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86화 (86/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6화>

    26.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 유도협회의 회의실이 어젯밤 전해진 소식에 침묵을 강요받는다.

    종혁이 진 순간 ‘한국 유도 영웅의 몰락’이나 ‘진짜 일본 유도는 이런 것’이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낼 준비를 했던 그들은 이 믿기지 않는 상황에 입을 열지 못했다.

    ‘야쿠자에 들어간 아이들을…….’

    그런 생각을 했던 이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야쿠자를 때려잡는 게 강력계 형사다.

    그런데 거기서 고르고 고른 이들 전원이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딱 봐도 종혁이 손속을 봐줬다는 게 눈에 보였다.

    어제 종혁이 10초 안에 한판을 따낸 숫자만 45명.

    총 70여 명의 경찰들이 당했다.

    ‘이 괴물 같은 놈!’

    ‘정녕 인간인가!’

    ‘왜 우리 일본에선 이런 인물이 나오지 않는 건가!’

    이제 종혁을 잡으려면 총이나 칼, 약이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까지 타락하지는 않은 그들이다.

    설사 행동에 옮겼다 해도 들키면 큰일 수준으로 끝나지 않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최종혁은 더 이상 건드리지 않기로 하지."

    일본 유도협회장의 힘 빠진 목소리에 그들은 다시 한번 침묵을 강요받아야 했다.

    이번엔 체념의 침묵이었다.

    *  *  *

    짹짹.

    작은 새가 노래를 부르는 아침.

    아침 스트레칭을 마치고 곧 있을 식사 전, 애피타이저로 빵을 먹는 종혁의 방문이 활짝 열린다.

    "움?"

    "어이구. 우리 종혁이 일어났어?"

    3, 4학년 선배들이다.

    "빵 먹고 있구나? 우유도 함께 먹고 있어?"

    "자자. 일단 엎드리자."

    종혁을 엎어트린 선배들이 종혁의 몸을 주무른다.

    "이야, 우리 종혁이 근육 단단한 거 봐라."

    "와. 진짜 딱 하루라도 이런 몸으로 살고 싶다."

    종혁은 당황했지만, 몸에 힘을 풀었다.

    무도관을 박살 낸 다음 날부터 이렇게 마사지를 해 줬기 때문이다.

    그날의 일로 종혁은 선배들의 예쁨을 한 몸에 받게 됐다.

    "종혁아, 졸업하면 형이랑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거다. 알았지?"

    "그래. 누나랑 범인 때려잡고 함께 체포왕 되는 거야."

    "야 이씨 여자는 소년계나 가!"

    "이게 갈비뼈를 다 털어 버려야 개소리를 안 하려나. 야, 나 신인왕 출신이다? 원투 맞으면 강냉이 우수수예요."

    이런 이유다.

    ‘내가 바로 밑으로 가면 안 좋을 텐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상관없지만, 차이가 나지 않으면 비교당할 게 뻔하다. 실제로 그런 이유로 한 식구임에도 견원지간이 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그걸 말할 만큼 경험이 없지 않은 종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런 종혁의 마음을 모르는 그들은 더 힘차게 주물렀다.

    그렇게 마사지를 마친 그들은 식당으로 향했다.

    웅성웅성. 뚝!

    …….

    넓은 식당에 침묵이 내려앉는다.

    혀를 차며 시선을 돌리는 이도 있다.

    그에 선배들은 코웃음을 친다.

    썩 당황스러운 광경이지만, 이젠 익숙하다.

    ‘며칠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꿍해 있기는.’

    ‘일본 경찰 대범하다더니 쫌생이네.’

    눈치가 있어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표정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도발이 됐다.

    발끈!

    종혁은 후끈 달아오르는 공기를 무시하며 식판을 들었다.

    "많이, 가득 주세요."

    "예……."

    배식을 하는 아주머니의 시선도 곱지 않다.

    그래도 배식은 잘해 주기에 음식들이 산처럼 쌓인 식판을 든 종혁은 빈자리에 앉았다.

    3, 4학년 선배들도 그 주위에 앉았다.

    그들은 오늘도 정복자가 되어 느긋이 식사를 시작했다.

    "이야, 이 집 맛집이네. 종혁아, 이거 맛있다."

    "하하. 예."

    "이것도 먹어 봐."

    무척이나 화기애애한 모습에 한 번 더 발끈한 주위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무시하며 식사를 이어 갔다.

    곧 식당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탈옥범 야마다 히스노리의 도주가 오늘로써……?

    갑자기 식당이 더 조용해진다.

    모두 식당 곳곳의 TV를 보며 이를 갈거나 고개를 떨군다.

    의아해하며 TV를 본 종혁과 선배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선배님, 저거 그거 맞죠?"

    "어. 일본판 한상원."

    죄목은 한상원보다 더 악질이다.

    납치 강간 살해 및 시체 유기.

    사형을 당하지 않은 게 이해되지 않을 수준의 범죄이다.

    "흠. 쟤 아직도 못 잡았나 보네."

    "저희도 힘들게 잡았는데, 일본 경찰이라고 쉽게 잡겠습니까?"

    "그래도 선진국 일본이잖아. 곧 잡겠지."

    "그럴까요? 아, 종혁이 네 생각은 어때?"

    카레 돈까스를 꿀떡 삼킨 종혁은 단언했다.

    "저거 잡기 힘들 겁니다. 일본이기 때문에."

    "어? 진짜? 왜?"

    종혁이 지난 일 년 동안 범죄자를 몇 번 잡아서 경찰에 넘긴 걸 알고 있는 그들은 놀랐다.

    조용히 자리했던 임성원도 호기심을 드러냈다.

    "설마 개인주의 때문인가?"

    종혁은 임성원 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우리나라야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 정도로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죠."

    "폐를 끼치는 걸 싫어하는 문화지."

    정답이다.

    "80년대 후반 증시와 부동산이 무너지며 경제공황이 온 이후 남녀 갈등도 극심해지면서 그런 경향이 심해졌죠."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테니, 나도 내버려 둬라.

    그런 의미이다.

    그리고 보여 주는 걸 중요시 여기지만, 지금은 할 말이 아니다.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는군. 하지만, 일리가 있어."

    삶이 빡빡해지면 타인에 일에 관심이 없어지는 법이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는 거다.

    "그렇다 보니 일본은 소수 무리의 사회가 됐습니다. 친한 이웃, 친구, 같은 부서의 상사의 일만 관심 있어 하지, 다른 건 관심 가지지 않게 됐죠. 정치까지도."

    지금은 인터넷이 보급화되면서 그런 현상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이걸 아는 이유는 단순하다.

    일본에는 한국 뉴스에도 나올 만큼 심각한 강력 사건들이 많다 보니 형사로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거다.

    "훌륭해. 그래서 못 잡는다는 건가?"

    "PC방이라고 해도 옆에 누가 앉는지조차 관심이 없는데, 어떻게 찾겠습니까? 빈집 같은 곳에 숨어 버리면 절대 못 찾죠."

    "푸핫. 그렇겠군."

    이 시기 한국은 PC방에서 누가 게임을 하면 그 뒤에서 구경하고, 폐가가 있으면 꼬맹이들이 아지트로 쓴다.

    동네 사람들도 서로가 모두 알고 있다 보니 낯선 이가 들어오면 바로 눈치채게 된다.

    임성원 교수는 감탄했다.

    ‘이놈 타고났는데?’

    이렇게 다각화된 시각에서 접근해 추리를 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건 정말 타고난 재능이다.

    임성원 교수의 두 눈이 흥미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덜컹!

    종혁과 임성원 교수의 시선이 돌아갔다.

    임성원 교수의 뒤에서 벌떡 일어난 사람이 몸을 돌리고 있었다.

    "지금 그 말, 다시 해 줄 수 있겠스무니까?"

    피부가 새까맣고 마른 30대 초반의 사내.

    꾹 다문 입술과 주름진 미간이 인상적이다.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무로이 경시감?’

    무로이 코헤이 경시감.

    2015년, 고작 45세 최연소로 경시청 형사 제1부장이라는 직책에 오르는 엘리트이다.

    한국 경찰로 따지면, 치안감에서 치안정감이다.

    국제 마약 조직 소탕이나 범죄 증거 확보 등을 위해 공조 수사를 몇 번 이루면서 인연을 맺었다.

    "빈집 같은 곳에 숨어 버리면 못 찾는다? 말입니까?"

    "예, 그거! 정말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사람들의 이목이 끌린다.

    눈을 빛낸 임성원 교수는 종혁이 말을 잘할 수 있도록 몸을 옆으로 뺐다.

    고맙다는 눈빛을 보낸 종혁은 일본어로 말했다.

    "예. 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작은 무리의 사회라지만, 그래도 이방인은 눈에 띈다.

    한상원이야 여자를 꼬드겨 그 집에 숨어 살았지만, 이놈은 여자를 납치해 강간 살해를 한 놈이다.

    "이 탈옥수는 여자를 납치해 강간 후 살해할 만큼 여성에게 매력적이지 못한 놈입니다. 또 시신을 유기했는데도 목격한 사람을 찾기 힘들었죠."

    즉, 이놈은 이웃들에게도 존재감이 흐릿하단 소리이다.

    "이렇게 사회성이 없는 놈이 숨을 곳은 어딜까요? 탈옥수이니 돈도 없을 테고요. 그 즈음 그 근처에서 강도나 절도 사건이 벌어진 적 있습니까?"

    임성원은 속으로 박수를 쳤다.

    접근 방법이 놀랍도록 세련되고 진화되어 있다.

    ‘이건 프로파일링을 기반으로 한 추리인데? 아니, 여기에 행동심리학도 플러스 됐어!’

    현직 형사들도 제대로 모르는 프로파일링과 행동심리학.

    교수인 그도 어려워하는 분야이다.

    ‘그런데 이걸 일개 생도가 알고 있다고?’

    헛웃음이 나왔다.

    "이, 있습니다. 죄수복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옷을 도난당한 사건이 있습니다!"

    "돈은요?"

    "아, 아뇨. 그런 사건이 있긴 하지만 모두 범인이 잡혔습니다."

    "그래요? 와, 이 새끼 똑똑하네."

    "예?"

    주목을 하고 있던 일본 경찰들도 의아해했다.

    종혁을 미워하는 그들도 어느새 이 둘의 대화에 푹 빠져 있었다.

    "추적을 당할 걸 우려해서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겁니다. 대신 추적을 당하지 않을 방법으로 음식을 구했을 겁니다."

    "……편의점 폐기 음식?"

    "음식물 쓰레기일 수 있죠. 일본에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 지정되어 있다죠?"

    "……맙소사!"

    "미친?!"

    그동안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새로운 견해이다.

    그들의 몸이 달아올랐다.

    그때 누군가 크게 외쳤다.

    "하지만 그 섬엔 빈집이 없습니다!"

    "섬?"

    "그놈이 갇혀 있던 교도소는 섬에 지어져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인구수도 적고, 숨을 곳도 없습니다!"

    육지와 가장 거리가 좁은 곳이 250미터다.

    그래서 경찰들은 오늘도 야산을 뒤지고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종혁은 촉이 섰다.

    "아, 이 새끼 내륙으로 튀었구나."

    "무슨! 탈옥이 알려진 순간 육지로 향하는 모든 출입구를 봉쇄했습니다!"

    "그럼 헤엄쳐서 빠져나왔겠네요."

    "그곳은 1년 내내 파도가 심하게 몰아치는 바다입니다!"

    내륙과 가장 가까운 곳도 거리가 약 250미터다.

    "그게 어때서요?"

    "네?"

    "250미터. 먼 것 같지만, 의외로 멀지 않습니다. 해 봐서 알아요."

    바닷가에서 합숙할 때 섬 찍고 오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그 동네 초등학생들도 곧잘 한다.

    "그리고 그 파도가 정말 1년 내내 밤낮 가리지 않고 심하게 몰아칩니까? 장담할 수 있어요? 그리고 밀물, 썰물은 생각 안 합니까? 만조는? 마지막으로 탈옥하려는 새끼가 자기 갇힌 곳의 지형지물도 알아보지 않았을까요?"

    ……오싹!

    무로이뿐만 아니라 경찰 간부후보들 전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경시감님! 무로이 코헤이입니다! 지금 야마다 히스노리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나와서 연락드렸습니다!"

    시끄러워지는 그들을 일견한 종혁은 선배들을 봤다가 깜짝 놀랐다. 다들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임성원 교수는 잔뜩 경악하고 감격한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짝! 짝! 짝!

    "훌륭해. 멋져."

    프로파일링으로 범인의 성향과 심리를 예측하고, 행동심리학으로 전체를 객관적으로 보아 범인의 다음 행동을 예측한다.

    앞으로 경찰들이 지향해야 할 수사 기법의 완성형을 보는 것 같다.

    온몸에 전율이 일어 박수를 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뭘요. 이 정도는 기본이죠.’

    정말 기본이다.

    미래 팀장급 경찰이라면 기본으로 탑재해야 되는 수사 기법.

    종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  *  *

    종혁에겐 기본이지만, 다른 이들에겐 아닌 것 같았다.

    족히 100명은 앉을 반원형의 강당.

    단상에 선 종혁은 강당을 빼곡하게 채운 일본 경찰들을 떨떠름히 보았다.

    "나 왜 여기 있는 거냐."

    간부후보생도들뿐만이 아니다.

    경시부터 경시감까지 중앙에 떡 앉아 있다.

    한국으로 치면, 경정부터 치안정감까지 코앞에 있는 거다.

    그런 그들을 일개 생도가 가르치려는 거다.

    종혁은 원망을 담아 무로이를 노려봤다.

    이 사태의 원인이 무로이기 때문이다.

    그런 추론을 하게 된 이유를 숨김없이 다 말해 버린 그.

    그래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거다.

    무로이가 부럽다는 얼굴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저 양반, 저런 캐릭터 아닌데.’

    과묵의 결정체.

    정말 딱 할 말만 하는 상남자.

    원리원칙의 수호자.

    그게 종혁이 아는 무로이 코헤이다.

    ‘아, 원리원칙. ……니미럴.’

    "미안하지만, 빨리 시작해 줄 수 있겠나?"

    경시감이 손을 들어 말한다.

    급하긴 정말 급한 것 같았다.

    ‘하긴. 한국도 한상원 때문에 목이 여럿 날아갔지.’?

    대한민국 경찰 역사상 최고로 간부 TO가 빈 시기였다.

    ‘에라이.’?

    한숨을 푹 내쉰 종혁은 분필을 잡았다.

    "그래. 뭐 한두 번 해 보는 것도 아니고."

    대형 사건이 터졌을 때 경찰청장과 고위 간부들 앞에서 브리핑하던 게 몇 번이던가.

    이젠 신물이 날 지경이다.

    ‘까짓것 해 보자!’

    종혁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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