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94화>
28. 붕괴
전국이 뒤집혔다.
20명도 살지 않는 산골 마을의 철수.
기뻐도 슬퍼도 언제나 해맑게 웃으며 매주 금요일 국민들을 울리고 웃기던 철수.
그런 철수를 후원하던 후원회장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났다.
당연히 사람들은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방송국에도 이런 걸 몰랐냐고 너희도 한통속 아니냐며 불똥이 튀었다.
이에 서울지방검찰청이 발 빠르게 움직였고, 이번 사건을 해결한 특수범죄수사과와 함께 국민들의 칭송을 받았다.
아니, 서울지방검찰청은 이미 백종명이 검거된 그 순간, 이번 사건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후. 이거 최 선수 덕분에 체면치레했군."
검사장실.
기필코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하겠다는 말로 기자들과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검사장이 흡족하게 웃는다.
백종명 검거 당시 지방 신문의 기자가 있었는데, 그가 검거 두 시간 만에, 즉, 김종두가 본청에 복귀하는 그 순간에 특종으로 때려 버렸다.
이에 검사장은 혹여 경찰보다 느린 검찰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아마 늦었으면 일단 언론에 욕부터 얻어먹고, 경쟁자들이 채어 갔을지도 모른다.
사건을 벌이기 전까지 주거지가 없던 백종명.
힘이 없는 춘천지방검찰청.
먼저 낚아채는 놈이 임자였다.
종혁이야 검찰에서부터 혼내 달라고 연락한 것일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빚을 졌다.
"종혁이는 잔뜩 혼내 놨으니까 걱정 마이소."
"아니, 최 선수를 왜 혼내?!"
강철선은 정색했다.
"그럼 그 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에 또 기어 들어갔는데 한마디 안 해야겠습니꺼? 지가 진짜 경찰도 아이고! 아니, 경찰이라 캐도!"
검사장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물고 빨고 네가 다 해라."
"검찰로 턴 할 때까지 그럴 겁니더."
검사장이 눈을 빛냈다.
아직은 일반인 신분이라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벌써 대형 사건을 몇 개나 해결한 진짜배기다.
스타가 될 가능성이 다분했다.
또 성품은 어떤가.
이런 인물은 무조건 라인에 둬야 했다.
"……가능하겠어?"
"갱찰하다가 턴 하는 경우가 있잖습니꺼."
극히 드문 케이스인데 기껏 사건을 올려 보내도 일부 나쁜 검사들이 커트해 열이 받거나, 경찰 수사력의 한계를 느낄 때 검사가 되는 경우가 있다.
"괴롭히겠다고?"
강철선은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좋은 것만 보여 줘도 모자랄 판에!"
결국 옆에서 계속 부추기기만 한단 소리다.
지금까지처럼.
"에라이."
강철선의 낯빛이 굳는다.
"그놈아 지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안 합니데이. 이 방법밖에 없습니더."
‘……하긴 그 정도 실력이면 금세 경찰 수사력의 한계를 느끼겠지.’ 성능이 좋은 배일수록 큰 파도를 빨리 만나는 법이었다.
"그래, 노력해 봐."
"그러려면 이번 사건을……."
"담당으로 최 부장, 공판으로 박 프로. 됐냐?"
"흐흐. 충성."
"충성은 니미. 됐고. 이제 슬슬 부장으로 진급할 준비 해야지."
강철선이 눈을 빛냈다.
"이번 닷컴 버블만 마무리하겠습니더."
"좋아. 그럼 내년에 부장 진급하는 걸로 해."
"딸랑딸랑. 영원히 충성하겠습니더."
"용무 끝났으면 가, 인마."
"아."
"왜 또? ……오늘 저녁에 소고기. 됐냐?"
"흐흐. 사랑합니데이."
검사장은 몸을 돌리는 강철선을 보며 아차했다.
"이번 사건 명칭이 뭐라고?"
"후원 사기입니더!"
익살맞게 웃은 강철선이 나가자 검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또라이 같은 놈."
평검사 중 검사장에게 이렇게 살갑게 구는 인물은 강철선 하나뿐일 거다. 기분 좋게 웃은 그는 갑자기 눈빛을 가라앉히며 전화기를 들었다.
"넘어와."
이윽고 중수부장이 넘어왔다.
소파에 앉은 검사장이 담배를 문다.
"명칭이 후원 사기란다."
"커피도 안 주시고 본론입니까?"
"서로 바쁜 거 아는데 커피는 무슨."
혀를 찬 중수부장은 날카로운 눈매를 가린 안경을 치켜세웠다.
"후원 사기라…… 때깔 좋군요."
검사장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입술을 비튼다.
"누구 작품입니까?"
"알고 있잖아."
대검 중수부가 이번 사건의 내막을 모를 리 없다.
"철선이가 턴 시킬 작업한다니까 기다려 봐."
"푸후. 이거 최 선수에게 또 빚을 졌군요."
검사장의 표정이 굳는다.
"그 정도야?"
"범죄자 인권도 신경 쓰랍니다."
"……그건 뭔 신박한 개소리야?"
"그런 개소리를 태연하게 지껄이더군요. 소위 인권 단체라는 것들이."
현재 대한민국엔 인권 단체, 후원 단체들이 무분별하게 세워져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좋은 쪽으로만 활동하면 모르겠는데, 일부 단체가 언론을 앞세워 법조계에 영향을 끼치려고 해서 문제다.
"총장님도 골치 아파하십니다."
"벌써? 누가 얽혔기에?"
"초선 김 의원, 2선 박 의원, 뭐…… 표 노리는 놈들 전부죠."
현재 법조계 머리끝에 올라서려는 인권 단체, 후원 단체 뒤에 정치인이 얽혀 있다.
"골치 아플 만하네."
"지금이야 핫바지들이지만, 이게 통한다 싶으면 거물들도 나설 테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터졌다.
시기적절하게.
"염병할. 3선, 4선 해 먹었으면 은퇴 좀 하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중수부장이 담배를 끄며 일어선다.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예쁘고 친절하게 대응법을 설명해 줬는데, 가만있어야 되겠습니까?"
화려한 만년필로 위장한 녹음 장치를 다른 녹음 장치와 함께 내밀며, 녹음에 대한 법적 인정을 하게 만든 게 압권이다.
거기다 곧 판례까지 만들어진다.
중수부장의 눈이 칼날보다 서늘하게 눈을 빛난다.
"머리채 잡고 입맛대로 휘둘러 보렵니다."
"호오."
불도저처럼 밀어 버리는 게 아니라 약점을 잡아 휘두른다.
중수부다운 수법이었다.
"아, 총장님이 조만간 필드 한번 나가자 하시더군요."
"……그게 왜 네 입에서 나와?"
"오늘 일로 통화 중 혼잣말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중수부는 대검이 아니라 검찰총장 직속의 조직이다.
대검찰청 모든 부서 중 차장검사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조직.
"그래?"
굳은 얼굴이 풀린 검사장은 입술을 비틀었다.
‘진짜 최 선수가 복덩이군.’
혹여 종혁이 경찰로 남는다고 해도 무조건 돌봐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전, 미리 축하드립니다."
"그래, 고맙다. 나도 미리 우리 중앙 잘 부탁할게."
중수부장이면 거의 차기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이다.
검찰 전체에 인물이 없으면 거의 백 퍼센트다.
더욱이 중수부장은 서울지방검찰청의 장을 오랫동안 노린 인물.
중수부 끗발이 세다지만, 위로 향하기 위해선 서울지방검찰청의 검사장이란 커리어를 달고 있는 게 유리했다.
씩 웃은 중수부장은 정중히 허리를 숙이고 나갔고, 검사장은 혀를 찼다.
"뜻이 맞아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벌써 잡아먹혔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위험하고 신비로운 인물이 중수부장이다.
고개를 저은 검사장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총장님. 접니다. 잘 계셨습니까?"
한편, 대검으로 넘어온 중수부장은 따라붙는 검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일에 제외된 애들 보고 조선족, 중국, 화교 애들 다시 때리라고 해. 아니, 이제부턴 반년마다 정기적으로 때려. 단순 소매치기도 최대 형량으로."
"예."
"그리고 너도 인사 이동할 준비하고."
눈이 동그래진 검사가 뒤로 두 발 물러서며 허리를 깊이 숙였다.
"영전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중수부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
일에 열중하던 검사들이 모두 튀어나와 허리를 숙였다.
"영전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중수부장은 흡족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검찰에 작은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 * *
새 학기가 시작됐다.
경찰대 학생들은 마치 방학 내내 땡볕 아래서 막노동을 하고 온 것처럼 흑인이 된 종혁과 다섯을 보며 입을 벌렸다.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내 곧 방학 동안 그들이 한 일을 들은 그들은 무척이나 부러워하며 함께하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사락!
"흠."
신문을 보는 종혁이 고개를 모로 기울인다.
"뭐야. 왜 이렇게 인권 단체들을 때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인권 단체와 후원 단체의 비리가 폭로되고 있다. 심지어 대기업 노조의 비리도 다뤄지고 있다.
대기업의 횡포다, 검경의 함정수사다, 하며 성토하고 있지만, 여론이 그들을 도둑놈, 역적 취급을 하고 있다.
대중들의 반응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수준이다.
"선량한 사람들까지 도매급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좋겠네……."
혀를 찬 종혁은 벽에 걸린 달력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9월 12일.
뉴욕 날짜로 9월 11일.
오늘은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지는 일이 일어난다.
종혁은 축축하게 젖은 손바닥을 매만지며 TV를 켤까 말까 고민했다.
‘막았을까? 막았겠지? 못 막았으면 어쩌지?’
TV를 켰을 때 회귀 전 그 장면이 나온다면 버틸 수 있을까.
이런 마음에 선뜻 리모컨을 잡을 수가 없다.
띠리링! 띠리링!
흠칫 놀란 종혁은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잡았다.
"여보세요?!"
-……TV를 켜요, 나의 친구.
힘이 없는 목소리의 주인은 나탈리아다.
"빌어먹을!"
덜컹 심장이 내려앉은 떨리는 손으로 TV를 켰다.
그리고.
-슈우우우우웅! 꽈아앙!
비행기 한 대가 하얀 건물을 향해 내리꽂힌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고 아비규환이 된다.
-꺄아아악!
-으아악!
종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회귀 후에도 반복된 끔찍한 악몽.
분노가 머리끝까지 솟는다.
까드득!
"경고를…… 안 한 겁니까?"
-했어요. 하지만 최. 미국에서 하루에 뜨는 비행기가 몇 대인지 아나요?
모른다.
-그래도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에요.
"다, 다행이라고요?!"
-펜타곤이나 백악관, 뉴욕 한복판에 추락한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쪽으로 향하려던 놈들은 모두 잡았으니까!
"……아."
쌍둥이 빌딩 테러. 일명 9.11 사태.
회귀 전에는 뉴욕 심장부에 위치한 세계국제무역센터 일명 쌍둥이 빌딩이 테러를 당했다.
이때 수천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래. 그 끔찍한 일에 비하면 이 정도는…….’
이번에는 쌍둥이 빌딩이 아니라 국회의사당이다.
‘많이 다쳐 봐야…….’
"지랄! 많이 죽든 적게 죽든 죽는 건 똑같잖아!"
생명의 무게는 동일하다.
막을 수 없는 참사라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프다.
-자책하지 말아요. 이 정도로 막을 수 있었던 건 당신의 충고 덕분이었어요.
"그래도……."
-미국은 개인이 아무리 경고를 해 봤자 들어 먹을 나라가 아니에요. 아니, 어느 나라건 마찬가지죠. 혹여 당신이 테러를 하겠다고 경고장을 날렸어도 그들은 무시했을 거예요.
그 말이 죄책감을 작게나마 덜어 준다.
"……인명 피해는요?"
-현재까지 127명 사망, 32명 중경상이에요.
이날, 공항에서 테러리스트가 검거되자 주요 관공서나 랜드마크가 깔끔하게 비워졌다.
사망자가 발생한 건 폭발의 충격과 파편에 당한 일반인.
그리고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객 전원이었다.
"……후. 알려 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화내서 미안해요, 나탈리아."
-뭘요. 충분히 이해해요. 음, 할 말이 많긴 하지만 오늘은 이만 끊을게요.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요, 내 친구.
"……예."
종혁은 다시 TV를 응시했다.
미국의 현 대통령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등장했다.
-미국의 심장부가 공격을 받았다. 우리 미국은 결코 참지 않을 것이며…….
살의가 들어찬 두 눈이 정면을 보며 복수를 천명한다.
"막긴 막았어도 결국 그 전쟁이 일어나는구나."
미국의 잔혹한 복수 전쟁.
수많은 젊은 피가 쓰러져 간 참혹한 전쟁이다.
띠리링! 띠리링!
"예, 최종혁입니다."
-보스! 뉴스 보셨습니까?!
박태규다.
"지금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대체 왜…….
혼란해하고 슬퍼하던 박태규가 정신을 붙잡는다.
사냥꾼으로서의 그의 본능이 현 상황을 직시하며 분석한다.
-오늘 일을 기점으로 미국 증시 전부가 붕괴될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초부터 조금씩 무너져 가던 나스닥에 치명타가 가해졌다.
나스닥이란 거대한 거성은 와르르 붕괴될 것이다.
박태규는 오늘 장이 열리는 순간 서킷브레이크가 발생한다는 것에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태규 씨, 포지션은 계속 유지합시다. 11월까지."
-보스!
"CIA, FBI, NSA 등 미국 수사기관 전부가 눈에 불을 켜고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잘못 움직였다간……."
-타깃이 되겠군요.
타깃만 되면 다행이다.
미국이란 거대한 국가가 공격을 할 수도 있었다.
"미국 직원들에게 사망자 전원과 그 유가족을 책임지라고 하세요. 부상자도."
-피해 복구 모금도 진행시키겠습니다.
"유가족, 피해자들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만드세요."
-미국 회사 전부를 움직이겠습니다.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의 사죄.
종혁은 죄책감을 조금 더 덜 수 있었다.
-보스, 선물 시장이 요동칠 겁니다.
세계 경찰 미국이 전쟁을 선포했다.
관련 주가가 미친 듯이 날뛸 것이다.
"그것도 포기합니다. 먹을 게 없을 테니까."
-아. 죄송합니다. 미국의 국방 전력을 잊고 있었네요.
어떤 나라건 며칠 만에 쑥대밭이 될 것이다.
단타라면 모를까, 지금 선물 시장에 끼어드는 건 자살행위였다.
"뭐, 그래도 미국 직원들 의지까지는 막지 마세요."
-하하. 잃든 따든 디코이를 하라는 말이죠?
미국에 세운 회사들 중 어디는 딸 것이고, 어디는 잃을 것이다.
그게 그들 회사들이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됐다는 걸 모르게 만들 것이다.
그 회사들조차도 서로가 한 편이라는 걸 모르지만 말이다.
-예. 그럼 그날이 될 때까지 침묵하겠습니다.
"수고해 주세요."
탁!
핸드폰 폴더를 닫은 종혁은 이제 다음 뉴스로 넘어간 TV를 빤히 바라보다 일어섰다.
-오늘 비열한 사기꾼 백 씨에 대한 최종 공판이…….
아침 운동을 하러 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