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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13화 (113/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13화>

    35. 불곰의 나라

    -너. 인마. 너너너!

    "죄송합니다!"

    -……어휴. 이 새끼 얼른 형사로 만들어야지, 원! 내가 너 때문에 간이 썩는다, 썩어!

    "하하. 술은 적당히 드세요."

    -누구 때문인데, 이 자식아!

    종혁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잘했어. 그런 놈들은 사정 봐주면 안 돼. 아후, 사이다 마신 것처럼 시원하네. 그럼 실습 마무리 잘하고.

    "예!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은 종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벌써 세 번째 전화다.

    첫 번째는 최기룡 학장이었고, 두 번째는 박춘득 과장이었다.

    둘 모두 처음에 혼내다가 칭찬을 했다.

    "음. 뭐, 다행이네."

    솔직히 4인조 리더의 오른팔을 재기 불능으로 아작 냈을 때 징계를 받는 건 아닌지 걱정했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일절 나오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래도 좀 더 영리하게 굴 필요가 있겠어."

    지금이야 생도 신분이라 괜찮지만, 형사가 돼서도 이놈 저놈 다 분지르고 다니면 진급에 지장이 올 수 있다.

    그건 좀 곤란했다.

    이 마음을 되새긴 종혁은 손에 든 두 개의 꽃다발을 점검하곤 병실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드르륵.

    "어? 그때 그?"

    머리에 붕대를 감은 어머니에게 사과를 먹여 주던 여성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둘 모두 병원복을 입고 있다.

    ‘다행이다.’

    벌써 딱딱한 걸 씹을 수 있을 만큼 회복해서.

    겉으론 별다른 후유증이 없는 것 같아서.

    이 어머니도, 딸도, 그 어르신도.

    종혁은 죄책감이 서린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병실 문이 등 뒤로 드르륵 닫혔다.

    *  *  *

    대-한-민-국!

    4강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4강 진출.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몸이 부서져도 좋으니 결승, 우승을 하길 기도했다.

    광화문, 서울광장, 그 외 전국 도시에 모인 붉은악마들은 기원하고 또 기도했다.

    그 열망은 경찰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니, 경찰들도 바라고 있었다.

    "종혁아! 넌 우리나라가 결승 갈 것 같아?"

    "4강에서 끝날걸?"

    "뭐? 진짜?"

    "너너, 그러는 거 아니다! 당연히 우승해야지! 개최국 존심이 있는데!"

    ‘아쉽지만 여기서 끝난단다, 애들아.’ 다시 못 올 영광의 그날. 아니, 이날.

    정말 잘 싸웠고, 다시 봐도 눈물이 흐를 만큼 아름다운 투혼이고 벅찬 감동이다.

    "얘들아, 우리 실습 끝나면 뒤풀이할래? 회포도 풀 겸?"

    정말 열심히 실습한 동기들이다.

    이들 덕분에 중구의 치안이 많이 안정됐고, 종혁도 신경 쓸 게 꽤 많이 사라져서 좋았다.

    4인조 뻑치기 범인들 중 한 명도 용감하게 잡았다.

    ‘아직은 등까지 맡길 순 없지만.’

    그래도 충분히 생도로서 제 몫을 하고 있었다.

    믿을 수 있었다.

    동기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찬성!"

    "나도!"

    "어디서 할 거야?"

    "나이트?"

    돼지엄마나 명동파 전무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

    "얼레? 종혁이 너 나이트도 가?!"

    "난 찬성! 나 나이트 한 번도 안 가 봤어!"

    "자랑이다!"

    "그러는 넌 가 보셨어요?"

    "아니. 공부만 해서……."

    "여기서 학창 시절에 공부만 안 한 사람 어디 있다고……."

    학창 시절 공부와 운동만 죽어라 하고, 입학해서도 진도 따라가기 바빴던 동기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오케이. 그럼 마무리하고 토요일에 모여서 진하게 놀자."

    "오오오오오!"

    우아아아아아아아!

    종혁은 피식 웃으며 인파를 가리켰다.

    선수 입장이 시작된 듯 미쳐 날뛰고 열광하고 있다.

    "자, 집중하고! 무대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오케이!"

    "라저!"

    "그런데 종혁아, 진짜 우리나라가 여기서 멈출 것 같아?"

    종혁은 끈질긴 동기의 말을 살포시 무시했다.

    그렇게 그들의 현장 실습도 끝나 가고 있었다.

    *  *  *

    이제 정말 여름이었다.

    그늘 밑에 있어도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푹푹 찌고, 땀이 흐른다.

    그래서 경찰대 생도들은 1년 4계절 중 이런 여름이 제일 싫었다. 하루에 한 번씩 세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싫은데요."

    "아니, 왜에. 좋은 기회잖아, 응?"

    여전히 너저분한 임성원 교수의 교수실.

    임성원 교수가 종혁의 앞으로 과자를 내민다.

    "대단한 범죄학자들과 밥도 먹고, 사우나도 같이하고, 어? 산속 별장에서 삼겹살도 굽고?"

    "지식 교류도 밤낮없이 빡세게 하고요?"

    "……."

    미국에 다녀온 후 매일같이 토론을 했다.

    임성원 교수뿐만 아니라 해외 유명 대학 범죄학 교수들과도.

    작년 겨울방학도 그렇게 뺏겼다.

    그런데 이번 방학까지 그러라고?

    "여름엔 쉴 겁니다."

    현장 실습이 마치고 한 달이 넘게 지났다.

    그동안 쉴 틈 없이 공부하고, 단련하고, 토론했다.

    며칠 후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었다.

    ‘뭐 이런 노력 덕분에 그 수사 기법도 마지막 단계지만.’

    그래서 더 이상 토론이 필요 없다.

    이젠 앞으로 일어날, 일어나고 있는 범죄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야 할 때다.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늦어도 내년 초.’

    이후엔 새로운 범죄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보강하면 된다.

    그리고 이 점은 임성원 교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꼬드기는 이유는 하나다.

    "그분들이 그렇게 좋으세요? 만날 보시면서?"

    "모니터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게 같냐? 나 심심하단 말이야. 가자. 응?"

    "심심한 게 아니라 가면 막내라서 그런 거겠죠."

    서로가 평등한 서양이라도 막내는 막내다.

    "……."

    ‘에라이.’

    "잘 먹었습니다."

    "종혁아! 종혁아-!"

    종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수실을 빠져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수고해."

    "옙!"

    경례를 하고 멀어지던 후배들이 꺅꺅거린다.

    ‘꺅! 종혁 선배랑 인사했어!’

    ‘와, 진짜 포스가!’

    멀리 떨어졌음에도 귓가를 울린다.

    어이없다는 듯 웃는 종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예, 최종혁입니다."

    -날세.

    권회수다.

    -이번 여름방학 때 할 일 있는가?

    "아뇨, 쉴 생각입니다. 왜 그러세요?"

    -아, 그래? 아닐세. 그럼 그때 봄세.

    "예?"

    권회수는 가타부타 말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고, 종혁은 핸드폰을 멍하니 보았다.

    "……뭐야?"

    지이잉! 지이잉!

    핸드폰이 또 울렸다.

    종혁은 미간을 좁혔다.

    "예, 최종혁입니다."

    -저예요, 최.

    이번엔 나탈리아였다.

    종혁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어쩐 일이에요? 설마 데이트 신청?"

    -호호, 그럴까요?

    ‘오? 진짜?’

    미녀와의 데이트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종혁의 심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주말 외박을 나와 도착한 레스토랑.

    "최. 이번 여름방학 때 스케줄이 있나요?"

    ‘이번 여름방학 때 나 찾는 사람 많네.’

    "아뇨. 왜요?"

    나탈리아가 눈을 빛냈다.

    "잘됐네요. 그럼 우리 러시아에 놀러 올래요? 정식으로."

    "네?"

    ‘정식으로? 뭔 말이지?’ 종혁은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의 뜻을 알게 됐다.

    *  *  *

    러시아 경찰대학교에서 정식으로 요청이 들어왔다.

    방학 동안 각 나라의 경찰 조직 시스템을 겪어 보고 장단점을 토론하는 게 어떻겠냐는 요청이었다.

    일본처럼 생도 연수 프로그램이 아니라 생도 교환 프로그램이었고, 대학 수업이 아니라 실무 실습을 하자는 거였다.

    당연히 경찰대에선 난리가 났다.

    "러시아. 러시아. 러시아."

    "인터폴. 인터폴. 인터폴."

    한국 경찰행정 시스템에 고쳐야 할 부분이 있을까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생도들과 인터폴을 꿈꾸는 극소수의 생도들 가운데,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생도들이 인천공항에 모였다.

    그 수가 무려 네 명이었다.

    "러시아어 할 줄 아는 사람 많네."

    "러시아 밀수 범죄가 제법 있잖아."

    이제 내년이면 졸업할 4학년 선배가 다가온다.

    "부산 경찰청 노리세요?"

    러시아 밀수 범죄는 대부분 부산과 경상도에서 발생한다.

    강원도에서도 일부 발생되긴 하는데, 강원도는 좌천 성향이 강해서 대부분 가려고 하지 않는다.

    "본청 아니면 부산청이지."

    서울 본청 다음으로 큰 부산 경찰청.

    "야망 크시네."

    "흐흐. 남자여, 꿈을 크게 가져라!"

    "네에."

    종혁은 한 발자국 옆으로 이동해 생각에 잠겼다.

    ‘그 양반 내가 방학 동안 모스크바에 가야 한다니까 웃었지?’

    그렇게 웃은 권회수는 선뜻 그러라고 말했다.

    그런 이유라면 어쩔 수 없다고.

    그리고 그냥 전화를 끊었다.

    사람 찝찝하게.

    ‘그나저나 러시아라…….’

    옛날에 맺은 인연이 떠오른다.

    지금도 가끔씩 연락을 하는 러시아 사내.

    ‘오랜만에 볼 수 있겠…… 응?’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가 다가온다.

    고개를 돌린 생도들은 감탄했다.

    마치 연예인처럼 아름다운 미녀다. 몸에서 풍겨나는 오라도 범상치 않았다.

    그런 그녀가 앞에 서자 생도들은 의아해했다.

    그러나 종혁은 아니었다.

    종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가워요, 한국 경찰대 간부후보생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을 러시아까지 안내할 주한 러시아 대사관 2급 서기관 안젤리나 마카로프예요."

    나탈리아였다.

    "……전체 차렷!"

    척!

    "경례!"

    "충성!"

    종혁을 비롯한 경찰 생도 다섯 명의 외침이 인천공항을 울렸다.

    *  *  *

    기이이잉!

    이륙을 한 비행기 안.

    "와, 미쳐. 나 미쳐."

    네 명의 생도들의 엉덩이가 가만히 있지 못한다.

    그건 인솔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있는 곳이 퍼스트 클래스, 아니, 전세기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A-380 초대형 여객기를 전세 낸 거다.

    즉, 이 비행기 안에 경찰대 관계자 6명과 나탈리아, 그녀의 보디가드, 승무원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 거다.

    종혁은 이 어이없는 상황에 입을 뻐끔거렸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던 나탈리아가 살포시 웃는다.

    "최를 초청하는 건데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죠. 당신이 우리 러시아에 해 준 게 얼만데요."

    러시아가 미국 닷컴 버블에서 번 돈이 무려 한 나라의 국가 예산 규모다. 그것도 경제 순위 5위 안에 있는 나라의 예산.

    그만큼 미국의 돈을 뺏었고, 9.11테러에 대한 정보 제공으로 미국에 빚까지 얹어 놨다.

    그래서 이렇게 벌었음에도 미국은 찍 소리도 못 하는 거다.

    "즐겨요. 이 모든 게 당신을 위한 거니까."

    ‘그리고 러시아를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그녀가 봐도 참 재밌는 나라가 러시아다.

    그런데 이 말을 하지 않는 건 나중의 재미를 위해서다.

    ‘아, 그런 거였어?’

    그렇다면 더 이상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종혁은 승무원을 불렀다.

    "이 안에서 가장 비싼 술이 뭔가요?"

    비행은 편안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하지 않고 바로 모스크바로 와서 피로도 많이 쌓이지 않았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

    공항을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종혁아."

    "왜?"

    "나 아까 비행기에서 뭐 잘못 먹었나 봐. 헛것이 보여."

    "……우연이네. 나도 같은 걸 보고 있는 것 같거든."

    "그웨에에에에!"

    "으아아아악!"

    저 멀리 사람이 불곰에게 쫓기고 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치 일상이라는 듯.

    쾅!

    "어? 버스가 곰을 쳤다."

    그러자 헐레벌떡 도망치던 남자가 그냥 제 갈 길을 간다.

    종혁은 멍하니 나탈리아를 봤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러시아에 온 걸 환영해요!"

    "……."

    러시아. 시작부터 범상치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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