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4화 (74/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4화>

이 시기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대전 어린이 사건.

정확히는 ‘대전 어린이 난도질 소각 사건.’

7살 어린아이를 칼로 난도질한 것도 모자라, 신나를 부어 불태우기까지 한 끔찍한 사건이다.

상민이란 아이는 현장에서 즉사.

대전 모든 경찰들이 몇 달 동안 수사했지만, 이 사건의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영원히.

그러다 2013년, 이 사건이 한 TV프로그램에 의해 재조명되면서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가 소멸되었고, 그로 인해 공소시효가 만료되길 기다리며 도망 다니던 많은 살인범들을 검거할 수 있게 됐다.

즉, 김상민이란 아이가 죽어야 공소시효에 관한 법령이 소멸된다.

하지만…….

"이게 맞아."

공소시효 소멸?

당연히 중요하다.

그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고도 뻔뻔히 활개 치는 놈들이 사라지도록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구할 수 있는 생명을 구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

대전의 한 폐공사장 입구가 훤히 보이는 어느 빵집 앞.

종혁은 이를 갈며 노려봤다.

‘사건 발생 시각 추정 오후 2시 30분.’

애매한 시간이다.

그렇기에 목격자가 거의 없었던 사건이다.

‘검은색 얇은 항공 점퍼에 청바지,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한 손엔 쪼그라든 페트병이 들고 있었다.’

용의자로 추정되는 이의 인상착의이다. 그 외에 결혼 예물 반지 같은 큰 금반지를 끼고 있었다고 했다.

이 페트병은 현장에 버려져 있었는데 여기에서 신나가 검출되었다.

띠리링! 띠리링!

"예, 최종혁입니다."

-주장! 어디세요?! 감독님이 찾으시는데!

대회가 5시에 시작이다.

"대전에 왔는데, 성심당 빵은 먹어야지."

-빵!

"5시 전까지 갈 테니까 몸 풀고 있어…… 흡?!"

전화를 받으면서도 밖을 쳐다보던 종혁은 순간 비명이 튀어나오려는 입을 재빨리 막았다.

‘저 새끼다!’

검은색 얇은 항공 점퍼에 청바지,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사내.

한 손에 쪼그라든 페트병을 들고 있다. 액체가 담겨 있는 페트병.

회귀 전, 목격자 진술에 의해 밝혀진 용의자의 이동 동선과도 겹친다.

"끊는다!"

-주장! 난 피자빵!

종혁은 다급히 발을 뗐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어휴, 빵을 천오백 개나 주문하셨…… 많이 급한가 보네."

아르바이트생의 말을 무시하며 달린 종혁은 공사장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죽이며 동태를 살폈다.

저벅저벅.

거침없이 멀어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종혁은 숨과 발소리를 죽이며 뒤를 쫓았다.

그리고 아침에 먼저 와 봐 둔 자리에 숨었다.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가 훤히 보이지만, 정작 그쪽에선 보이지 않는 자리.

종혁은 언제든 튀어 나갈 준비를 하며 신경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 순간.

"김상민?"

묵직한 음성이 희미하게 울린다.

‘어? 뭐?’

종혁은 당황했다.

‘뭐야, 이거? 저 새끼가 김상민의 이름을 어떻게 알아?!’

분명 이 사건은 너무 처절했지만, 원한에 의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사이코패스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으로 판명됐다.

상민의 부모가 원한에 의한 살인이 아닐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설마 원한이라고?’

"네. 맞는데요? 아저씨는 누구세요?"

"아, 그래? 그럼 됐다."

"네?"

‘이런 씨발!’ 생각할 시간이 없다.

다급히 뛰쳐나간 종혁은 상민을 향해 칼을 쳐들고 있는 사내를 발견하곤 그대로 땅을 훑으며 걸리는 걸 던졌다.

순간 시간과 시계가 느려지며 종혁이 조준점을 잡을 여유를 주었다.

‘뒈져, 이 새끼야!’

슈와아! 빠아아악!

"큽!"

"오케이. 거기까지."

그렇게 말한 종혁은 돌 하나를 더 들며 사내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럴 때일수록 조급해하면 안 된다.

피해자에게 신경이 쏠리게 하면 안 된다.

"넌 뭐지?"

"그냥 지나가던 시민? 오줌 싸러 왔어."

"아, 그래."

‘뭐야, 이 새끼?’ 종혁은 느긋이 칼을 들며 자신을 향해 몸을 돌리는 사내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여유롭다.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다.

그리고.

‘눈빛이…….’

흥분이 단 한 점도 없다.

아니.

"귀찮게시리."

오싹!

종혁은 확신했다.

이 사건, 절대 우발적인 살인이 아니다.

‘이 자식 뭐지?’

"괜히 여길 들어온 네 불운을 탓해라."

사내는 종혁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왔다.

그렇게 3미터 앞까지 다가온 사내는 땅을 박차며 종혁의 배를 향해 칼을 찔러 넣었다.

그 모습에 상념을 지운 종혁은 느려진 시간 속에서 피식 웃었다.

‘하, 새끼!’

뭔가 있어 보였는데, 칼질이 어설프다.

초보처럼 양손으로 꼭 쥐며 달려든다.

허세. 지금까지 허세였다는 거다.

피식 웃으며 칼을 피하려 몸을 틀던 종혁은 헛숨을 삼켰다.

"흡?!"

쉭!

종혁은 다급히 물러섰다.

그리고 그 자리를 꿰뚫는 칼날과 그걸 잡은 한 손.

배를 찌르려던 칼이 뱀처럼 휘더니 목으로 찔러 왔다.

국정원이나 특수부대 출신의 조폭, 살인 청부업자에게서나 볼 수 있는 전문적인 칼잡이의 냄새.

"칫."

물러선 종혁은 반사적으로 자세를 낮췄다.

공격이 빗나갔는데도 당황하지 않는다.

‘이 새끼?!’

오싹!

다시 소름이 돋았다.

종혁은 이를 드러냈다.

"……야, 너 뭐냐?"

종혁은 긴장을 끌어올렸다.

*  *  *

"쯧."

일이 귀찮게 됐다.

삼십대 초반의 사내는 멀뚱멀뚱 쳐다보는 김상민을 일견하곤 종혁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반사 신경이 좋군.’

그간 필승의 살해 공식이 깨졌다.

배를 찌르는 척하다 목을 노리면 백이면 백 피하지 못하고 목이 꿰뚫렸는데, 종혁은 너무 쉽게 피했다.

‘게다가.’

왜인지 칼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어린데도.

이를 사납게 드러냈지만, 그 눈은 이쪽의 전신을 살핀다.

어려 보이지만 쉬운 상대가 아니다.

반복된 살인에 무뎌졌던 그의 감정이 깨어났다.

"혼자 오는 게 아니었어."

고작 7살 꼬마를 죽이면 되는 일이라 별생각 없이 혼자 나섰는데, 그러질 말았어야 했다.

움찔!

사내는 왜인지 갑자기 동요하는 종혁을 보며 칼을 늘어트렸다.

"모르는 아이를 위해서 죽을 생각인가."

"좆 까. 지금 간다면 보내 줄 거냐?"

그럴 리가.

종혁은 침묵하는 사내를 보며 피식 웃는다.

"칼 내려놔. 그러다 병신 된다."

대답 대신 뚜둑, 뚜둑 목을 좌우로 꺾은 사내는 다시 달려들며 칼을 내질렀다.

쉭!

종혁의 가슴을 노리던 칼날이 도중에 꺾이며 배를 노린다.

종혁은 물러서고 사내는 더 달라붙으며 옆구리를 연속으로 찍는다.

그 순간.

퍽!

두꺼운 팔뚝에 막히는 사내의 손목.

마치 기둥을 미는 것처럼 칼이 전진하지 못한다. 그러더니 종혁의 손바닥이 뱀처럼 뒤집혀 사내의 손목을 잡는다.

‘유도?’

왜 피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우득!

손목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걸렸어!’

허리 뒤춤으로 손을 돌린 사내는 걸리는 걸 그대로 뽑으며 종혁의 경동맥을 노렸다.

이것까지 피한 사람은 조직 내에서도 드물다.

‘됐…….’

터억! 콰드득!

허공에서 붙잡힌 손이 비명을 지른다.

"큭?!"

"야, 내가 병신 된 댔지."

경박한 말투와 달리 감정이 단 한 점도 담기지 않은 눈동자.

오싹!

이번엔 사내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종혁의 이마가 사내의 눈을 찍었다.

쩌억!

"큭!"

사내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마치 눈이 함몰되는 것 같은 고통.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칼 놔라."

쩍!

이마가 코를 찍는다.

"놓으라고 했다."

쩌억!

다시 찍는다.

"놔, 이 새끼야."

쩌어억!

광대를 부숴 버릴 듯 찍는다.

그럼에도 눈빛이 죽지 않는다.

"그래. 뒈져라."

타닥.

종혁은 칼을 잡은 사내의 양팔을 겨드랑이에 끼며 감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위로 들어 올렸다.

섬뜩!

사내는 다급히 땅을 박차며 양발로 종혁의 가슴을 찼다.

쿠당탕!

겨우 풀려났지만, 바닥을 뒹군 사내는 종혁을 찾았다.

그런 그가 본 건 자신의 목을 향해 달려오는 발등이었다.

사내는 그 궤적에 칼끝을 가져갔다.

이대로면 종혁의 발등이 칼에 꿰뚫린다.

하지만.

빠악!

"꺽!"

가슴뼈가 부러진 것 같은 고통.

도중에 궤도를 바꾼 발끝이 명치를 후려쳤다.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사내는 데굴데굴 구르며 물러섰다.

그러다 다급히 몸을 일으킨 사내는 본능적으로 상민을 찾았다.

어렵다.

힘들다.

이렇게 된 이상 임무라도 완성해야 했다.

그러나 상민은 어느새 종혁의 뒤에 있었다.

아니, 어느새 자리가 뒤바뀌었다.

종혁은 당황하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입술을 뒤틀었다.

‘내가 씨발, 그동안 먹은 칼밥이 얼만데.’

제 몸뚱이부터 들이미는 뽕쟁이의 칼질.

죽여야 우리가 산다는 조폭, 밀수꾼들의 칼질.

북파 공작원 출신 살인 청부업자의 칼질.

묻지마 살인, 연쇄살인, 등.

순경에서 시작해 경정까지 진급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부터 형법 21조 1항 정당방위 성립을 위해 흉기 투기를 경고합니다. 칼 버려!"

원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의 투기 명령.

‘버리지 마라.’

들어야 할 말이 있다.

"칼 버려!"

‘제발 버리지 마라.’ 왜 김상민을 죽이려 한 건지.

혼자 오는 게 아니었다는 말이 뭔지.

패거리가 있는 건지.

설마 그 조직인 건지.

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병신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마지막이다."

‘진짜 제발 버리지 마라.’ 순경 시절 배에 칼을 맞아 위를 3분의 2나 들어낸 이후, 종혁은 칼 든 놈들을 증오했다. 십대라도 칼을 들었다면 팔을 꺾어 버리길 주저하지 않았고 악질이면 불구로 만들었다.

그래서 저승사자라 불렸다.

"칼 버려!"

"……."

끝이다.

"이제부터 정당방위 성립이다, 개새끼야."

‘그래, 죽자.’ 눈을 뒤집은 종혁이 성큼성큼 다가갔다.

까득!

방금까지와 다른 기세다.

정말 죽여 버리겠다는 살의.

‘칼은…… 쓸 수 없나?’

양팔의 팔꿈치에 고통이 있다. 빨리 벗어난다 했는데 뼈에 금이 가고, 인대가 약간 늘어난 것 같다.

꾼이다. 그것도 같은 부류이다.

필요에 의해서라면 사람을 망가트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 동류.

‘조금 더 침착해야 했다.’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문 사내는 종혁을 향해 칼을 던졌다.

뿌드득.

팔꿈치가 격한 소리를 냈지만, 그는 참아 냈다.

덕분에 칼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허공을 가로질러 종혁의 심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느려.’

느려진 시간 속 종혁은 몸을 비틀며 파리를 쫓듯 칼을 후려쳤다.

퍼억! 탱그랑!

"이렇게 느려서 되겠어? 또 던져……!"

코웃음치며 사내를 본 종혁은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몸을 돌린 사내가 공사장 입구를 향해 달리고 있다.

"이 새끼가!"

다급히 몸을 날리던 그 순간이었다.

퍼억!

‘어?’

공사장 입구를 벗어나던 사내가 무언가에 얻어맞고 바닥을 구른다. 그리고 공사장 입구 안으로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 큰 동양인들이 들어온다.

아니, 동양인처럼 생긴 서양인이다.

‘이 새끼들은 또 뭐야?’

의아해하던 종혁은 주춤했다. 사내들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바닥의 사내를 향해 겨눴기 때문이다.

"초, 총?!"

철컥!

코앞에 드리워진 총구에 사내도 파랗게 질렸다.

공사장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을 때, 구두 소리가 울렸다.

또각! 또각!

사내들 발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새빨간 구두.

"останавливаться(멈춰)!"

‘러시아어?’ 게다가 익숙한 목소리다.

종혁은 사내들이 연 길 위를 걸어오는 붉은 구두의 주인을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탈리아?"

"내 등장이 너무 극적이었나요, 나의 친구 최?"

종혁은 환하게 웃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  *  *

‘러시아 정보부?’

토가레프와 푸줏간 정육업자 같은 무심한 눈빛.

KGB다.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 수 없다.

이대로 잡힐 수는 없다. 조직의 꼬리가 드러나서는 결코 안 됐다.

‘……강녕하십시오, 어르신!’

사내는 재빨리 반지의 보석을 뽑아 삼켰다.

"останавливаться(멈춰)!"

까득.

캡슐이 깨지며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끈적한 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  *  *

"나탈리아가 여길 어떻게……."

"Проклятие(빌어먹을)!"

약 반년 만의 해우를 방해하는 다급한 외침.

멍하니 고개를 돌린 종혁은 눈을 부릅떴다.

눈이 뒤집어진 사내의 몸이 펄떡펄떡 뛰고 있다.

‘독!’

"무슨!"

다급히 달려간 종혁은 그의 몸을 붙잡으며 흔들었다.

"혼자 오는 게 아니란 건 무슨 말이야?! 패거리가 있는 거냐?! 조직이야?!"

그 조직인지 묻고 싶다.

그러나 나탈리아가 보고 있다.

종혁은 애가 탔다.

"말 좀 해 보라고, 새끼야! 저 어린것을 왜 죽이려고 한 건데?!"

종혁은 그렇게 몸을 흔들며 그에게 얼굴을 가져갔다.

마치 대답을 들으려는 듯 가까이.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너희 김성령 의원 죽인 놈들 맞지?"

"……!"

차갑게 노려보는 종혁의 시선.

눈을 부릅뜬 사내는 몸을 퍼덕였다.

‘무, 무슨!’

들켰다. 조직을 알고 있다.

사내는 몸을 뒤틀었다.

‘이, 이걸 회사에 알려야!’

하지만.

"끄륵!"

마지막 숨이 넘어갔다.

턱!

종혁의 어깨에 손을 얹은 나탈리아는 고개를 저었고, 종혁은 차갑게 식어 가는 사내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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