전무가 경악했다.

    뽀글머리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콧대를 세웠다.

    "뭡니까? 왜 날 보자고 한 겁니까?"

    "……허허."

    종혁은 박 전무를 봤다.

    "박 전무, 말 안 했어요?"

    "그, 그게……."

    차갑게 가라앉은 종혁의 목소리에 박 전무가 당황하던 그때, 종배수가 미간을 모으며 입을 열었다.

    "허어. 야, 꼬맹이."

    "꼬맹이?"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 빽만 믿고 말이야, 어? 이 형님……."

    박 전무는 입을 떡 벌렸다.

    ‘이 미친놈아-!’

    종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으응. 그래, 무슨 상황인지 대충 알겠네."

    종혁은 박 전무를 바라봤다.

    "참 눈치 없고 충성스런 부하를 두셨네요, 박 전무?"

    "저, 저희 명동파는 아니고……."

    명동파 그늘에 기대는 조직 중 하나다.

    안마방, 당구장 등 소소한 업장을 운영하는 피라미 조직.

    "그런 것까진 알 필요 없는데."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박 전무는 종배수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악!"

    "따라와, 이 아름다운 새끼야!"

    박 전무는 울상이 되었다.

    "악! 형님! 잠시만요, 형님!"

    종배수는 그렇게 화장실로 끌려갔다.

    "괜찮아요, 감독님. 놀라지 않으셔도 돼요."

    "어, 그래도……."

    김영진 감독과 두 배우는 겁에 질렸다.

    "정말 괜찮다니까요. 다 자기들끼리만 저러지 일반인에겐 함부로 못해요."

    "……?"

    "어디 조폭, 범죄자 나부랭이 새끼가 일반인한테. 뒤지려고."

    세 명의 눈이 동그래졌다.

    "허허. 새, 생도인데도 와일드하시네요."

    ‘아차.’ 종혁은 그냥 밀고 나가기로 했다.

    "뭘요. 저도 강력계를 지망하는데 이 정도는 기본이죠. 형사가 범죄자한테 겁먹으면 일 못합니다."

    "기본…… 말입니까?"

    주연 배우 둘도 눈을 빛냈다.

    어찌 됐던 그들이 맡을 역할은 형사였다.

    그중 양동현은 경찰대 출신 젊은 형사 역할이었다. 그는 종혁을 빤히 바라봤다.

    ‘이런 모습이 형사?’

    ‘아까 헤어질 때 반장이 저놈은 딱 형사 체질이라더니…….’

    종혁은 생각에 잠기는 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암. 형사가 저런 놈들 따위에게 겁먹어선 안 되지.’

    그리고 잠시 후 후다닥 달려온 종배수가 허리를 넙죽 숙였다.

    "헤헤헤. 안녕하십니까, 생도님! 아리랑치기계의 워리어! GOU! 종배수가 인사 올립니다!"

    GOU는 준형과 그의 동료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는 그룹의 이름이다.

    ‘……그냥 미친놈인가?’

    인터뷰는 원활하게 진행됐다.

    "이 서울 바닥에서 내가 전화 한 통 쫙 돌리면! 예?"

    "안마방 에이스는 어떻게 뽑아요?"

    "이거. 이거 잘하는 애들이 최고죠. 어차피 술 만땅 꼴아 오는데 얼굴이 중요할까요. 뭐, 요샌 톰 뽀이도 쓰는 곳도 있다던데……."

    "톰 보이? 트, 트랜스젠더요?!"

    "풉!"

    -평양에서 열린 북한 일본 정상회담에서…….

    시끄러운 종배수를 제외하면 조용한 카페.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온다.

    종혁은 빨대를 물며 귀를 기울였다.

    ‘거참 이럴 때 스마트폰이 있다면 너튜브라도 볼 텐데.’

    스마트폰은커녕 너튜브가 서비스를 시작하기까지도 한참 멀었기에 종혁은 아쉬움을 달랬다.

    -무소속 현몽준 의원이 대선 출마를…….

    ‘아, 벌써 이때인가?’

    뜬금없이 정치를 하겠다며 1988년에 정치판에 뛰어든 고(故) 현주영 왕 회장의 6남 현몽준.

    ‘맞아. 이땐 이 사람 인기가 대단했지.’

    재벌 출신이라 뇌물 같은 비리가 없을 거라며 기대한 국민이 많았다.

    또 축구협회장이기도 한 현몽준.

    얼마 전 성황리에 끝난 2002년 월드컵 덕분에 현재 다른 유력한 대선 후보 둘보다 더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뭐, 그것도 가을 들어 월드컵 약발이 떨어지면서 추월당하지만.’

    종혁은 담배를 챙겨 들며 일어섰다.

    "담배는 여기서 피셔도……."

    따라 일어서는 박 전무에게 손을 저은 종혁은 카페를 나섰다.

    치익!

    "후우우."

    -네, 권아영입니다.

    "접니다."

    -보스! 어쩐 일이세요?

    "다름이 아니라 뉴스에서 현몽준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는데, 그 사람도 돈 맡겼습니까?"

    -안 그래도 이번 대선 문제 때문에 내부에서 말이 많았는데…… 아빠, 아니 권 이사장님이 대통령 될 깜냥은 아니니 괜히 더 챙겨 주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같은 생각이고요.

    "그래요?"

    -태생이 사업가인데 어떻게 믿어요. 거기다 왕 회장님께서 타계하시면서 비를 막아 주던 우산도 사라졌는데.

    ‘다행이네.’

    권아영과 권회수가 밥값을 해 줬다.

    -그런데 이건 왜 물어보세요?

    "저도 같은 생각이어서요."

    -후후. 역시 보스네요.

    종혁이라면 같은 생각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이유만으로 전화를 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종혁은 언제나 겉으로 드러난 말 속에 다른 뜻을 숨기는 인물이었으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권아영은 손가락을 튕겼다.

    -아, 혹시 에이버와 넥스트 보고 부화뇌동하지 말라고 연락하신 건가요?

    대선 주자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뭘까.

    바로 여론이다.

    -맞죠?

    "네, 맞습니다."

    종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닷컴 버블이 일어날 당시 주가 조작, 소위 작전의 대상이었던 넥스트.

    종혁과 강철선이 그 일당을 검거하면서 그들이 소유했던 넥스트의 주식, 돌려지던 폭탄이 터져 버렸는데 이미 추격하고 있던 박태규가 그걸 받아 내면서 단숨에 넥스트 최대 주주가 되었다.

    에이버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최대 주주가 되었다.

    에이버와 넥스트는 새천년 들어 뉴스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한국의 양대 포털 사이트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는데, 지금이야 중립적이지만 미래엔 그 모습이 변한다.

    정치 성향에 따라 뉴스 노출도를 조절해 버리는 거다.

    ‘이번에도 그 꼴을 볼 수는 없지.’

    정보를 전하는 곳은 언제나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게 종혁의 생각이었다.

    "괜히 대선 이런 거에 끼어드는……."

    딸랑!

    "아니, 가수가 무슨 연기를 할 줄 안다고……."

    일그러진 얼굴로 카페 문을 열고 나오다 놀란 김영진 감독이 멀찍이 떨어진다.

    -보스?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아니, 가수들 죄다 끌어다 그딴 영화 만들어 놓고도 또 가수를 들이민다고요? 투자자면 답니까? 예?! 그럼 빼든지!"

    화가 많이 난 건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 들린다.

    ‘투자 문제인가?’

    대충 예상이 간다.

    투자를 한 투자자가 스폰하는 배우를 꽂아 넣는 일.

    저쪽 바닥에선 흔한 일이었다.

    "내가 예술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딴 식으로 내 영화 망치는 꼴은 볼 수 없습니다! 끊어요!"

    전화를 끊고도 씩씩거리던 김영진 감독은 돌아서다 종혁을 발견하곤 혀를 찼다.

    그가 다가오자 종혁은 얼른 담배를 껐다.

    "이거 못난 꼴을 보여 드린 것 같습니다."

    "혹시 협박입니까?"

    "아, 그게……."

    잠시 갈등했던 김영진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방금 전 통화는 못 들은 걸로 해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종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카페 안으로 들어가는 김영진 감독을 응시했다.

    갈등과 짜증.

    그의 얼굴이 표현하던 감정엔 공포도 미약하게 서려 있었다.

    종혁은 코를 긁었다. 갑자기 시궁창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예. JC엔터테인먼트 대표 정영탁입니다.

    GOU의 소속사, JC.

    JC는 JYK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접니다. 최종혁."

    -최 자문님? 어이고, 이게 얼마 만입니까!

    "예, 잘 계셨죠?"

    그렇게 그동안의 안부를 묻던 종혁은 본론을 꺼냈다.

    "제가 이렇게 전화를 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영화계, 가요계 통과 미팅을 하고 싶어섭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예?

    *  *  *

    "이야. 그런 술 드시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운데요? 이런 곳에 자주 오셨나 봅니다."

    강남 모처의 어느 BAR.

    호박빛 위스키를 기울이던 종혁은 정영탁이 다가오자 눈을 끔뻑였다.

    그의 뒤를 봤지만 일행은 없었다.

    "……?"

    "흐흐. 그 통이 접니다. 가요계, 영화계 통! 드라마도 쫙 알고 있죠!"

    통. 소식통.

    마당발, 빠끔이와 같은 말이다.

    "……아."

    ‘맞네.’ 종혁은 머리를 긁었다.

    JC엔터테인먼트는 가수와 배우를 함께 키우는 기획사다. 그쪽 바닥들 소식은 다 그의 귀에 들어간다고 봐야 했다.

    ‘이 양반도 이제 공룡인데 너무 무시했어.’

    JYK의 최대 주주가 된 이후 JC엔터는 3대 기획사라도 무시하지 못할 곳이 되었다. 이후 인성 좋은 연예인이라면 계약금 따지지 않고 영입하며 몸집을 키웠다.

    "이거, 대표님이 오실 줄 알았으면 약속 장소를 더 편한 자리로 잡을 걸 그랬습니다."

    정영탁이 가장 좋아하는 건 파전에 막걸리였다.

    "드디어 최 자문님과 술을 마시게 됐는데 어디든 좋지 않을까요."

    처음 종혁이 미성년자라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제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실 겁니다."

    부리부리하게 뜬 눈에 진심만 가득하다.

    종혁은 피식 웃었다.

    "건배할까요?"

    "좋죠!"

    챙!

    둘의 잔이 허공에 부딪쳤다.

    "크. 역시 양주는 저랑 안 맞는군요. 얼른 마시고 일어나시죠. 제가 기가 막힌 막걸리집을 압니다."

    자리 옮기기 전에 이야기를 끝내자는 뜻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사정을 설명했다.

    "아, 그거……."

    "아는 게 있으시군요."

    낯빛이 살짝 어두워진 정영탁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두 달 전에 개봉한 긴급조치 20호라는 영화 보셨습니까?"

    "긴급조치…… 예?"

    "98년에 개봉한 에이틴라는 영화는요?"

    "……?"

    "다 가수들이 주연인 영화입니다. 긴급조치 20호는 아예 무더기로 출연했죠. 연기라곤 발성도 못하는 가수들이."

    종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머릿속이 간지러운 게 뭔가 떠오를 것 같았다.

    "뭔가가 있군요."

    "세력이 있습니다."

    "세력? 아……!"

    종혁은 그제야 겨우 떠올릴 수 있었다.

    회귀 전, 이 당시 연예계에서 한 사건이 터졌다.

    순경이었던 이 당시엔 위의 3분의 2를 드러내며 병원에서 골골거리던 시기라서 잘은 모르는 사건이지만, 대충 비리에 관련된 사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MP3 등 디지털음악 시장이 성장하며 기존 음반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야욕을 드러낸 작자들인데……."

    원래부터 콧방귀 좀 뀌던 이들이라 가요계에서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정영탁도 GOU가 성공하지 않고, 종혁의 무한적인 자금 지원에 JYK의 최대 주주가 되지 않았다면 이들에게 휘둘렸을 것이다.

    "그런 놈들이 있다고요?"

    "밉보여서 좋은 거 없는 망나니들이죠. 음악 방송조차 출연 못하니까요."

    종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 이 단어가 품은 뜻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스폰, 뇌물, 뭐 그런 거군요."

    "……아무튼 이놈들이 영화나 드라마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며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그쪽 바닥에서 반기겠습니까?"

    말을 돌린다. 정답이란 소리다.

    연예계에서 악마라 불리는 스폰서. 선한 스폰서도 있지만, 악한 이들이 훨씬 많다.

    ‘그런 개새끼들이 세력을 이뤘다고?’

    몰랐다면 모르되 알게 된 이상 절대 가만 둘 수 없다.

    종혁은 계속 설명하는 정영탁의 입을 막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음악 방송 출연도 좌지우지 한다는 놈들이다.

    선이 어디까지 닿아 있을지 가늠할 수가 없다.

    ‘멤버부터 세팅해야겠네, 정예로.’

    그렇게 마음을 굳힌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아버님?’

    유료발신자표시서비스로 강철선의 이름이 뜬다.

    "예, 아버님. 안 그래도 전화 드리려 했는데……."

    -아, 글나? 그럼 나부터 말할게.

    평소라면 안부부터 물었을 강철선이 답지않게 본론부터 꺼내려 든다.

    심상치 않은 일인 것 같아 종혁은 표정을 굳혔다.

    "예. 무슨 일이세요?"

    -종혁이 니 GOU 갸들이랑 친하제?

    "당연히 친하죠.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그럼 혹시 거기 대표도 잘 아나?

    종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혹시 가요계에 있다는 어떤 세력 때문입니까?"

    -……니 지금 어데고?

    강철선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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