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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87화 (87/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7화>

"일단 제가 그런 추론을 한 근본적인 이유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슥!

종혁은 작은 원을 그렸다.

"일본은 소수 무리의 사회입니다. 소수끼리만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는 작은 사회. 이런 사회가 모여……."

슥슥슥!

칠판에 포도송이가 그려진다.

"동, 구, 시, 도, 현, 나라 일본을 이루고 있습니다. 뭐, 나라는 너무 간 거니 다시 돌아와서. 여기서 주목해야 될 점은 이 작은 사회와 작은 사회의 빈 공간입니다. 감시의 사각."

"감시?"

종혁은 읊조리다 화들짝 놀란 무로이를 봤다.

"동이든 마을이든 기존 구성원의 시선 말입니다."

"아."

웅성웅성.

"기본적으로 모든 수사는 사건 발생 후 목격자의 증언에 의해 진행됩니다. 지금은 CCTV도 있지만, 보급률이 낮으니 일단 논외로 치죠."

"거기서부터 생각한 건가……."

종혁은 얼굴이 굳는 무로이를 일견한 후 이 자리의 대장인 경시감, 경시청 제2형사부장을 보며 아까 식당에서 말했던 추론을 읊어 갔다.

"흠."

"허."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그들의 눈에 불신이 차 있다.

‘이걸 그 짧은 시간에 생각했다고?’

식당에서 TV를 보자마자 추론을 했다는 걸 들은 그들이다.

‘천재’란 두 글자가 그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범죄자 따위가 그런 것까지 생각한다고?’

믿기지 않는다. 탈옥수 야마다 히스노리는 고졸조차 못한 범죄자니까.

하지만 종혁의 추론이 너무 그럴듯하다.

그러다 번뜩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유기한 시신이 우연히 발견되지 않았다면 야마다는 못 잡았다!’

시신이 백골로 썩었으면 완전범죄였다.

그만큼 치밀했던 야마다 히스노리이다.

즉, 종혁은 이것까지 계산에 넣은 후 야마다의 다음 행동을 예측한 거다.

‘이 무슨 괴물 같은!’

‘정말 야마다가 섬을 떠난 건가?!’

그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종혁은 그런 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처음으로 돌아갔군.’

한상원 때도 그랬다.

전국 모든 경찰이 그를 강도치사 살인범 탈옥수로만 생각하고 포위망을 형성, 수색 검문했다.

그가 어떤 성격인지.

인간관계는 어떻게 맺는지.

좋아하는 여성상은 뭔지 등 한상원이란 인간 자체에 집중하지 않은 채.

‘아직 프로파일링과 행동심리학이 도입되지 않은 시기니 뭐…….’

미래의 범죄 수사는 이 두 개의 도입 전과 도입 후로 나뉜다.

이 두 개가 도입되면서 수사 기법은 놀랍도록 발전한다.

그전까지는 대부분의 경찰들이 본인의 경험으로 판단했는데, 이게 의외로 잘 먹혀서 미래에도 이 둘을 무시하는 경찰들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시대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범죄 유형과 수법도 빠르게 바뀌고 진화하자 어쩔 수 없이 배우게 됐다.

종혁은 강력반 형사가 됐을 때부터 파고들기 시작해 본인만의 스타일로 완성시켰다.

현재도 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음?’

종혁은 손을 드는 무로이를 봤다.

분명 손을 들기 전 경시감과 눈빛을 나눴다.

‘아는 사이인가?’

"정말 야마다 히스노리가 섬을 떠났다면 수사를 어떻게 진행해야 합니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저 양반이?!’

"끙."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으라는 소리이다.

내키지 않았지만, 모두 기대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뭐 다들 아시겠지만, 일단은 탈옥범 야마다 히스노리가 헤엄쳐서 섬을 빠져나갔다고 판단, 가장 유력한 도착 포인트부터 싹 훑어야 할 겁니다."

목격자, CCTV뿐만 아니라 야마다 히스노리가 탈옥한 이후 발생한 사건 가운데 미해결 사건 모두를 재검토해야 한다.

이 무시무시한 말에 모두의 낯빛이 흐려졌다.

"그래도 강도 살인이나 강도, 절도, 차량 절도 위주로 뒤지면 될 것 같습니다."

무로이는 깜짝 놀랐다.

"도주에 초점을 둔다는 겁니까?"

"위험한 장소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건 동물의 기본 심리입니다."

"아아."

"아, 그리고 귀신 목격 제보도 찾는 게 좋겠군요."

"귀신 목격담…… 말입니까?"

웅성웅성.

뜬금없는 말에 모두가 당황했다.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

하지만 이들 중 이 말의 뜻을 알아챈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종혁이 어떤 학문을 기반으로 수사하는지 깨달은 사람.

임성원 교수이다.

"빈집에 숨어 있을 가능성을 말하는 거지? 처음부터 제기했던."

종혁은 짓궂게 웃었다.

"정답입니다, 교수님. 빈집에 숨어 있는 귀신처럼 흐으으."

피식!

실소가 강당에 번진다.

무거워진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위트였다.

"물론 전국에 수배부터 때리는 게 우선이겠죠. 이상입니다."

……짝! 짝! 짝!

무로이가 박수를 치자 이내 강당 전체로 번져 갔다.

짝짝짝짝짝!

"오오."

"와아!"

모두가 일어나 기립 박수를 친다.

‘크. 죽이네.’

온몸이 짜릿짜릿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며 진정이 되자 여태껏 침묵하고 있던 경시감이 입을 열었다.

"훌륭한 추리, 감명 깊게 들었네. 미리 고맙다 말하고 싶군."

"별거 아닙니다."

"우리에겐 별거 맞네."

웃으며 몸을 일으킨 그는 경시청 형사들을 봤다.

그들은 자세를 재빨리 바로 했다.

"뭣들 하나. 친구가 밥상을 차려 줬는데, 떠먹여 주기까지 해야 돼?"

"……옙!"

"그쪽 지방서에 연락부터 해!"

"난데! 지원과에 연락해서 인력 충원 좀 해!"

우르르!

경시청 형사들이 빠져나가고, 간부후보생들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빠져나가자 종혁은 부럽다는 듯 쳐다봤다.

‘아, 나도 끼고 싶다.’

지금부터 엄청 바빠지고 번거로워질 테지만, 그럼에도 몸이 달아오른다.

"역시 난 형사가 체질인가."

뚜벅, 뚜벅.

"뭐라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하하. 아직 안 잡았습니다, 무로이 씨."

"하지만 잡은 거나 다름없죠. 후후."

경찰에게 확신은 금물이지만, 좋은 분위기라 종혁은 입을 다물었다.

‘이 양반 웃을 줄도 아네.’

모르는 모습이 계속 발견돼서 신기했다.

‘이땐 잘 웃었다는 건가.’

"그래서 하는 말인데, 검거 때 참관해 보시겠습니까?"

"어? 정말요?"

"이 범인은 당신이 잡은 거니까요. 그럼 그렇게 알고 물러나겠습니다. 선물은 놈을 잡은 후 준비해 드리죠."

"네?"

종혁은 멀어지는 무로이를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저 양반이 참관을 허락한다 만다 할 위치가 되나?"

이번 교육을 마치고 나야 경부보, 한국으로 치면 경위이다.

경찰로 치면 중간 간부.

간부들 세계에서는 저 밑 애송이다.

의아해하는 종혁에게 선배들이 다가왔다.

"넌 정말…… 와."

할 말이 너무 많은데, 부럽고도 대단해 말이 뱉어지지 않는다.

종혁은 머리를 긁었다.

"하하하."

그런 그의 손을 임성원 교수가 콱 잡았다.

"교수님?"

"최종혁 생도."

"예."

"프로파일링과 행동심리학을 기반으로 둔 추측이었지?"

"예."

"그럼 이걸 나와 함께 수사 기법으로 완성해 보지 않겠나?"

"수사 기법…… 예……? 예?!"

종혁은 임성원을 멍하니 보았다.

한편, 강당을 나선 경시감은 맑은 하늘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친구에게 면이 서게 될 것 같지만…….’

납치 강간 살해 피해자의 유족.

잡아넣었지만, 도망을 쳐 버렸기에 그동안 면목이 없었다.

잡는다면 다시 할 말이 생기겠지만, 씁쓸했다.

온전히 일본 경찰의 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사 기법이 이렇게까지 발전한 건가."

선진국 일본의 선진 경찰.

여태껏 그의 자부심 그 자체였던 단어인데 이젠 그 빛이 바래는 것 같다.

뚜벅뚜벅.

"이젠 우리가 배워야 할 차례입니다, 아버지."

"쿄."

그랬다.

둘은 부자 관계였다.

경시청의 경시감 무로이 켄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지."

‘역시 한국은 발전하는 속도가 무섭군.’ 10년 전부터 정체되어 버린 일본과 너무 비교가 된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관료주의가 되어 버린 일본.

하지만.

"정말 배울 생각이냐?"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배울 생각입니다."

"……그래. 경찰이라면 그래야지. 잘 생각했다."

일본엔 아직 이런 인재들이 남아 있다.

이들이 자라 일본 경찰을 다시 우뚝 서게 만들 거다.

언제나 밑으로 보던 한국이기에 반대의 물살이 거셀 테지만, 아들이라면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는 희망을 품으며 발을 내디뎠다.

"아, 그리고 최종혁 생도에게 야마다 검거 때 참관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뭐? 네가 무슨 자격으로?"

"경시청 제2형사부장이 아버지시니까요."

"……이런 미친놈을 봤나."

무로이 켄타는 방금 전 품은 희망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건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  *  *

수사 방향이 정해지자 일본 경찰은 은밀하게 움직였다.

괜히 매스컴을 탔다가는 범인이 초조한 마음에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를 수 있기에 최대한 은밀하게 추적했고, 결국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륙의 어느 산길에서 탈옥범 야마다 히스노리가 이용한 차량이 발견된 것이다.

절도 신고가 된 차량.

그 안에서 놈의 지문과 약 4일간 머문 흔적이 나왔다.

누가 봐도 그곳에 숨어 사태 추이를 관찰한 거다.

정말 종혁의 말처럼 야마다 히스노리는 내륙으로 도주해 차량을 절도한 거다.

‘거봐. 내가 뭐랬어.’

종혁은 경이롭다는 듯 보는 경찰 간부후보들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추적이 급물살을 탔다.

바다를 낀 작은 도시.

챙이 둥글고 넓은 낚시 모자를 눌러쓴 안경 낀 30대 남성이 낚시 가방을 흔들며 바닷가로 향한다.

그를 본 사람들이 혀를 찬다.

이제 겨우 5월, 아침 10시.

회사에 있어야 할 30대가 낚시를 하러 간다.

한심하지만 욕은 할 수 없다.

미래를 잃어버린 지 10년.

청년 실업은 익숙한 일이었다.

부우웅! 빵빵!

"귀신?"

깔깔깔!

2차선 도로 횡단보도 앞에 선 남성은 근처에 모여 있는, 60대 경찰의 말에 아주머니들이 웃는 걸 힐끔 봤다.

"무라타 씨. 그런 거 믿을 나이 지났지 않아?"

"일주일 전에도 그런 걸 묻더니 이상해."

"아, 이젠 경찰이 귀신도 잡는 거야?"

까르르 웃음이 퍼진다.

60대 경찰이 귀찮다는 듯 목을 긁었다.

"나도 귀찮아 죽겠어. 상부의 지시라 무시할 수도 없고."

"순사부장이면 무시해도 되지 않아?"

"그럼 내 연금은? 너희가 책임질 거야?"

경찰이 아니라 마치 할 일 없는 노인 같다.

‘역시 일본 경찰은 무능해.’

입술을 비튼 사내는 신호등 기둥을 봤다.

야마다 히스노리라는 인물의 수배 전단이 붙어 있다.

사내의 입술이 더 비틀어진다.

"아무튼 전에 말한 3번지 폐가 말곤 없다는 거지?"

"응! 응!"

움찔!

노인 경찰의 시선이 몸이 크게 떨리는 그에게로 향한다.

사내는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자 느긋이 발을 뗐다.

모든 신경을 등 뒤로 세우며.

"하, 거기 별거 없던데. 그리고 또?"

"에이. 그런 재미없는 거 계속 물을 거야?"

"벌써 한잔하자고? 안 돼. 나 혼나."

횡단보도를 건넌 그, 야마다 히스노리는 횡단보도 건너편 굴을 가공하는 공장 단지 좁은 길에 들어서자 참았던 숨을 탁 뱉었다.

방금 전까지 늙은 경찰의 시선이 따라붙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헉! 헉!"

‘어떻게? 왜?’ 왜인지 경찰이 폐가를 뒤지고 있다.

야마다 히스노리는 이틀 전 일을 떠올렸다.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있던 은신처.

발랑 까진 십 대들이 다녀갔나 싶었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

"……들킨 건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그 섬을 뒤지는 뉴스가 나왔다.

"아냐. 아직은."

증거라도 발견됐으면 매스컴이 득달같이 달려들었을 거다.

즉, 일본 경찰은 아직도 헛발질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쯧. 옮겨야겠군."

그렇지 않아도 그 흔적 때문에 옮기려고 했는데, 오늘 당장 옮겨야 할 것 같다.

저벅저벅!

"아, 왜 하필이면 이런 길이야! 공장이잖아!"

"이쪽이 지름길입니다, 부장님!"

"아, 그래? 어이, 료타! 같이 가자고!"

아침부터 술에 취한 듯 휘청이며 다가오는 40대, 30대 남자들.

반대편 저 멀리에서 휘청이며 멀어지는 두 남자들.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던 야마다 히스노리는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2미터 담벼락을 잡고 있던 손을 뗐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온 중년 남자들을 향해 낚시 가방을 휘둘렀다. 가까워지자 눈빛이 돌변하며 손을 뻗는 그들을 향해.

"야마다……."

빠아악!

"컥?!"

야마다 히스노리는 땅을 박찼다.

"자, 잡아! 료타!"

그 외침에 저 멀리서 걸어가던 이들이 몸을 돌린다.

‘역시!’

직감이 맞았다.

왜인지 섬뜩해서 바로 공격했는데, 역시였다.

‘대체 어떻게?!’

"야마다! 멈춰! 넌 포위됐어!"

맞은편에서 달려오며 외치는 경찰들.

외길의 앞뒤에서 달려온다.

왼쪽 공장에서도 경찰들이 쏟아져 나온다.

"야마다!"

사면초가다.

‘빌어먹을!’

이를 악문 야마다는 땅을 박차 오른쪽 공장의 담벼락을 잡았다.

그렇게 몸의 반절이 담벼락 끝에 걸리고 경찰들의 손끝이 야마다의 허리에 닿는 순간이었다.

타다닥! 부웅!

야마다는 거대한 그림자가 치솟는 걸 느꼈다.

"까꿍이다, 이새끼야!"

"어?"

일본어가 아닌 이상한 말.

고개를 든 야마다가 발견한 건 거대한 누군가의 커다란 발이었다.

야마다 히스노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빠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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