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91화 (91/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91화>

    명절이 아님에도 마을에 잔치가 벌어졌다.

    지력이 약해져 공터가 된 작은 텃밭에서 비계 많은 고기와 닭이 삶아지고, 허리 굽은 노인들은 막걸리 한잔에 껄껄 웃는다.

    녹이 슬어 못 쓰게 돼도 돈이 없어 살 수 없던 호미나 괭이,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사다 준 것도 고마운데, 두 달에 한 번 겨우 동하리에 내려갈 때도 선뜻 손이 못 가는 사탕과 과자를 왕창 사다 줬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육이오? 그게 뭔데에?"

    마을의 최고령자 92세 박 할머니가 의아해하자 모두 뒤로 넘어갔다. 수호가 다급하게 말했다.

    "할머니, 육이오 모르세요?! 전쟁이요, 전쟁!"

    "이걸 어째. 바깥에 전쟁 났어? 피난 온 거야?"

    "아니요오!"

    모두가 답답해 가슴을 친다.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건 뭐 웰컴 투 정막골도 아니고.’

    70대 노인이 클클 웃는다.

    종혁이 미심쩍어하며 물었다.

    "어르신도 모르세요?"

    "난 알았지! 소학굔가 간다고 난리쳤을 때 알았지, 아마?"

    단어 자체도 웃기다.

    마치 살아 있는 화석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근데 그건 누구랑 싸운 거야? 우리가 이긴 거 맞지?"

    일행들은 다시 뒤집어졌다.

    "북한이에요, 어르신! 북한!"

    "응? 거긴 또 무슨 나라인고?"

    "……말도 안 돼."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오른 장 씨가 웃었다.

    "이해들 해요. 이 동네에 저 자갈 포장길이 깔린 지 5년도 안 됐어요. 읍사무소에서 인구 조사라고 나온 게…… 10년 전이던가? 그쵸?"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대통령이 뭐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그때 TV라고 한 대 놔 주고 갔는데, 반년 만에 누가 박살 냈지. 함께 놔 준 우물 뻠쁘는 잘 쓰고 있지만!"

    들을수록 먼 나라의 이야기다.

    아이들은 저마다 핸드폰을 꺼냈다가 화들짝 놀랐다.

    안테나가 안 잡혔다.

    ‘짜장면 시키신 분-!’ 하며 마라도에서도 짜장면을 시킬 만큼 전파가 잘 터지는 2001년, 21세기에 말이다.

    "그럼 TV는 아예 없으세요? 라디오는요?"

    "그런 거 없어도 잘 살아요. 아침에 밭에 나가서 일하고, 저녁에 발 닦고 자면 그만인데 그런 게 뭐 필요하다고."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모두가 신기해했다.

    그러다 한곳을 보았다.

    마을 사람들 사이, 두 대의 카메라가 찍고 있음에도 어색하지 않은지 복스럽게 고기를 먹는 소년이 있다.

    소년은 "엄마, 이것도 좀 먹어." 하며 고기를 내밀고, 어디가 아픈 건지 깡마른 소년의 모친은 소년의 입에 김치를 물려 주며 애틋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인다.

    종혁이 장 씨를 봤다.

    "저 아이가 철수인가요? 사정은 오는 길에 동하리 슈퍼 할머니에게 들었습니다."

    종혁은 모른 척 물었다.

    막걸리 사발을 내려놓은 장 씨가 담배를 물었다.

    "불쌍한 아이지. 지 애미 순덕이나 저나 모두. 한 15년 전이었나?"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겠다 하며 마을을 뛰쳐나간 16살 꽃다운 나이 어린 순덕은 몇 년 후 갓난아기를 감싼 포대기를 안은 채 돌아왔다.

    "그때 마을이 뒤집혔지."

    가출한 아이가 아기를 안고 나타났으니 당연했다.

    "가출한 딸 찾겠다고 그 늦은 밤에 산을 내려가던 정 씨 아저씨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걸 알게 된 순덕이는 정신 놓고 울지, 철수 저놈은 젖 달라고 보채지."

    공기가 숙연해진다.

    목소리가 닿는 곳에 앉은 노인들은 연신 술을 들이켰다.

    "그때 정신 차릴 시간 주겠다고 놔두는 게 아니었어."

    장 씨는 막걸리를 거칠게 들이켰다.

    어느 날, 매일같이 마을을 흔들던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다.

    뭔가 이상해 들여다봤던 마을 사람들은 경악했다.

    순덕이고 철수고 모두 말라서 죽어 가고 있었다.

    철수 몸은 불덩이었다.

    질겁한 마을 사람들은 그들 모자를 둘러업고 읍내 보건소로 달려갔다.

    "겨우 살았지, 겨우. 그런데 그때 일 때문인지 애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알아차리게 된다.

    참 해맑게 웃지만, 표정과 말이 어눌하다.

    "어휴."

    "흑흑."

    마음이 여린 아이들은 눈물을 흘렸고, 종혁은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정 씨는 그런 그들을 보며 놀라워했다.

    "정말 테레빈지 뭐시긴지 안 보고 왔나 봐? 저기 PD 양반이 말하기를 요새 철수 이야기가 엄청 유명하다던데."

    "그래요?"

    "세 번인가 내보냈다는데, 전 국민이 다 안다던데?"

    그래서인지 2주 전부터 외지인이 와서 마을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허락 없이 천막을 치지 않나, 농작물을 뽑아 먹지 않나.

    두고 가는 쓰레기에 마을이 쑥대밭이 됐다.

    철수와 순덕이 불쌍해서 겨우 참고 있을 뿐이다.

    "어? 이거 설마 인생극장 말하는 거 아냐?"

    수호의 말에 장 씨가 무릎을 쳤다.

    "그래, 그거! 그런 이름이었어! 인생극장!"

    술김에 크게 말해서 그런지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PD와 철수도 이쪽을 본다.

    종혁은 눈을 빛냈다.

    ‘판이 깔렸다.’

    종혁은 PD 옆에 서서 사람 좋게 웃고 있는 50대 장년인을 힐끔 봤다.

    ‘백종명.’

    철수와 순덕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 버린 악마.

    그랬으면서도 평생을 호의호식한 악마 중 악마다.

    종혁은 의아해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해가 좀 안 가네요."

    말하는 종혁의 목소리가 크다.

    "음? 뭐가?"

    "제가 알기로 인생극장은 후원 모집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후원?"

    "맞아! ARS 말하는 거지? ……어?"

    종혁의 동기가 맞장구치다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눈치 빠른 아이들 모두 의아해했다.

    "그거 한두 푼이 아니지 않아?"

    "응. 그거 못해도 천만 원 넘을 텐데?"

    "처, 천만 원? 그렇게나?"

    바깥 사람들이 고맙게도 한 푼 두 푼 후원해 준다는 건 알았지만, 그 액수까진 몰랐던 장 씨와 마을 사람들이 놀란다.

    웅성웅성.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PD가 잠시 촬영을 중단하고 다가온다.

    "무슨 일 있습니까, 최종혁 선수?"

    종혁은 놀랐다.

    "절 아시나 보네요."

    "그동안 노리고 있었는데 모를 리가요."

    "저를요?"

    친구들이 놀랐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종혁은 개천에서 난 용.

    인생극장에서 노릴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계속 어그러졌지만, 마침 잘됐군요. 이 기회에 날짜 잡으시죠."

    "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되려는 직업 특성상 얼굴이 많이 팔리면 안 되는지라."

    "아, 경찰……."

    PD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종혁은 그 모습에 쓴웃음을 흘리고는 방금 전 나눈 이야기에 대해 말해 줬다.

    "후원금이요?"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몰랐지만, 모두 철수의 일에 감정이입을 해서 나온 걱정이라고 판단한 PD는 푸근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도 철수가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지가 참 걱정이었다.

    ‘젊은 청년들이 마음씨가 좋네.’

    그렇지 않아도 미담이 많은 종혁이다.

    끼리끼리라는 말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후원금은 저희가 철수에게 직접 전달하는 게 아니라 저기 후원회장님에게 맡기…… 아, 오셨어요?"

    어느새 후원회장이 옆에 다가와 있다.

    "예. 그런데 무슨 일 있습니까?"

    ‘얼씨구?’ PD의 입에서 후원금이란 말이 나온 순간 움찔 반응한 걸 봤는데도 태연하게 말한다.

    ‘마치 간식 봉지 흔드는 소리에 냅다 달려오는 개새끼처럼 달려왔으면서.’

    종혁은 푸근히 웃었다.

    "좋은 일 하시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어이구, 아닙니다. 말년에 할 일이 없어 오지랖을 부리는 것뿐입니다."

    쑥스럽다는 웃는 후원회장의 모습에, PD와 마을 사람들이 존경 어린 눈빛을 보낸다.

    "그런데 후원 이야기가 나온 것 같던데…… 궁금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싶어서요."

    종혁은 방금 전 나눈 이야기를 덧붙였다.

    "아, 그렇습니까?"

    예민한 질문이었을 텐데도 후원회장이 사람 좋게 웃는다.

    ‘마치 예상했던 질문처럼.’

    "일부는 철수 옷이나 필기구를 사 주고 있습니다. 순덕 씨께도요."

    깨진 그릇이나 냄비도 바꿔 주고, 가스렌지도 놨다.

    "나머지는 철수가 대학 갈 때 집 한 채 얻어 주기 위해 모아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나 해 줬어?’

    ‘어이구.’

    존경의 시선이 짙어진다.

    ‘신의를 얻었군.’

    후원 사기의 첫째 단계이자 끝이고 전체를 관통하는 맥락이다.

    내 편을 만들어라.

    설계도에도 나와 있지만 신의를 얻는 건 사기의 기본이고, 신의를 얻으면 모든 게 끝난다.

    ‘설계도 그대로 했군.’

    옷이나 필요한 용품 등 소소하지만 드러나는 걸 줌으로써 당사자와 주위에 신의를 얻는다.

    후원 사기의 정석이었고, 회장은 그 단계를 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복잡해지진 않는다.

    깰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아, 대학 갈 때요?"

    지금처럼.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변명이다.

    ‘몇 년 후 이렇게 할 거다, 라고 누가 말을 못 해?’

    그게 지켜지지 않아서 문제다.

    움찔!

    후원회장뿐만 아니라 PD도 그 말에 작게 반응한다.

    사람의 욕심이란 말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설마? ……아니겠지?’

    그 시선을 느낀 후원회장이 정색했다.

    "말이 조금 이상하군요. 제가 철수의 후원금을 사적으로 쓴다는 말입니까?!"

    ‘알아서 말하네.’ 하지만 종혁을 보는 마을 사람들의 눈빛이 안 좋아진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도 철수 사정이 안타까워 약간의 후원을 하려다 보니 걱정이 좀 들었나 봅니다."

    "아, 그러세요."

    후원회장의 표정이 풀린다.

    "청년처럼 여러 사람이 도와준다면 나중에 서울에 방 한 칸 못 얻어 주겠습니까? 하하. 그런데 얼마나 하실 생각인지?"

    종혁은 장 씨를 봤다.

    "아저씨, 동하리에 집 얻으려면 얼마나 들어요?"

    "집?"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PD는 달랐다.

    ‘최 선수가 돈이 많다고 했지? 이거?’

    그동안은 일이 있어 캐스팅을 못 했지만, 종혁에 대해선 이미 조사했다. 그는 얼른 등 뒤로 손짓을 해 카메라를 불렀다.

    캠코더를 든 카메라 감독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어…… 글쎄. 아마 2천 정도 할걸? 빈집이면 그 정도 할 거야."

    "철수 어머님도 밭에서 일하시나요?"

    "아니. 이 밭, 저 과수원 돕고 그 삯으로 살지. 순덕이 아버지, 정 씨 아저씨도 그랬으니까."

    자식에게 남긴 건 고작 다 쓰러져 가는 집 한 채다.

    장 씨는 속이 타는지 막걸리를 쭉 들이켰다.

    "그래요? 그럼 이사할 집이랑 밭까지 해서 깔끔하게 5천 후원하죠."

    쿠당탕!

    PD와 후원회장이 벌떡 일어났다.

    후원회장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젊은 사람이 말이야! 어? 그렇게 불쌍한 사람 놀리는 거 아냐!"

    방금 전 의심을 받을 뻔한 것에 식겁했던 후원회장은 불같이 말을 쏟아 냈다.

    "그러고도 네가……."

    "잠시만요, 회장님!"

    다급히 말린 PD가 귓속말을 했다.

    ‘저 친구 어머님이 엄청 부자십니다. 서울에 빌딩만 네 채 넘게 가지고 있어요.’

    "헉!"

    회장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재신이구나!’

    그는 환하게 웃었다.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눈동자에 탐욕이 서린다.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좀 하지.’

    "그런데 후원은 언제……."

    종혁은 모른 척 입을 열었다.

    "아, 이건 철수 어머님 의견도 들어 봐야겠네요."

    "예?"

    *  *  *

    "예에?! 아, 아니……."

    철수 어머니 순덕은 숨이 턱 막혔다. 갑자기 찾아온 커다란 행운과 온정에 그녀는 어쩔 줄 몰랐다.

    "싫어요!"

    "철수야!"

    후원회장은 식겁했다.

    종혁은 철수를 따뜻하게 봤다.

    "왜 싫은 거야? 이유를 말해 줄 수 있어?"

    "음. 이사 가면 백구랑 황구랑 못 놀잖아요!"

    김 씨 할머니네 백구, 종 씨 할아버지네 황구.

    "짹짹이랑 콩알이랑도 못 놀고."

    만날 아침마다 찾아오는 참새 두 마리.

    철수는 이후로 손가락을 짚으며 친구들을 말해 갔다.

    철수에겐 이 산에 있는 모든 게 놀이터고 친구였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안마도 못 해 드려요!"

    "아이구, 이놈아……."

    고맙고도 애잔한 감정이 번져 간다.

    "안 갈래요. 전 여기가 좋아요. 나 없으면 할머니 할아버지 외로워요. 엄마도 동하리 가면 콜록콜록 하잖아. 더 일하잖아. 응?"

    종혁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마냥 어린 게 아니었구나!’

    정신연령이 아이 수준이 아니다.

    주위를 살필 줄 알고, 포기할 줄도 알았다.

    철수는 철수 나름대로 주위를 배려를 하는 거였다.

    종혁은 그제야 깨달았다.

    국민들이 왜 철수를 좋아했는지. 작은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언제나 해맑게 사는 철수가 부럽고 가여워서 좋아하는 거다.

    알 거 다 알면서 배려하고 만족하는 그 모습이.

    종혁은 철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움찔!

    종혁은 몸을 움츠리는 철수의 반응에 이를 악물었다.

    ‘벌써부터?!’

    이유를 눈치챈 종혁이지만, 모른 척 따뜻하게 말했다.

    "대신 동하리 친구들은 매일 만날 수 있는걸?"

    "동하리 친구들?"

    "황구, 백구, 짹짹이, 할머니, 할아버지는 주말마다 와서 보면 되잖아."

    "그래도 돼요?!"

    "그럼."

    "어. 음."

    종혁은 갑자기 깊이 고민하는 그의 모습에 터지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순덕을 봤다.

    종혁은 진지해졌다.

    "철수 어머님. 이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곳은 너무 노출됐기 때문입니다."

    "……?"

    모두가 의아해한다.

    "노출이라뇨?"

    "흔히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고 하죠."

    뭔가를 눈치챈 PD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여러 사건 사례를 배운 동기들도 마찬가지다.

    "설마 못된 마음을 먹는 사람이 생긴다는 겁니까?!"

    "예,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도 그런다.

    몇 년 후. 순덕은 돈, 즉, 있지도 않은 후원금을 노린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고, 충격을 받은 철수는 신부가 되어 수도원에 들어가 버린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외국으로.

    그에 철수를 알고 있던 국민들은 슬픔에 잠긴다.

    "한두 푼이 아니니까요."

    정말 한두 푼이 아니다.

    범인은 마냥 돈이 많겠지 하고 침입했다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했지만, 이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며 밝혀진 바에 의하면 순덕이 살해당하기 전, 즉, 현재부터 훗날까지 몇 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 전달된 후원금은 억 단위였다.

    개인적으로 정기 후원을 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인생극장 ARS 모금은 세 발의 피.

    티끌 모아 태산이었다.

    그럼에도 후원회장은 이 내용을 밝히지 않았고, 돈을 모두 착복했다. 철수 모자에겐 한 푼도 주지 않고.

    ‘그런데 뭐? 서울에 방 한 칸?’

    태연하게 말하는 모습이 너무 가증스러웠다.

    "아니……."

    순덕은 덜컥 겁을 먹고, PD는 당황했다.

    좋은 취지로 한 일이 불행을 불러올 것만 같았다.

    "그러니 지켜보는 눈이 많은 곳으로 옮기자는 겁니다. 철수 공부시키려면 아무래도 학교 근처가 좋을 테고요."

    "……."

    "그래! 가! 주말에 오면 되는 거 가지고 뭘 고민해?"

    "다시 못 올 귀인이다, 순덕아! 철수 생각 안 할 거야?!"

    "평생 안 볼 것도 아니고! 어서 이사한다고 해!"

    어르신들이 버럭 성을 내며 걱정하자 순덕은 망설이다 이내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흑.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도 이런 산골에서 철수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3년 전에야 겨우 한글을 떼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철수다.

    참새가 친구라고 말할 때마다 억장이 무너졌다.

    종혁은 씁쓸히 웃었다.

    "그럼 바로 내일 집부터 알아보죠."

    종혁은 웃음을 참는 듯 입술이 꿈틀거리는 후원회장 백종명을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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