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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95화 (95/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95화>

    나스닥에 적신호가 켜졌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온통 빨간 불빛.

    공포와 혼란이 나스닥을 뒤흔들고 있지만, TV에선 대통령이 테러리스트를 향해 복수만을 외친다.

    대중의 시선도 모두 그쪽으로 쏠려 있다.

    그런 외면 속에 미국의 나스닥은 무너지고 있었다.

    뉴욕 월 스트리트의 AT 모건.

    "……."

    하얀 수염이 인상적인 덩치 큰 60대의 노인이 떨리는 손을 겨우 움직여 시가를 문다.

    등 뒤로 언제나 시끄러운 빌딩 숲이 펼쳐져 있지만, 오늘만큼은 지옥의 불바다에 있는 놀이공원인 것 같다.

    그의 앞에는 조카이자 이 일을 예견한 존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다.

    "어, 얼마라고?"

    "KP 컴퍼니, 실론티 홀딩스, 맥심 컴퍼니, TOP 스타……."

    "얼마냐고!"

    "나스닥이 2퍼센트만 더 하락하면 40억 달러입니다……."

    겨우 불을 붙인 시거가 화려한 카펫 위로 떨어진다.

    만 달러가 넘는 카펫이 검게 그을리지만 노인은 신경 쓰지 못했다.

    나스닥 60퍼센트 하락 시 40배.

    호황에도 불황에 투자를 하는 도박 중독자들의 돈을 빨아 먹기 위해 만든 총 1억 달러어치 투자 상품이 총알이 되어 돌아왔다.

    닷컴은 그가 판단했던 진흙 속에 묻힌 다이아몬드가 아니었다.

    애초부터 무너질 모래성이었다.

    너무 높이 쌓여져 갔기에 무너지지 않는 바벨탑이라 착각했을 뿐이다.

    말이 40억 달러다.

    그 돈을 지불했다가는 AT 모건에서 노인이 설 자리는 없어진다. 주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저, 접촉해 봤어?"

    지금이라도 권리를 행사하게 만들어야 한다.

    40퍼센트 하락 시 20배.

    이것도 천문학적인 액수지만, 여기서 끝내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다.

    존은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모두 하나같이 만기 때 보자고……."

    쾅!

    "이 미친놈들이!"

    얼굴이 새빨개진 노인의 머릿속이 살길을 찾기 위해 맹렬하게 돌아간다.

    "다, 다른 곳은? 다른 투자사들 총피해액은!"

    "현재까지 제가 파악한 것만 천억 달러가 넘는 걸로……."

    "맙소사."

    정신이 아득해지는 액수다.

    하지만 덕분에 살길을 찾았다.

    "그래, 그렇게 엮으면 되겠어."

    나스닥 붕괴의 트리거가 된 사건.

    얼마 전 일어난 9.11 테러.

    ‘내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어!’

    그는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이야, 론."

    FBI 부국장, 로날드 재커.

    -이게 얼마 만이야!

    "한 반년 만이지.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 끔찍한 테러를 저지른 테러리스트의 자금줄을 찾은 것 같아서 말이야."

    존이 경악하며 노인을 본다.

    노인은 그런 조카를 외면하며 이를 악물었다.

    살기 위해서다.

    이쪽이 살기 위해선 그들을 죽여야 했다.

    그러나.

    -설마 KP 컴퍼니, 실론티 홀딩스, 맥심 컴퍼니 등을 말하는 건가?

    "오, 알고 있군! 역시 FBI야!"

    -……하. 자네도 그 말인가?

    "음?"

    -TV를 켜서 뉴스를 봐, 친구. 내가 해 줄 말은 이게 전부일 것 같군.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끊겨 버린 전화를 멍하니 보다 TV를 켰다. 그리고 이내 곧 얼굴을 구겼다.

    -저희 KP 컴퍼니는 이번 테러에 휘말려 안타깝게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에게…….

    각기 백만 달러씩 위로금을 지불하겠다.

    "뭣?!"

    그런데 KP 컴퍼니뿐만이 아니다.

    이후 등장한 실론티 홀딩스, 맥심 컴퍼니 등 AT 모건이 막대한 돈을 지불해야 되는 30여 곳의 회사 전체가 각기 백만 달러씩 지불하기로 했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한 가정당 약 3천만 달러.

    노인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다.

    이들의 결정에 전 미국이 찬사를 보낼 것이란 점 때문이다.

    민중의 지지를 얻은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몰았다간 역풍 정도로 끝나지 않을 터였다.

    "……끝났군."

    노인의 두 눈에서 더 이상의 빛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  *  *

    버지니아 주, 랭리의 CIA.

    톡! 톡! 톡!

    털이 숭숭 난 두꺼운 검지가 책상을 두드린다.

    "재밌군."

    부하 직원이 내민 보고서를 읽던 동아시아관리팀의 팀장이 실소를 터트린다.

    "판타지 소설보다 재밌어."

    혜성처럼 월가에 등장해 승승장구를 하던 KP 컴퍼니 등 30여 곳의 투자회사, 지금은 나스닥 하락에 포지션을 잡은 그 30여 곳의 배후에 권&박 홀딩스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설.

    "자네, 소설가로 전향을 하려는 건가? 아니면 FBI 그 미친 영감의 사주를 받은 건가?"

    벌써 10년째 FBI 부국장직을 역임하고 있는 늙은 짐승, 로날드 재커. 그런 로날드 재커가 있는 FBI에서 이들 30여 곳의 투자회사가 테러리스트의 자금줄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그러나 전 국민이 찬사를 보내고 있기에 묵인하는 상황이었다.

    "아니지. FBI의 사주를 받았다면 알 카에다를 말했겠지."

    국내 치안만 담당하는 FBI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정보다.

    "하지만 흡사합니다!"

    투자 성향이 권&박 홀딩스와 너무 흡사하다.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 한국의 IMF와 러시아 모라토리엄, 에콰도르 금융 위기에서 막대한 돈을 번 권&박 홀딩스.

    그들의 냄새가 너무 진하게 풍긴다.

    30여 곳의 회사 전부가 2001년 초부터 하락장에 포지션을 잡고 가만히 기다렸다는 점 때문에 더.

    그러나 그렇게 말할수록 팀장의 얼굴은 더 구겨져 갔다.

    "그만."

    "팀장님!"

    "퇴직하고 소설가로 전향할 게 아니라면 당장 꺼지도록 해. 그 허황되고 멍청한 말로 더 이상 내 귀를 더럽히지 말고!"

    "……예."

    입술을 깨문 부하 직원이 몸을 돌려 나가자 경멸로 가득 차 있던 팀장의 얼굴이 무심해진다.

    "권&박 홀딩스라…… 감이 좋군."

    꽤 근접하게 접근했다.

    다만 권&박 홀딩스가 아니라 30여 곳의 투자회사 뒤에 러시아 정부가 있다는 게 다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자금 흐름의 행적을 알 수 없도록 만든 부분에서 러시아 정보부의 냄새가 강하게 났기 때문이다.

    즉, KP 컴퍼니 등 30여 곳의 회사는 러시아가 기존의 자금줄 외에 새롭게 만든 비밀 자금줄.

    CIA 상부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그 권&박도 러시아에 포섭됐을 테지."

    권&박 홀딩스가 갑자기 세계에 퍼트린 자금을 회수했을 때와 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한국의 지부장이 된 시기가 일치한다.

    30여 곳의 회사가 세워진 시기까지도.

    러시아 모라토리엄 사태 때문이라도 권&박 홀딩스를 주목하고 있었을 테니 백 퍼센트라고 봐야 했다.

    "우리가 먼저 요원을 파견했는데…… 쯧."

    안타깝다.

    상부가 조금만 더 빨리 권&박 홀딩스를 포섭하겠다는 결정만 내렸어도 CIA의 새로운 자금줄이 생겼을 거다.

    팀장은 책상 옆 철제 서랍에서 하나의 서류를 꺼냈다.

    "종혁 최."

    처음엔 권&박 홀딩스의 진짜 주인이 아닌가 생각했던 존재.

    러시아 최고위층의 꼭두각시로서 한국의 IMF와 러시아 모라토리엄에 대신 개입한 게 아닌가 생각되는 존재.

    그런데 그 생각이 맞았다.

    권&박 홀딩스가 러시아에 넘어간 게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맞다고 봐야 했다.

    그 나탈리아가 자주 접촉하기에 더.

    그러나 무시해야 된다.

    이번 테러를 러시아가 경고해 줬기에 무시해야 되고, 그쪽은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그래도 아까운데……."

    러시아의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고위층은 확실시되고 있다.

    잘만 꼬드기면 치명적인 비수로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인물 자체에 욕심이 난다.

    스포츠 과학을 10년 정도 발전시켰다 판단되는 천재.

    그의 이론이 러시아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건 이미 조사된 결과다.

    즉, 종혁은 미국의 전투력을 높여 줄 인재였다.

    "흐음."

    그는 경찰 정복을 입은 채 환한 미소로 경례하고 있는 종혁의 사진을 응시했다.

    "경찰 간부후보생이라……."

    어떻게 하면 전향시킬 수 있을지, 뭘 원하는지, 지금 뭘 하고 있을지 팀장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CIA 팀장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종혁은 현재 청송 교도소에 와 있었다.

    "여긴 언제 와도 음울하네."

    인생 막장 범죄자들만 모아 놓는다는 악명 높은 교도소, 청송.

    병아리처럼 샛노란 높은 벽임에도 잿빛 하늘같이 느껴진다.

    이런 느낌은 범죄자가 더 크게 받을 것이기에 기분이 좋아진 종혁은 경쾌하게 걸음을 옮겼다.

    "뭐야. 왜 또 왔어?"

    저번과 달리 투명한 강화유리가 있는 면회실.

    시멘트 벽이 변색되고, 쿰쿰한 냄새가 가득하다.

    한상원의 뒤로 대화를 기록하기 위한 교도관이 앉아 있다가 종혁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CD플레이어를 꺼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전에 찔러 넣은 흰 봉투가 아직까지도 효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종혁은 하늘색 교도복을 입은 한상원을 보며 피식 웃었다.

    하늘색은 기결수가 여름철 영치금으로 사서 입을 수 있는 얇은 교도복이다.

    "예쁘네. 얼굴도 볼만하고."

    기아 난민처럼 전보다 깡마른 얼굴과 퀭한 눈.

    교도관에게 맞은 건지 입술과 광대에 피딱지가 있다.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교도관의 눈치를 본다.

    "뭐 누구 덕분이지."

    여름날 두꺼운 교도복을 입고 있노라면 가만히 누워 있어도 숨이 막힐 듯 덥다. 더욱이 한상원이 지내는 곳은 강력범만 모아 놓은 청송 2교도소의 좁은 독방.

    사람이 제대로 누울 수조차 없는 독방, 여름과 겨울의 독방은 지옥 그 자체다. 치밀한 감시와 규율로 눕지도, 교도복을 함부로 벗지도 못하기에 더욱더.

    그래서 이 부분이 무척 고마운 한상원이었다.

    목이 타 버릴 것 같은 갈증에 괴로워할 때 혀끝에 닿는 물 한 방울. 하늘색 교도복은 그 정도의 의미다.

    "요새 뭐 하면서 지내?"

    "그런 것까지 말해야 되나?"

    "공부라도 해. 배워서 남 주냐?"

    "어이."

    교도관을 힐끔 본 종혁은 싱긋 웃었다.

    어깨를 들썩이는 걸 보니 음악에 완전히 빠진 것 같다.

    종혁은 목소리를 낮췄다.

    "오늘 백종명이란 놈이 여기 올 거야."

    백종명에 대한 형이 확정됐다.

    9년 8개월 형.

    민사소송도 들어갔고, 항소는 당연히 커트됐다.

    "백종명?"

    "사기꾼."

    "사기꾼이 여길 온다고? 몇 백억쯤 해 먹은 놈인가?"

    법원에서 이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도 안 되겠구나 하는 판단이 될 때 보내는 곳이 청송 교도소다.

    동일 전과가 누적될 때나 가는 교도소.

    하지만 백종명은 초범인데도 청송행이다.

    종혁은 사정을 설명했다.

    한상원의 눈동자에 불똥이 튀었다.

    "개새끼군."

    "풋!"

    종혁은 비웃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것도 아니고. 상원아, 내 앞에서 내숭 떠니?"

    "……개새끼!"

    한상원은 부르르 떨었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진 않았다.

    종혁의 도움이 없다면 독방에서 버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새끼 잘 감시해."

    "……왜지?"

    "회사에 입사한다고 하더라고."

    백종명의 녹음 파일 속에 들어 있던 회사와 김 대리라는 단어.

    "회사?"

    의아해하던 한상원은 곧 그 말을 알아들었다.

    사기꾼의 은어 중 하나가 회사기 때문이다.

    뜻이 맞는 사기꾼들이 어떤 사기를 치려고 모일 때 회사에 입사한다고 하는데, 이때 본명보다 대리니 부장이니 선생이니 하는 호칭을 쓴다.

    주위에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다.

    아마 김종두 과장도 법무부에 이에 대한 조치를 취했을 거다.

    종혁은 보다 더 자세히 알기 위해 한상원을 찾은 거였다.

    "초범이라며? 혼자 했다며?"

    "설계도가 있는 사기야."

    "……설계자와 연락을 할 수 있다?"

    정답이다.

    "다른 사기꾼들과 커넥션이 있을 수도 있고."

    일본에서 사기를 배운 놈이 한둘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 있던 사기꾼들과 연락을 하고 지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말인즉 내가 정보를 건네면 그때 사기꾼들을 검거하시겠다? 정식으로 경찰이 됐을 때 실적을 쌓겠다?"

    종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것도 정답이었다.

    "접촉을 하거나 편지 같은 걸 보내면 연락해."

    "풋. 어떻게? 독방에 갇혀 있는 내가 어떻게?"

    할 말을 다 했기에 일어서던 종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상원아. 구제 불능 씹새끼 한상원아.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내 앞에서 수 쓰지 마라."

    "……."

    "너란 놈이 그 유치금 가지고 소지조차 안 꼬드겼다고?"

    소지.

    똑같은 죄수이지만, 죄수들에게 배식을 하거나 뜨거운 물, 책이나 잡지 등을 전달해 주는 존재다.

    일종의 봉사 활동인데, 편지도 소지들이 담당 교도관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이 소지들은 매일 식당에 모여 어제 오늘 일하는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정보를 일하는 곳으로 나른다.

    즉, 교도소 내 모든 소문은 소지를 통하고, 소지에게서 시작된다는 말이다.

    "이것조차 안 했다면 글쎄……."

    돈값을 못하면 돈을 줄 이유가 없었다.

    종혁은 그렇게 협박을 했다.

    철렁!

    ‘아, 안 돼!’

    하늘색 교도복이 혀끝에 닿는 물 한 방울이라면, 사식은 어둠만 가득한 동굴을 꿰뚫는 한 줄기 빛이다.

    보고만 있어도 즐겁고,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는.

    얼마 전 한 영화감독이 광복절 특사에 관한 영화를 찍겠다며 인터뷰를 하러 온 이후 왜인지 규율이 더 강화되었고, 사식을 구입하기 힘들어진 지금은 더욱 간절하게 됐다.

    "……너 진짜 정체가 뭐냐?"

    종혁이 한상원 본인을 목격한 거야 우연히 그럴 수 있다 친다.

    그러나 종혁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이나 자비를 두지 않은 손속, 눈치는 마치 베테랑 형사 같다.

    이제 고작 스물한 살짜리가 말이다.

    "알면 다쳐."

    "……어, 그래. 그거 요새 개그야?"

    얼굴을 구긴 종혁은 강화유리 벽을 쿵쿵 때렸다.

    "야, 잠깐! 조금만 더! ……개자식!"

    교도관이 쳐다보자 다시 고개를 숙이는 걸로 면회가 끝났다는 걸 알린 종혁은 면회실을 나섰다.

    우중충한 교도소를 나선 종혁은 맑은 하늘을 보며 담배를 물었다.

    "회사……."

    그 단어에서 저번 일이 떠오른다.

    몽타주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린 대전의 그곳.

    40년 전통 욕쟁이 할머니 곱창집이 주소였던 그곳의 명함엔 ‘무역’이란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쯧. 무슨 생각이야. 그 조직이 백종명 같은 초짜를 쓸 리가 없잖아."

    너무 그 조직만 생각하다 보니 예민해진 것 같다.

    고개를 저은 종혁은 자동차에 올랐다.

    그런 그의 옆으로 백종명을 태운 호송 버스가 스쳐 지나갔다.

    *  *  *

    부르릉!

    달리는 호송 버스 안, 우중충한 노란 벽이 점점 다가온다.

    말로만 듣던 청송.

    공포가 심장을 덜컥 옥죈다.

    ‘나, 난…….’

    그저 눈먼 돈을 쓰려고 했을 뿐이다.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그저 값싼 동정만 좀 나눠 쓰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인생이 끝났다.

    ‘이게 모두 다!’

    백종명은 자신에게 접근해서 이 사기의 설계자와 연결해 준 그 조직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 조직, 아니, 김 대리 그 새끼 꼬임에만 안 넘어갔어도!’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크악! 내보내 줘!"

    뒷자리 누군가의 외침에 흠칫 놀란 백종명이 몸을 움츠렸다.

    "내가 청송에 올 만큼 심한 짓을 한 게 아니잖아! 내보내 달라고!"

    "……맞아! 내가 왜 청송이야!"

    "문 열어! 씨발, 문 열라고!"

    순식간에 버스가 시끄러워진다.

    청송의 악명에 공포에 질린 범죄자들이 난리를 피운다.

    ‘흐읍! 흑!’

    버스가 광기와 공포에 물들자 백종명은 몸을 좀 더 움츠리며 벌벌 떨었다.

    그러나 호송 교도관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버스는 청송 교도소 안으로 진입했고, 교도소의 거대한 철문이 등 뒤로 닫혔다.

    그리고 버스가 멈췄다.

    치이익! 우르르!

    버스 문이 열리며 검은색 옷을 입은 교도관들이 올라탔다.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검은색 방망이를 꺼내 든 교도관들.

    "씨벌!"

    옆자리에 앉은 죄수가 다급히 의자 아래로 고개를 숙이자 백종명은 얼떨결에 그걸 따라 했다.

    그게 그를 살렸다.

    "열어."

    저승사자의 그것처럼 음산한 목소리.

    땅!

    철창문이 열리며 난입한 교도관들은 일어서 있던 범죄자들을 향해 검은색 방망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빠아악! 빡!

    "으악!"

    "사, 살려!"

    "나, 난 아냐! 으아악!"

    버스 안이 삽시간에 피로 물들었다.

    "끄으으."

    피투성이가 된 범죄자들이 바닥을 구른다.

    ‘힉!’

    한 범죄자와 눈이 마주친 백종명은 파랗게 질렸고, 그런 그의 머리 위에서 스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뒈지기 싫으면 일어나."

    백종명은 다급히 일어났다.

    바닥을 구르던 죄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반항하면 죽는다는 걸 몸소 체험한 그들은 최대한 빨리 움직이려 했다.

    그렇게 그들이 버스를 내리자.

    "……."

    섬뜩!

    볼과 눈이 홀쭉한 굶주린 짐승들이 펜스 너머에서 가만히 노려본다.

    몽둥이로 어깨를 두드리며 그들 주변을 돌아다니는 교도관들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덮치려는 듯하다.

    하루 24시간 중 2시간만 하늘을 보는 게 허락된 악질들.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만 있자 백종명은 그제야 정말로 교도소에 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순간 그의 무릎이 풀렸다.

    "안 걸어?"

    "예, 예!"

    끝내 눈물을 흘린 백종명은 어기적 발을 옮겼고, 그 모습에 죄수들은 미약한 웃음을 흘렸다.

    그 사이엔 한상원도 끼어 있었다.

    ‘흠. 저놈이란 말이지?’

    한상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멀어지는 백종명을 응시하다, 옆에 서서 주위 눈치를 보며 몰래 사탕을 빨아먹는 소지를 툭 쳤다.

    "앞으로 저 뚱땡이 사기꾼 소식도 가져와."

    "네, 형님!"

    "오늘은 몇 동 애들 몽타주, 아니, 얼굴 그려 줄 차례지?"

    한상원은 현재 사식으로 미술을 전공한 죄수들을 포섭해 다른 죄수들의 얼굴을 그려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엔 무기수이나 사형수들이 본인들의 늙어 가는 얼굴을 알게 해 주자고 건의했는데, 좋은 취지의 일이면서 한상원 본인도 별다른 말썽도 안 부리기에 교도소장은 허락했다.

    처음 건의를 했을 땐 죄수 따위가 그런 걸 건의했다고 검열을 핑계로 맞다가 갈비뼈 두 대가 부러졌지만, 지금은 청송 죄수 전체를 차례대로 그리는 중이다.

    그렇게 한상원은 합법적으로 청송 내 모든 죄수들의 얼굴을 그리며 종혁이 외우게 한 몽타주와 비교하고 있었다.

    "1교도소 3동이에요, 형님!"

    "그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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