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00화>
한국에서도 찾기 힘든 케이스다.
"저러니 그랬지. 이제야 이해되네."
"이봐. 슈퍼맨! 아마추어는!"
종혁은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다.
명령만 떨어지면, 빵빵.
지체해도 궁지에 몰린 데릭이 인질을 쏠 수 있다.
"밀리, 은행 CCTV 화면 좀 다시 띄워 줘요."
당황한 밀리는 캘리를 봤다.
캘리는 종혁을 보고 있었다.
"얼른! 시간이 없습니다!"
‘대체 뭘 하자는 거야…….’ 그러나 눈빛이 너무 간절하다.
단 한 점의 사심도 없고, 어떻게든 누군가를 살리려는 눈빛이다.
그녀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눈빛.
한 명이라도 희생자를 덜 내고자 하는 경찰의 눈빛이다.
까득 이를 간 캘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프로젝션 TV에 CCTV 영상이 틀어졌다.
탕탕 소리 없는 총성이 다시 울렸다.
그러다.
"멈춰!"
종혁은 안절부절못하다 총을 뺏기는 데이지를 가리켰다.
"안 보입니까?!"
"……?"
"니미! 카페에 들어가기 전 영상도 띄워 줘요!"
프로젝션 화면이 분할됐다.
몰려드는 경찰에 당황하던 데이지가 총구를 이리저리 돌리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부분에서 종혁은 ‘멈춰.’를 외쳤다.
그는 캘리를 봤다.
"이래도 모르겠습니까?"
"……?"
"총을 안 쏘잖아요! 총을!"
"……?!"
"데이지라는 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총을 안 쐈습니다! 마트와 주얼리 숍 CCTV도 띄워 줘요!"
밀리는 다급히 6일 전과 어제 사건 CCTV를 열었다.
"봐요!"
"……어?"
캘리와 요원들의 얼굴이 급변한다.
목을 빼며 4개의 영상을 살핀다.
그러다 정말임을 깨닫는다.
-반장님?
"자, 잠깐 기다려!"
캘리는 종혁을 봤다.
그녀의 눈동자가 갈등으로 흔들린다.
"자세히 설명 좀 해 줄 수 있을까요?"
"그러죠."
종혁은 앞으로 나서며 영상들을 가리켰다.
"이 영상들 전부, 그 어느 곳에서도 데이지는 능동적이지 않습니다. 언제나 데릭이 뭐라 하면 그제야 움직입니다. 그것도 망설이다가 재촉할 때야 겨우."
어딜 봐도 수동적이다.
그녀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그거 가지고는!"
데릭에게 홀딱 빠져 있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게 무서워서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일 수 있다.
종혁은 데이지의 프로필을 가리켰다.
"전과 없이 깔끔합니다."
술 마시고 사고 치거나 가출한 이력이 없다.
깔끔하다.
"어? 저 학교는?"
밀리가 놀란다.
"아는 곳입니까?"
"네. 꽤 유명한 사립학교예요."
"잘됐군요. 데이지의 학교 성적 좀 띄워 주세요."
"네, 네!"
밀리는 얼른 데이지의 학교로 전화해 성적표를 메일로 보내 달라 외쳤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TV에 데이지의 성적이 나타났고,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캘리도 화들짝 놀랐다.
성적은 A, 교우 관계 원만.
"댄스부에, 주말마다 봉사 활동을 할 만큼 사람을 좋아하고 동적인 걸 좋아하는 아입니다. 아, 학교에서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다 경고를 받은 게 있네요."
물론, 이러한 데이터만으로는 데이지가 어떠한 사람인지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지극히 평범했던 소녀가 갑자기 강도로 변모했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데릭의 강간 사건 파일 좀 띄워 주세요."
타다닥!
"……!"
사람들은 놀랐다.
일반적인 강간 사건이 아니다.
연인 관계였는데 피해자가 데릭의 폭행을 못 이겨 강간으로 신고한 거다.
데릭이 어떠한 성향을 지닌 인물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캘리는 납득한 듯 고개를 주억이면서도 한 가지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스톡홀름일 수도 있어요."
스톡홀름 증후군.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범인의 불행한 가정사에 감화되어 사랑한다 착각하고 집착하는 정신병이다.
"그건 이 상황에 맞지 않습니다. 저거 가스라이트 이펙트(Gaslight Effect)입니다."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트 이펙트 사례는 너무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게 가정 폭력이다.
아내 혹은 남편.
가장이 가장의 권위와 폭력으로 가정을 제 뜻대로 휘두르는 것이다.
"납치가 아니라?"
임성원 교수의 말에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도 스톡홀름 증후군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인질이나 납치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다.
"처음엔 제 발로 따라갔을 겁니다. 마지막 목격 장소가…… 다이너군요."
다이너.
한국으로 치면 24시간 카페 같은 곳이다. 음식, 음료, 술을 모두 파는.
남녀노소 다 찾는 사랑방이다.
"저기 어떤 남자와 즐겁게 이야기했다는 증언도 있군요. 친구는 맥주 한 병을 마신 후 먼저 돌아갔고요."
이래서 가출로 추정되는 실종 신고였다.
"……."
"그 남자가 데릭이고, 처음엔 좋아서 따라갔다면? 좋은 밤을 보냈지만, 거기서 일이 틀어져 감금을 당하게 됐다면? 데릭이 데이지를 좋아하게 됐다면?"
"……."
"아마 데릭은 어르고 달래고 윽박지르며 천천히 자기 색깔로 물들였을 겁니다."
실종 신고가 된 지 7개월이다.
충분히 가능하다.
"어쩌면 소중한 걸 들먹이며 협박했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데이지도 지쳐 갔겠지만, 사람은 협박을 당하면 겁에 질려도 미세한 반발심은 생기게 됩니다. 그 결정적인 증거로……."
종혁은 마트 CCTV를 보여 달라고 했다.
"저기 저 부분. 보이십니까?"
허리 밑으로 내린 손을 이리저리 뒤집고 있다.
신호다.
무심코 넘어갈 수 있으나 종혁의 말을 듣고 보니 구조 신호였다.
"말도 안 돼……."
사무실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들은 멍하니 종혁을 봤다.
그럴듯하다.
너무 그럴듯해서 진실 같다.
아니, 이건 진실이다.
드물지만, 이런 사건이 몇 건 있었다.
캘리는 입을 열었다.
"저격팀?"
-명령을 기다립니다.
"남자만 쏴."
-……옛썰.
투두둥!
저격팀의 발포음과 함께 유리창이 깨지며, 한 십 대 소녀의 오랜 악몽도 깨어났다.
* * *
아쉽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지만, 데릭은 죽지 않았다.
총알이 심장을 비켜 가며 살았다.
"허어엉!"
FBI 조사실.
시멘트로 둘러진 공간에서 조사를 마친 소녀 데이지는 백발이 성성한 부모에게 달려들어 그동안의 공포와 설움을 쏟아 냈다.
"오, 데이지. 내 공주님."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다신 남자랑 이야기도 안 할래요!"
"아니다, 공주님. 넌 잘못한 거 없단다."
종혁은 부녀 상봉을 보며 안도의 담배를 물었다.
"후우. 진짜 이런 사건들은 씨발……."
순간의 일탈에 빠져 버린 악의 구렁텅이.
이런 종류의 사건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먼저 보호해 주지 못해서.
임성원 교수는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 헛웃음을 터트렸다.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한 잭 와일더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아주 베테랑 형사처럼 말한다? 그냥 형사하지, 왜?"
"하하하."
"저……."
다가온 데이지가 허리를 넙죽 숙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저기 요원님께 다 들었어요! 제가 주, 죽을 뻔했다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다.
‘어이구, 이 아줌마야. 피해자에게 사살당할 뻔했다고 말한 거야?’
반장쯤 돼서 이렇게 눈치가 없나 싶었다.
‘엄지 치켜들지 마!’
이게 미국의 문화인가 싶었다.
"아니에요. 당연한 일이었던 걸요. 마트에서 구조 신호 보냈죠?"
데이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걸 보셨어요?"
맑은 녹색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불끈!
‘역시!’
종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완전히 풀었다.
그녀는 끌려다닌 게 맞았다.
‘다행이네.’
그녀의 말과 표정은 종혁 본인의 추측이 맞았단 걸 증명해 주었다.
솔직히 추론을 했지만, 백 퍼센트 확신은 아니었다.
만에 하나, 수동적이라고는 해도 범죄에 가담할 의지가 0.01퍼센트라도 있었다면?
데이지도 처벌받아야 했다.
물론 자의가 아니라도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사람이 죽었다.
실형은 어쩔 수 없다.
자의였을 때보다 감형의 여지가 크다는 게 다를 뿐이다.
‘어후. 진짜. 수고했다, 수고했어.’
끌려다닌 그녀도, 추리한 본인도.
모두 수고했다.
데이지의 부모가 그런 종혁의 손을 꼭 잡았다.
"제 막내딸을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데이지가 잘못됐다면…… 흑!"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닙니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허.’ 데이지의 부친은 종혁의 맑고 깊은 눈을 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역시 슈퍼맨……."
"예?"
"이 은혜 조만간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정신이 없어서……."
"아, 예. 그럼요."
7개월 동안 실종됐다가 범죄에 휘말려 죽을 뻔한 딸을 구한 날이다. 그것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막내딸을.
"어서 집에 돌아가 데이지를 달래 주셔야죠. 두 분의 마음도 추스르시고요."
내일이면 데이지는 구치소에 들어가야 한다.
보호자가 있고 도망갈 의지가 없다 하여도, 강도 치사 사건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오늘의 귀가는 어디까지나 FBI의 배려다.
FBI는 데이지의 집 앞에 대기하다가 내일 그녀를 구치소로 데려갈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예. 예. 잘 가라, 데이지. 앞으로 남자 함부로 만나지 말고."
"안 그럴 거예요!"
종혁은 멀어지는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담배를 껐다.
‘보답은 무슨. 저게 보답이지.’
형사에게 가장 큰 보답은 피해자의 웃는 얼굴이었다.
‘그나저나 캘리 반장과 아는 사이인가?’
슈퍼맨은 캘리 반장이 한 말이다.
딸을 알아보지 못한 걸 보면 그저 서로 이름만 아는 사이 같았다.
또각또각.
캘리 그레이스가 다가온다.
그녀는 아직도 의문인 얼굴이다.
"대체 이걸 어떻게 안 건가요?"
지난 10년 동안 이와 비슷한 사건은 극히 소수다.
스톡홀름 케이스는 많지만 감금 및 가스라이팅 후 범죄 가담 사건은 열 건. 굉장히 희귀한 케이스다.
"혹시 범죄학자인가요? 아니, 어려 보이니 석사?"
"그건 이분이고, 전 아까도 말했듯 경찰 간부후보입니다."
"경찰도 아니고, 간부후보? 오, 하느님."
"이번에 뉴욕에서 열리는 최첨단 범죄수사기법에 관한 포럼을 참관하기 위해 왔습니다."
"한국 대표로 온 건가?"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천재. 미래 한국 경찰을 이끌 인재다.
"아니요. 그냥 구경하러…… 하하."
"뭣? 발표도 안 한다고요?"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한국은 미국처럼 험하지 않다.
"포럼에 발표할 사건이 있다 한들 저 같은 학생이 발표할 수도 없죠."
캘리의 눈이 임성원 교수에게로 향한다.
그럼 당신이 발표하냐는 눈빛.
"한국엔 저보다 뛰어난 범죄학 교수들이 많습니다. 하하."
처음부터 그쪽을 공부한 타 대학 교수들.
학계를 주름잡는 이들이다.
그들과 비교하면 임성원 교수의 이름값은 처질 수밖에 없다.
포럼에 사비로 참가한 이유도 그와 같은 이유로 인해 초청을 받지 못해서다.
참관은 이쪽 관계자 전원에게 허락되지만, 발표와 질문은 초청받은 사람만 가능하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들이……."
아까 전 임성원 교수가 납치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을 땐 캘리도 뜨끔했다.
그녀도 같은 걸 떠올렸기 때문이다.
"뭐, 서로 노력하는 분야가 다른 거죠. 하하하."
그렇게 말하는 종혁이나 임성원 교수나 입맛이 조금 썼다.
자신 있게 발표하던 교수들이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발표가 아니라 다른 지성인과 질문과 대답을 하며 새로운 시각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그래도 의미 있는 데이터를 얻었으니 소득은 충분이 있었다.
오늘 무고한 생명을 구하기도 했으니 더더욱.
‘하지만 다음엔!’
‘흠. 하려도 해도 포럼에 발표할 만큼 희귀한 사건이 있으려나.’
임성원 교수와 종혁은 입맛을 다셨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본 캘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다 설명하지 않았어도 단번에 이해되는 상황이다.
‘순차에서 밀린다는 거겠지.’
그녀도 한국의 경찰대학교에 대해 알고 있다. 가끔 미국 경찰학교와도 교류를 나누기 때문이다.
수많은 걸 가르치고 배우지만, 학계의 일보다는 간부 육성에 중점을 두는 곳.
토의나 토론보단 사건 해결을 가르치는 게 우선이다.
그렇다 보니 학계에 영향력이 적을 수밖에 없다.
미국도 그런 성향이 강하다.
포럼 같은 곳을 가면 현장 관계자가 아니라 그 사건을 서면으로만 확인한 교수가 대다수다.
아이비리그 등 최상위 대학의 교수들.
이런 실력을 가진 인재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게 안타깝고, 어떤 소득조차 없이 구경만 하다 돌아간다는 게 안타깝다.
또 스카우트도 하고 싶다.
종혁을.
‘아니지?’
그녀는 눈을 빛냈다.
오늘 받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 길이 있다.
FBI 뉴욕지국 반장으로서의 인맥.
"미스터 최. 미스터 림."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번 케이스로 발표를 해 볼 생각 없나요?"
"넹?"
종혁은 뭔 헛소리를 하냐는 듯 캘리 그레이스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