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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7화 (77/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7화>

    23. 쁘락지

    구름이 달을 가리고, 가로등 불빛마저 꺼진 어두운 골목.

    그림자만 어스름히 비추는 담벼락 위로 하나의 손이 내려앉고, 뒤이어 몸이 쑥 올라온다.

    담벼락에 배를 걸친 사내는 주위를 휘휙 둘러보다 이내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안쪽을 향해 귀를 기울이다 씩 웃는다.

    드디어 들어갈 시간이다.

    사내는 상체를 젖히며 반동을 주었다.

    그 순간.

    "원숭아, 뭐 하니?"

    깜짝!

    어스름한 형태만으로도 덩치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온다.

    "씨발!"

    기겁한 사내는 다급히 뛰어내리며 반대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헉! 헉!"

    원숭이라 불린 사내는 달리고 달렸다.

    하지만.

    "원숭아, 어디 가니! 같이 가자!"

    "거기 서 봐! 형이 맛있는 거 사 줄게!"

    한밤의 추격전이 동네 사람들을 깨우고, 결국 사내는 막다른 길에 다다른다.

    족히 3미터는 될 법한 담벼락.

    "……하아. 닝기미 진짜."

    서글픈 눈으로 꺼끌꺼끌한 붉은 벽돌을 쓸어내린 사내는 몸을 돌려 억울함을 토해 낸다.

    "진짜 나한테 왜 이러는데! 왜 나만 쫓는데-!"

    "그야 네가 살인을 저지를 놈이니까 그렇지."

    울컥!

    지난 1년 동안 벌써 세 번째 듣는 말이다.

    "안 한다고! 안 죽인다고! 나 사람 죽이는 그런 놈 아니라고-!"

    "응, 아냐. 빈집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사람 찌르고. 너 그럴 놈이야."

    "있는지 없는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턴다, 이 개새끼야-!"

    "그래. 나도 다 알아. 근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더라?"

    실제로 그런다.

    주거침입 및 절도 전과 5범 박상철.

    빈집털이범, 일명 원숭이.

    빈집만 골라 터는 데 도가 튼 박상철은 그때도 평소처럼 빈집을 털러 들어갔다가, 무슨 일인지 없어야 할 집주인과 마주친다.

    그에 당황해 집주인을 살해한 후 도주한다.

    이후 두 건의 살인을 더 저지른 그는 경찰의 집요한 추격 끝에 검거된다.

    이런 그는 회귀 전, 종혁의 위를 들어내게 만든 두 번째 원수였다.

    "이 씨바라-! 짭새도 아닌 새끼가-!"

    눈을 뒤집은 박상철은 품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죽고 싶어-?!"

    덩치 큰 사내, 종혁의 입이 사납게 찢어졌다.

    "칼 버려라. 병신 된다. 전처럼 팔 하나로 안 끝나."

    공기를 진동시키는 살의.

    찔끔.

    사타구니가 아릿해진 박상철의 두 눈이 폭풍처럼 흔들린다. 몇 달 전 잡혔을 때, 작업할 때 쓰던 드라이버를 꺼냈다가 팔이 분질러졌기 때문이다.

    그 처절했던 고통을 떠올린 박상철은 결국 팔을 늘어트렸다.

    "진짜 나한테 왜 이러는데요…… 당신 경찰 아니잖아요……."

    "말했잖아. 너 살인 저지를 놈이라고. 너 내가 찍었거든? 어디 다음에 출소해서 또 담 넘어 봐. 또 나 만나게 될 거다."

    다리가 절로 풀리는 경고였다.

    "아, 그리고 아직 경찰이 아닌 거지, 몇 년 후에도 경찰이 아닌 건 아니다? 그땐 경위야."

    "씨발."

    탱그랑.

    칼을 던진 박상철은 바닥에 엎드려 양팔을 뒤로 젖혔다.

    다가온 종혁은 그 양팔에 케이블 타이를 묵고는 최신형 폴더폰을 들었다.

    -응. 종혁아. 무슨 일이야?

    "상철이 잡았어요."

    -……어, 그러네. 원숭이 새끼 출소할 날짜 지났네. 어떻게 할래? 그쪽 관할서에 넘길래?

    "한 달 만에 휴가 나온 건데 삼촌 봬야죠. 특수로 갈게요."

    전원 기숙사제인 경찰대학에서 1학년은 한 달에 한 번 1박 2일 주말 휴가를 신청할 수 있다.

    2학년부터는 달에 두 번이다.

    -왜? 한잔 꺾게?

    "이제 법적으로 성인 아닙니까."

    -으하하하하! 그래, 얼른 와!

    "옙!"

    탁!

    볼로 폴더를 밀어 전화를 끊은 종혁은 박상철을 툭 쳤다.

    "일어나. 본청 가야 돼."

    본청이란 말에 박상철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좀도둑 따위가 본청을 구경하게 생겼다.

    "하,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응. 뭔데?"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대체 나를 어떻게 찾는 겁니까? 프로파이? 뭐 그거예요?"

    교도소에서 들은 적 있다.

    목소리만 들어도 나이부터 키까지 범죄자 신상이 쫙 나오는 그런 수사 기법이 있다고.

    이제 범죄자는 싹 다 죽었다고.

    "프로파일링? 아닌데?"

    "그럼요?"

    "흥신소. 너 전담 마크 중이야.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고."

    종혁은 박상철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치기 전에 예방하기로 했다. 제대로 된 복수, 영원히 교도소에 넣기 위해 애먼 사람을 죽일 순 없었다.

    "……하아."

    ‘그래, 관두자, 관둬. 이번에 들어가면 기술이나 배우자.’ 이 지독한 새끼랑 계속 얽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용접이든 뭐든 기술 자격증을 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타."

    ‘씨벌. 또 차 바꿨네.’ 저번에 잡혔을 땐 독일 V사였는데, 이번엔 최고급 세단인 B사다.

    ‘개새끼.’

    빠악!

    "왜 또!"

    "속으로도 욕하지 마, 새끼야."

    ‘씨발. 씨발.’ 툴툴거리던 박상철은 차창 밖을 보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눈이다."

    종혁도 앞 창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흐릿한 밤하늘, 새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었다.

    ‘아, 씨발. 빵에서 자다가 입 돌아가겠네.’

    ‘흠. 대리를 불러야 하나.’

    2001년 1월의 어느 날, 같은 공간에 있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다.

    *  *  *

    경 시드니올림픽 금메달 획득 축

    유도 무제한 체급 최종혁

    특수범죄수사과를 들어가면 가장 정면에 보이는 문구다.

    "저걸 아직까지 안 뗐네."

    시드니올림픽이 열린 건 작년인 2000년 9월이다.

    "어휴. 저걸 어떻게 떼냐? 무려 경찰대 소속으로 나가서 딴 건데! 청장님 특별 지시야."

    경찰 간부후보생이 유명 체대 실업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게다가 유도 국가대표 주장 및 수석 코치.

    경찰대학 1학년 학년 수석.

    자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별 지시였구나……."

    그동안 계속 말해도 왜 안 뗐나 싶었다.

    "이런 거 안 해도 경찰 할 건데."

    피식 웃은 김종두 과장이 박상철을 봤다.

    "오랜만이다? 살이 좀 빠졌는데?"

    "안녕하십니까, 반장님. 아니, 과장님."

    "뭘로 왔어?"

    "가택침입 미수 및 절도 미수요. 이번까지 합하면 8범입니다."

    그중 오늘까지 합해서 세 번은 종혁에게 잡혔다.

    "잘 아네. 어떻게 하는지도 알지?"

    "예……."

    한숨을 푹 내쉰 박상철은 가까이 있는 형사 앞에 앉았다.

    "이름. 박상철이요. 나이. 31살입니다. 사는 곳은……."

    "천천히 말해. 나 독수리야."

    "……어후우."

    그걸 보며 낄낄거린 김종두 과장은 종혁을 툭 쳤다.

    "나가자."

    "일 많은 거 아니에요?"

    이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 있다면, 보통 사건이 아니라는 거다.

    "집중 단속 기간이라 눈치 보고 있었어."

    "아."

    집중 단속 기간이라면 이해가 갔다.

    단속에 동원되지 않더라도 같은 경찰이라는 의리로 자리를 지켜야 하는 기간.

    미래에는 사라지는 문화다.

    종혁은 오늘도 고생하는 형사들을 애잔하게 응시했다.

    "삼겹살! 곱창! 통닭! 셋 중 하나! 소고기집은 문 닫았습니다!"

    "……삼겹살-!"

    "오케이, 껍데기까지. 다들 적당히 마무리하고 이모네로 오세요!"

    "크아! 역시 우리 종혁이!"

    "좀 있다 보자, 종혁아!"

    종혁은 김종두 과장에게 가시죠, 하며 고개를 까딱였고, 김종두 과장은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박상철은 부러움에 몸부림쳤다.

    *  *  *

    오늘따라 유난히 노란 택시들과 승용차들이 앞다투어 빨리 가자 외치는 8시의 뉴욕.

    한 손엔 커피, 한 손엔 베이글을 든, 코트를 입은 사내가 밤새 내린 눈에 얼어 버린 거리를 바삐 걷는다.

    누가 봐도 평범한 회사원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의 낯빛은 어둡다.

    AT모건이라 적힌 거대한 빌딩 안으로 들어간 그는 본인의 사무실로 향한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야, 존."

    먼저와 커피를 마시며 자료를 확인하던 사람들이 그를 반긴다.

    그들이 얼굴엔 단 한 점의 그늘이 없다.

    하늘을 모르고 치솟는 닷컴의 그래프 때문이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빨간색.

    미국 역사상 최고의 활황에 매일 샴페인을 터트린다.

    ‘바보들.’

    마주 인사하며 자리에 앉은 그는 컴퓨터를 만졌다.

    "……투자세가 또 떨어졌어."

    1998년부터 미국 전역에 열풍을 일으킨 닷컴 투자가 주춤하고 있다. 나날이 고공행진을 하던 상승세에 제동이 걸리고, 기술력이 떨어지는 소기업들 중 몇 곳은 이미 파산했다.

    쭉정이가 레이스에서 탈락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왜인지 불길하다.

    "닷컴의 덩치가 너무 커졌어. 마지막 조정에 들어가는 거면 상관없지만……."

    아니라면.

    이게 파멸의 전조라면.

    ‘지금이라도 빼야 되나?’

    타다닥!

    "음? KP컴퍼니가 자금을 회수하고 있네. 얘네가 왜?"

    KP컴퍼니는 월가에서 제법 유명하다.

    1999년 초, 월가에 데뷔해 불패 닷컴에서도 엄청난 수익을 올린 회사. 자본금이 무려 1억 달러에서 시작한 기업.

    닷컴 열풍에 한발 늦게 편승했음에도 어찌나 잘 찍는지, 어떤 회사의 주식을 매입했다 하면 기본으로 다섯 배 수익을 올린 괴물 같은 곳이다.

    이미 월가뿐만 아니라 일본, 홍콩 등에서도 주목하는 회사이다.

    타닥!

    "뭐야. 얘네 왜 일본과 홍콩 쪽 자금까지 회수해?"

    영국까지 자금을 회수한다.

    불길함이 더욱 커진다.

    오싹!

    "이놈들 설마? 닷컴이 무너질 거라 예측하는 건가? 에, 에이, 설마."

    균열이 좀 보이긴 하지만, 닷컴은 불패다.

    그러면서도 그의 손은 움직이고 있다.

    타다다다닥!

    존은 모니터에 나타난 뭔가를 보곤 벌떡 일어났다.

    쿠당탕!

    의자가 구르는 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무슨 일이야, 존?"

    "아침부터 귀신이라도 봤어, 조니?"

    "하하하!"

    사무실이 웃음바다가 됐지만, 존에겐 들리지 않았다.

    그는 다급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리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실론티 홀딩스, 맥심 컴퍼니, TOP 스타……."

    대략 30개 회사가 모두 KP컴퍼니와 똑같은 포지션이다.

    이들 모두 1999년도에 데뷔한 회사들인데, 자금이 천만 달러 이상인 회사들만 추려서 이 정도다.

    한국의 IMF를 한발 빨리 예견하고, 세계 증권가 전부가 패배한 러시아 모라토리엄에서 승리하고, 에콰도르 금융 위기, 이른바 삼바에서도 막대한 수익을 올린 한국의 권&박 홀딩스가 자금을 모두 회수한 뒤, 마치 바통을 이어받듯 우후죽순 생겨난 회사들.

    그는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상사를 만나야 했다.

    그는 휘청휘청 쓰러질 듯 사무실을 가로질렀다.

    *  *  *

    하얀 수염의 덩치 큰 육십대 노인.

    오늘따라 상쾌한 기분으로 출근했건만, 아침부터 쳐들어온 직원들의 말에 눈을 껌뻑인다.

    "……나스닥이 60퍼센트 하락하면 40배를 토해 내야 한다고?"

    단계적으로 20퍼센트에 10배, 40퍼센트에 20배다.

    "그래. 그런 상품을 발행한 기억이 있는 것 같아."

    당시 열풍에 미쳐 있을 때라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그런 파생 상품을 만든 기억이 있다.

    똥손인 도박 중독자들과 의심종자들의 돈도 빨아먹기 위해.

    나스닥뿐만 아니라 AT모건의 주가까지 대상으로 상품을 만들었다.

    "저, 저희뿐만이 아닙니다. 월가 메이저, 영국, 일본, 홍콩 등 저희와 같은 상품을 발행한 메이저들 모두가 타깃입니다! 그 권&박도 하락에 포지션을 잡았습니다! 그것도 폭락에!"

    권&박 홀딩스는 노인도 이름을 들어 봤을 정도이다.

    1997년 혜성처럼 등장해 세계 증시를 다이나믹하게 흔든 회사.

    하지만 적당히 먹고 물러난 곳이라 신경을 끈 상태다.

    지금은 한국 닷컴에 투자를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전부 KP?"

    "아뇨. 하지만……."

    "KP가 얼만데?"

    "저희만 2천만 달러입니다."

    총합 1억 달러어치 보험 상품 중 약 20퍼센트를 그들이 가져갔다. 나머지 상품도 다른 회사들이 싹 다 긁어 갔다.

    "8억 달러?"

    "예! 다른 회사들까지 모두 터지면 40억 달러입니다!"

    실론티 홀딩스, 맥심 컴퍼니, TOP 스타 등 1999년에 생긴 회사들이 남은 80퍼센트 중 60퍼센트를 쓸어 갔다.

    나머지는 러시아 쪽 자금이다.

    게다가 효력 발생이 죄다 2001년 후반기에 집중되어 있다.

    "저희 AT모건에서만!"

    "그래서?"

    "예?"

    "뭐가 문젠데? 주가가 하락하지만 않으면 될 거 아냐. 모건이 그렇게 허술한 회사였던가? 나스닥이 무너질 것 같아?"

    "하, 하지만 닷컴이 요새……!"

    "이봐, 존. 닷컴은 상당히 저평가됐던 종목이야."

    진흙 속에 묻혀 있던 다이아몬드.

    "내 생각엔 이제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있다 생각하는데?"

    그 말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란 소리다.

    노인뿐만 아니라 월가 전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KP입니다, 론!"

    현재 자금이 무려 15억 달러가 넘는다고 판단되는 회사.

    권&박 홀딩스처럼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회사다.

    "이봐, 존. 사람은 누구나 다 실수를 해."

    언제나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던 KP컴퍼니.

    하지만 그들은 알아야 했다.

    계속 공격 일변도면 그 칼은 곧 부러지고 만다는 것을.

    "권&박 홀딩스도 그걸 알고 물러났어. 아, 권&박 홀딩스는 얼마지?"

    "……5백만 달러입니다."

    "거봐. KP컴퍼니에는 2천만 달러 감사히 받겠다고 엽서라도 한 장 보내 줘."

    "삼촌!"

    텅!

    "입! 여긴 회사야!"

    노인은 존과 함께 온 중년인을 봤다.

    그는 필사적으로 못 들은 척하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나가."

    입술을 깨문 존과 중년인이 나가자 노인은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권&박도 아닌데, 무슨."

    총자본이 15억 달러라고 하지만, 그 정도 자본은 언제든 파도에 휩쓸리는 모래성처럼 사라지는 곳이 월가다.

    KP컴퍼니는 닷컴이 깨어날 시기에 생겨난 수천 개의 회사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는 신경을 끄며 서류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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