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01화 (101/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01화>

    31. 잘 부탁드립니다

    포럼이 열리는 뉴욕의 한 컨벤션 센터.

    오늘도 관계자로 가득한 컨벤션 센터를 보며 종혁이 머리를 긁는다.

    "교수님."

    "안 한다, 안 해."

    "아, 왜요!"

    대다수가 믿지 않을 것이다.

    천재의 출현이 아니라, 발표자 대신 나온 조수.

    딱 그 정도로 생각할 거다.

    그럴 바에는 임성원 교수가 발표하는 게 낫다.

    학계 내 임성원 교수의 인지도도 끌어올리면서 앞으로 만들어질 두 사람의 수사 기법 채용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다시 봐도 임성원 교수가 제격이다.

    "스승이 돼서 제자가 해결한 사건을 가로채라고? 난 못 한다."

    "아니이!"

    "아니는 반말이고, 인마."

    임성원 교수는 푸근히 웃었다.

    그도 본인이 발표하는 게 이득임을 안다.

    하지만.

    ‘이놈은 크게 될 놈이야. 길을 닦아 둬야 해.’

    임용 후 승진 가도를 위한 길.

    스승으로서 제자가 높은 곳으로 보다 빨리 갈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줘야 했다.

    "종혁아."

    "예."

    "사건만 잘 해결한다고 해서 진급이 빨리 되는 게 아니야."

    종혁은 그제야 임성원 교수의 마음을 알게 됐다.

    ‘그런 거였나.’

    "제가 정치를 못할 거라 생각하세요?"

    임성원 교수는 피식 웃었다.

    "수틀리면 받아 버릴 거잖아."

    "……그건 맞죠."

    경찰청장까지도 움직이는 그 조직.

    회귀 전에도 진급에 목을 맸지만, 실적만으로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조직을 쫓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급을 해야만 한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빠르게 진급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잡아야 했다.

    ‘교수님 뜻이 그러시다면.’

    임성원 교수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도 빠르게 진급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뜻을 외면할 수 없었다.

    "아쉽진 않으세요?"

    소녀 팬인 그가 스타들 앞에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다.

    "아쉽지 않다면 뭐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이게 맞아."

    "……감사합니다."

    "그래. 발표 잘하고."

    임성원 교수가 두드리는 어깨서부터 따뜻한 온기가 퍼져 갔다.

    ‘이런 분을 만나서 다행이다.’

    "제자와 스승의 다정한 모습이 너무 보기 좋네요."

    또각! 또각!

    구둣발 소리가 들린다.

    물러서는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설마 캘리 그레이스?"

    "한때 FBI 뉴욕지국장과 승진을 놓고 다퉜다는?"

    "현장이 좋다고 남은 여자잖아."

    "맞아. 누군가는 현장의 소리를 위로 올려 줘야 한다고 했지."

    ‘호? 그랬어?’ 교수나 CSI 부국장 등 높은 관계자들이 그녀의 과거사에 대해 알고 있다.

    그녀가 유명했단 소리고, 지금도 영향력이 크단 뜻이다.

    ‘이 포럼에서 발표할 수 있는 이유가 이거였구나.’

    종혁은 캘리를 다시 봤다.

    "오셨어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목과 데이지를 구해 준 은혜를 갚는 것뿐이에요. 뭐 이 정도는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나머지를 기대해도 좋아요, 슈퍼맨."

    "하하."

    캘리는 종혁의 옷차림을 보고 눈을 빛냈다.

    "아르마니죠?"

    잿빛 슈트의 라인에서 아르마니 특유의 세련되면서도 중후한 냄새가 풍긴다.

    그것도 기성품이 아니라 맞춤 제작이다.

    ‘센스도 좋구나.’

    이런 류의 행사에선 클래식이 옳다. 참가자 대다수가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

    더해서 파텍필립으로 고급스러움과 재력을 뽐냈다.

    어린 나이라고 얕보지 말라는 뜻을 돌려 표현한 거다.

    웃음이 나올 정도로 당당했다.

    종혁도 놀랐다.

    ‘패션 스타일이 예사롭지 않다 싶더니…….’

    솔직히 알아볼 줄 몰랐다.

    기성품과 맞춤 제작은 라인이 꽤 다르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배려 덕분입니다, 하하."

    종혁은 어수룩하게 웃었지만, 받아들이는 캘리는 그렇지 못했다.

    ‘정말 훌륭해.’

    어제부터 깊이 느꼈지만, 능력부터 성품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그녀는 결국 꾹 눌러 뒀던 욕심을 뱉어 냈다.

    "최. FBI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예?"

    *  *  *

    임성원 교수가 종혁의 넥타이를 점검하며 입을 연다.

    "종혁아, 넌 한국 경찰의 기둥이 될 거야. 학장님과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뜬금없이 왜 이런 말을 하나 싶었던 종혁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핫. 안 가요, 안 가."

    "그렇지?"

    "그럼요. 제가 한국 놔두고 어딜 가요."

    ‘그 조직도 아직 못 잡았는데.’ 그 이후라면 또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먼 일이다. 아직은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일명 데이지 사건에 대한 발표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모두 박수로 발표자를 맞이해 주십시오.

    "……파이팅."

    "다녀오겠습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종혁은 단상에 올랐다.

    "안녕하십니까. 한국에서 온 최종혁, 종혁 최입니다."

    ‘어려!’

    ‘십 대?’

    ‘저 어린 친구가 이 사건을 해결했다고?’

    말도 안 된다.

    차라리 캘리의 옆에 앉는 나이 든 동양인 임성원 교수라면 믿을 수 있었다.

    웅성웅성.

    종혁은 당황이 번지는 객석을 보며 씩 웃었다.

    "그럼 감금 및 가스라이트 이펙트 후 범죄 가담. 일명 데이지 험프리 사건에 대한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따악!

    손가락이 튕겨지며 뒤의 스크린에 사건의 개요가 뜨자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감금 후 가스라이트 이펙트.

    그로 인한 범죄 가담.

    그들 상식으로도 잘 이해되지 않는 까다롭고 희귀한 케이스였다.

    그들은 종혁의 발표에 집중했다.

    그리고 곧 포럼의 발표장은 충격에 빠졌다.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도 끝났지만, 일어서는 사람은 없었다.

    감금 후 피해자의 범죄 가담에 새로운 시각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감금 후 가스라이트 이펙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순종하는 경우는 있어도…….’

    범죄 가담으로 이어지는 건 극히 드물다.

    아니, 감금 이전에 ‘납치’라는 선제 사건이 없다는 점 때문에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선 ‘납치 감금’ 사건들이 제법 발생한다.

    이렇듯 감금 이전에 납치라는 선제 사건이 벌어져야 한다.

    이 피해자는 모두 범인의 집 안에서 발견되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범인이 피해자를 믿지 못하고 주위 이웃에게 들킬까 봐 밖으로 내보내지 않기 때문이지.’

    대부분 다락이나 지하에서 감금된 채 살아간다.

    또 혹여 협박과 핍박으로 인해 범죄에 가담했다 한들 모두 범인의 집, 혹은 아지트에서 안에서만 이뤄진다.

    피해자는 그러다 탈출하거나 구출된다.

    ‘아님 사랑하며 살아가든가.’

    스톡홀름 증후군의 대표적인 성향이다.

    감금 후 피해자의 범죄 가담은 대부분이 이런 스톡홀름 증후군에 의해 발생된다.

    그런데 데이지는 자기 발로 범인을 따라갔고, 범인과 함께 ‘밖’을 돌아다녔으며, 범죄에 ‘가담’했음에도 도망치지 않았다.

    이번 케이스는 피해자와 범인 모두 그 심리 상태를 깊이 연구할 필요성이 짙은 사건이었다.

    종혁도 바로 이 말을 마지막으로 발표를 끝냈고, 이 말 때문에 점심시간이 됐음에도 사람들이 일어나지 못하는 거다.

    "허어. 이러면 정말 저 어린 친구가 사건을 해결한 건데."

    종혁은 시종일관 당당했다.

    질의응답에서도 막힘이 없었다.

    누군가가 커리어를 만들어 주기 위해 대신 발표를 시켰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발표였다.

    가능한가?

    발표를 들었음에도 여전히 의문이었다.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해결된 사건에 의문을 제시할 순 없었다.

    "놀랍군. 동양, 아니, 한국의 수사 기법이 이 정도로 발전했다니……."

    솔직히 충격이었다.

    "아까 그 나이 든 동양인이 가르친 걸 거야. 캘리가 그를 교수라고 부르는 걸 들었어."

    "교수?"

    참석자들은 눈을 빛냈다.

    교수라면 교류 신청서를 보낼 수 있다.

    즉, 이 수사 기법에 대해 더 자세히 토론할 수 있는 거다.

    ‘한국. 한국이랬지?’

    세계에서 유명한 이들의 엉덩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한편, 발표장의 구석.

    팔뚝에 털이 숭숭 난 중년인.

    버지니아 주 랭리에서 날아온 CIA 동아시아관리팀의 팀장이 입술을 비튼다.

    "놀랍군."

    ‘이러면 정말 욕심이 나는데.’ 스포츠 과학의 선구자에, 러시아 최고위층과 연관이 있을 거라 추정되는 종혁이다.

    그런데 이런 능력까지 갖췄다.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좀 더 적극적으로……."

    "하지 마."

    칼끝이 겨눠진 것처럼 뒷목이 서늘해진다.

    팀장은 입술을 비틀었다.

    "세르게이."

    세르게이 세르게이비치.

    그 나탈리아의 지휘 아래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닌 냉전 마지막, KGB 마지막 세대의 스파이 중 한 명.

    팀장이 현역이었을 시절, 세르게이에게 물을 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네가 이러면 내 추측에 더 힘이 실리는데 말이야."

    최고위층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추정.

    "미스터 최는 대체 누구와 연결이 되어 있는 거지? 설마……."

    순간 한 명의 얼굴이 떠오른다.

    러시아 새로운 수장의 얼굴이.

    세르게이는 속으로 비릿하게 웃었다.

    ‘역시 알아차리지 못했군.’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종혁이 두각을 드러내는 걸 막지 못해 크게 한 소리를 들었던 세르게이로서는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흠. 네가 무슨 망상을 하든 상관없지만, 마더 러시아의 친구에게 수작을 부릴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이건 오랜 악우로서 충고야."

    "경고가 아니라?"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고. 조심히 돌아가. 멀리는 안 나가지."

    날카로운 기세가 멀어지자 팀장은 뒷목을 매만졌다.

    끈적한 식은땀이 닦여 나왔다.

    "쯧. 나도 늙었군."

    적이 등 뒤에 다가오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요원으로서 자격 미달, 아니, 자격 박탈이었다.

    "그나저나…… 이러면 정말 포기할 수 없는데."

    러시아가 이렇게까지 감싸고도는 인물이다.

    그 능력도 범상치 않다.

    종혁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던 팀장은 이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일어섰다.

    ‘보다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겠어.’

    *  *  *

    "넌 진짜……."

    떨면 어쩌나, 버벅거리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영어로 유창하게 발표하던 모습은 오히려 배워야 할 수준이었다.

    "아하하."

    ‘이 나이 먹고 이 정도도 못하면 죽어야지.’ 말실수만 해라 하는 표정으로 눈을 붉히고 귀를 활짝 연 기자들 앞에서 브리핑한 게 몇 번이던가.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실수를 바라는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편한 발표였다.

    또각또각!

    "제 작은 보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나머지를 정중히 거부하고 싶을 만큼요."

    그만큼 흡족한 발표였다.

    이쪽 권위자들의 시각을 알 수 있었고, 수사 기법을 보다 더 다듬을 수 있게 됐다.

    이번 미국행은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캘리 그레이스는 만족하는 종혁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한국인은 겸손하다더니 정말이군요."

    "겸손도 상황에 따라 다르죠."

    "호호. 위트도 있고."

    ‘진짠데.’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오! 여기 있었군요."

    "어?"

    종혁은 다가온 노인을 보곤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아, 안드레 교수님?!"

    임성원 교수는 경악했다.

    캘리 그레이스도 놀랐다.

    안드레 교수는 미국 범죄학의 권위자였다.

    "신사의 품격을 아는 당신을 한참 찾아다녔습니다."

    서양에서 슈트는 곧 그 사람의 품격.

    종혁의 나이에 이걸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부딪치며 많은 것을 깨닫는 40대가 되어야 겨우 아는 품격.

    부모가 가르친대도 어린 나이라면 모르는 개념이다.

    그런데 종혁은 클래식한 아르마니 맞춤 정장과 파텍필립 시계로 그 품격을 훌륭하게 나타냈다.

    슈트에 죽고 사는 영국 출신인 안드레 교수로서는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저를요?"

    "예. 이 볼품 없는 늙은이보다 날카로운 시각을 가진 당신을요."

    안드레 교수는 그렇게 말하며 임성원 교수를 힐끔 보았다.

    ‘아아.’

    단번에 상황을 파악한 종혁은 싱긋 웃었다.

    안드레 교수는 종혁이 아닌 임성원 교수를 만나러 온 거다.

    종혁을 가르쳤다고 판단되는 임성원 교수를.

    종혁은 씩 웃었다.

    "글쎄요. 이제 배우는 단계인 제가 학계 권위자이신 안드레 교수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부족한 저보다는 여기 제 교수님과 더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요?"

    "조, 종혁아!"

    "오. 역시 동양인은 겸손하군요. 아닙니다. 전……."

    "정말 무서워서 그러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전 두 분께서, 아니, 세 분께서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을 수배할게요. 레스토랑이면 되겠죠?"

    안드레 교수를 보는 캘리의 눈도 심상치 않았다.

    얼른 자리를 피한 종혁은 뉴욕이 고향인 이리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걸려고 했다.

    띠리링! 띠리링!

    "예, 최종혁입니다."

    -혁! 너 대체 무슨 사고를 친 거야!

    "……응?"

    -신문에 떴어! 일탈한 미국 소녀를 구한 동양 경찰이라고!

    "아, 그거?"

    종혁은 사정을 대충 설명했고, 이리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근처에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식당을 추천받은 종혁은 임성원 교수에게로 향하려다 멈췄다.

    핸드폰이 다시 울렸기 때문이다.

    ‘누구지?’

    "예, 최종혁입니다."

    -Hello?

    ‘어?’

    데이지 험프리 부친의 목소리.

    -오늘 시간이 된다면 당신을 초대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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