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20화 (120/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20화>

37. 형사들의 세계

"썩 반가운 마중은 아니네요."

차가운 음성이 새벽이라 조용한 인천공항을 울린다.

"정말로."

종혁은 멀리 떨어져 국정원 직원들과 굳은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생도들과 교수를 힐끗 봤다.

표면적인 목적은 러시아에서 뭘 했는지에 대한 간단한 조사였지만, 실제 목적은 국정원 피지컬 트레이닝 전수 제의다.

‘이렇게 갑자기?’

이건 종혁이 러시아에서 뭘 했는지 새어 나간 거다.

‘어떻게?’

먼저 떠난 나탈리아가 한 ‘잘해 봐요.’란 말이 번뜩 떠오른다.

‘하아. 나탈리아.’

종혁은 마른세수를 했다.

"……죄송합니다. 마음이 앞서다 보니 그만."

맞다. 죄송해야 된다.

이로 인해 국정원과 인연이 있다는 게 생도들과 교수에게 탄로 났다.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이걸 어떻게 수습하냐.’

"……."

팀장은 이를 악물었다.

‘실책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종혁에게 무엇을 줬는지 알게 된 이상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5만 평에 달하는 땅과 호화 저택.

그것을 받고도 혹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종혁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FSB, SVR, 스페츠나츠의 훈련 교관을 가르쳤다. 요원과 특수부대원들에게 있어 신처럼 여기는 훈련 교관을.

그러한 일을 겪었으니 종혁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얼마나 높아졌을까.

그가 당장 귀화를 선택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제야 국정원 상부도 난리가 났다.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서두르자니까!’

그동안 그럴 필요까지 있냐며 미적거리더니 결국 이런 상황에 이르렀다.

"정말 죄송합니다.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대신 사과의 의미로 저희가 도울 수 있는 건 적극 협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종혁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빛났다.

뒤이어 팀장은 서류 하나를 종혁에게 내밀었다.

"일단 저희가 당장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

서류의 첫 장을 확인한 종혁은 눈을 크게 떴다.

‘국정원이 경찰 예산 확대에 한 목소리를 보탠다고?’

경찰 예산 확대 지원.

러시아는 종혁 개인을 위한 보상을 준비했다면, 국정원이 준비한 보상은 그 종류를 달리했다.

‘생각보다 잘 조사했는데?’

서류 안에는 최첨단 수사 기기의 기증이란 내용도 적혀 있었다.

종혁이 이를 위한 목적으로 경찰에 기부를 하고 있단 걸 파악한 거다.

"이렇게 저희가 도울 수 있는 건 적극 나서겠습니다."

톡톡.

팀장이 서류를 두드린다.

이 말은 즉 그거다.

국정원이 돈이 없어서 러시아처럼 물질적인 걸 주지 않는 게 아니다. 그보다 더 가치 있고 네게 도움이 되는 걸 주는 거다. 이런 말이다.

짠돌이 국정원다운 말이었지만.

‘이 사람들 봐라?’

거래를 할 줄 안다.

"정말 적극 협조하시는 겁니까?"

"국가에 해가 되는 일만 아니라면!"

개인적인 일도 오케이라는 뜻이다.

‘감당할 수 있으시려나?’

종혁은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억누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후우. 이거 어쩔 수가 없네요."

"최 생도!"

"하지만 곧 개강이라 주말밖에 시간을 낼 수 없으니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대신 예습할 자료는 미리 보내 드리겠습니다."

"암요. 이렇게 응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크! 그래, 이게 애국자지!’ 다행히 일이 잘 풀리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아직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종혁의 마음을 완벽히 사로잡기 전까지는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됐다.

‘우리가 왜 국정원이라 불리는지 곧 체감하게 될 겁니다, 최 생도!’

애국자는 챙겨 줘야 하는 법이다.

팀장의 눈이 불타올랐다.

‘이게 이렇게 풀리네?’

한편 종혁도 일이 잘 풀렸다며 내심 미소 지었다.

놈들을 쫓는 데 패가 하나 더 생겼다. 그것도 국정원이라는 패가.

갑자기 찾아온 탓에 짜증이 났었지만, 덕분에 더 마음 편히 국정원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다음 주말에 뵙죠."

종혁은 악수를 나누며 활짝 웃었다.

그렇게 국정원이 떠난 자리.

밖으로 향하던 생도들이 의아해 하며 바라본다.

"저 태릉에 있을 때 훈련받으러 오셔서 아는 거예요. 신체 능력은 대한민국에서 국대가 최고니까."

"……아아. 와, 국정원도 태릉에서 훈련받나 보네."

"그러게."

인솔 교수도 일리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건 극비니까 함구를……."

"당연하지!"

가슴을 쓸어내린 종혁은 이제 막 해가 떠오르는 새벽하늘을 봤다. 가을로 접어들며 시원해진 바람이 그의 가슴을 적셨다.

*  *  *

러시아의 경찰 시스템을 체험하고 온 생도들은 뜨거운 감자가 됐다.

소련의 후신, 러시아.

거대한 영토만큼이나 범죄도 많아, 그 역사를 통해 배울 점은 무척이나 많았다.

당연히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거기서 종혁은 쏙 빠지게 됐다.

"예? 잘 못 들었습니다?"

"잘 들은 거 맞아."

경찰대 학장 최기룡이 이것 좀 마셔 보라며 녹차를 내민다.

종혁은 그걸로 놀란 가슴을 달랬다.

"영화 촬영에 자문을 하라는 말입니까?"

심지어 아는 영화다.

그것도 잘 아는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그 사건, 최 생도 네가 다 해결했잖아."

최기룡이 자문을 제안한 영화는 다름 아닌, 종혁이 얼마 전 해결한 4인조 망치 뻑치기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제작하는 영화였다.

"경찰 이미지 향상을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는데, 도와줘야 하지 않겠냐?"

"아니, 제가 아니더라도 중부서, 남대문서 형사님들도 계시는데 왜……."

"걔들도 협조하기로 했어."

"음."

‘귀찮은데.’ 이젠 주말마다 국정원에 가야 한다. 앞으로 쉬는 날이 없는 거다.

"최 생도, 아니 우리 경주 최씨 충렬공파를 빛내는 종혁아."

"……예."

"강의 듣기 싫지?"

"……?"

"현장실습 후 바로 소련, 아니 러시아에 실무 실습도 다녀왔겠다, 마음 떴잖아? 안 그래?"

"……!"

종혁의 자세가 달라졌다.

최기룡은 씩 웃었다.

"시험만 보면 올 A, 할래?"

"학장님!"

종혁은 낯빛을 딱딱하게 굳혔다.

"태어나면서부터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종혁은 영화 촬영의 자문을 맡게 됐다.

*  *  *

며칠 후, 중부서 앞.

덩치가 후덕한 50대 장년인을 비롯한 여러 사내가 거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중 선글라스를 낀 20대 초반의 사내는 그런 장년인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버, 벌써 가을이네요, 감독님."

노랗게 물든 거리의 은행나무가 고약한 똥 냄새를 풍기며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

"어? 어, 맞네. 가을이네…… 아, 동현아."

"예?"

"네가 그러지 않을 건 알지만, 혹시 해서 당부하는 건데 형사들에게 함부로 하지 마라."

"마,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요……."

"……하긴."

내성적인 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양동현이다.

이러면서도 연기는 또 기가 막히니.

사고가 터지면 양동현보다 김영진 본인이 범인일 확률이 높았다.

"너희도 마찬가지야. 안 할 건 알지만 하지 말자."

"예!"

김영진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경찰대에서 보낸다는 친구는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버스가 늦나?"

경찰대 위치가 용인이라니 그럴 확률이 높았다. 그 산골에서 오려면 보통 힘든 게 아닐 터였다.

"차라리 내가 데리러 갈 걸 그랬……."

과르릉!

김영진은 남대문서 입구에 서는 까만 스포츠카를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그 눈엔 부러움이 차올랐다.

그건 양동현과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남자의 로망. 남자라면 미칠 수밖에 없는 차다.

‘캬. 나도 죽기 전에 저런 차를…… 뭐야, 여기서 왜 내려?’

주차장도 아니고 경찰서 입구다.

차에서 내린 덩치 큰 미남이 이쪽을 향해 손을 든다.

"여, 박 이경! 더운 날 개고생하느라 수고한다!"

"어? 형님! 어쩐 일이십니까? 그리고 저 이경 아니고 상경이지 말입니다."

"오, 이제 반 했네? 언제 제대할래?"

"……에이씨."

키득키득 웃던 종혁은 이쪽을 멍하니 보는 남자들의 시선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가 깜짝 놀랐다.

"혹시 김영진 감독님?"

"……누구신지?"

‘아이쿠야!’ 첫인상을 좋게 남기고 싶었는데 꽤 웃긴 꼴이 보였다.

"아이고.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경찰대 간부후보생도 최종혁입니다."

"……?!"

김영진과 양동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종혁과 스포츠카를 번갈아 봤다.

"씨발! 말로 하니까 안 듣지? 어?"

"아, 변호사 불러오라고!"

언제나처럼 오늘도 도떼기시장이 열린 강력반.

어떤 형사는 떡 진 양말 냄새에 코를 막고, 어떤 형사는 젖은 머리를 털며 자리에 앉는다.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하지만 정겨운 풍경이다.

강력 3반으로 향한 종혁은 수갑을 찬 채 목소리를 높이는 한 범죄자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빠아악! 쾅!

"어? 어어?"

갑작스런 상황에 얼었다가 종혁을 발견한 강력 3반 형사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어쩔 수 없는 습관이다.

강력 3반 형사들은 피식 웃었다.

"그래, 종혁아. 어쩐 일이야?"

"아, 이번에 영화 촬영하는 거 있잖습니까. 그거 저도 자문하기로 했습니다."

"뭐? 진짜? ……하긴 네가 제일 잘 알긴 하지. 그런데 뒤에 분들은 일행이셔? 젊은 분은 어디서 뵌 듯한데……."

"이번 영화의 감독님과 배우님들이세요."

"……이런 씨?!"

기겁한 반장이 튀어나오며, 방금 전 종혁의 행동에 재차 멍해진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 후 그들은 회의실로 안내됐다.

"죄송합니다. 저놈 때문에 초면부터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종혁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아, 아닙니다."

당황을 겨우 수습한 김영진 감독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번 영화는 리얼한 형사의 모습이 포인트다.

어떻게 사건을 인식하고, 피해자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는지. 그리고 평소 범인은 어떻게 잡는지.

이런 꾸미지 않는 날것의 모습이 필요했다.

"……아, 그러세요?"

"예. 그러니 꾸밈없이 보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음. 보기가 좀 거북하실 수 있을 텐데……."

"괜찮습니다."

"예, 뭐 그러시죠."

"감사합니다! 그럼 평소 어떻게 지내시는지 여쭤도 될까요?"

배우들도 모두 수첩을 꺼내든다.

"평소라……."

‘내가 평소에 뭘 하고 지내더라?’ 범인 잡아다 조서 꾸미는 걸 빼니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경찰이라고……."

모두의 시선이 종혁에게로 모인다.

"경찰이라고 특별한 건 없습니다. 업무 보다가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담배 피고. 때가 들쭉날쭉한 것을 제외하면 회사원과 다를 거 없습니다."

따악!

반장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맞네. 딱 네 말이 맞네. 우리가 밥을 제때 못 먹긴 해."

모두 범인을 쫓고 조서 쓰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강력반에선 제때 밥을 먹으려 드는 게 양심 없는 거죠."

"키야! 종두 형님이 잘 가르쳤네! 또?"

"정시에 퇴근할 땐 가족과 보내거나 운동하죠. 범인 쫓으려면 체력을 길러야 하니까."

"옳지! 또?"

"그리고 복장은 최대한 질기고 가볍게. 신발은 깃털처럼 가벼운 걸로. 반장이라고 구두 신는다?"

"미친 짓이지!"

다만 언제 높은 사람과 만날지 모르기에 실내에선 구두를 신거나 언제든 신을 수 있게 비치해 놓는다.

사람들은 종혁과 반장의 만담 같은 대화를 넋 놓고 봤다.

종혁은 그런 그들, 아니 감독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옛날 두 명의 경찰을 다룬 영화가 흥행을 한 이후 경찰 이미지가 박살이 났단 소리를 들었다.

해피 엔딩, 정의로운 엔딩으로 끝났지만, 경찰엔 비리가 많다는 이미지가 생겼다.

비리 경찰이 영화의 단골 소재로 다뤄지게 됐다.

이번에 이들이 찍을 영화는 그렇지 않지만, 당시 현직 형사로서 저건 아닌데라고 몇 번이나 중얼거렸는지 몰랐다.

이런 영화 하나하나가 경찰의 이미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허투루 임할 수 없었다.

‘내가 왜 그 지랄 염병을 했는데!’

모두 보다 나은 경찰을 위해서다.

종혁의 눈에 불길이 솟았다.

"와."

김영진 감독은 혀를 내둘렀다.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이거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은데?"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아쉽지 않았다.

이런 디테일이 모이고 모여 영화에 재미를 주기에 감독 된 입장으로서 고칠 수밖에 없었다.

배우들도 도움이 많이 됐다.

형사라면 마냥 이러겠거니 하며 넘겨짚었던, 대충 생각했던 디테일. 옆에서 관찰해도 캐치할 수 있을까 싶었던 디테일한 포인트를 자세하게 설명해 줬다.

몇 날 며칠 경찰서에 출근하며 그 포인트를 캐치하려고 했던 배우들로선 종혁이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휴, 덕분에 시간이 많이 단축될 것 같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그런데……."

반장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정말 염치없는 요구지만, 혹시 안마방 인터뷰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안마방이요?"

"이번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

감독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 안마방과 접촉을 해 보려 수없이 노력했는데, 여태까지 응한 곳이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미성년자 집중 단속으로 인해 문을 닫은 곳도 많고, 닫지 않아도 연락을 받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쩔 수 없이 그 부분은 창작의 영역에 맡기려 했으나, 이렇게 형사를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고 나니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어이구! 이걸 어쩌나."

반장은 입맛을 다셨다.

"저도 협조하고 싶지만, 현재 저희 관할에서 영업 중인 안마방은 한 곳도 없습니다. 정확히는 죄다 문 닫았습니다."

안마방, 마사지숍, 노래방, 유흥주점.

싹 다 영업 중지 상태다.

"여, 여기도요?! 명동은요? 명동은……."

한때 불야성이라 불렸던 명동.

"거기도 비슷한 사정이라서. 그리고 저희 관할이 아니고."

"……하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던 감독은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음. 그건 제가 해결할 수 있을 듯한데요."

"……?!"

종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를 보며 핸드폰을 꺼냈다.

"납니다. 아는 안마방 있죠? 아니, 씨발 내가 가겠다는 게 아니라. 예, 그 사장 좀 봅시다. 최대한 빨리. 예. 고마워요."

전화를 끊은 종혁은 활짝 웃었다.

"됐습니다."

"……종혁아, 너 어디다 전화 건거냐?"

"명동파요."

"응?"

"풀문나이트 연예인 마약 사건 때 하마터면 업장 닫을 뻔했다고, 고맙다며 도울 일 있으면 돕겠다고 하더라고요."

"명동파가? ……걔들 요새 약 한다니?"

"글쎄요?"

반장은 가만히 바라보다 핸드폰을 꺼냈다.

"어, 난데. 명동파 센타 좀 까 봐. 이 새끼들 요새 약 빠는 거 같아."

명동파가 한 번 더 몸살을 앓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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