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8화>
몇 번의 실험을 더 거친 디지털 포렌식은 결국 연간 50억을 지불하기로 하며 3년 계약을 맺었다.
권회수가 얽혀 있다는 게 조금 꺼림칙했지만, 그 효용성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3년이었다.
이 시간 동안 버금가는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는 이상 계약 기간은 무난히 갱신될 것이다.
‘아니, 최소 20년은 무난히 갱신되겠지.’
이치로 교수도 본격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하기로 했고, 종혁이 개입하면서 보안을 한층 더 강력하게 걸어 놓았기 때문이다.
‘회귀 전 교수님은 본인의 이득보단 범죄자만 잡으면 된다는 마인드로 모든 걸 오픈했었지.’
일본에서 그런 꼴을 겪은 상태에서 만약 자이니치라는 이유로 경찰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면 충분히 그런 마음이 생길 수 있다.
그 때문에 한국이 이득을 보았지만, 한국은 그런 이치로 교수를 배신했다. 이치로 교수가 오픈한 소스를 바탕으로 한국형 디지털 포렌식을 제작하고, 디지털 포렌식 수사과도 만들었다.
이건 그때에 대한 종혁의 사죄였다.
"2억 엔……."
이치로 교수로선 처음 보는 금액.
종혁은 그에게 줄 로열티 및 연봉의 합을 6대4로 잡았다.
"연간이죠. 연간 2억 엔입니다, 교수님."
이치로 교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게도 이런 봄이 오다니…… 크흑! 감사합니다, 최 자문님. 자문님이 아니었다면……! 이 은혜를 대체 어떻게 갚아야 할지!"
"형사들을 잘 가르쳐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이치로 교수는 당분간 한국에 남아 디지털 포렌식 프로그램 운영 방식을 가르치기로 했고, 그 담당 부서는 전국 경찰청과 경찰서 컴퓨터범죄수사과와 정보보안 부서로 결정되었다.
이치로 교수의 손을 톡톡 두드려 준 종혁은 한종학 교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어울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음. 아닐세. 프로그램이 영 아니었다면, 아무리 어르신의 부탁이라고 하더라도 거부했을 걸세."
그랬다. 한종학 교수가 이 판에 끼어든 이유는 모두 과거 권회수와의 인연 때문이다.
한종학 교수는 권회수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했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시절, 한종학 교수는 아비의 빚을 추심하러 온 권회수와 만났다.
작은 쪽방을 구둣발로 짓밟으며 들어왔던 악당.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책이 많네? 책도 돈이 되지.’?
‘이, 이건 안 됩니다! 아들이 일해서 산 책들입니다!’
‘아들이? 어이, 아들내미. 진짜냐?’
‘이 상황에서 그게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가져가십시오.’
한종학은 그렇게 말했지만,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흠.’
그때 권회수는 책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폈다.
그리고.
‘쯧. 폐지 값도 못 받을 만큼 너덜너덜하네. 됐다. 이건 너 해라.’
그렇게 말한 권회수는 무슨 일인지 추심도 관두며 돌아갔는데, 이후 달마다 그의 집 앞엔 쌀이며 책이며 온갖 것들이 쌓였다.
눈치가 빨랐던 한종학은 권회수를 찾아갔지만 내쳐졌다.
그러다 겨우 만나게 된 건 아비의 빚을 모두 갚았을 때였다.
그때 권회수가 그랬다.
‘그렇게 살면서도 공부를 한다는 게 기특해서 적선 좀 한 것뿐이니 신경 쓰지 마라. 다신 이런 곳에 오지 말고.’?
그렇게 짧은 만남이 끝났지만, 권회수의 지원은 계속되었다.
낮에 일하고 저녁에 공부하며 힘들게 유학을 갔을 때도 권회수는 지원해 주었다.
그러다 언젠가 공부하는 것도 지쳤을 때, 권회수를 찾아갔다.
그때 권회수는 이렇게 말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넌 지금 시대에 사는 걸 축복으로 생각해라.’
그 말 속에 서려 있던 한이 한종학으로 하여금 다시 공부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즉, 권회수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교수 한종학은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권회수를 돈 귀신이라 욕해도 한종학 교수는 결코 그럴 수 없었다.
‘이영창 검사장님이나 다른 이들도…….’
한종학 교수는 이치로 교수를 보았다.
‘어르신은 여전히 어려운 이들을 구원하시는구나.’
오해였지만, 그걸 모르는 그로서는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 나도 이제 베풀 때가 됐지.’
"야마노구치 교수."
"예?"
"그 디지털 포렌식이란 것에, 아니, 자네가 만든 회사에 고문 자리 남았는가? 오늘처럼 한국의 일에 도움을 줄까 하는데."
"……예?"
종혁과 이치로 교수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 * *
청장실.
경찰청장 김관영이 오늘 일을 보고를 받는다.
"그래, 이런 걸로 돈 아끼면 안 되지.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경찰청장의 칭찬에 경무관의 얼굴이 활짝 핀다.
"그보다 돈 귀신 그 양반, 정말 마음 고쳐먹은 것 같디?"
그가 어리바리 신입 형사였던 시절 이미 거물이었던 권회수.
그래서 다이렉트로 보고를 받는 거였다.
"특수 김 과장이 마중 나가서 한 이야기까지 종합해 보면,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최 선수를 비롯한 동일고 유도부도 봉사를 한다고 합니다."
"최 선수."
한상원을 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을 정도로 정의감 넘치는 이다.
서울지방검찰청에서도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았던가.
"거참. 왜 갑자기 튀어나와 사람 골치 아프게 하는지."
가출 청소년 쉼터는 서울 공무원들에게 제법 뜨거운 감자이다.
아이는 부모의 품에서 보호받아야 하는데, 그걸 정면으로 반박한다. 나쁜 부모에게는 돌려보내지 마라,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한다, 우리가 부모가 되어 주겠다.
형사들을 보내 살펴본 시설도 제대로였다.
그라고 범죄에 휘말리는 가출 청소년이 왜 가엽지 않겠는가.
하지만 시설의 장이 그 권회수라 지금까지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담당 경찰들에게 잘 알아보고 집으로 돌려보내고, 자주 살피라고 한 정도.
그런데.
"정말 마음을 고쳐먹었다면…… 흠."
쿵쿵쿵!
"들어와."
하얗게 질려 안으로 들어온 제복 입은 경찰이 리모컨을 든다.
"잠시."
TV가 켜지며 뉴스가 흘러나온다.
-검경이 유흥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 어언……?
경찰청장은 만날 보는 기사에 고개를 모로 기울이다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다시 집을 나온다는 소식입니다.
화면이 바뀌고 모자이크 된 어떤 여성이 인터뷰를 한다.
그런데 배경이 유흥 업소다.
-집을 왜 다시 나온 겁니까.
-제, 제가 원래 가출한 게 술 먹고 때리는 아빠 때문이었거든요? 엄마가 도망친 건 너 때문이다, 몸을 팔아서라도 돈 벌어 와라. 그래서 제발 돌려보내지 말아 달라고 빌고 빌었는데, 형사님이 아빠를 불러서…….
경찰청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후로 참담한 가정사를 지닌 아이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결국 경찰청장은 폭발했다.
"이 새끼들이! 잘 알아보고 돌려보내라니까!"
경찰이 경찰 얼굴에 똥칠을 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가관이다.
-가출 청소년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한 쉼터가 있음에도 잘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돌려보내는 경찰과 공무원들의 무심한 행태. 바로잡히길 바랍니다.
경찰과 공무원의 행태. 머리털이 쭈뼛 솟는다.
띠리링! 띠리링!
경찰청장은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허리를 연신 굽히며 예, 예, 대답을 했다.
전화를 끊은 그는 의자 위로 무너졌고, 다른 이들은 숨을 죽였다.
"……돈 귀신 이 양반, 제대로 쳤네."
이 뉴스가 권회수의 작품이 맞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경찰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단 게 중요했다.
"후. 진짜 어쩔 수 없게 됐군."
그는 전화를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나 청장인데, 행복의 쉼터에 협력 요청하고 기자들 불러. 그리고 전국에 감사 들어가! 알았어?!"
경찰청장의 분노가 내부를 향해 터져 버렸다.
* * *
최고의 딴따라가 되겠다고 외치던 감진영의 커다란 사진들이 걸려 있는 JYK의 사장실. 감진영은 당황하고 있었다.
앞에 놓인 JC Ent 대표이사 정영탁이라는 명함 때문이다.
"왜 그렇게 놀라시는지 모르겠군요, 감 대표."
"……무슨 속셈이십니까?"
머릿속에 수많은 말이 떠오르지만, 결국 나온 건 이 말이다.
감진영의 지분을 제외한 JYK의 지분 대부분이 JC엔터테인먼트라는 들어 보지도 못한 회사로 이전되었다.
눈치를 챘을 땐 이미 늦은 후였다.
잔소리 많은 시어머니 같았어도 든든했던 주주들에게 사정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더 이상 감진영은 JYK의 주인이 아니었다.
"제 회사를 훔치려는 겁니까?"
감진영이 이를 드러내자 정영탁은 다리를 꼬며 사장실을 둘러봤다. 수줍게 웃는 사진, 폼 잡은 사진 등.
여전히 괴악한 공간이었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정말 자기애가 강하시군요."
정영탁도 놀랐다.
그도 이렇게 쉽게 지분을 팔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의아해 물어보니.
‘닷컴이라고 했던가?’
그런 것에 투자를 한다고 했다.
그에 두 배로 값을 치른다니 너도나도 지분을 던졌다.
‘역시 돈이 좋아.’
"정 대표님!"
정영탁은 그를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러면 안 됩니까?"
"당신! 이건 내 회사야! 내가 피땀 흘려 만든 회사라고!"
"진정하세요. 그럴 생각 없으니까."
"……."
"어느 분께서 그러더군요. 그룹 활동에 있어 소속감이라는 게 중요하다고."
감진영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재, 재우?"
정영탁의 얼굴을 살핀 그의 입이 더 벌어졌다.
아직 데뷔도 못 한 가수 한 명을 데려가기 위해 백억이 넘는 돈을 썼다. 그의 상식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영탁은 혼란스러워하는 그를 보며 다리를 반대로 꼬았다.
"정 대표 입장에선 나쁜 일이 아닐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난 딱히 JYK에 참견할 마음이 없습니다. 내 일도 바쁜데 잘하고 있는 사람에게 매질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감진영의 눈이 빛났다.
"그 말씀은……."
정영탁은 감진영이 JYK를 만들고 난 후부터 그가 걸어온 행보에 대해 담담히 늘어놨다. 그중엔 아직 계약이 남은 ‘Steal Away’, ‘소중한 사랑’의 박시윤을 영입해 회사 규모를 키운 점도 있다.
"이렇듯 잘하고 계시니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제가 참견할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문서로 남길 수 있습니까?"
"서약서건 뭐건 쓰죠. 그래서 감 대표 마음이 편해진다면."
"……끄응. 녹음을 다 해 놓고 이러시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정 대표님."
누그러든 그의 얼굴에 정영탁은 껄껄 웃었다.
"그러게 주랄 때 주셨야죠."
"정 대표님 자금력이 이 정도인 줄 알았다면 진즉에 그랬겠죠."
"떠나간 버스에 손 흔들어 봤자 늦었습니다."
그 말에 감진영은 속이 아플 만큼 쓰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팔 걸…….’
재우가 성공할 거라는 자신감은 있지만, 현재 가요계는 복마전이다. 얼마나 성공할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저 당분간의 캐시 카우가 된다면 그걸로 족했는데…….’
정영탁은 아쉬워하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일단 결과가 나와 봐야 알 테지만,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예, 최대 주주님."
정영탁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빨리! 빨리!"
"으아아아아!"
30평대의 넓은 주택, 준형을 비롯한 아이들이 걸레로 바닥을 밀며 경쟁을 하고 있다.
‘어휴, 이 지랄 맞은 것들.’
똥강아지 다섯 마리를 보는 듯하다.
지랄 맞을 만큼 발랄하고, 성실하며 귀여운 아이들.
"자, 주목!"
"앗! 사장님!"
후다닥 달려온 아이들이 정영탁 앞에 섰다.
정영탁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가쁜 숨을 내뱉는 재우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멤버인 형들과 완벽하게 동화된 것 같아서 흐뭇했다.
"대, 대표님?"
"서로 다시 인사들 해라."
"……?"
"앞으로 JC엔터 소속으로 영원히 너희들과 함께하게 될 마지막 멤버 김재우다. 박수로 맞이해 주도록."
툭!
멤버들의 손에 들린 걸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영탁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바라보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아아아아!"
"재우야!"
"형들!"
정영탁은 서로를 끌어안고 방방 뛰는 그들을 보며 따스하게 웃었다.
‘그래. 이제 곧 봄이니 만발하는 꽃처럼 아름답게 성공하자, 이놈들아.’
"헤이, 요! 싸장님!"
"어? 오지 마라. 오지 마!"
그는 격하게 거부했지만, 결국 붙잡혀 헹가래를 당해야 했다.
* * *
결국 박태규의 예상과 원래의 역사대로 현몽구 회장이 대현자동차의 회장 자리를 지켰고, 현주영 왕회장의 셋째 동생 현세균은 대현산업개발로 물러났다.
지분 교환식 때만 해도 담담한 모습을 보였던 현세균 회장은 대현자동차 회장 취임식에서 눈물을 왈칵 흘리며 억울해했다.
-쯧쯧. 왕회장님도 독하시지.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권회수는 다시금 혀를 찼다.
"그렇죠. 정말 독한 양반이십니다."
현세균이 키운 대현자동차 회장 취임식에 쫓아낸 현세균을 불러들였다. 현주영 왕회장은 동생을 두 번 죽인 것이다.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니면서 왜 저리 독하신지. 저승 가면 무슨 판결을 받으려고.
‘당장 올해부터 기력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내년에 쓰러진다.
"그보다 현오성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 자동차 상무 자리에 앉았네. 듣기로 왕회장님이 개입한 순간부터 자기들끼리 싸움을 벌였다더군. 이놈들도 독사일세, 독사.
"그 피가 어디 갈까요."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끌끌. 자네도 수고하시게. 아, 맞아. 박 원장이 고맙다고 전해 달라더군.
"하하. 수고하시라 전해 주세요. 언제든 2호, 3호 쉼터 오픈할 수 있게 준비해 주시고요."
-아무렴. 걱정 마시게.
전화를 끊은 종혁은 가출 청소년들에 대해 생각하다 대현 동차가 있는 방향을 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의 눈빛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띠리링! 띠리링!
"예, 최종혁입니다."
-최 선수, 섭섭하데이.
"아버님?"
강철선이다.
언젠가부터 종혁이라 부르던 그가 다시 최 선수라 부르자 종혁은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이 있나 생각해 봤다.
-그런 좋은 게 있으면 우리부터 줘야 하는 거 아이가? 우리가 남이가!
"……아. 디지털 포렌식이요? 그렇지 않아도 한종학 교수님께서 이번 주 내로 연락한다고 하셨는데. 지금까진 데이터를 모으는……."
그렇게 말하던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런데 그걸 왜 저한테 물으세요? 전 통역이었어요."
-괘씸해서 그란다 아이가! 아르바이트한다는 말도 안 하고, 봉사한다는 말도 안 하고. 우리 사이가 그것밖에 안 되나?
"……예?"
-니 꼭 그때 오레이!
뚝!
종혁은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멍하니 보다 쿡쿡 웃었다.
"삐지셨나 보네."
김종두 과장이 안 걸 자신만 몰랐다는 것에 삐진 것 같았다.
다섯 아이의 아버지가 말이다.
고개를 저은 종혁은 입국 게이트를 봤다.
웅성웅성!
김포공항은 오늘도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올 때가 됐는데……."
스르릉!
말이 씨가 된 건지 입국 게이트가 열리며 정수찬이 걸어 나왔다.
환하게 웃은 종혁은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두 남자의 뜨거운 손이 허공에서 맞잡아졌다.
"오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야 비행기를 탄 것뿐인데요. 아, 이쪽은……."
정수찬은 함께 온 일행 서른 명을 소개했다.
"휘유. 많군요."
종혁은 버스를 대절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모두 자이니치거나 저와 같은 이민자들입니다. 그리고 각자 분야에서 회사를 먹여 살렸지만, 인정은 받지 못한 인재들입니다."
역시 일본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종혁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리고 이런 인재들을 데려온 정수찬이 너무도 고마웠다.
종혁은 그동안 고생 많았다는 의미를 담아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고국에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런 종혁의 진심에 낯선 타국에서,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생각이 많았던 사람들은 그 불안이 싹 씻겨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그럼 이동하실까요."
종혁은 그들을 데리고 분당으로 향했다.
"오!"
"아!"
20평대의 아파트가 반기자 그들의 얼굴은 확 밝아졌다.
도쿄의 집만큼 넓은 집과, 탁 트였으면서도 편의점이나 마트 등 있을 건 다 있는 아파트 상가와 주변 환경.
그보다 그들을 기쁘게 한 건 바로 본사에 있는 설비들이다.
"이, 이건 독일에서 막 출시되기 시작한 건데!"
"이건 또 뭐야! 우리 회사에서도 내년에나 도입한다는 거잖아! 미쳤어!"
그들은 마치 원하던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그중 한 사람이 종혁에게 달려와 손을 꼭 잡았다.
"그렇지 않아도 렌즈 설계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렌즈? 아."
블랙박스에는 화질도 중요하다.
"이, 이 정도면 그 사람도 만족할 겁니다! 저 역시도!"
"그 사람이요?"
"독일에 권위자가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이 이걸 본다면 바로 넘어올 겁니다!"
"아!"
종혁은 정수찬이 이들에게 왜 인재라 했는지 바로 이해했다.
‘부족한 걸 적극적으로 채우려하고 있어.’
이런 인재들을 데려온 정수찬이 다시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종혁은 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마음에 드십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한 눈빛에 종혁의 입가가 뒤틀렸다.
"아직 이 정도로 놀라시면 곤란한데요."
"음?"
"일단 이동하시죠."
그들은 의아해하며 종혁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잠시 후 드넓은 농지에 도착한 그들은 더 의아해했다.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약 5만 평의 대지가 여러분 겁니다."
그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곧.
"이곳에 신사옥과 연구소를 지을 겁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
멍하니 고개를 돌린 그들 중 일부가 5만 평 대지를 보다 털썩 주저앉았다.
정수찬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 정도의 대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그저…….’
종혁은 형언할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에 싱긋 웃었다.
‘이젠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겠군.’
가출 청소년의 일까지 모두 끝났다.
휘이잉!
어디선가 불어온 따뜻한 바람이 그들의 몸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