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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3화 (73/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3화>

    22. 정하다

    -수법이 악질적이고 보복의 우려가 짙어 사회 격리를 시켜야 한다고 판단하는 바, 본 판사는 가석방 없는 징역 22년 형에 처한다.

    땅땅땅!

    -으아아! 안 돼! 이건 아니라고!

    종혁은 이때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22년 징역형은 생각지 못했던 듯, 발악하며 판사에게 달려들던 스토커와 그를 잡아 찍어 누른 법원 경찰.

    직접 참관을 했던 종혁과 김종두 과장은 판사의 판결이 떨어지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박수를 쳤다.

    회귀 전까지 합해도 이보다 시원한 판결이 없었다.

    그리고 이 판결로 인해 경찰에 접수되는 스토킹 신고가 부쩍 늘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스토커의 집착에 홀로 공포에 떨어야 했던 연예인들도 적극 신고를 하고 있었다.

    흐름을 탔다고 봐야 했다.

    "이런 분이 높은 곳에 계셔야 하는데. 흠……."

    툭툭!

    "뭐 해?"

    경찰 제복을 입은 김종두 과장이 옆구리를 찌른다.

    "아? 아."

    종혁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커다란 강당, 주위에 제복을 입은 많은 경찰들과 기자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앉아 있다. 그리고 동일고 유도부도.

    "그럼 용감한 시민상 수여 순서로 넘어가겠습니다. 호명되는 용감한 시민상 수상자는 단상으로 나와 주십시오."

    객석에 앉아 있던, 양복이나 교복을 입은 일반인 몇 명이 호명되자 일어난다.

    종혁도 마찬가지다.

    종혁은 옆에 앉은 어머니 고정숙의 손을 두드리곤 단상으로 향했다.

    "쟤가 최종혁이야?"

    "크. 듬직하네."

    제복을 입은 경찰들과 간부들의 눈이 욕심으로 빛나고,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흠.’

    이전에 용감한 시민상을 받을 때와는 다른 장소.

    그러나 종혁에겐 결코 낯설지 않은 장소이다.

    특진을 할 때나 상을 받을 때 많이 섰던 본청 강당 단상 위.

    감회가 새롭고,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크. 여기 처음 왔을 때 체포왕을 받았었는데!’

    종혁은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몸과 기억이 추억에 젖어 들어갔다.

    "……범인 검거에 큰 기여를 하고, 수사에 필요한 많은 기기를 기부하여 경찰 수사에 이바지한 바, 이에 용감한 시민상과 기여상 상장을 수여하며 명예 경찰에 임명한다. 경찰청장 김관영."

    종혁은 이제 쓸모가 없어진 초소형 카메라나 녹음 기기를 모두 기부해 버렸는데, 그 고가의 장비들에 경찰에서는 기여상을 따로 주기로 했다.

    종혁은 두 개의 상장을 받아 들며 습관적으로 거수경례를 했다.

    "경정 최종혁-! 감사합니다!"

    "음?"

    "예?"

    ‘어?’ 지금 뭐라고 한 거냐는 듯 시상자의 시선과 적막에 물든 강당.

    ‘아차아-!’

    추억에 젖느라 정신 줄을 놨더니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 순간.

    "그래! 형사하자, 종혁아-!"

    "목소리 커서 좋다-!"

    "푸하하하하핫!"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경찰들이 몸을 일으켰다.

    짝짝짝짝짝!

    "와아아아아아!"

    ‘끙.’ 배를 잡고 웃는 어머니의 모습에 종혁은 한숨을 내뱉었고, 그날의 행사는 그렇게 끝났다.

    *  *  *

    유도 금메달리스트 최종혁. 경찰 간부가 되고파.

    유도선수 최종혁. 경정이 꿈?

    신문 헤드라인이 이 말로 장식됐다.

    타악!

    종혁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박힌 신문이 책상을 내려찍자 종혁은 어깨를 움츠렸다.

    "종혁아."

    분노를 머금은 강철선의 부름에 종혁이 헛기침을 했다.

    "아닌 거 맞제?"

    강철선의 사무실까지 오는 길에 마주친 검사들이 던진 질문.

    아직 생각 중이라고 말하려니 강철선의 눈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다.

    사무관들도 ‘제발’이라는 눈빛을 보낸다.

    "그냥 말이 헛나온 거라니까요.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래요.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랬어요."

    "맞나?"

    "그럼요."

    "휴."

    가슴을 쓸어내린 강철선이 종혁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래! 닌 검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놈인기라! 검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놈이 무슨 경찰이고? 내 믿는데이?"

    ‘끙.’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화제를 돌렸다.

    "요샌 좀 어떠세요?"

    "안 보이나?"

    딱 컴퓨터 놓인 곳만 제외하곤 온통 사건 서류이다.

    "이 좁은 한국에 뭔 놈의 갱제사범들이 이리 많노. 오줌 싸고 손 닦을 시간…… 아니! 편하다! 음청 편하데이!"

    일이 많다고 종혁이 검사를 포기하면 낭패다.

    그런 그의 다급함을 느낀 종혁은 피식 웃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여긴 언제나 똑같네.’

    탑처럼 쌓인 사건 파일과 어젯밤 여기서 날을 샌 건지 땀 냄새가 나는 강철선의 셔츠. 돌돌 말려 한쪽에 처박힌 침낭.

    "요즘은 무슨 사건 보세요?"

    "뭐, 언제나 똑같제. 사기꾼들."

    강철선이 혀를 차며 사건 파일을 덮는다.

    "다 보신 거예요?"

    "아, 이건 갱찰로 돌려보낼 거."

    "음?"

    사건 파일을 본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거 검찰에 다이렉트로 꽂힌 사건 아니에요?"

    서류 맨 앞에 번호들이 그걸 말해 주고 있다.

    "다이렉트로 꽂혔다 캐도 수사할 시간 있겠나? 미스 김, 이거 갱찰로 보내서 체크한 부분 좀 보강해 달라 하이소."

    "네, 검사님."

    종혁은 미간을 좁혔다.

    "조금만 보강하면 된다면 아버님께서 보강해도 되잖아요."

    그 편이 훨씬 더 빠르다.

    경찰도 작정하고 잡은 놈이면 몰라도, 아니라면 사건 순서가 밀려 증거 보강을 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종혁아. 검사가 괜히 증거 찾는답시고 돌아댕기면 서로 피곤하고 불편하데이."

    ‘맞아. 그렇긴 하지.’ 형사였던 사람으로서 검사가 가장 짜증 날 때는 애써 수사해 보낸 사건을 증거가 부족하다고 돌려보낼 때다.

    강철선처럼 어떤 증거를 보강해 달라면 양반이다.

    그냥 냅다 증거 보강하라며 어딜 보강해 달라고 말하지 않는 인간들이 많다.

    그럴 땐 자기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뇌가 없어 하고 욕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래도 검사가 직접 나서는 경우보다는 낫다.

    경찰이 예쁘게 포장해서 토스했는데, 검사가 부족하다 싶어 직접 움직인다? 그땐 지옥이 펼쳐지는 거다.

    과장급에서부터 내려오는 내리갈굼.

    사람 미쳐 버린다.

    "뭐, 정 답답하믄 직접 나서겠지만."

    경찰이 감당하지 못할 큰 사건이나 직접 체크해야 할 때도 직접 나선다. 강철선은 이 부분까진 말하지 않았지만, 종혁은 그것만으로도 호기심을 드러냈다.

    "오, 그래요? 다른 검사님들도 그래요?"

    그런 검사는 거의 못 본 종혁은 강철선의 답을 기대했다.

    "거의? 아주 가끔 직접 발로 뛰는 청개구리도 있지만, 그게 뭔 인력 낭비고. 하루에 쳐 내야 할 사건이 몇 갠데."

    에어컨 빵빵한 사무실에서 땀을 뻘뻘 흘릴 만큼 열심히 처리해도 쌓이는 게 사건이다.

    검사가 직접 현장을 살피는 건 인력 낭비이다.

    다만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

    "물론 사건의 개요를 확실히 하기 위해선 현장도 직접 살펴봐야 하지만, 이왕이면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게 낫지 않겠나? 서로 믿고 맡기는 거제."

    종혁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노?"

    "뭐가요?"

    "검사 말이다, 검사. 이렇게 에어컨 빵빵한 곳에서 일하제, 때 되믄 밥 묵제, 책상머리 딱 앉아가 손과 눈만 움직이믄 되제. 검찰은 다 한 가족이라 웬만한 사고 치지 않고서는 퇴직 걱정도 없제. 세상 편한 직업이 검사인기라!"

    "하하핫!"

    확실히 부럽다.

    때 되면 밥 먹는다는 부분이 제일 부럽다.

    "……짜슥. 끝까지 대답 안 하네. 그보다 5월인데 정쑥 씨 카네이션은 달아 드렸나?"

    "당연히 달아 드렸죠."

    꽃다발도 드렸다.

    "안 그래도 며칠 뒤 대전에서 열리는 대회 끝나면 주말에 잠깐……."

    종혁은 말을 하다 말고 눈을 껌뻑였다.

    ‘1999년 5월 20일경. 대전.’

    어떤 사건이 번쩍 하고 떠오른다.

    대한민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시킨 끔찍한 사건.

    ‘대전 어린이 사건.’

    "와 그라노?"

    종혁의 눈빛이 삽시간에 가라앉는다.

    "아버님."

    "와?"

    "박시윤 씨 스토커 사건처럼 어떤 사건이 일어날 걸 알고 있고, 그 범인도 알고 있다면 검사로서 어떻게 하시겠어요?"

    "스토킹 사건? 아, 맞네. 니한테 먼저 제보가 들어갔다 켔제?"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고요."

    "무슨…… 아, 맞네."

    스토커가 살인을 결심한 건 종혁과 경찰의 함정수사 때문이다.

    그 전까지 스토커는 그저 한 여자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정신병자일 뿐이었다.

    물론 그 상태로도 위험했지만.

    ‘그놈아 정신 상태를 보면 가만 냅뒀어도 살인을 저질렀을 테지만…….’

    경찰이 그걸 앞당겼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즉, 종혁과 특수범죄수사대가 개입하기 전까지 스토커는 주거침입이나 하는 잡범에 불과했고, 강력 사건은 발생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검사로서라……."

    "네. 일반적인 검사로서."

    강철선은 생각에 잠겼다.

    살인 바로 직전까지 갔던 사건이다 보니 절로 생각이 많아졌다.

    "흠. 일반적인 검사라면 아마도……."

    종혁은 이어지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  *

    이제 막 학원을 마친 7살 꼬마 아이들이 등에 멘 배낭을 달랑거리며 걷고 있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쪼그만 아이들의 낭랑한 합창에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학원 다녀오니?"

    "네!"

    "집으로 곧장 들어가! 오락실 가지 말고!"

    "네-!"

    소년들이 만날 다니는 길, 슈퍼마켓 할아버지는 흐뭇하게 웃는다.

    "고놈들. 대답은 잘한다."

    한편, 아이들은 방싯방싯 웃는다.

    "아닌데. 오락실 갈 건데. 뽀글뽀글 할 건데."

    "안 돼. 엄마가 오락실 가면 머리 나빠진 댔어!"

    "우리 아빠는 등 푸른 생선 먹으면 머리 좋아지니까 또이또이랬는데?"

    "웩. 생선 싫어."

    "나도."

    주제가 확확 바뀌는 어린아이들의 대화.

    그러다 그중 한 소년이 한쪽을 가리켰다.

    "앗! 다 왔다!"

    소년이 가리키는 곳을 본 다른 아이들의 얼굴이 거부감으로 물든다.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슨 펜스가 쳐져 있는 폐공사장의 개구멍.

    "윽! 너 또 저기로 가?"

    "상민아, 넌 저기 안 무서워?! 난 엄청 무서운데!"

    한번 상민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봤던 아이들은 온갖 쓰레기들이 널려 있고, 춥고, 목소리가 울리는 폐공사장을 무서워했다.

    "여기가 가장 빨라! 간다! 내일 봐!"

    "……응! 내일 봐!"

    상민이라 불린 아이는 개구멍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고, 그 빵빵한 엉덩이가 사라지자 아이들은 몸을 돌렸다.

    "잇챠!"

    개구멍을 빠져나와 몸을 툭툭 턴 상민은 시멘트 골격만 을씨년스럽게 세워진, 짓다 만 커다란 건물을 멍하니 보았다.

    "무섭긴 뭐가 무섭다고. 흥!"

    상민은 쫄래쫄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김상민?"

    "응?"

    고개를 돌린 상민은 의아해했다.

    모자를 푹 눌러쓴 낯선 사내가 다가온다.

    손가락에 낀 커다란 금반지가 장난감 같아 상민의 시선을 붙든다.

    "네. 맞는데요? 아저씨는 누구세요?"

    "아, 그래? 그럼 됐다."

    "네?"

    사내의 품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빠져나온다.

    "어? 칼이다."

    상민은 하늘 높이 쳐들린 칼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 칼이 자신에게 매정히 떨어질 때까지.

    그 순간이었다.

    빠아악!

    "큭!"

    칼을 떨어트린 사내가 손목을 잡으며 바닥에 떨어지는 무언가를 봤다.

    "도, 돌?"

    정확히는 시멘트가 뭉친 돌이다.

    그는 돌이 날아온 곳을 노려봤다.

    "오케이. 거기까지."

    그렇게 말하는 종혁의 두 눈이 살의로 일그러져 있었다.

    ‘잘 걸렸다, 이 씨발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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