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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1화 (71/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1화>

    명품 슈트를 입고, 초고가 시계를 차고, 강남 숍에서 머리까지 만진 형사들은 결국 넋을 놓았다.

    혹여 옷이 구겨질까, 머리가 망가질까 딱딱하게 굳은 그들을 보며 종혁은 웃음을 터트렸다.

    "구겨지면 또 사 드릴 테니까 편히 앉으세요."

    "뭐, 뭐엇?! 미, 미쳤냐! 이게 얼마짜린데!"

    "이 자식이 돈 벌었다고 돈 무서운 줄을 모르네?!"

    전신에 걸친 걸 합하면 그들 반년치 월급이다.

    "제가 연락할 때마다 고민 없이 출동해 주시는 것에 대한 선물이에요. 그리고 이런 옷들도 있어야 고급 업소나 요정, 하우스에 쉽게 잠입하죠. 나이트클럽도."

    "어, 잠입……."

    종혁의 말은 비수가 되어 그들을 찔렀다.

    확실히 수사비가 없어서 잡지 못하는 범죄자도 많았다.

    "저 나중에 경찰 되면 잘 부탁한다는 뇌물이기도 합니다."

    종혁의 너스레에 형사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어린놈이 벌써부터 뇌물을 주고, 어? 그러면 안 돼. 그래도…… 어, 편하다. 잠복할 때 이런 차에서 하면 정말 좋겠네."

    "푹신하게 아주 그냥! 푹 자도 등 하나 안 배기겠다!"

    "큭큭. 내리시죠."

    늦은 저녁, 그들은 JYK 사옥으로 올라갔다.

    JYK의 사장 감진영은 두 시간 뒤에 나타난 형사들을 보곤 눈을 껌뻑였다. 박시윤은 입을 헤 벌렸다. 두 시간 전 만난 형사들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종혁까지도.

    가끔 기업 행사에서 보는 재벌 3세들 같았다.

    ‘형사 맞나? 그리고 이쪽은…….’

    어디서 본 듯한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종혁을 보며 갸웃거리던 감진영은 형사들이 입을 열자 신경을 껐다.

    ‘흠. 이 양반을 이렇게 보네.’

    근래 JYK에 벌어진 사건의 내막을 안다면 절대 가만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종혁은 입을 다물고 집중했다.

    "상황은 아실 겁니다."

    감진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찾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

    감진영은 마음이 격해져 말을 잇지 못했다.

    박시윤은 그가 위약금까지 물어 가며 데려온 가수다.

    순수하고 해맑고. 그래서 더 무리한 스케줄에 망가지기 전에 데려왔다. 그렇게 데려온 그녀건만 고통받는데도 도울 수 없어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보안이 좋은 곳으로 옮겨 주고 싶지만, 지금 숙소로 옮긴 것만 해도 엄청나게 무리를 했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걱정 푹 놓으십시오. 그 새끼 잡아서 어떻게든 콩밥 먹일 테니."

    "그렇게 말해 주시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그런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그동안 경찰들이 미흡하게 대처해 줘서 불신이 생긴 그다.

    "그게 어……."

    종혁은 승철이 버벅거리자 입을 열었다.

    ‘아까 설명해 줬는데도, 쯧.’

    "여기 형사 두 분이 매일같이 번갈아 가며 박시윤 씨 숙소를 들를 겁니다. 늦은 저녁, 은밀한 시간대에."

    "네? 그, 그러면?"

    감진영과 박시윤의 머리에 스캔들이란 세 글자가 떠올랐다.

    그것도 아주 문란한 스캔들이다.

    아무리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지만, 자칫 가수 인생이 끝날 수 있다.

    "아, 스캔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박시윤 씨 숙소가 있는 라인에 방을 빌릴 테니까요. 위층이나 아래층 정도로요."

    "아, 그러면 기자들은 모르겠군요!"

    커튼만 열지 않으면, 밖에서 지켜볼 기자들은 알 수 없다.

    "그리고 시윤 씨 숙소에 침입하는 그놈이 알 수 있게 흔적을 남길 겁니다. 콘돔 같은 문란한 흔적을."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감진영과 박시윤이 입을 크게 벌렸다.

    "……그, 그럼 그놈이 사고를 치지 않을까요?!"

    박시윤을 애인처럼 여기는 놈이다.

    그런데 다른 남자와 뒹군 흔적이 드러난다?

    칼부림 나는 거다.

    박시윤도 크게 떨었다.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그걸 위해섭니다."

    "예?"

    "질투심에 눈이 멀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치라고. 우리 영역으로 쳐들어와서."

    "영역이요?"

    "지켜보시면 압니다."

    종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  *

    늦은 아침의 아파트 쓰레기장.

    중년 여성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어제 우리 라인에 꽤 사는 청년이 이사 온 것 같더라고요."

    "어머? 그 라인이에요? 어쩐지 모르는 외제차가 있더라니."

    "그런데 거기 그 딴따라 있는 곳 아니에요? 모르는 애들이 진 치고 시끄럽게 구는."

    "에휴. 정말 얼른 이사를 가라고 해도 말 안 듣고. 맞아, 그러고 보니 그 청년 그 딴따라 집 위층……."

    여느 날처럼 똑같이 수다를 떠는 그들의 뒤로 사십대 중반의 경비원이 스쳐 지나간다.

    "수고하십니다."

    "호호. 네, 수고하세요."

    모자를 살짝 드는 그와 인사를 주고받은 중년 여성들은 다시 수다를 떨었고, 경비는 순찰을 도는지 한 아파트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지이잉!

    "으흐흥!"

    띵!

    콧노래를 부르며 내린 그는 잠금장치가 무려 일곱 개나 되는 하나의 문 앞에 섰다.

    "하나 더 늘었네. 참 나, 정말 깍쟁이라니까."

    얼마 전에도 전화로 싸운 후 경찰들이 주위를 맴돌았고, 그럴 때마다 잠금장치가 추가됐다.

    싸울 때마다 그러니 조금 짜증이 났다.

    "그래도 어리고 예뻐서도 참는다."

    이 잠금장치가 그녀에게 도움도 되기에 참는다.

    "사생 놈들이 쳐들어오면 어쩔 거야."

    장갑 낀 손으로 품 안에서 길쭉한 막대 두 개를 꺼내 든 그는 가장 위의 열쇠 구멍에 밀어 넣었다.

    드르륵! 툭툭! 달칵!

    일곱 개의 장금장치가 열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순간 멈칫했다.

    "킁? 킁?"

    그는 미간을 좁혔다.

    신발장까지 풍겨 오는 라벤더 향.

    만날 맡던 냄새가 맞는데, 뭔가 흐트러진 느낌이었다.

    의아해한 그는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허리를 숙였다.

    "에휴. 신발 좀 정리하며 살라니까."

    신발 갈아 신는 공간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운동화나 구두.

    그것들을 정리한 그는 마치 본인의 집처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멈칫했다.

    방금 전보다 더 큰 위화감이 그를 강타했다.

    "……아닌데. 똑같은데?"

    여기가 아닌, 전에 살던 집을 처음 찾아왔을 때는 이것저것 널려 있어 돼지우리가 따로 없었지만, 몇 번 청소해 주자 지금까지 말끔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기특한 여자 친구 시윤이다.

    어린데도 이러긴 쉽지 않다.

    "일주일 만에 와서 그러나?"

    어깨를 으쓱인 그는 냉장고를 확인하고 화장실도 청소했다.

    "음. 예비 장모님이 왔다 가셨나 보네. 그래, 밥을 해 먹는 게 좋지. 어? 아이 진짜. 칫솔 새로 꺼낸 지 얼마나 됐다고 새걸 꺼낸 거야?"

    그렇게 둘러보며 정리할 건 정리한 그는 안방으로 향했다.

    잔뜩 흐트러진 침대가 그를 반겼다.

    "쯧쯧. 또 어지르는 성격 나온다. 그렇게 말하면……."

    세탁을 하기 위해 이불을 걷던 그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덜컥 굳었다. 시트에 점점이 찍혀 있는 빨간 얼룩들과, 침대 바로 밑에 떨어져 있는 탁한 액체가 든 늘어진 콘돔.

    그리고 이불에서 나는 낯선 남자 향기.

    그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어…… 어…… 나, 나는 아닌데?"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만져 보지도 못한 여자 친구이다.

    패닉에 빠진 그는 침대 옆 서랍장 위에 놓인 남자 시계도 발견했다. 그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이 개 같은 년이-! 감히 바람을 펴-?!"

    그것도 R자로 시작하는 초고가 명품 시계를 가진 부자다.

    머릿속에서 상황이 정리된 그는 재빨리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이 씨발년! 얼른 안 받아?! 받으라고, 이년아!"

    그렇게 몇 번. 결국 전화는 받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아!"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까드득!

    그의 입안에서 이가 갈렸다.

    "그래. 돈이 좋다, 이거지? 너도 다른 년들처럼 부자가 좋다…… 아니지."

    그의 머릿속에 스폰이란 두 글자가 스쳐 지나갔다.

    "……하아. 이 바보야. 돈이 필요하면 말을 하지."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화장대로 걸어간 그는 화장대에 놓인 메모지를 꺼내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돌아오지 않는 답장을 바라며.

    "내가 못나서 미안해. 기다려. 내가 얼른 돈 모아서 곧 널 그 지옥에서 구해 줄게. 그러니 대답만 좀 해 주라. 그만 좀 튕기고."

    그 말을 남기며 눈물을 뚝 흘린 그는 자신이 어질러 놓은 걸 모두 정리하고서야 집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며칠 후.

    "으아아아아악!"

    원하고 원하던 답장이 왔다.

    하지만 그가 원하던 게 아니었다.

    -나 남자 친구들 생겼으니까 꺼져.

    믿기지 않는 말. 깨끗한 물처럼 순수한 그녀가 썼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글귀이다.

    그러나 오늘도 어질러진 이불에 남아 있는 낯선 남자의 향기.

    며칠 전과 다른 향수, 다른 시계.

    "후욱, 후욱. 그래. 너도 다른 년들과 똑같다 이거지? 순수하게 웃어 주던 그 모든 게 내숭이었다 이거지?"

    순간 왜인지 모르게, 그의 머릿속에 며칠 전 쓰레기장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연일 테지만, 이 꼴을 겪고 나니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며칠 전 발견한 낯선 남자의 흔적.

    때마침 그 전날 이사 온 부자 청년.

    주차장에 세워진, 얼마 전 JYK로 들어갔던 것과 똑같은 외제차.

    이를 간 그는 위층으로 올라가 문에 귀를 대고 기척을 살폈다.

    띵동띵동!

    한참을 기다려도 기척이 없다.

    바로 문을 따고 들어간 그는 안방에서 며칠 전 봤던 시계를 발견하곤 큭큭 웃었다.

    이놈이 맞았다.

    은밀하게 만나려고 이렇게 집까지 산 부자.

    "순수했던 너도 결국 이 더러운 세상에 물들었구나. 그럼…… 죽어서 순수함만 있는 세상으로 가야지."

    이를 빠드득 간 그는 집을 빠져나갔다.

    문을 잠그는 것도 잊은 채 그의 두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그리고 그 모든 건 두 집안에 설치된 초소형 카메라와 녹음 장치에 녹화되고 있었다.

    몇 시간 후, 내용을 확인한 그들에게 침묵이 내려앉는다.

    "……진짜 미친놈 맞네."

    더욱이 사십대, 박시윤은 딸뻘이다.

    오바이트가 쏠렸다.

    "지금 딸까?"

    증거는 모두 갖췄다.

    비밀리에 지문과 머리카락도 채취했다.

    얼굴도 알고 있으니 덮치기만 하면 된다.

    종혁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일그러진 형사들을 무심히 봤다.

    "이 새끼 지금 따면 뭐로 엮을 수 있는데요? 쥐똥만 한 벌금, 구류 또는 과료형?"

    뭐든 경범죄 수준이다.

    이 시기, 아니, 미래까지 스토킹 범죄는 중히 다뤄지지 않는다.

    "아니지. 이 정도면 주거침입에 협박죄 성립이지."

    "그래도 길게 살아야 두 바퀴네요."

    2년. 애정망상형 범죄자가 교화하기엔 짧은 시간이다.

    스토커 본인이 피해자에 의해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환상을 가지는 애정망상형.

    "애, 애정망상형?"

    처음 듣는 단어에 형사들은 당황했다.

    "스토킹도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으니까요. 이 중 애정집착형은 사생팬. 나를 바라봐 주길…… 넘어가고. 아무튼 이 새끼 2년만 살고 나오면 증오범죄 저지를 확률이 80퍼센트 이상입니다."

    증오범죄. 터지면 강력 사건이다.

    형사들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그러니 이렇게 하는 게 어때요?"

    형사들은 종혁이 하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새벽, 아파트에 연예인 차량으로 보이는 벤 한 대가 주차를 한다.

    드르륵! 탁!

    "수, 수고하셨어요."

    불안하게 흔들리는 박시윤의 눈동자에, 매니저는 한숨을 내쉬었다. 코디가 얼른 입을 열었다.

    "오늘도 같이 있어 줄까?"

    "아뇨. 괘, 괜찮아요. 모레 봐요."

    "……그래. 푹 쉬어."

    박시윤은 얼른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그녀의 방에 불이 켜지고 나서야 매니저와 코디는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아파트에 외제차 한 대가 들어섰다.

    탁!

    한 사내가 통화를 하며 차에서 내렸다.

    "응, 그래. 도착했어. 옷만 갈아입고 내려갈게. 에이, 내가 있는데 뭐가 무서워. 어휴, 겁쟁이. 금방 갈게."

    주차장을 크게 울리는 사내의 목소리.

    전화를 끊은 사내는 어깨를 펴며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은 어둠 속에서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까드득. 개 같은 연놈들."

    그 말을 끝으로 어둠은 다시 침묵했다.

    곧 박시윤 위층의 불이 켜졌다 꺼지고, 계단 불빛이 켜졌다. 박시윤이 사는 층의 계단 불빛도.

    계단 창문이 닫혀 있어 시윤을 타락시킨 장본인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게 한스러울 뿐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박시윤 집의 불빛이 모두 꺼지고 2시간이 흐른 뒤, 어둠이 요동치며 한 사내를 토해 냈다.

    얼굴이 일그러진 그는 아파트로 향했다.

    저벅저벅.

    새벽 침묵이 내려앉은 주차장에 살기 가득한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한 차량에서 그걸 지켜보던 누군가가 스윽 몸을 일으켰다. 형사 도현이었다.

    "하, 새끼. 더럽게 꿈지럭거리네."

    그래도 차가 외국산이라 등이 배기지 않아서 버틸 수 있었다.

    그는 무전기를 들었다.

    치익!

    "스토커. 지금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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