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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18화 (118/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18화>

    "푸후."

    사무실에 담배 연기가 뿌옇게 퍼진다.

    "씨벌. 끝까지 반말이네."

    이제 겨우 20대로 보이는데.

    "넌 씨발, 내가 어떻게든 털어 먹는다."

    ‘그렇게 다 털어 먹으면…….’ 죽인다.

    차갑게 웃으며 입술을 핥은 그는 핸드폰을 꺼냈다.

    -예. 일라이자 채굴 영업 1과입니다.

    "과장님, 저 김 대립니다."

    백만 달러도 아닌 천만 달러다.

    아무리 전권을 받고 왔다지만, 그가 감당할 사이즈가 아니다.

    일의 진도가 훅 나간 후라면 모를까 지금은 아니다.

    -천만? 루블이 아니라 달러?

    "예. 이 땅 주인의 친구니 신원은 확실하고, 옷차림도 싹 다 명품이었습니다. 안경은 시장표인데, 시계가 파텍입니다."

    한국인으로 보이고 어디선가 본 듯한 외모였지만, 빅토르가 고려인이라고 소개했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

    ‘그 호구가 뭘 알고 나를 속이겠어?’

    사기 칠 장소와 아이템을 빌려준 호구, 아니 파트너.

    눈치를 챘으면 경찰부터 들이닥쳤을 것이다.

    "어떡할까요?"

    -광산 사이즈가 얼마랬지?

    "대략 60억입니다. 가라치면 4배 뻥튀기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만 아는 최신 공법이라든가, 매장량이 생각보다 더 많다든가 등 속일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240억. 오케이. 시작은 깔끔하게 10억, 백만 달러로 하자.

    처음부터 세게 부르면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일단 꼬드긴 후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돈을 더 뜯어내는 거다.

    아니, 이자만 한두 달 지불하면 알아서 돈을 꼴아 박을 거다.

    20억이든, 50억이든.

    "예,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면서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보내겠습니다."

    -어, 그렇게 해. 김치 보내 줄까?

    "웬일이십니까?"

    -내가 업어 키운 새끼 2년 동안 못 본다니 서운해서 그런다.

    이번 프로젝트는 최장 2년을 보고 있었다.

    목표로 한 액수가 빨리 채워지면 빨리 끝날 수 있다.

    -왜? 싫냐?

    "너무 감사해서 그렇죠! 고추장, 된장까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약은 몸에 계속 지니고 있으니 따로 치지 마시고요."

    -씨발놈이?

    "사랑합니다!"

    -꺼져. ……수고하고. 선 넘지 마라. 내가 거둔 놈, 내 손으로 은퇴시키기 싫다.

    "……몸조리 잘하십시오. 술 좀 줄이시고요."

    -끊는다.

    끊긴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그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은퇴라."

    회사에서 은퇴는 세상에서 은퇴다.

    3년 전, 일이 어그러져 강원도 수련원에 갔다가 임원 4명만 빼고 죄다 소각당한 대전 지부처럼.

    은퇴를 당하고도 죽지 않는 방법은 두 가지다.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를 본사로 영전하든가, 아님 회사 건물을 관리하고 청소하는 잡부가 되든가.

    하지만 무섭진 않았다.

    그저 잠깐이라도 괴로워할 과장님이 걱정될 뿐.

    "과장님이 직접 오신다면 웃으며 가겠습니다."

    과장이 살려 준 목숨과 인생. 되갚는 것뿐이다.

    그는 서글피 웃으며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이틀 후, 그는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그는 활짝 웃었다.

    "예, 로마노프 회장님! 저 김 대리입니다!"

    *  *  *

    종혁의 저택에 침묵이 내려앉아 있다.

    "……정말 사기가 맞군요."

    빅토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놈들을 놔두고 돌아와야 하는 게 너무도 화가 나고 괴롭던 종혁이 차갑게 웃는다.

    맞다. 종혁이 말한 그대로다.

    채굴에 관한 신기술이건 더 많은 매장량이건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투자금을 더 끌어모을 거란 말.

    정말 일라이자 채굴은 그런 이유를 들먹였다.

    재차 확인해 보니 매장량이 더 있고, 일라이자 채굴만의 공법으로 금을 더 뽑아낼 수 있단다.

    요새 금값까지 오르고 있으니 더 투자를 받을 수 있단다.

    종혁이 이 일이 사기임을 말하며 이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면, 빅토르는 이 말을 믿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금값이 오른다는 소리가 들리면 언제나 가장 먼저 점검해 보는 게 가문과 구성원 소유의 광산이라도.

    당시 세계 최고의 기술로 조사한대도.

    "아마 다른 채굴 기업을 불러 조사한대도 놈들은 당당할 겁니다. 왜? 자신들만의 기술이라고 잡아떼면 되거든요."

    이 기술을 이전한다는 핑계로 다른 사기를 칠 수도 있다.

    아니, 그것마저 이번 사기에 이용할 수 있다.

    다단계 투자 사기에서 호재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니까.

    "이 개새끼들이!"

    쾅!

    보드카가 담겨 있던 유리잔이 그의 손 안에서 부서진다.

    빅토르는 핸드폰을 들었다.

    "어디에 전화를 하려고요?"

    "당연히 경찰입니다!"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

    "이거 사기는 맞는데, 사기가 아니니까요."

    "예?"

    종혁은 간단히 그들이 앞으로 할 일을 알려 줬다.

    "저, 정말 이자를 지불한다고요?"

    "투자자를 더 끌어모으기 위해섭니다. 은밀히, 아주 은밀하게 늘어나겠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 사람이 또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끌어들인다.

    가족, 친척, 친구, 지인.

    그리고 그렇게 끌려 들어간 사람들은 입을 다문다.

    이 좋은 투자를 남에게 알려 주기 싫으니까.

    즉, 세상은 이 일에 대해 절대 모른다는 거다.

    "맙소사."

    "그때부턴 돈이 돈을 먹는 겁니다."

    뒤늦게 들어온 사람 돈으로 먼저 들어온 사람에게 이자를 지불한다.

    아랫돌을 빼내서 윗돌에 괴는 거다.

    그렇게 돈은 계속 순환하며 블랙홀처럼 돈을 빨아들인다.

    이 단계가 되면 광산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게 된다.

    아니, 신경을 쓰는 투자자도 없어진다.

    돈이 들어오니까.

    그 돈에 눈이 돌아 버린 그들은 그렇게 지옥의 입구에 선다.

    "신고하면 저만 망신당하겠군요."

    까드득!

    분명 사기에 이용당하고 있는데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

    "결국 험한 일을 하는 친구들을 불러야……."

    "그거 하지 마세요."

    "최?"

    "저도 그걸 몰라서 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쉽다.

    나탈리아에게 부탁하면 너무도 쉽다. 독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제압도 쉬울 거다.

    하지만 놈들이 서로와 어떻게 연락하는지 모르는 이상 그건 쓰면 안 되는 방법이다. 배후를 알아낸다고 해도 그땐 꼬리를 자르고 튄 후일 테니까.

    ‘어떻게 나타난 꼬리인데!’

    살려 둬야 한다.

    알아서 몸통까지 안내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복수도 할 겸 제대로 된 엿을 먹여 줘야 했다.

    머릿속을 정리한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최?

    "나탈리아. 나랑 영화 한 편 찍을래요?"

    -……?

    "대전에서의 그놈과 똑같이 생긴 반지를 낀 놈을 봤거든요."

    -……그거 흥미로운 이야긴데요? 내가 어떡하면 될까요?

    "그게……."

    종혁이 꺼낸 말에 나탈리아와 빅토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지원과 직원, 파견 직원만 남은 사무실.

    김 대리가 얼굴을 쓸어내린다.

    나머지 직원들의 얼굴도 일그러져 있다.

    "돌겠군."

    마른하늘의 날벼락.

    김 대리는 방금 전, 한국으로 치면 구청이나 도청 직원이 놓고 간 서류를 봤다.

    자연보호를 위한 개발 금지.

    즉, 그 땅이 그린벨트로 지정됐단다.

    정말 마른하늘에서 내리친 날벼락이었다.

    -…….

    핸드폰 속, 한국에 있는 과장도 아무런 말을 못 했다.

    -우리도 철수 준비할 테니까 투자금 모두 돌려주고 복귀해. 프로젝트는 실패다.

    "……예."

    -인마. 사람 일인데 그럴 수 있어. 네 탓도 아니고 파견 직원 탓도 아니니까 너무 처지지 말고. 너 대리야, 대리. 이런 기회는 앞으로 많아!

    "……감사합니다."

    파견 직원도 감사하다 겨우 말했다.

    -그래. 러시아에서 한두 번 일할 거 아니니까 괜히 푼돈 벌겠다고 허튼짓 하지 말고. 알았지?

    혹여 김 대리가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을 걸 우려해 당부한 과장은 시계를 봤다.

    -아, 시간이네. 끊는다.

    혹시 모를 위치 추적을 막기 위해 과장은 전화를 끊었다.

    김 대리는 담배를 물었다.

    다른 이들도 담배를 물었다.

    "푸후."

    그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

    손님을 위한 좋은 냄새 따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그러진 거지?’

    생애 첫 프로젝트라 얼마나 기대하고 노력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딴 종이 한 장에 그 모든 수고가 물거품 되었다.

    과장은 처지지 말라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염병할. 진짜 지랄이네."

    ‘빅토르? 아이반? ……아니야. 지들끼리 개발할 거였으면, 애초부터 투자금을 주지도 않았겠지.’ 누군가 만약 이게 사기임을 눈치챘다면 이런 개발 금지가 아니라 러시아 경찰이 들이닥쳤을 거다.

    정말 우연에 의해 이런 일이 벌어진 거다.

    ‘아니, 대체 왜! 하필이면!’

    시베리아의 많고 많은 땅 중 여기인지 모르겠다.

    속으로 몸부림친 그는 결국 철수를 하기로 했다.

    "후우. 일단."

    모두의 시선이 김 대리에게 모인다.

    "박 사원이 사람들 모아서 사정 설명해 줘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띠리링! 띠리링!

    사무실 전화가 울린다.

    "씨발. 아귀 새끼들."

    개발은 잘되고 있냐는, 이 마을 유지 중 한 명의 전화일 거다. 매일같이 받는 안부 전화였다.

    박 사원이 수화기를 들었다.

    "예, 일라이자 채굴 러시아……."

    입을 다문 박 사원이 김 대리를 봤다.

    "대리님."

    "하아. 또 누군데요."

    "아이반입니다."

    "아이반?"

    미간을 좁힌 김 대리는 전화를 넘겨받았다.

    "예, 반코 킴 대리입니다. 투자금은 바로 돌려……."

    -개발 제한 묶였다면서?

    빠직!

    냅다 속부터 뒤집는 말에 김 대리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거 어떤 높은 분이 거기다 별장 지으려고 이런 짓을 한 건지는 알아?

    "……별장이요?"

    ‘그건 또 뭔 개소리야? 그리고 이 녀석은 이걸 또 어떻게 알고?’ -거기에 여우가 많거든. 그 인간 대리인이란 놈이 찾아와 그렇게 지껄이더라고.

    작은 의심이 빠르게 사라졌다.

    대신 다른 의문이 들었다.

    -고작 그런 이유냐고 생각하지?

    흠칫!

    김 대리는 깜짝 놀랐다.

    -놀랍게도 우리 러시아에는 고작 그런 이유로도 이런 일이 벌어져. 러시아에 온 걸 환영해, 동지들.

    빠드득!

    ‘염병할 소련!’

    공산주의가 전신인 나라, 러시아.

    고작 이딴 이유로 프로젝트가 엎어졌다는 것에 분통만 터질 뿐이다.

    -아무튼 빅터도 곧 땅을 팔 거야.

    "……저희도 이틀 내로 투자금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아, 그래. 투자금. 맞아. 돌려받아야지. 그런데…….

    "……?"

    종혁의 목소리가 낮아진다.

    -채광이 돈이 좀 되잖아. 그 정도 이자를 줘도 될 만큼 벌이가 되잖아. 그치?

    "예, 뭐……."

    -그래서 내가 금광 하나 살 거거든?

    김 대리의 눈이 번뜩였다.

    ‘광산을 살 만큼 부자였다고?’

    -알아보니까 너희만큼 기술력을 갖춘 곳도 없는 것 같고. 어때, 관심 있어?

    김 대리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생애 첫 단독 프로젝트를 이대로 끝내야 해서 얼마나 괴로웠던가. 그런데 호구가 제 발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

    "……일단 제의는 감사하지만 제 선에서 판단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 그래?

    흥미가 팍 식는 목소리에 김 대리는 다급해졌다.

    "그래서 본사에 문의해 보고 연락을 드리려 합니다. 괜찮을까요?"

    -오, 알았어! 대신 너무 기다리겐 하지 마. 내일 눈을 뜨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을 어떤 영감탱이가 땅 팔아서 지 애인 요트 사 주겠다고 헐값에 내놓은 거라서 얼른 사야 하거든.

    "하하. 좋은 소식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기다릴게.

    전화를 끊은 김 대리는 파견 직원을 봤다.

    "이 새끼 좀 파 볼 수 있을까요?"

    "아이반 말이죠? 오늘 안까지 기본적인 걸 가져오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박 사원은 예정대로 이 마을에서 철수할 준비해 주시고요."

    "예!"

    김 대리는 얼른 핸드폰을 들었다.

    "예, 과장님. 웬 호구 한 명이 굴러 들어왔는데요!"

    사무실은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한편, 전화를 끊은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자, 호구 입장이다. 먹을래, 말래?"

    먹을 확률 99.9퍼센트.

    이런 대형 사기를 치려는 놈이, 조직이 호구를 참는다?

    말도 안 된다.

    ‘아니라도 상관없고.’

    그들이 여기서 접고 돌아가도 괜찮다.

    둥지로 돌아갈 꼬리를 추적할 준비는 끝내 놓았으니까.

    종혁의 두 눈이 흉흉히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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