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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15화 (115/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15화>

    저택에 도착한 종혁은 소파에 늘어졌다.

    "하. 지친다."

    죄다 훈련 교관이었다.

    나이가 마흔 이상 되는.

    그런 이들이 종혁 본인의 입만 바라본다는 건 심력을 엄청나게 소모시키는 일이었다.

    종혁은 이대로 아무것도 안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안 하고 싶었다.

    저벅저벅.

    "꼭 소금물에 절인 배추 같군요."

    "……출근 안 했습니까?"

    "어제부터 휴가입니다."

    "나쁜 CEO네요."

    "좋은 CEO죠. CEO가 먼저 휴가를 가야 직원들도 마음 놓고 휴가를 갈 테니까요."

    종혁은 한 손엔 고기 꼬치, 다른 손엔 보드카 병을 든 빅토르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몸에서 숯 냄새가 강하게 나는 게 직접 구운 듯했다.

    옷차림도 팬티에 가운만 입고 있다.

    저택을 자기 집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띠리링! 띠리링!

    "아, 잠시 이것 좀."

    종혁은 넘겨받은 꼬치를 한 입 물었다.

    ‘어? 맛있는데?’

    소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덩치인데 손맛이 있는 듯했다.

    "글쎄요, 내가 왜 휴가 중에 당신들을 만나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이 번호를 어떻게 안 건지 모르겠지만, 다신 걸지 않아 줬으면 좋겠습니다."

    단호히 전화를 끊은 빅토르는 미안하단 표정을 지었다.

    종혁은 고개를 저으며 보드카를 낚아챘다.

    "무슨 일 있어요?"

    "한국에서 온 기업가인데 절 만나고 싶다는군요."

    "한국이요?"

    "아마 그쪽일 겁니다."

    캔 커피와 도시락 컵라면 등을 만드는 기업.

    작년부터 유통망을 넘겨 달라 귀찮게 굴고 있었다.

    상의도 없이 러시아에 진출해 놓고 뻔뻔하게.

    옐친 선거 캠프에서 인연을 맺은 그가 아니었다면, 맨땅에 헤딩해 가며 이룩한 걸 모두 뺏길 뻔했다.

    "최, 혹시 불쾌한……."

    "아니요. 신경 안 씁니다."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다.

    잘못도 저쪽이 먼저 했다.

    같은 한국인이라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역시 당신과 인연을 맺은 건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인 것 같습니다."

    "하하."

    어색하게 웃는 종혁을 보는 빅토르의 눈이 뜨거워진다.

    "최. 갑작스럽겠지만, 이제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 정도면 저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란 천재에게 꿀리지 않을 만큼."

    짧지만 강렬했던 종혁과의 추억.

    이후 빅토르는 한 가지 마음을 계속 품어 왔다.

    "무슨! 빅토르!"

    "그러니 최."

    빅토르는 손을 내밀었다.

    "나와 친구가 되어 주시겠습니까?"

    헤어지기 전 나누었던 인사말.

    ‘성공해서 봅시다.’

    그건 빅토르가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었다.

    어린 천재와 비교하면 한없이 부족했던 본인에게 한.

    "……."

    갑작스러운 말이다.

    하지만 진지하다.

    그래서 더 당황스럽다.

    종혁이 빅토르를 도운 건 순수한 호의가 아니었기에.

    그에게 받아야 할 게 있기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밀어진 손이 떨리고 있다.

    소도 때려잡을 만큼 덩치가 크고, 성공한 사업가임에도 이성에게 고백한 아이처럼 떨고 있다.

    ‘……못 당하겠네.’

    아무래도 그 정치인의 아들은 나탈리아에게 소개시켜 달라고 해야 할 듯싶었다.

    어차피 사건이 발생하는 시기는 2007년.

    명분을 쌓을 시간은 넘치도록 많았다.

    생각을 정리한 종혁은 그 손에 보드카 병을 쥐여 주었다.

    "우린 이미 친구 아니었던가요?"

    "……!"

    "전 친구가 아닌 사람에게 집을 내주지 않습니다."

    "최! ……하하핫!"

    배를 잡고 웃은 빅토르는 눈가를 훔치며 종혁의 팔을 잡아당겼다.

    "일어나시죠!"

    "음?"

    "이 뜻 깊은 날을 축하해야죠! 러시아의 밤을 찢어 보는 겁니다!"

    "아…… 음. 오늘은 피곤한데요."

    종혁도 가고 싶지만, 정말 피곤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라고 했잖습니까! 지금 가는 겁니다!"

    "응? 한국어를 어떻게……."

    "자, 갑시다. 남자는 고작 이런 걸로 피곤해하지 않는 겁니다."

    "아, 잠깐. 잠깐만! 진짜 힘들다고-!"

    종혁은 그렇게 끌려갔다.

    *  *  *

    철판으로 만든 표적지나 타이어 따위가 세워진 전술 사격장.

    가슴 앞에 팔짱을 낀 수백 명이 선글라스와 커다란 헤드셋을 낀 채 사격장을 응시하고, 스타트 지점에 선 갈색 머리의 50대 중년인이 숨을 고른다.

    "후우."

    삐이!

    스피커에서 머릿속을 흔드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자 중년인이 권총을 뽑아 들며 방아쇠를 당긴다.

    빵! 빠바방!

    대지를 찢어발기는 총포음.

    철판 표적지에서 땅땅 소리와 함께 불똥이 튄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러시아 연방 보안국 FSB 대테러 부대 알파의 훈련 교관인 50대 중년인은 마지막 표적지를 맞추고 손을 들었다.

    -11초 03.

    "……뭣?"

    중년인뿐만 아니라 지켜보고 있던 수백 명의 훈련 교관들도 경악했다. 종혁에게 트레이닝을 받기 며칠 전, 그들은 신체 능력 데이터를 객관적으로 뽑아냈다.

    그때도 이 전술 사격을 했는데, 당시 중년인의 기록은 11초 05.

    무려 0.2초나 앞당겨진 거다.

    단순히 컨디션이 좋다고 해낼 일이 아니었다.

    ‘고작 일주일 훈련받았을 뿐인데 0.2초가 단축됐다고?’

    그들은 전율했다.

    그러나 그건 중년인의 심정만 못했다.

    ‘내, 내 최고 기록은 10초 08인데…….’

    그것도 육체가 최전성기였던 30대 중반에 기록한 거다.

    이후로 그의 육체는 나날이 쇠락해 갔다.

    무슨 수를 써도 기록은 나날이 떨어져 갔다.

    구멍 뚫린 모래시계처럼.

    그걸 다시 되돌린 거다.

    ‘다시 그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던 시절.

    이젠 술자리에서나 찾는 그 시절.

    울컥한 중년인은 다급히 종혁을 찾았다. 나머지 수백 명의 훈련 교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처럼 가슴 앞에 팔짱을 끼고 있던 종혁은 그런 그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여자가 여자랑…… 키스를…….’

    그것도 개방된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이제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가수들이.

    말을 들어 보니 요새 한창 러시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2인조 가수라고 했다. 그것도 커플.

    역시 어메이징 러시아라 할 수 있었다.

    뭐든 상상 이상이었다.

    "음?"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든 종혁은 이쪽을 쳐다보는 훈련 교관들의 모습에 당황했다.

    ‘쩝. 중요한 날인데 한눈을 팔았네.’

    오늘은 지난 일주일 동안 행해진 피지컬 훈련의 결과를 점검하는 날이다.

    머쓱해진 종혁은 검지를 들어 허공에 원을 그렸다.

    계속 진행하라는 신호였다.

    그에 훈련 교관들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기록을 무려 0.2초나 앞당겼는데, 동요하지 않다니!’

    ‘허.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건가?’

    고작 일주일 만에 0.2초 단축이다.

    그런데 앞으로 약 한 달 반의 기간이 더 남아 있다.

    훈련 교관들의 피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일리나, 앞으로.

    "예!"

    러시아 대외 정보국 SVR의 훈련 교관인 40대 여성 요원이 앞으로 나서며 팔을 축 늘어트렸다.

    삐이!

    번개처럼 뽑힌 권총이 사람처럼 생긴 표적지를 향해 불을 뿜었다.

    우글우글.

    플라스틱 식판을 든 훈련 교관들이 줄을 선 식당.

    행복한 식사 시간이건만 그들의 표정은 썩 좋지 못하다.

    "끙. 이 나이에 풀 따위를 먹어야 한다니."

    "어쩔 수 없잖아. 이 빨간 고기를 보고 참자고."

    정말 먹기 싫지만, 유연성과 반응속도 등 신체 능력 향상을 위해 꼭 먹어야 하는 야채.

    하루 권장량이라는 이상한 명칭 아래 식판에 수북이 쌓인 채소와 과일을 보니 암담하기만 하다.

    "빌어먹을! 마요네즈라도 뿌리게 해 줘!"

    "아님 보드카라도!"

    "보드카 아니면 죽음을!"

    "마더 보드카!"

    식당이 순식간에 개판이 됐다.

    "어휴. 저 영감탱이들 또 저러네."

    "놔둬. 내일 눈을 뜨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잖아."

    러시아 남성 평균 수명 60세 미만.

    이제 고작 50대임에도 죽음의 그림자는 가까워져 있었다.

    "최, 하루 권장량이라는 게 정말 있는 말이야?"

    빨간 고기, 제육볶음을 한 쌈 크게 싸서 먹던 종혁이 맞은편에 앉은 스페츠나츠 훈련 교관을 봤다.

    50대임에도 성인 여성 허벅지만 한 팔뚝이 인상적이다.

    "KGB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CIA와 더불어 세계 최고의 스파이 기관이었던 KGB에 세계 최고의 부대로 손꼽히는 스페츠나츠다.

    보다 빠른 작전 수행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신체를 연구해야 했다. 이런 종혁의 말에 같은 테이블에 앉은 다른 교관들도 어이없다는 듯 봤다.

    "……최. 우린 나치가 아니야."

    ‘이게 나치까지 갈 일이라고?!’

    "아니, 스파이었다면서요. 그랬다면 신체 능력 향상을 위한 비법들을 많이 수집했을 텐데요?"

    "뭐, 그러긴 했지. 약재로 만든 탕을 분석한다든가, 그걸 바탕으로 만든 약물로 기초 신체 능력을 향상시킨다든가 이런 실험들은 했지."

    그 외에도 여러 실험을 진행했지만, 이건 극비라서 말할 수 없었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의 맛은 정말 끔찍했다는 거다.

    "그래서 네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비록 마요네즈 같은 기름진 것을 여태까지처럼 먹진 못하지만, 그래도 맛과 영양까지 모두 잡았다.

    마치 수십 년 동안 연구를 한 것처럼 체계화되어 있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기존보다 수월하고 안전하게 신체 능력 향상을 꽤하고 신체 밸런스를 맞춘다.

    피지컬 훈련뿐만 아니라 이것도 보물이었다.

    아니, 이 둘은 한 쌍이었다.

    ‘맞아. 이 시기엔 이랬지.’

    중요한 순간, 이를테면 경기에서 힘을 폭발시키는 게 전부인 거다. 얼마나, 몇 번이나.

    딱 거기에만 초점을 맞춰 육체를 완성시키고 보수하는 거다.

    "데이터가 없는 게 아니라 방향성이 다른 거였네요."

    이 시기의 방향성은 단단하고 강인한 콘크리트 같은 육체다.

    만들기도 쉽고, 보수도 쉽다.

    데미지를 계속 받으면 결국 무너질 걸 알면서도 그땐 전성기가 끝난 후이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

    이걸 버티지 못하고 일찍 은퇴하면 그의 재능은 거기까지로 치부된다.

    그러나 미래엔 다르다.

    보다 길게 선수 생활과 전성기를 이어 가기 위해, 은퇴 후에도 몸을 지키기 위해 연구가 이뤄진다.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고 강인하면서도 탄력적이고 유연하기까지한 고무 같은 육체.

    여기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맛까지 잡는다.

    "이걸 토대로 러시아군의 식단도 바뀌겠지."

    그렇게 말한 중년인의 눈이 아련해졌다.

    ‘이젠 안심하고 은퇴할 수 있겠어.’

    세계에선 최고로 손꼽히는 특수부대지만 그에겐 병아리 같아 불안했던 스페츠나츠들과도 이젠 이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은퇴하고 뭐 하시게요?"

    그의 작은 혼잣말은 종혁에게 들렸다.

    "뭐, 고향에서 광부나 하지 않겠어? 마침 금광도 개발된다 하고."

    ‘아직까지도 금광이 있나 보네.’ 역시 자원의 넘치는 나라, 러시아다운 말이었다.

    "흠. 그럼 퇴직금을 미리 당겨 받아서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투자?"

    "이를테면 광부들을 위한 편의 시설? 공중목욕탕? 뭐든 광부보단 나을 거예요. 몸도, 마음도. 경호원 같은 건 안 하실 거잖아요."

    그럴 거였으면 이 말부터 꺼냈을 거다.

    "……맞아. 이젠 누가 죽는 걸 보기 싫거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아침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웃으며 나간 동료가, 후배가, 선배가 저녁엔 영안실에 누워 있는 걸 보게 될 때마다 정말 미쳐 버린다.

    순직 처리도 안 될 땐 이 짓을 계속해야 되나 회의감마저 든다.

    "아마 이 친구들도 같은 마음일걸?"

    테이블에 씁쓸한 웃음이 번진다.

    이럼에도 일을 관두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을 종혁은 이번에도 이해했다.

    국가에 대한 충성.

    내 가족을 지키겠다는 마음.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맹세.

    기저엔 다 이런 족쇄가 채워져 있다.

    스스로 찬 족쇄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들은 모두 이런 족쇄를 차고 있다.

    "그러니 최!"

    "네?"

    "너도 전술 사격에 대해 배워 보지 않겠어?"

    "……예?"

    "우리 러시아의 보물이 범죄자 따위를 잡다가 총 맞게 둘 순 없잖아! 안 그런가, 동지들?!"

    "맞소!"

    "옳소!"

    "아, 아니! 필요 없는데요!"

    총기 사건이 무척이나 희귀한 한국.

    그런 한국 경찰에게 총은 쏴서 맞히라고 있는 게 아니라 던져서 맞히라고 있는 거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가 정말 병아리 다루듯 세심하게 가르쳐 줄게. 우리가 이 분야의 스페셜 리스트야!"

    "아니이!"

    "이봐, 세브첸코! 뭐부터 가르칠 거야?!"

    "당연히 시작은 마카로프지!"

    "그렇지! 마더 러시아는 마카로프지! 글록 따윈 꺼져!"

    "오오오! 러시아! 러시아-!"

    분명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한 것처럼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모습에 종혁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래. 배워서 나쁠 건 없겠지."

    이왕 이렇게 된 거 경찰청 사격 대회 입상을 준비해도 될 것 같다. 인사고과에 꽤 플러스가 되는 사격 대회를.

    탕! 탕타타탕!

    빈 탄창을 뺀 종혁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그려진다.

    ‘이야, 이거 재밌네?’

    표적지에서 팅팅 불꽃이 튀니 제법 쏘는 맛이 있다.

    표적도 하나도 놓치지 않았고, 속도도 나름 빨랐다.

    처음 하는 전술 사격이라고 해도 이 정도면 제법 준수하다고 할 수 있었다. 헤드셋을 벗은 종혁은 뒤따라온 훈련 교관을 봤다.

    "……."

    왜인지 멍해 있는 그.

    지켜보던 교관들 중 선글라스를 벗고 눈을 껌뻑이는 이도 많다.

    "어때요? 괜찮아요?"

    "……뭐야. 왜 잘해?"

    ‘사격의 신인가?’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극한으로 단련된 신체가 느려진 시간 속에서 표적을 찾고 최적의 동선으로 움직인다.

    잘하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그러게 내가 필요 없다고 했잖아요.’

    종혁은 멍하니 쳐다보는 그들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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