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88화 (88/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8화>

*  *  *

그로부터 2시간 전.

참관을 허락받고 찾아온 종혁은 혀를 내둘렀다. 한 놈을 잡고자 백 명이나 되는 형사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든든하네."

"한상원 때도 이랬지?"

보호자로 참관 허락을 받은 임성원 교수가 다가온다.

그도 종혁이 한상원 검거에 큰 역할을 한 목격자 및 조력자라는 걸 안다.

"한상원 때는 더 심했죠."

그땐 200명이 넘는 형사와 경찰이 모였었다.

달리기와 격투 실력이 웬만한 형사 저리 가라 한 놈인 점도 있지만, 형사들이 독이 제대로 올랐었기 때문이다.

변장 능력은 또 어찌나 대단한지.

당시 종혁이 아니었으면 놓쳤을 게 분명했다.

"그랬어?"

눈을 크게 뜬 임성원 교수는 이내 뭔가를 떠올리곤 혀를 내둘렀다.

"그나저나 선진국 일본이라더니 그 말이 맞네."

아무리 검거가 급한 놈이라지만, 지문 대조 결과가 고작 반나절 만에 나왔다. 머리카락에서 채취한 DNA 조사 결과도.

지급으로 보내야 삼 일, 아니면 함흥차사인 한국과 비교가 됐다.

"91년에 DNA 수사 기술을 도입했으면서도 왜 이리 지지부진한지. 전풍 때 그런 일 겪었으면 확 발전해야 될 텐데 말이야."

전풍 백화점 붕괴 사건.

당시 신원 미확인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는데, 이때 DNA 수사 기술이 큰 활약을 했다.

종혁은 씁쓸히 웃었다.

"사건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죠."

"그건 맞지."

정확히는 국과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규모가 작아서 발생하는 일이다.

조사 의뢰는 넘치는데 인력이 부족하다.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인 문제였다.

"그보다는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우선이죠."

"데이터베이스?"

"DNA를 기반으로 한 범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이요."

"……아. 미국."

CIA나 FBI가 그런 걸 만들었다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흠."

종혁은 고민에 잠기는 임성원 교수를 보며 혀를 찼다.

‘우리나라가 그걸 구축했을 때가 2010년이었나?’

인력 및 예산 부족으로 인해 말만 무성하다가 DNA 수사 기술이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한 2010년에나 완성된 일이다.

"이건 지금이라도 할 수 있겠는데? 가서 건의해 봐야겠군."

"예?"

종혁은 깜짝 놀랐다.

임성원 교수가 그의 팔을 쳤다.

"이야, 잘 말해 줬다! 역시 넌 달라도 다르구나!"

"……네?"

‘이게 지금 된다고?’

"예, 예산이나 인력이 될까요?"

"뭐가 문제야. 한 달에 한 교도소씩만 훑어서 등록해도 3년 안에 끝나는데."

‘진짜 돼? 그럼 회귀 전에는 왜?’

"음음. 확실히 이건 생각지 못한 문제였어."

지문을 기반으로 한 범죄자 데이터베이스는 이미 구축이 되어 있다. 대조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온전한 지문만 나오면, 그리고 그 지문이 기존 범죄자의 것이면 범인은 바로 찾을 수 있다.

단순히 아직까지는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관해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그런 문제였다고?’

종혁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굉장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필요성의 차이, 간절함의 차이였다.

"하지만 아직 DNA 증폭 기술이 미흡해서 완벽한 유전자 정보를 확보하지 못할 텐데요?"

"그런 것도 알아?"

임성원 교수는 혀를 내둘렀다.

‘이놈 진짜 미쳤네?’

머릿속에 든 게 웬만한 교수보다 수준이 높다.

"그게 무슨 문제야? 기술이 발전하면 그때 또 등록하면 되지. 내가 힘드나? 법무부랑 국과수 애들이 힘들지?"

그건 맞는 말이다.

"이거 일본 애들 수사를 구경하다가 좋은 걸 떠올렸네. 정말 잘 말해 줬다!"

"하하."

종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얻어 걸린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 온 소득이 있네.’

임성원 교수의 말처럼 일본에 와서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지 않았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일이다.

‘잘됐네. 이쪽에도 투자를 해야겠어.’

기술이 발전할수록 범죄자를 더 빨리 잡는 법이다.

‘그 조직도.’

종혁의 눈이 불타올랐고, 임성원 교수는 흡족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와 생도인데도 굉장히 친하시군요."

"아, 무로이 씨."

종혁은 경찰 간부 교육을 받는 그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의아했다.

‘상부에 지인이 있나? 하긴.’

회귀 전 무로이는 4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경시청 형사 제1부장이 됐다.

그가 아무리 유능해도 끈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어떻습니까, 저희 일본 경찰의 수준은?"

"모두 백전노장 같네요. 훌륭합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왜 이래?’ 칭찬을 바라던 아이가 원하는 칭찬을 들은 것처럼 반응한다.

종혁과 임성원 교수는 떨떠름했다.

"그럼 이곳에서 지켜봐 주시길. 저희 일본 경찰의 레벨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인 무로이는 물러났고, 이내 10명의 형사를 제외한 나머지 형사들이 공장을 우르르 빠져나갔다.

종혁은 눈을 껌뻑였다.

"저만 뽐내고 싶어 안달 난 소년 같다고 느끼는 건 아니죠?"

"쉿. 그런 말은 입 밖으로 내뱉는 거 아냐."

‘아, 교수님도 같은 걸 느꼈구나. ……아니, 대체 왜?’ 둘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아, 그보다 그거나 연구하자."

프로파일링과 행동심리학.

"여기서요?"

"배움에 때와 장소가 어디 있어, 라고 말하고 싶지만 시간 죽여야지."

"아, 그건 맞죠."

놈이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다행히 CCTV가 있어 확인을 했는데, 보통 9시에서 11시 사이에 이곳에 등장했다. 즉, 아직도 최소 2시간은 남았단 소리다.

"이것도 알아?"

"예?"

"아, 아니야."

‘이놈 진짜 타고났네!’ 임성원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한편, 형사들과 함께 공장을 빠져나온 무로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들의 레벨을 알려야 해."

그래야 같은 위치에서 당당히 배움을 청할 수 있다.

그래야 서로 보안하며 더 나아갈 수 있다.

‘꼭!’

백 명이나 동원한 것이 살짝 걸리지만, 어찌 됐든 꼭 자신들의 손으로 잡아야 했다.

무로이의 눈이 불타올랐다.

그리고 세 시간이 흘러 놈이 등장했다.

임성원 교수와 대화를 나누던 종혁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건 임성원 교수도 마찬가지다.

‘왔다.’

이쪽 공장으로 도주할 걸 대비해 건물과 건물 사이에 숨은 형사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부산스러워진다.

그 순간.

"자, 잡아! 료타!"

눈을 동그랗게 뜬 종혁과 임성원 교수가 서로를 봤다.

‘실패?!’

종혁은 다급히 귀를 기울였다.

타다닥!

‘저쪽!’

종혁은 반사적으로 땅을 박차며 담벼락을 따라 달렸다. 그건 임성원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형사로서의 본능이 몸을 움직인 거다.

뒤늦게 일본 형사들도 다급히 달렸다.

그러나 늦다.

그들은 저만큼 앞서 달리는 종혁의 모습에 이를 악물며 속력을 높였다.

‘빌어먹을!’

‘제기랄!’

밥상을 차려 줬는데, 떠먹는 것까지 못할 수는 없었다. 한국, 일본이 문제가 아니라 형사로서의 자존심 문제다.

그 순간 형사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탈옥범 야마다의 얼굴이 이쪽 담벼락을 넘어온다.

그것도 종혁의 앞쪽에서.

"칙쇼오!"

"제발 더 빨리…… 어?"

무언가를 본 형사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걸음을 멈췄다.

타다닥!

거의 2미터의 거구가 벽을 발로 차며 달린다.

그들이 눈을 비빌 때 담벼락을 내달린 종혁은 이제 막 상체를 걸치다 자신을 보며 놀라는 야마다를 보며 씩 웃었다.

"까꿍이다, 이 새끼야!"

종혁은 그대로 놈의 턱주가리를 돌려 차 버렸다.

*  *  *

경시청의 상황실.

경시장 이상 최고위 간부들이 현장에서 전해진 소식에 얼굴을 구긴다. 사건이 사건인지라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니까, 범인이 본토로 도망쳤다고 제시한 것도 한국, 차량으로 도주했을 거라 추측한 것도 한국, 빈집에 숨어 있을 거라 말한 것도 한국."

"그런데 놈을 잡은 것도 한국이라고?"

그것도 일본 유도협회장이 꼭 손을 봐 달라고 부탁한 최종혁이다.

최고위 간부들의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쾅!

"망신도 이런 망신이 있나!"

"매스컴에서 신나게 떠들겠군."

"이거 어쩔 거야, 켄타!"

경시청 형사제2부장 무로이 켄타 경시감은 질타를 받으면서도 여유롭게 담배를 물었다.

"어쩔 수 있겠습니까. 인정해야죠."

"뭐?!"

"지금 그걸 말이라고!"

"자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이야! 실망이군!"

무로이 경시감은 혀를 찼다.

"우리가 언론을 통제해도 한국에서 터질 겁니다. 이미 유도협회 때문에 격이 떨어지는 행동을 했는데, 또 하실 생각입니까?"

"……."

얼굴을 더욱 구긴 최고위 간부들은 담배를 물었다.

맞는 말이다.

이미 일본 경찰로서 치사하고 수치스러운 일에 동조했는데, 이번에도 종혁을 협박해 경시청이 야마다를 검거한 걸로 치자고 말할 수는 없다. 무로이 경시감의 말처럼 격이 떨어지는 행동은 한 번으로 족했다.

"그래서?"

"이번 검거에 한국이 작은 도움을 줬다 말을 맞추는 겁니다."

"작은?"

"흠."

구미가 당기는 말이다.

인정해야 된다면 되도록 지분을 적게 만들어야 한다.

"다만 그런 거래를 위해서 저희도 내놓아야 할 건 내놓아야겠죠."

"이를테면?"

"일본으로 도망쳐 온 한국 범죄자들의 위치."

"……호?"

최고위 간부들의 눈에 흥미가 어린다.

하지만 무로이 경시감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거기에 야쿠자 비호를 받는 놈들도 모두."

"아니 그것까진……."

"한번 줄 때 크게 줘야 욕먹지 않는 겁니다. 이번 기회에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여 주시죠."

대인배.

그 단어가 그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폐를 끼치는 걸 싫어하는 만큼, 보여지는 걸 중요시 여기는 일본의 문화, 체면 중시 문화가 여기서도 작용한 것이다.

"대인배라…… 좋아. 거기에 과학수사 기술 교류까지 올리지."

"경시총감님!"

경시총감. 명실상부 일본 경찰 조직의 정점이다.

간부들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요시노리, 어차피 한국 기술이 우리를 거의 따라잡았어.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생색을 내자는 겁니까?"

"그렇게라도 안 하면 무너진 체면을 세울 수 있나?"

경시총감의 눈에 은은한 분노가 서려 있다.

그도 이 어이없는 상황에 화가 나는 중이었다.

‘언제부터 우리 경시청이!’

지방서도 아니고 경시청이 망신을 당했다.

그는 겨우 참아 내고 있는 중이었다.

"……."

그걸로 끝이다.

경시총감은 박수를 쳤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다들 일어서지. 점심시간이야. 얼른 먹고 휘둘러야지."

일어선 경시총감이 골프 스윙을 한다.

"하하하. 그러실까요?"

"켄타. 얼른 마무리하고 와."

"예, 먼저 가 계십시오."

나가는 간부들을 본 무로이 경시감은 한숨을 뱉었다.

"아들놈 유학 보내기 힘들군."

무로이 경시감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무로이 코헤이의 영향도 있었다.

그렇게 푸념하는 그에게 한 간부가 다가섰다.

"켄고."

경시청 형사 제1부장.

동기이자 친구다.

"원래 한국 범죄자들의 위치를 알려 주려 한 거지?"

날카로운 질문이다.

그러나 무로이 경시감은 흔들리지 않았다.

정말 그러려고 했기 때문이다.

"오세치 같은 밥상을 차려 줬는데, 입 닦고 넘어가자고?"

일본의 신년 기념 요리 오세치.

"지방서도 아닌 우리 경시청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했지만, 종혁은 단 한 번도 무언가를 요구한 적이 없다. 뽐을 낸 적도 없다.

일본 유도가 밟힌 것보다 그게 더 자존심 상한 그였다.

그뿐만 아니라 피해자 유족이자 친구에게 온전히 말할 수도 없다. 무로이 경시감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참 많은 이유가 얽혀 있었다.

"그건 맞지. 지방서는 그래도 우리 경시청은 안 되지."

경시청은 결코 체면이 상해서는 안 된다.

경시청은 실패를 하면 안 된다.

경시청은 모든 방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

이게 수십만 일본 경찰의 정점인 경시청의 자긍심이자 자부심이며, 이걸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게 그들의 각오다.

"알았어. 먼저 갈 테니 대충 마무리하고 넘어와. 사건은 이것 하나뿐만이 아니잖아."

"알았으니까 얼른 가기나 해. 번잡해."

"나쁜 놈."

동기가 투덜거리며 떠나자 그는 상황 진행을 알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지이잉! 지이잉!

아들의 전화번호였다.

"어이구."

받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은 전화.

"정말 아들놈 키우기 힘드네. 다른 놈들은 어떻게 두셋씩 키우는 거야?"

그는 혀를 차며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자존심이 상해 술을 마셨는지 혀가 꼬여 있다.

‘……지금이라도 엄하게 가르쳐야 하나?’

그는 이번에도 심각하게 고민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