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17화 (117/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17화>

셋, 아니, 올가까지 넷은 일단 마트를 나섰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마트 주차장에서 그들은 캔 커피를 하나씩 쥐었다.

"여기요, 아저씨."

"고마워, 올가."

잘 아는 듯한 둘의 모습에 종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세브첸코 씨 고향이 여기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네요."

"나도 최가 이곳에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어. 어떻게 된 일이야?"

"아, 그게……."

종혁은 간단히 사정을 설명했다.

"아, 그런 거였어? 그랬다면 잘 온 거야! 러시아에서 이곳만큼 쉬기 좋은 곳도 없지!"

"하하. 세브첸코 씨는요?"

"전에 최, 네가 투자에 대해 말했잖아. 미리 자리 좀 알아보려고 왔어."

"……아, 그 금광을 말하는 거죠?"

"맞아, 그거."

"금광?"

종혁은 움찔 놀라는 빅토르와 올가를 봤다.

"왜 그래요?"

"왠지 그 금광이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서……."

"맞아! 그거 네 땅에 있는 거였지, 참!"

"아마 그럴 거야, 올가."

종혁은 이 엄청난 우연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세브첸코 씨가 말한 금광이 개발된다는 고향이 빅토르의 짝사랑 상대가 있는 곳이다?’

빅토르와 세브첸코도 이 우연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올가는 아니었다.

그녀는 왜인지 당황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 투자 때문에 오셨다뇨? 설마 벌써…… 합!"

얼른 입을 막은 올가는 주위를 살피더니 갑자기 세 남자를 구석으로 데려갔다.

그러곤 한숨을 푹 쉬었다.

"벌써 아저씨한테까지 소식이 닿은 거예요? 하아, 진짜 시골 사람들 입 싼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세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이야? 금광이 개발될 거란 건 소식이 터지자마자 알았는데. 그래서 공중목욕탕이나 숙박 시설 지을 자리를 알아보러 온 거야."

"……아. 그거였구나."

눈에 띄게 안심하는 모습에 셋은 더 의아했다.

"뭐야. 무슨 일이 더 있는 거야?"

"앗!"

당황한 그녀는 우물쭈물하다가 자신의 입을 쳤다.

"하아. 알았어요. 대신 아저씨만 알고 있어야 해요. 빅터는 이미 그 채굴 회사에 맡겼고, 최는…… 음. 응. 한국인이니까."

머릿속의 뭔가를 정리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빅터 땅에 있는 금광을 개발할 거라는 회사가 이 마을 유지들을 모아다가 투자를 제안했어요."

"투자?"

"네. 금광을 개발할 비용을 투자하면 훗날 개발이 완료됐을 때 은행보다 많은 이자를 주겠다고."

"뭐? 진짜?"

종혁도 놀랐다.

‘이거 시민 투자 공모인데?’

그렇지만 뭔가 이상하다.

종혁이 알고 있는 시민 투자 공모는 보다 많은 투자금 모집을 위해 웬만해선 공개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잠깐. 일라이자가 투자를 제의했다고?"

‘자금 사정이 나쁘단 소리인가?’ 빅토르의 말에 올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 마을과 상생하고 싶다고. 그러나 너도나도 받아 줄 순 없으니까 일부만 받는다고 했어."

"아, 그런 거였나."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고맙다.

"그러면서 그때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에 한해서 각자 두 명씩만 더 끼워 줄 수 있다고 했거든. 나도 그 때문에 알게 된 거고."

‘두 명?’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비밀 유지를 시켜 놓고, 두 명씩 더 끌어들인다?’

갑자기 코가 간질거린다.

"올가, 실례가 안 된다면 그때 모였던 사람이 몇 명인지 물어도 될까요?"

"음, 삼십 명? 그 정도 될 거야."

"마을 사람들은 몇 명이죠?"

"한 천 명? 그쯤 될걸? 왜 이런 걸 물어보는 거야?"

"아니요. 흐음. 그래요……."

1000명 중 90명. 분명 적은 수다.

하지만 이걸 비율로 따지면 무려 9퍼센트다.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입을 다문다?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너무 많은 사람이 알았어.’

비밀은 극소수만 알고 있을 때 지켜지는 거다.

더욱이 광산 개발이라는 건 하루 이틀 만에 뚝딱 끝나는 게 아니다. 최소 몇 달, 길면 몇 년.

비밀은 어떻게든 새어 나간다고 봐야 했다.

애초부터 30명조차도 많은 숫자다.

"비밀이 새어 나가면 무조건 분란이 생길 텐데……."

누군 해 주고, 누군 안 해 준다?

이곳이 도시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여긴 시골이다. 모두가 서로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시골.

여차하면 투자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가 항의할 수도 있다.

이런 꼴을 많이 본 종혁이기에 확신할 수 있다.

"왜 그럽니까, 최?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아니요. 미안해요, 빅토르. 내가 잘못 생각했나 보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올가?"

"응. 뭐……."

종혁은 이것도 아니라면 그냥 신경을 끄기로 했다.

촉이 아무리 외친다고 해도.

"혹시 그 투자 액수에 상한선이 정해져 있었나요?"

"응. 한 사람당 백만 루블. 이자율은 달에 3퍼센트."

‘뭐?’

"3퍼센트요? 달에?"

백만 루블, 현재 환율로 약 5백만 원.

달에 3퍼센트면 15만 원 꼴이지만, 이게 일 년이 되면 180만 원이다. 약 3년이면 이자가 원금을 넘어선다.

"그런데 처음 제의를 받은 분들은, 그러니까 우리를 소개한 그분들은 이것보다 이자율을 더 높여 준다고 하더라고. 4퍼센트?"

‘여긴 또 4퍼센트라고?’

"뭐야. 그거 미쳤잖아?! 나도 투자할 수 있는 거야?"

"아까 제가 말했잖아요. 투자자는 모두 채워졌다고요. 그래서 저도 친구에게 소개시켜 주지 못해 얼마나 속상한데요. 하, 걔 진짜 어렵게 사는……."

띠리링 띠리링!

"잠시만요. 네, 얼른 들어가겠…… 아, 반코 씨! 네, 네. 네?! 정말요?"

갑자기 올가의 얼굴이 환해진다.

"그땐 아쉬워서 말했던 건데…… 아뇨, 당연히 감사하죠! 어휴. 당연히 비밀은 지켜야죠! 신의 축복이 당신과 함께하길 빌게요!"

전화를 끊고 꺄아 비명을 지르며 행복해 하던 올가는 세 남자의 시선에 아차 했다.

종혁은 세브첸코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설마 했다.

전화를 받기 전 세브첸코와 올가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올가 씨, 혹시 방금 전화 그겁니까? 당신 친구의 사정이 딱해 보이니까 그 친구도 투자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대신 억지로 끼워 넣는 거니까 친구 이자율은 낮을 거라고?"

"헉! 그, 그걸 어떻게?!"

빅토르와 세브첸코도 깜짝 놀라 종혁을 봤다.

"뭐? 진짜? 올가, 그런 전화였어?"

"아, 아뇨. 아저씨 그게……."

종혁은 진땀을 빼는 그녀를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이거 그거잖아."

희대의 사기꾼 조희구란 인물을 탄생시키며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하게 만든 끔찍한 사기.

‘다단계 투자 사기.’

종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갑자기 계약일이 하루 앞당겨졌다.

빅토르의 일방적인 말에 그들은 마을에 세운 사무소를 허둥지둥 쓸고 닦으며 구슬땀을 흘렸다.

"휴우."

파리가 앉아도 미끄러질 만큼 깨끗해진 사무실.

김 대리는 지원과 직원들 중 한 명을 툭 치며 담배를 피우자는 신호를 보냈다.

"예, 그러죠. 박 사원. 같이 가."

"예! 임 사원도 가죠?"

"그럴까요?"

근처 도시에서 고용된 러시아 직원들은 옥상으로 향하는 본사 직원들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다 할 일을 시작했다.

칙!

좁은 옥상에 선 그들은 서로에게 불을 붙여 줬다.

화창한 시베리아의 푸른 하늘이 숨을 탁 트이게 했다.

"돈 벌기가……."

지원과 직원 한 명에게 시선이 모인다.

"참 쉽네요."

현재까지 9천만 루블을 벌었다.

한화로 4억이 훌쩍 넘는 액수다.

또 백만 루블이 더 들어올 예정이다.

그걸 고작 며칠 만에.

아직 금광은 개발조차 안 했는데.

"가만 보면 사람들은 죄다 병신 같아요. 왜 이런 데 속지?"

이자율이 최대 48퍼센트다.

누가 봐도 사기다.

"그게 이 프로젝트의 묘미죠."

사업 아이템을 보여 주고 투자금을 모집한다.

상생이든 선물이든 아무 명분이나 가져다 붙여 물꼬를 튼다.

처음엔 소액이다.

고작 백만 루블. 한화로 약 5백만 원.

썩 잘 살지 못하는 러시아의 이런 시골 마을에선 큰돈일지라도 훗날 받을 이자를 생각하면 내놓지 못할 돈은 또 아니다.

이에 대한 데이터는 이미 회사에 있다.

부담이 되지만, 또 없어도 큰 무리는 없는 액수.

처음엔 당연히 의심을 할 거다.

그러나 개발 도중에 이자를 지불하면?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 같아 죄송해 미리 지불한다고 하면?

그때도 계속 의심할 수 있을까?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의심이 사라진 순간부터 90명의 투자자는 900명, 9000명으로 순식간에 늘어날 거다.

"우린 여기서 생기는 데이터를 모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자를 받지 않아도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얼마를 지불하면 만족하는지, 얼마나 재투자하는지. 그리고…… 내가 소개한 사람이 나보다 이자율이 낮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등 모든 걸."

이 프로젝트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데이터 수집.

물론 당연히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이런 데이터를 수집하는 거다.

"크. 진짜 기조실 직원들 미쳤네요.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하지?"

이 프로젝트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본사의 기획조정실에서 내려온 거다.

"그러니 회사 최고의 브레인들만 모인 거겠죠."

고개를 끄덕인 그들은 옥상 아래를 내려다봤다.

"저 사람들은 알까요. 이 투자의 끝이 생지옥이란 걸."

"알면 투자를 했겠어요?"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한적한 시골 마을 풍경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병신들.’

"아, 우리 호구 동업자님께서 오셨군요."

금광을 빌려준 동업자.

물론 빅토르는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만 말이다.

김 대리는 파견 직원을 봤다.

"별거 없는 거 맞죠?"

"부모가 로마노프 유통이라는 마켓 체인을 운영하는 거 말고는 딱히요?"

그 이상은 아무리 조사해도 없다.

마켓 운영도 전문 경영인을 쓴다. 벌리는 돈으로 유유자적 사는 부류의 인간들이다.

그렇게 보이도록 꾸며졌다는 걸 모르는 파견 직원은 당당히 말했다.

"빅토르 본인이 엄청난 정치인과 관계가 있지만……."

엄청난 부와 권력을 지니고 있지만, 돈의 노예는 아니다. 그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류,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이 금광에 욕심내어 끼어들 인물은 아니다.

자신들이 제어하지 못할 다른 지분이 끼어들어 판이 어그러지는 게 문제지, 그것만 아니라면 상관없다.

어차피 모든 걸 알 때쯤이면 자신들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

새로운 신분, 새로운 얼굴.

KGB, 아니, SVR이라도 찾을 수 없었다.

"좋군요. 내려갑시다."

"예."

그들은 활짝 웃으며 계단으로 향했다.

*  *  *

"경우가 있는 친구들이었군."

빅토르가 흐뭇하게 웃는다.

첫사랑이자 짝사랑인 올가.

지금은 다른 사람과 결혼해 아이가 있는 어린 시절의 열망.

이런 시골에 가문의 마트를 세울 만큼 좋아했다.

아직도 빅토르의 가슴엔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비록 얼마 안 되는 돈이라지만, 그녀에게 이득을 나눠 준다는데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종혁의 반응이 신경 쓰인다.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겁니까?"

"예, 아직은요."

"아직은? ……최."

"정말 아닙니다. 아직은."

‘사기는 돈을 가지고 튀기 전까지는 사기가 아니야.’ 이 다단계 투자 사기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이득을 나눠 주니까.

‘의심스럽다고 해도 통장에 돈이 찍히는데 안 믿고 버텨?’

‘사람들은 왜 이딴 걸 믿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류의 사기는 그런 생각 때문에 더 당하게 된다.

설마 내가 사기를 당하겠어? 이런 방심과.

어? 돈이 들어오네? 계속 들어오네? 이렇듯 돈이 눈을 가려 버리니, 당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그렇게 함락당한 사람들은 그때부터 사기꾼에게 돈을 던지기 시작한다.

닥치고 내 돈 받고, 이자 내놔라.

이외에도 다단계 사기와 투자 사기가 결합된 끔찍한 이 사기는 사람의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기에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 힘든 늪이다.

이 원초적인 본능이 다단계 투자 사기의 진짜 핵심이다.

내가 소개한 애는 나보다 이자가 낮다.

내가 더 대우를 받는구나.

내가 얘보다 낫구나.

어? 쟤는 나보다 이자를 더 받네?

왜지? 나도 저러고 싶다.

이런 원초적인 본능이다.

남들보다 더 잘나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

‘좋은 투자처가 있으니 소개시켜 준다?’

개소리다.

이 사기에선 개소리다.

진짜 좋은 투자처라면 남들과 공유하지 않는 게 사람 본성이다.

아닌 사람도 많지만, 대부분이 그렇다.

정말 혹시라도 사기일 수 있으니까, 무서우니까 리스크를 같이 나눠지자는 무의식에 가까운 이기심까지 합해져 이 사기가 완성된다.

"이자율이 문제인 겁니까? 물론 나도 그 부분은 의심스럽습니다."

은행보다 거의 열 배나 높은 이자다.

"하지만……."

일라이자 채굴이 금광에서 벌어들일 순수익을 생각하면 얼마 안 되는 돈이다. 현재 치솟는 금값 상승까지 포함시키면 더욱 그렇다.

그 적은 이익으로 금광과 가장 가까운 이 마을과 상생을 한다면, 그들에겐 남는 장사다.

이 마을이 온갖 편의를 봐줄 테니까.

"그걸 알아보기 위해 동행을 부탁한 겁니다. 그러니 날 조금만 더 믿어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이 말에 더 불안해지지만, 빅토르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절 아이반으로 불러 주세요. 당신의 부자 친구인 고려인 아이반."

"……알겠습니다, 아이반."

"고맙습니다."

‘부디 아니길 빌어야지.’ 종혁은 없는 게 없던 로마노프 마켓에서 산 도수 없는 안경을 고쳐 썼다.

"안경을 쓰니 더욱 지적으로 보이는군요."

"하하."

둘은 이 마을에 세워진 일라이자 채굴 사무소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사무실 안에 있던 10명의 남녀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오랜만입니다. 반코 킴, 아니 킴 대리."

고려인 반코 킴.

그를 본 종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고려인? 아닌데? 이놈 한국인인데?’

서양인들은 동양인을 잘 분간 못 하지만, 한국인인 종혁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생김새가 딱 한국인이다. 진퉁 한국인.

‘그리고…….’

흠칫!

뭔가를 발견한 종혁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섬뜩!

순간 목에 칼이 들어온 듯한 느낌에 종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던 김 대리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왜인지 냉소를 짓고 있다.

"이분은?"

"아, 내 친구 아이반입니다. 킴 대리와 같은 고려인인데, 이번에 제 별장에 함께 놀러……."

"됐으니 빨리 하고 갑시다. 여우 사냥 가르쳐 준다면서요."

"……뭐, 이래서 같이 온 겁니다."

"하하. 그러시군요…… 이쪽으로 오시죠!"

종혁과 빅토르는 사무소 안쪽의 사무실로 안내됐다.

계약서는 사전에 조율됐기에 계약서를 한번 훑어본 빅토르는 펜을 들었다.

"흠."

"뭐 해요, 빅터. 안 가요?"

움찔한 빅토르는 사인을 휘갈겼다.

갑자기 빅토르가 망설이자 조마조마했던 김 대리의 얼굴이 활짝 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보잘것없는 저희 회사에게 채굴을 맡겨 주신 이 은혜, 채산성으로 갚아 드리겠습니다!"

"됐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 마을과 상생의 길을 택한 귀사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는 없으니까요."

"아니, 그걸 어찌 아시고?"

김 대리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상정한 범위 내의 질문이었다.

"별장이 근처에 있는데 이 마을의 일을 모를 리가……."

"상생?"

빅토르와 김 대리의 시선이 종혁에게로 향한다.

‘흠.’

빅토르는 더 의심이 됐지만, 일단 장단을 맞춰 주기로 했다.

"여기 일라이자가 이 마을 사람들 대상으로 투자를 모집하고 후에 큰 이자를 지불한다더군요. 맞습니까?"

"오, 큰 이자. 얼마나?"

종혁은 김 대리를 보며 말했다.

"최대 48퍼센트입니다, 아이반 씨. 하지만 그건 이 지역 유지……."

종혁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48퍼센트? 은행 이자 보다 몇 십 배 높잖아?"

"하하. 다 저희 직원들 때문에 힘들 이 마을을 위한……."

"그거 나도 투자합시다. 용돈이나 좀 벌게."

"예?"

"천만 달러면 적당하지?"

"……아이반!"

"왜? 금광이라면서요. 몇 백억 루블은 그냥 벌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채굴권도 넘겼으면서 쩨쩨하게!"

"내 금광은 그 정도로 가치가 높지 않습니다!"

"……아, 그래요?"

실망한 종혁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김 대리를 봤다.

"흠. 뭐 내 투자에 대해 관심 있으면 빅터에게 연락해. 내 투자를 받을지 안 받을지 모르는 사람에게 내 번호를 주긴 싫으니까. 다 끝났으면 가죠, 빅터."

"끙."

빅토르는 고개를 저으며 일어섰다.

"아, 그런데 반지가 멋지네? 어디서 산 거야?"

"부, 부모님 결혼반지입니다. 어디서 샀는지는 모릅니다."

"아, 그래? 알았어요. 수고."

슬그머니 반지를 숨기는 김 대리를 보며 피식 웃은 종혁은 몸을 돌렸다.

그렇게 사무소를 빠져나온 빅토르는 다급히 물었다.

"대체 왜 그런 겁니까?"

방금 전 종혁의 모습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그 말에 껄렁하던 종혁의 낯빛이 싸늘하게 굳었다.

"사기일 확률이 높으니까요."

"사, 사기?"

"예. 사기."

종혁은 차창으로 비치는 사무소를 보며 이를 갈았다.

까드득!

‘오랜만이다, 이 개새끼들아.’

김 대리라는 놈이 차고 있던 금반지.

종혁은 그것과 똑같이 생긴 반지를 알고 있다.

대전 어린이 사건.

그때 자살한 그놈이 찬 반지.

놈들이었다.

그 조직이었다.

살의가 머리끝까지 솟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