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2화>
마치 호텔을 연상케 하듯 벽과 바닥이 상아색 인조 대리석으로 고급스럽게 인테리어된 피트니스 센터.
점심시간 이후라서 그런지 제법 조용하다.
"이런 곳은 또 어떻게 알았데?"
4백 평 너비의 센터 안에는 러닝 머신만 육십대가 넘게 있고, 최신식 기구도 꽤 보인다.
동기들이 적극 추천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마무리가 부족하다.
기구 배치가 어설퍼서 동선이 좀 지저분하고, 사용자의 관절 보호를 위한 매트가 없다.
고급 호텔 피트니스 센터를 어설프게 따라 한 느낌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운동할 맛이 나지."
‘옮길까?’ 안 그래도 만날 동기들과 운동하다 혼자 운동하려니 좀 심심했던 종혁은 진지하게 고민하며 동기들을 찾았다.
"흠."
미간을 좁힌 그는 걸음을 옮겼다.
"개인 PT를 받으시면 금방 예쁜 몸을 만들 수 있다니까요."
"아, 글쎄 그런 거 필요 없다니까요!"
열 명의 동기들이 제법 몸이 좋은 트레이너와 싸우고 있다.
대충 상황이 짐작 갔지만, 그는 모른 척 입을 열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종혁아!"
종혁은 트레이너를 보며 가슴을 폈다.
"무슨 일이십니까?"
키가 크고 체격이 너무 다부진 종혁.
이건 또 뭐야, 생각하던 트레이너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큼. PT라는 좋은 것이 있기에 권해 드렸을 뿐입니다."
"PT요?"
‘저 몸을 보고?’ 1학기 초반부터 관리해 준 몸들이다.
조형미까지 생각하며 세심하게 다듬었기에 다들 소위 말하는 몸짱이다.
여자 동기들도 3대 170은 거뜬히 든다.
"다들 몸이 좋기는 한데 이상한 곳에서 배웠는지 라인이 이상해서요. 저희 트레이너들이 이런 건 또 못 참거든요."
‘사짜구나.’ 생각해 보면 이 시기 전문 트레이너가 있는 게 더 이상했다.
거기다 몸에서도 묘하게 이상한 냄새가 나고,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데도 벌써 탈모 증상이 보인다.
‘약물까지 쓰네. 흠.’
종혁은 파 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괜찮습니다. 저흰 저희들끼리 운동할게요."
동기들과 기분 좋게 운동하러 온 길이다.
괜히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움칫!
"하. 진짜 다듬어야 하는데……."
트레이너는 안타까워하며 물러섰고, 동기들은 종혁을 봤다.
"저 헛소리를 믿는 건 아니지?"
"아니?"
"그럴 리가!"
국가대표를 가르치는 종혁이다.
몸은 예쁘기도 해야 된다면서 매일 지옥을 겪게 해 주는 악마.
"그래?"
역시 허투루 가르치지 않았군, 하며 흡족해한 종혁은 러닝 머신을 가리켰다.
"그럼 뛰어."
와락!
얼굴이 구겨진 남녀 동기들이 러닝 머신 위로 올랐다.
* * *
러닝 머신으로 땀을 쭉 뺀 후 스트레칭으로 젖산을 풀며 몸을 달군다. 이렇게 두 시간 운동하면 문어, 낙지, 오징어와 동급이 된다.
그런 다음은 하체 조지기다.
"자세! 자세! 어쭈? 허리를 숙여? 허리를 뽀샤 버릴라!"
"야 이 악마야!"
"오른발에 힘 안주지? 짝궁댕이 될래?"
"그거 성추행이야!"
그들은 구르며 생각했다.
‘내가 왜 이 악마를 불렀을까!’
없으니 아쉬워서 불렀는데, 있으니 지옥이다.
‘다른 동기들처럼 고향에 내려갈걸!’
이 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간 동기들이 부러웠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물러섰던 트레이너가 주위를 맴돈다.
무시한 종혁은 여자 동기들에게 다가갔다.
"어? 무게 늘리게?"
"슬슬 때가 됐으니까. 이번 방학 끝날 때까지 250 찍자."
급격하게 무게를 올리면 몸이 망가지기에 250이다.
그러나 여자 동기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그러면 너무 우락부락해지지 않을까?"
"응. 응! 터, 터미네이터처럼."
그녀들은 다급했다.
종혁이 말하는 3대 몇 백은 꼴랑 하나 측정하고 마는 게 아니다. 그 무게로 최소 한 세트 12개씩 5세트를 해야 된다.
"아, 그러세요?"
종혁은 한심하게 쳐다봤다.
경찰이 범인을 검거하는데 힘에서 밀린다?
그것도 간부가?
바로 진급 누락에, 신문 1면이다.
"미쳤냐?"
"……알았어. 할게. 하면 되잖아."
그녀들은 울상을 지으며 바벨 앞에 자세를 잡았다.
"하, 진짜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종혁은 미간을 구겼다.
"다들 기구 내려놔. 가자."
"응? 벌써?"
종혁과 어울려서 그런지 하루 최소 4시간 운동하지 않으면 몸이 찌뿌둥한 레벨에 도달한 그들이다.
"찜질방에서 몸이나 지지자."
"오. 웬일? 너 운동 후에 사우나 못 하게 하잖아."
운동 후 바로 사우나를 하면 몸에 안 좋다.
"그러니 마사지부터 받아야지. 아, 너희 한 달로 끊었어?"
"그런데? 오늘 끊었어."
"환불해. 나 아는 곳 있어."
놀란 동기들은 종혁의 뒤에 있는 트레이너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트레이너의 말이 무척이나 거슬렸던 탓이다.
"오케이."
"그럴게. 운동은 편하게 해야지."
트레이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 잠깐! 잠깐만요!"
종혁은 팔을 잡은 트레이너를 뚱하게 쳐다봤다.
"왜요?"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짓?’
"센터가 마음에 안 들어서 환불하는 건데요. 왜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트레이너는 다급해졌다.
자신 때문에 환불 사태가 벌어졌다?
죽는다.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이 사람이 지금! 그렇게 하면 난 어쩌라고!"
종혁과 동기들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
"무슨 일이야?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대머리의 사십대 장년인.
팔뚝이 여자 허벅지만 하다.
‘여기도 스테로이드네.’
내추럴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근육이다.
"전무 최경석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종혁은 이젠 파랗게 질리는 트레이너를 무시하며 안경 속 작은 눈을 응시했다.
"여기 트레이너분이 너무 PT를 강요하셔서요. 환불하려고요. 오늘 등록했으니까 가능하죠? 기구 이용했으니 하루 이용료는 내겠습니다."
"아, 그래요…… 환불. 다시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어디 가도 저희만 한 곳 찾기 힘들어요."
"그건 아는데 마음이 떠서요. 미안합니다."
종혁은 단호했다.
"미안하다라…… 음, 그럼 어쩔 수 없겠네요."
고개를 끄덕이던 전무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그리고 돌연 손을 들었다.
빠아악!
"큭?!"
"야 이 새끼야! 내가 함부로 PT 강요하지 말랬지!"
빡! 빡!
"악! 죄, 죄송 악! 하, 하지만 전무님이!"
솥뚜껑만 한 손이 트레이너를 때리고 발로 걷어찬다.
"이 씨발놈이 어디서 변명을!"
센터의 공기가 삽시간에 살벌해졌다.
주위 트레이너들도 모른 척 고개를 돌린다.
비웃는 이도 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증거이다.
‘이거 봐라?’
종혁의 눈이 삐딱해지고 종혁의 동기들은 당황했다.
지이익!
전무는 트레이닝복 저지 지퍼를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이놈이 온 지 얼마 안 된지라."
‘얼씨구?’
종혁과 같은 것을 본 동기들의 얼굴도 굳는다.
민소매를 뚫고 나온 용 문신이 그들의 망막에 맺힌다.
"그런데 어쩌죠? 저희는 환불 같은 거 없는데."
웃고 있지만, 흉악하게 일그러진 눈이 ‘그냥 가라’라고 말하고 있다.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기분 좋게 운동하러 왔다가 별 거지 같은 꼴을 다 겪네."
전무의 눈살이 꿈틀거린다.
"어이, 양아치."
"야, 양아치? 허, 어린 친구가……."
"양아치 소리 듣기 싫으면 양아치 짓거리는 하지 말아야지."
"……뭐?"
"햐, 세상 많이 좋아졌어. 달건이가 헬스장을 다 차리고."
생각해 보니 이맘때쯤이었다.
유흥 업소나 오락실, 주류 사업으로 만족하지 못한 조폭들이 여러 가지 사업에 손을 뻗기 시작한 시기가 말이다.
"쩐주를 고상한 놈으로 물었나 봐? 호텔 사업하시던 양반인가?"
아니면 이렇게 고급스럽게 꾸밀 수 없다.
"허허. 어린 친구들이라 그냥 말로 하려 했더니…… 지랄 염병 났네."
안경을 벗은 전무가 종혁에게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니 친구냐, 씨벌놈아?"
웬만한 사람이면 공포에 질릴 흉악한 인상과 말투.
그러나.
피식!
"똥내 나는 아가리 치우시고……."
손으로 코를 잡으며 고개를 돌린 종혁은 자신을 보는 사람들 중 누군가를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재빨리 자세를 잡으며 거수경례를 했다.
"간부후보생도 최종혁!"
"……?"
모두가 의아해하며 종혁이 인사하는 곳을 봤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이쪽을 보던, 안경 낀 오십대의 장년인이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하자 그들은 더 의아해했다.
종혁은 재빨리 말했다.
"차기 학장님이시다."
학장. 치안정감이다.
"헉! 간부후보생도 이은미!"
"성칠현!"
동기들도 다급히 거수경례했다.
최기룡이 입맛을 다시며 다가왔다.
"크. 역시 우리 최씨. 관찰력이 남달라!"
"여기서 운동하시는지 몰랐습니다."
종혁은 이 놀라운 우연에 혀를 내둘렀다.
최기룡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겠지.’
겨우 생도가 경찰 요직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는 기회주의적이고 정치적인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꽤 됐네. 여기 전 사장이 아는 지인이거든."
오늘은 비번이라서 일찍 온 거다.
"아, 그러십니까? 몰랐습니다."
"두 달 전에 다른 사람에 넘기고 귀농했어. 그게……."
이자들인 것 같았다.
가격이 좀 올랐지만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게 바꿔서 계속 이용했는데, 이젠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인가?"
최기룡이 슬그머니 지퍼를 올리는 전무를 봤다.
종혁도 전무를 삐딱하게 보며 입을 열었다.
"소비자의 권리로 환불을 하려는데 작은 마찰이 있었습니다."
"내가 본 건 마찰 정도가 아닌 것 같던데……."
"예. 협박을 하기에 신고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협박 하나로?"
최기룡의 눈빛이 마치 평가를 하듯 매섭게 빛난다.
"아닙니다. 이 사람, 조직 생활을 한 것 같습니다. 문신이 크게 있고 그걸로 협박을 했습니다. 그 모습이 제법 능숙했기에 다른 피해자가 없는지도 알아봐야 합니다."
"호."
정답이다.
최기룡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 무슨……!"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조폭이라면 가중처벌이다.
"이 사람들이 생사람 잡네! 너희가 뭔데 그러는데?! 어?!"
"경찰."
"……예?"
"왜? 배지 보여 드려?"
사나운 최기룡의 눈빛에 전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코웃음 쳤다.
"그리고……."
"그리고?"
"음. 아닙니다. 이건 아직 정황이기에 확실해지면 말하겠습니다."
최기룡의 눈이 다시 빛났다.
아무리 상사라지만, 확실하지 않은 건 말하지 않는다.
경찰로서의 기본 덕목이다.
최기룡은 슬쩍 문제를 던졌다.
"자네가 조사하려고?"
이는 시험이다.
종혁이 천지 분간을 못 하고 날뛰는 망아지인지, 아니면 냉철한 이성을 탑재한 인재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왜?"
"전 아직 경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외의 말.
동기들이 놀란 눈으로 종혁을 보았다.
하지만.
"으하핫! 그렇지! 자넨 아직 경찰이 아니지!"
종혁은 이번에도 정답을 말했다.
"그렇습니다."
최기룡은 덤덤한 표정의 종혁을 재밌다는 듯 보았다.
‘이거 재밌는 놈일세?’
정의감을 키워 가고 취하는 이 시기에 선을 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실제로 벌써부터 경찰이 된 느낌에 경찰처럼 행동해서 퇴교당하는 생도가 매해 꾸준히 있을 정도고, 또 여러 사건을 해결한 경험이 있는 종혁이기에 그 자제력이 크게 다가온다.
2년 전부터 전국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특수범죄수사과에 정보를 제공한다는 헛소문이 있을 만큼 현직 형사들과 밀접하기에 더욱더.
‘지켜볼 가치가 있겠어.’
그가 만들려는 경찰엔 이런 영리한 인재가 필요하다.
종혁이 해결한 사건들을 보면, 들이박을 때는 또 들이박는다. 그래서 더 지켜볼 가치가 있었다.
"도와줄까?"
"괜찮습니다. 이런 일에 차장님께서 수고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 알았어. 그러면 새 학기에 보지."
"예!"
종혁은 다시 거수경례를 했고, 인사를 받은 최기룡은 탈의실로 향했다.
종혁은 어리벙벙한 동기들을 보았다.
"얘들아."
"응? 왜?"
"관장실과…… 아니, 사무실은 다 틀어막아. 증거인멸 못하게."
"……?!"
순간 동기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오케이!"
"크- 드디어 경찰다운 일을 하는구먼. 역시 종혁이가 근처에 있어야 한다니까! 가자!"
동기들이 뛰어가자 전무가 펄쩍 뛰었다.
"무, 무슨! 니들이 뭔 자격으로 막아! 이, 이거 영업 방해야!"
"어, 아니야. 이 상황에서는 성립 안 돼."
용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정황이 포착된다면 누가 막아도 영업 방해가 성립 안 된다.
혹여 성립된다고 해도 자신들의 경찰대 생활에 털끝만큼도 지장이 없다.
"그러니 경찰 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어."
철렁.
순간 전무의 눈앞이 아득해졌다.
‘여, 여기에 돈이 얼마가 들어갔는데!’
그것도 그 본인의 돈이 아니다.
"이런 씨발! 비켜-!"
"아. 쟤들 몸에 손끝 하나라도 댔다간 폭행죄 추가다."
움찔!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경찰도 아니라면서요."
종혁은 피해자처럼 구는 그를 보며 코웃음 쳤다.
"그러게 환불해 달랄 때 환불해 줬어야지."
그러면 이런 상황까지 안 왔다.
자업자득이었다.
종혁은 신고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 * *
"어떻게 됐어?"
결과가 나온 날, 동기들이 눈을 빛내자 종혁은 혀를 찼다.
경찰이 조사한 결과 종혁과 비슷한 사례들이 많았고, 결국 영업정지 15일과 벌금형을 받게 됐다.
협박이 피해자와 합의를 보는 걸로 끝났기 때문이다.
"뭐?! 겨우?!"
"이런 씨! 누가 봐준 거 아니야?"
"설마 그러려고."
"와, 나라 꼴 잘 돌아간다. 조폭인 게 뻔히 보였는데!"
‘뻔히 보이는 게 아니라 맞아.’ 김종두 과장에게 알아본 결과 조폭의 자금줄이 맞았다.
조폭과 일반인이 자금을 합작하여 만든 센터.
일반인이 얽혀 있기에 경찰도 건드리기 힘든데, 이는 조폭들이 흔희 쓰는 수법이다.
"종혁아. 이대로 둘 거야?!"
종혁은 펄쩍펄쩍 뛰는 동기들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럴 리가.’
경찰 간부후보생도라고 밝혔음에도 영업정지 같은 시정 명령만 나왔다.
구린 냄새가 났다.
‘차장님도 아는 사건이라고 밝힐 걸 그랬나?’
그러면 조금 더 명확하게 밝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늦었다.
이건 종혁 본인의 실책이 맞았다.
‘끝까지 챙겨야 했어.’
그러니.
"종혁아!"
"이미 판결이 난 상황이니 어쩔 수 없어. 일사부재리 알지?"
"……씨앙!"
땅을 찬 동기들이 운동하러 흩어지자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나예요, 권 이사. 우리 헬스장 하나 차립시다."
-예?
"위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