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0화>
24. 수작
겨울도 마지막이란 걸 아는지 마지막 발악을 하는 3월 초.
방학이 됐다.
한상원의 적극적인 협조에 종혁의 조는 기말고사에서 A+를 받으며 기분 좋게 방학을 시작할 수 있었다.
1년 동안 고생한 생도들은 모두 쉬기 바빴지만, 종혁은 아니었다.
방학 때가 더 바빴다.
미국의 닷컴 버블이 본격적인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분당에 있는 정수찬이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종혁은 방학을 하자마자 바로 분당으로 향했다.
"이겁니까?"
누가 봐도 실험실이라 말할 수 있는 작은 창고 같은 공간.
마치 다방에서나 볼 법한 육각 성냥갑처럼 투박하고 주먹만큼 큰 육각형 기기가 놓여 있다.
렌즈가 영롱했다.
"삼전에서 메모리를…… 예, 이겁니다."
전문용어를 설명해 봐야 알아듣지 못할 게 뻔했기에 정수찬은 생략했다.
"화질은요?"
"직접 확인해 보시죠."
블랙박스와 연결된 컴퓨터에 화면이 뜬다.
‘오? 이 정도면 240 정도는 되겠는데?’
5미터 거리의 번호판을 식별할 수 있다.
이 정도면 1년을 기다린 보람이 있다.
하지만.
"음. 미안합니다."
"뭐가요?"
"메모리 용량 문제로 상시 녹화가 안 됩니다."
"아……."
반쯤 성공.
종혁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뭐, 메모리 문제라니까.’
이건 기술력의 문제이다.
종혁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신 충격감지 센서를 장착해 충격이 발생했을 시 자동으로 켜지도록 제작했습니다."
"……예?"
종혁은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 귀를 후볐다.
"뭘 달아요?"
"충격감지 센서입니다."
"……귀가 멀쩡하구나."
종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게 더 대단한 거 아닙니까?!"
정수찬은 그제야 짓궂게 웃었다.
"충격을 받는 그 찰나에 켜진다면 더 놀라시겠네요. 평소엔 절전 모드입니다."
종혁은 ‘하 참……’ 하며 어이없어 했다.
그러고는 정수찬의 손을 꼭 잡았다.
"그동안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종혁 씨가 믿고 기다려 주신 덕분입니다."
렌즈부터 센서 등 이 안에 들어간 기술들을 확보하고 설계하기 위해 지난 1년간 하루 2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건 공치사일 뿐.
완성된 작품을 보고 너무도 기뻐하는 종혁의 모습이 그동안 쌓인 모든 피로를 씻어 내렸다.
"그래서 크기가 이렇게 컸던 거군요."
"프로토 타입이라서 그렇습니다. 2년 안까지 여성 손바닥 크기로 줄이는 게 목표입니다."
"디자이너도 섭외해야겠네요. 여성도 욕심낼 수 있도록 심플하고 귀엽게."
"그건 다른 팀에서 할 일입니다. 저희는 개발만 하면 되죠."
"그 말 정말 믿음직스럽네요."
빛이 난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후후후."
"단가는 얼마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한화로 28만 원? 이것도 십만 대 기준입니다."
"……비싸네요."
미래 고가형 블랙박스야 이보다 비싼 게 많지만, 2001년 이 시기에 28만 원이면 엄청 비싸다고 봐야 했다.
‘이러면 나가린데…….’
비싸도 너무 비싸다.
아무리 좋아도 이렇게 비싸서는 수요가 적다.
이걸 알기에 말을 하는 정수찬과 수석 기술자의 표정이 어두운 거다.
‘이래서는 현오성 상무와 딜을 하려고 해도…… 흐음.’
만약 지금 왕자의 난이 벌어지고 있다면 어떻게든 딜을 할 수 있겠지만, 왕자의 난은 2000년에 끝났다.
단단히 준비한 박태규가 끼어들며 큰 소득을 올렸지만, 결론은 회귀 전의 역사대로였다.
더 분탕을 치려고 해도 현주영 왕회장이 대현그룹을 물려받을 이를 정해 버리니 그 이상 덤빌 수가 없었다.
당시엔 대현이란 적을 만들 시기가 아니었다.
승자는 5남 현몽헌. 그가 대현그룹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훗날의 진짜 승자는 대현 자동차를 들고 계열 분리를 한 현몽구 회장이다.
그리고 현오성 상무는 그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그 순간 종혁의 머리에 뭔가 스쳐 지나갔다.
‘아! 이거 잘하면?’
생각해 보면 아직 현오성 상무에겐 경쟁자가 있다.
세 명의 누나.
왕자의 난에 치를 떤 현몽구 회장이 딸들에게 각기 회사 하나씩을 쥐여 주며 더 이상 욕심내지 말라 못을 박았지만, 그건 어찌 될지 모를 일이다.
그건 대현자동차의 왕자, 아니 왕세자가 된 현오성 상무도 알고 있을 것이다.
누나들의 욕심이 대단하다는 걸.
그건 현몽구 회장이 일찍이 대현 자동차의 회장이 됐을 때 드러난 일이다.
1999년 1차 왕자의 난 이후 현오성이 앉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대현가의 독사들이 달려들었는데, 그중 현오성의 누나들도 있었다.
즉, 그에겐 아직 실적이 필요했다.
대현 자동차를 물려받을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해야 했으니까.
"내년 중반까지 목표 크기로 줄일 수 있겠습니까?"
"왜 그러시는지……."
"줄이기만 하면 활로가 있을 듯합니다."
"예?"
‘한상원 사건 때 CCTV 필요성을 언급해 뒀지.’ 아직도 국민들의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그래도 점차 거리에 CCTV가 설치되는 중이다.
작으면서도 예쁘게 생긴 감시 장치.
교통사고 증거로도 쓸 감시 장치.
그게 다른 자동차 브랜드들과 차이점을 만들 것이다.
충분히 어필할 메리트가 있을 듯했다.
‘만약 성사만 된다면 백만 대든, 천만 대든 장착할 수 있겠지.’
거부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블랙박스는 수요가 있을 수밖에 없는 물품이었다. 미래엔 장착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필수품.
"부탁드리겠습니다. 메모리 용량이 부족하다면 언제든 덮어 쓰거나 삭제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리고 종혁은 상시 녹화 상태를 유지하면서 화질은 차종, 번호판만 확인할 정도면 된다고 말했다.
"음."
"충격감지 센서는 고급형 라인으로 바꾸는 겁니다. 충격을 받는 순간 화질이 선명해지는 거죠."
"……호. 그거 재밌는 말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수찬은 어렵게 확보한 충격감지 센서가 사장되지 않을 것 같아서 기뻤다.
"아, 그리고 화질을 더 높인 CCTV를 만들 수 있을까요? 지금 화질보다 두 배 선명한 정도로?"
"그거야 쉽습니다. 메모리 문제로 화질을 낮춘 것뿐이니까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기술력이다.
그의 노고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하하. 아닙니다."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종혁은 그러며 핸드폰을 들었다.
"접니다, 권 이사님. 분당 블랙박스팀에 보너스 최대 천 퍼센트 지급 부탁드립니다."
-네. 알았어요, 보스.
종혁은 눈을 부릅뜬 정수찬과 수석 기술자를 보며 씩 웃었다.
"제가 드릴 선물이 이것뿐이네요."
보너스 천 퍼센트.
1년 연봉.
그들은 물 밖으로 나온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 * *
부우웅!
종혁이 모는 승합차가 지방 도시로 향한다.
-종혁아.
차량 핸즈프리에서 애달픈 부름이 울린다.
"안 해요. 안 합니다. 저 좀 쉴게요, 감독님."
-그래도 아시안게임은 준비해야지 않겠니?
"그거 내년입니다."
내년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다.
한국인에게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아시안게임이 된다.
그렇다고 해도 참가할 테지만 말이다.
-……네 도움을 기다리는 애들이 많다, 종혁아.
"아, 좀! 이젠 국가대표 감독도 아니면서!"
올림픽 유도 국가대표팀도 성공리에 이끈 신성일 감독은 감독직에서 물러나 유도협회 기술 고문이라는 자리를 맡게 됐다.
종혁이 생각한 대로 말이다.
종혁은 그가 협회장이 될 때까지 지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쉬고도 싶었다.
-얀마! 너 진짜 그러는 거 아니다! 내가 널 어? 쥐면 날아갈까 불면 터질까 어?
"반대예요."
-아무튼! 좀 와! 믿을 사람이 너밖에 없어!
"형들은요? 동익이 형도 있잖아요."
동일고 주장이자, 현재는 체대 4학년이 되는 주장 설동익.
유도 국가대표팀 부주장이다.
-…….
종혁은 싱긋 웃었다.
"끊습니다."
-야! 야!
타악!
"킥킥."
폴더가 거칠게 닫히자 승합차 뒷좌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서울 가출 청소년 1호 쉼터의 1호 입주 아이들이다.
현석이도 있다.
종혁은 보조석에 구겨 탄 현석과 한선호의 뒤통수를 후렸다.
빡! 빡!
"아, 형!"
"행님!"
"한 번만 더 웃어 봐라, 확 그냥."
"에이."
종혁은 툴툴거리는 둘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데 너흰 공부 안 하냐? 현석이는 경찰대, 선호 넌 미나토대 컴공과 지원한다며?"
종혁을 따라 동일고에 진학한 것도 모자라 유도부까지 들어간 현석은 경찰대까지 따라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컴퓨터를 좋아하는 선호는 능력은 빼어나지만, 시험 성적이 부족해서 미나토 대학으로 유학을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행님 말처럼 방학에는 쉬어야 카는 거 아닙니까!"
"맞아요, 형!"
종혁의 눈이 짜게 식었다.
"너희 내일 모레가 개학이다."
오늘은 3월 1일 삼일절.
모레면 이들이 개학하는 3월 3일이다.
"이틀 십만 원! 용돈으로 최고 아인교! 그것도 모릅니꺼? 하긴 부르조아 된 양반이 뭘 알겠노."
빠아악!
"……아씨! 행님! 대굴빡-!"
"넌 사투리나 똑바로 써. 아주 아버님이랑 똑같네, 진짜."
"와 갑자기 욕을 하고 그랍니꺼?"
현석이 선호의 옆구리를 찔렀다.
"뭐하노, 선호 행님. 닌 말 안 하나?"
"나도 맞으라고?"
"이 배신자가!"
종혁은 아옹다옹 다투는 둘을 무시하며 광주광역시로 향했다.
* * *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도시 첫 번째, 두 번째 쉼터는 광주광역시와 부산광역시로 결정되었고, 며칠 전 첫 삽을 떴다.
1호 쉼터로 인해 구원을 받았다 생각한 아이들은 이렇게 먼 곳이라도 달려가 일을 돕기를 자청했다.
2호, 3호…… 7호까지 모두 이들의 손때가 묻었다.
서울 경기 수도권 쉼터에서 보호받는 아이들도 소매 걷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와, 여기도 크네."
쉼터가 지어지는 곳은 충장동과 동명동, 계림동이란 곳의 경계였다. 원래는 학군이 좋은 곳에 짓고 싶었는데, 그랬다간 차별받을 게 뻔했기에 그 다음가는 학군 근처에 건물을 세우는 거다.
충장동이 번화가였기에 이쪽으로 선정됐다.
다만 높은 건물이 없어서 처음부터 세우는 중이었다.
‘학원가도 근처에 있고.’
"어? 이사장님이시다."
"뭐? 어디? 억! 이사장님-!"
"흘흘. 내 개새끼들 왔는가?"
오리털 점퍼를 입은 권회수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아이들은 떨떠름해졌다.
귀여워서 하는 말이란 걸 알지만, 욕 같아서 그랬다.
"오셨는가?"
"잘 계셨어요?"
"어떤가. 이 정도면 크지?"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 공무원 학원가도 있고, 경찰서도 있네. 제법 이름 있는 여고에 남고도 가깝고, 도서관도 가깝지."
"심심할 땐 저기 시내란 곳에서 놀 수도 있고요?"
"흘흘흘."
"역시."
뭘 하더라도 허투루 하는 게 없는 양반이다.
"그런데 번화가라면 달건이도 있을 것 같은데……."
"흘흘."
‘있구먼.’
"쓸어버릴까요?"
광주광역시에 아는 사람은 없지만, 광수대처럼 전국이 수사 영역인 특수범죄수사과의 김종두 과장이 있다.
종혁의 눈빛이 서늘해지자 권회수의 눈빛도 싸늘해졌다.
"무얼. 잡초보다 쓸 곳도 없는 놈들 괜히 잘라 냈다가는 더 골치 아파져. 일반인에게 접근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니 놔두시게."
"쩝. 운 좋네."
"그 싸움닭 성질 좀 줄이고."
"하하."
고개를 저은 권회수는 아이들을 찾았다.
그들은 이미 공사장으로 가서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고놈들. 흘흘흘. 음, 그래. 자네 손님들 오셨구먼."
부우웅. 끽!
권회수가 돌아서고, 그들의 바로 앞에 멈춘 차에서 나탈리아가 내린다.
"최!"
종혁은 그녀와 볼 뽀뽀로 인사를 나눴다.
"어떻습니까? 러시아 자금이 들어간 첫 번째 쉼터입니다."
나탈리아는 종혁과의 원활한 만남을 위해 러시아 정부 이름으로 가출 청소년 쉼터, 행복의 쉼터 재단을 지원하고 있었다.
표면적 이유는 러시아엔 편부모 가정이 많기에, 행복의 쉼터 케어시스템을 배워 러시아에 적용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지원이 들어오는 것이기에 한국 정부는 적극 찬성했다.
"이곳도 크게 짓는군요. 이곳에서 보호받는 청소년들은 정말 행복하겠어요."
"진짜 행복은 가족과 함께 부족함 없이 단란하게 사는 거죠."
"그건 맞는 말이에요. 우리 러시아 청소년도 그래야 할 텐데……."
"러시아 남자들이 조금만 덜 와일드하다면 그렇게 될 겁니다."
평균 수명이 짧기로 유명한 러시아 남자.
"아하하하하핫!"
수심이 어리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그러다.
딱!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종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귀를 만졌다.
순간 찌잉 이명이 들렸다.
"앙큼한 참새들이 있어서요."
재밍을 했다는 뜻이다.
종혁의 표정이 굳었다 펴졌다.
"닷컴. 제 예상처럼 되어 가고 있죠?"
나탈리아가 인형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나스닥 80퍼센트 선 붕괴. 이젠 믿을 수 있어요."
‘어떻게 이런 걸 예측할 수 있을까.’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녀는 낯빛을 굳혔다.
"그나저나 올림픽이 끝난 지 벌써 반년이네요."
"그렇죠."
안 그래도 내려오며 신성일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기에 조금 더 추억에 젖어 든다.
"이 정도면 올림픽 영웅에 관한 이목도 사라질 때죠."
"음?"
뭔가 의미심장한 말이다.
"일본에서 일을 벌이고 있어요. 정확히는 일본 유도협회가."
종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래요?"
종혁 본인에 관한 일이 아니라면 나탈리아가 굳이 말할 리 없다.
‘하, 새끼들. 고작 몇 번이나 당했다고.’
방콕 아시안게임, 국제 대회 몇 개, 이번 올림픽뿐이다.
"자세한 정보는 더 확인한 후 알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뭘요. 친구라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죠."
뜨끔.
종혁은 나탈리아의 은근한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설계한 걸 박태규가 몇 번 더 꼬았던 일이 조금 찔렸기 때문이다.
"후후. 아, 이건 상관없는 일이지만 중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요."
"중동?"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관심이 갔다.
"알 카에다라는 조직이 있어요.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인물이 수장으로 있는 이슬람 수니파의 과격 테러단체죠."
종혁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오사마 빈 라덴! 911 테러!’
국제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걸 실시간으로 시청한 종혁으로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악몽이다.
"어떻게 보면 미국이 키운 놈들인데……."
‘아, 그래서 알게 된 건가.’ 미국과 러시아.
악연이다. 앙숙이다.
"아무래도 대규모 테러를 준비하는 것 같아요."
‘미국이 대상입니다!’ 외치고 싶지만 외칠 수가 없다.
"흠. 유전을 차지하려는 걸까요?"
나탈리아는 웃었다.
그녀는 본인이 하고자 하는 말을 종혁이 알아들은 것 같아서 기뻤다.
국제 유가.
테러단체가 유전을 점거하는 순간 국제 유가가 흔들린다.
종혁은 그런 그녀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니, 잠긴 척했다.
그러다 몇 분이 지난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의문이 드네요."
"뭐가요?"
"어찌어찌 유전을 차지한다고 해도 그들이 그걸 오랫동안 지킬 수 있을까요? 단체 대 국가의 싸움인데? 오펙이 개입할 수도 있잖아요."
석유수출기국 OPEC.
아랍권 석유 국가들이 모여 만든 단체이다.
"미국이나 러시아의 손이 닿은 곳이면 두 국가가 개입하겠죠."
바보가 아니라면 굳이 제 살 까먹기를 할 수 없다.
자칫 기름을 빼돌리다 조직이 와해될 수도 있다.
"흠. 저희도 그런 결과를 도출하긴 했어요. 하지만……."
"저도 수니파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과격파라죠?"
"수니, 시아. 딱히 의미가 없어요. 그래도 좀 더 과격하겠네요."
"흠. 그럼 이런 테러단체들의 존재 의미는 뭐죠?"
"성전이죠. 세계를 무슬림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나탈리아는 미간을 좁혔다.
갑자기 뭔가 떠오를 듯 머릿속이 간질거렸다.
"흠. 그러면 그들은 전사란 소리네요. 자신들이 있음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알라란 신을 알리고자 하는. 아, 전사의 탈을 쓴 광신도가 맞는 단어겠네요."
"……그렇죠."
"그러기 위해선 강렬한 임팩트, 성공을 해야겠군요."
"맞아요. 그래서 유전 점거 및 테러를……."
"그런데 정작 나는 알 카에다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요. 전 세계의 일반인들은 더더욱 모르겠죠. 그런데 유전 하나가 날아간다고 해서 그들이 알까요?"
유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어? 잠깐. 잠깐만요!"
그녀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최악의 생각에 다급히 종혁의 입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늦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이 움직임이 강대국을 대상으로 한 테러라면 어떨까요? 그 정도면 전 세계인에게 각인되지 않을까요? 그들이 정말 과격 테러단체라면, 신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미친 광신도라면."
덜컥!
나탈리아는 경악에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