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5화 (65/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5화>

    20. 봄이 오다

    차량용 영상저장장치. 일명 블랙박스.

    이 블랙박스가 보급화되면서 범인 검거율이 급상승했다.

    거리와 골목의 CCTV, ATM CCTV, 일반 음식점의 CCTV에, 차량용 블랙박스가 추가되면서 사각 편대를 이뤘고, 그 어떤 범죄자도 빠져나갈 수 없는 거미줄이 만들어졌다.

    ‘이걸 개발한 사람이 일본인이었다니.’

    몰랐던 종혁으로선 혀를 내둘렀다.

    "슴슴했지?"

    "응. 모양만 이쁘지, 맛은 좀 그렇더라."

    종혁은 소영과 수호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시하라 케이코 이사장이 고맙다고 대접한 진짜 가이세키 요리를 맛본 둘이 돈 아깝다며 투덜거린 탓이었다.

    ‘거기가 150년 전통의 요릿집인 건 알고 있는 건지.’

    간장에 조린 무 하나조차도 요리로 승화시켰던 섬세한 정성.

    일식의 정수.

    회귀 전, 위를 들어내며 음식을 거의 못 먹게 됐기에 김밥 한 조각을 먹더라도 보다 맛있는 걸 찾았던 종혁으로선 행복한 시간이었다.

    돈이 아까운 건 오히려 이 둘을 보고 할 말이었다.

    "하긴."

    솔직히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십대의 입맛엔 맞지 않을 맛이었다.

    ‘그냥 그런 데 가 봤다는 걸로 만족해라.’

    훗날 소영과 수호가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지 모르지만, 그때 그런 곳에 가서 버벅거리지 않을 경험을 쌓았으니 값어치는 했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교토까지는 안 따라와도 되는데."

    종혁은 블랙박스 개발자인 키타라 쿠니히로를 만나러 교토에 가야 한다. 하지만 비행기로 잠깐 다녀오면 그만이었다.

    지금처럼 새벽에 출발해 점심 전에 돌아오면 첫 해외여행 마지막 날인 오늘의 스케줄을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일 떠나면 됐다.

    "종혁아! 서운하게 그런 말 하면 안 돼! 우리가 보통 친구야?!"

    "맞아! 친구끼린 어디든 함께하는 거야!"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돈 떨어졌냐?"

    "……응."

    "일본 물가 비싸."

    "에라이."

    예쁘다고 아무거나 막 산다 싶었다.

    소영은 주로 옷이나 액세서리 등 패션 아이템을, 수호는 게임이나 포스터, 만화, 열쇠고리를.

    첫 해외여행이라고 들떠 식비와 교통비 등의 경비 빼고 다 써 버린 거다.

    종혁은 만 엔 두 장을 내밀었다.

    "한국 돌아가면 갚아. 이자는 10퍼센트다."

    "감사합니다."

    "사랑해, 종혁아."

    소영이 흔들리는 눈으로 종혁의 손을 꼭 잡았다.

    "개수작 부리지 마라. 이자 안 깎아 준다."

    "……칫."

    수호도 혀를 찼다.

    그들은 그렇게 일본에서 천 년의 고도라 불리는 교토로 향했다.

    *  *  *

    약속 장소는 그의 집이었다.

    차고가 있는 주택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자동차가 없었다.

    "오는 길에 본 카페에서 놀고 있어. 금방 끝날 거야."

    종혁은 벨을 눌렀다.

    띵동! 띵동!

    "……음? 안 계시나?"

    약속 시간보다 15분 일찍 도착하긴 했지만, 사람의 인기척이 없으니 당황스러웠다.

    그때였다.

    부스럭! 부스럭!

    면바지에 셔츠를 입은 사내가 비닐봉지를 든 채 다가오고 있다.

    그러다 종혁, 아니, 수호를 발견하곤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촉이 선 종혁은 그에게 다가갔다.

    "키타라 쿠니히로 씨?"

    "……아, 이치로가 말한."

    "한국의 권&박 홀딩스의 최종혁입니다."

    "요젠 르네상스 반도체의 키타라 쿠니히로입니다. 한국 이름은 정수찬입니다."

    종혁은 화들짝 놀랐다.

    "재일 교포셨습니까?"

    "아니요. 열두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이민을 왔습니다. 지금은 한국어가 어색하니 부디."

    "아, 예. 그럼 키타라 씨로 지칭하면 되겠습니까?"

    "정수찬으로 충분합니다."

    둘은 명함을 나눴다.

    종혁으로선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일본에선 반도체 기업 순위 3위의 제법 인지도 있는 회사다.

    ‘총괄 매니저?’

    이제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총괄 매니저이다.

    그것도 이 일본에서 한국인 이민자 신분임에도.

    성공 신화라고 할 수 있었다.

    "한데 이쪽 분은?"

    쿠니히로, 아니, 정수찬이 수호를 가리켰다.

    "아, 제 일행입니다. 저희 회사의 인턴인데 정수찬 씨 댁엔 저만……."

    "같이 들어오시죠. 따라오세요."

    ‘흠.’ 종혁은 수호를 봤다.

    "너도 들어오라는데 어쩔래?"

    "나, 나도? 왜?"

    종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눈빛이 꽤 아련했지.’

    "싫으면 안 들어가도 돼."

    "……아니, 같이 들어갈래."

    ‘그리고 볼래.’ 종혁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건 소영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으음. 그래. 들어와. 대신 조용해야 된다?"

    그렇게 그들까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정수찬의 주택은 마치 혼자 사는 사십대 남자의 집은 이런 거다, 라고 말할 만큼 꽤 단출했다.

    TV에 소파, 커튼은 스탠다드한 스타일.

    마치 금방이라도 떠날 것처럼 최소한의 살림만 있는 삭막한 분위기.

    탁상 위의 작은 가족사진만이 이 사막함을 환기시키고 있었다.

    "음?"

    그 가족사진을 살핀 종혁은 왜 정수찬이 수호를 보고 반응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일본 사람 집은 이렇게 생겼구나. 어? 야, 박 난쟁이. 이 사진 봐 봐. 너랑 비슷해."

    "누가…… 에이, 전혀 아닌데?"

    "아니야. 동글동글한 머리랑 밤송이머리가 딱 너야. 느낌이 비슷해."

    소영의 말처럼 사진 속 어린 소년과 수호의 전체적인 느낌이 흡사했다. 닮은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데도.

    ‘저 아이군. 이래서 들어오라고 했던 거야.’

    슥! 슥!

    정수찬이 부엌에서 차를 내왔다. 이내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녹차 잔이 종혁 일행의 앞에 놓였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 드릴 게 없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자, 잘 먹겠습니다."

    호록.

    쌉쌀하고 구수한 녹차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훌륭합니다. 입이 호강을 하네요."

    희미하게 웃은 정수찬이 수호를 보았다.

    종혁은 안타까워 혀를 찼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지.’

    "저 친구의 취미는 게임과 만화입니다."

    "음?"

    "일어 사전을 뒤져 가며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플레이하고, 일본 연예인도 좋아해서 패션을 곧잘 따라 하는데 알바를 해서 충당합니다. 공부는 반에서 15등 안에 들고요."

    "……그렇군요. 공부도 잘하는군요."

    "운동신경은 없는데, 자전거는 곧잘 탑니다."

    "자전거까지."

    일본 학생들이 등하교용으로 애용하는 자전거.

    수호를 가만히 바라보며 죽은 아들을 투영하던 정수찬은 이내 곧 종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으로 갔을 겁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진 정수찬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든 그의 눈은 방금 전처럼 무심해져 있었다.

    "사정은 이치로에게 모두 들었습니다. 제게 얼마까지 지원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반도체는 돈을 폐지처럼 갈아 버리는 파쇄기입니다."

    종혁은 놀랐다.

    정수찬은 씁쓸하게 웃었다.

    "한국 기업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일본의 기업 문화는 아주 지독합니다. 상사의 명령이 법이고, 그런 상사는 변화를 끔찍이 싫어합니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며 의욕과 창의력도 사라졌습니다."

    ‘한국도 그런데.’ 한국도 만만치 않게 꽉 막혀 있다.

    종혁은 정수찬을 봤다.

    ‘이미 마음을 정했군.’

    "시제품을 볼 수 있겠습니까?"

    "시제품은 없지만, 설계도는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정수찬은 옆에 둔 노트북 전원을 켜서 종혁에게 보여 줬다.

    설계도를 볼 줄 모르는 종혁은 약간 당황했다.

    ‘이거 반도체 설계자를 수배해 봐야 하려나…….’

    "지원이 없는 상태라면 아마 앞으로 7년은 더 걸릴 겁니다."

    흠칫!

    종혁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시기가 얼추 맞아.’

    회귀 전 종혁을 비롯한 형사들은 일본에선 자동차에 영상저장장치를 달고 다닌다는 말에 굉장히 부러워했었다.

    ‘일본 경찰은 이제 범인 쫓기 편하겠다고 부러워했었지.’

    "예산을 많이 지원받는다고 해도 그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음?"

    "보다시피 설계도는 80퍼센트쯤 완성됐습니다만, 문제는 저장 메모리입니다. 그쯤 돼야 저장 메모리 용량이 만족스러울 만큼 커질 겁니다."

    그 말에 종혁은 이 사람이 블랙박스를 개발한다는 걸 확신하게 됐다. 종혁의 눈빛이 변했다.

    "한국으로 가시겠습니까, 아님 일본에서 하시겠습니까?"

    "일본에서 해도 됩니까?"

    "이치로 교수님도 일본에 남기로 하셨습니다. 저희 회사 입장에선 일본 법인을 세우기도 편하니 승인이 난 상태입니다."

    "일단은…… 한국으로 가고 싶습니다. 이곳은……."

    "괴로우시겠죠."

    수호와 비슷한 생김새의 일본 학생이 많다.

    까까머리에 가쿠란. 일본 남학생의 표준적인 이미지이다.

    아들이 죽지 않았으면 자라서 보여 줬을 모습.

    정수찬의 입장에서 일본은 견디기 힘든 장소이다.

    그렇기에 어디든 일본이 아닌 곳으로 가려는 거다.

    안정된 직장도 내려놓으며.

    그게 종혁으로 인해 한국이 됐을 뿐이다.

    다른 이가 손을 내밀었어도 정수찬은 그 손을 잡았을 것이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비극이 섞인 결정이기에 종혁은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1차 자본은 20억 엔, 한화로 음, 250억으로 하죠."

    쿠니히로는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갈 사람이 많아지겠군요."

    "좋은 숙소를 세워 두고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한 달 안에 넘어가겠습니다."

    종혁과 쿠니히로는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썼고, 악수를 했다.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그렇게 계약은 끝났고, 블랙박스는 한국에서 개발되기 시작했다.

    *  *  *

    "끄응. 머리 아파."

    부스스 몸을 일으킨 소영은 머리맡에 놓인 물을 들이켰다.

    "며, 몇 시지?"

    내일이면 한국에 돌아가야 되다 보니 교토에서 돌아오자마자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다가 정신을 잃었다.

    "11시구나……."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그녀는 하나인 방을 두 개로 만드는 여닫이문을 열었다.

    "너도 일어났네?"

    "……시끄러워. 머리 울려."

    "종혁이는?"

    "몰라. 온천탕 갔겠지. 시간 날 때마다 온천탕 갔잖아."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잠시 갈등하다 몸을 일으켰다.

    다시 누워 푹 자고 싶은데 마지막 밤을 그렇게 보내긴 싫었다.

    그녀는 한곳에 둔 목욕 바구니를 들고 일어섰다.

    "나 탕에 갈 건데, 넌?"

    "……갈래."

    정말 지겹도록 한 온천이지만, 너무 힘들어 어딜 갈 수 없다.

    둘은 흐느적거리며 야외 온천탕으로 향했다.

    촤악!

    뜨거운 온천수에 잠겨 있던 두꺼운 손이 짧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이렇게 쉬워도 되나 몰라."

    만약 거부한다면 삼고초려도 할 생각이 있었던 종혁으로선 좀 당황스러웠다.

    "그만큼 아픔이 크다는 거겠지."

    교통사고로 하나 있는 자식을 잃고, 블랙박스를 개발하려 들 만큼 한이 깊다.

    "잘해 줘야겠군."

    그렇게 다짐한 종혁은 어두운 밤하늘을 보았다.

    다시 돌아온 도쿄 료칸의 야외 온천탕은 이렇게 운치가 있었다.

    "운치는…… 교토가 컸지."

    쿄토의 일본 성들이나 명승들이 꽤 운치 있었다.

    다음번에는 교토의 진면목이라는 벚꽃을 보기 위해, 벚꽃 개화 시기에 다시 한번 이곳에 오고 싶었다.

    부스럭. 부스럭.

    인기척이 나는 입구 쪽을 일견한 종혁은 몸을 일으켜 다시 하늘을 봤다.

    "끄으! 그래도 좋긴 좋다."

    친구들과 함께해서 더 만족스러웠던 여행이었다.

    스르륵!

    "흐으응. 머리 아파……. 술 진짜 싫……."

    "응?"

    고개를 돌린 종혁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건 옆구리에 목욕 바구니를 끼고, 하얀 수건 하나로 몸을 가린 채 들어오던 소영도 마찬가지였다.

    "어? 어?"

    마른침을 삼킨 종혁은 냉정하게 말했다.

    "10시 넘으면 탕 바뀌는 거 잊었어?"

    일본 온천의 독특한 문화. 탕 바꾸기.

    "아, 어. 맞다. 응. 미안."

    스륵, 탁!

    뒷걸음친 소영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종혁의 잔뜩 성난 등 근육과 엉덩이가 눈앞에 살랑거렸다.

    난생처음 본 남자의 몸은 무척이나 야성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심각한 게 있었다.

    "나, 나 지금……."

    알몸을 보였다.

    그것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머릿속과 눈앞이 깜깜해졌다.

    옷을 집어들며 달리는 그녀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꺄아아아아악!"

    -으아아악! 고메나사이! 미안합니다!

    한편 종혁은 옆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수호는 여탕 들어갔나 보네."

    부럽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쾅! 후다닥! 풍덩!

    "오? 살아왔네?"

    "들어오던 사람이 초딩만 아니었으면 죽었을 거야."

    "다행히 탕에 아무도 없었나 보네."

    "응. 네가 없는 걸 확인했을 때 돌아 나왔어야 했는데……."

    뽀그르르!

    수호는 입까지 몸을 담갔다.

    그의 눈에선 더 이상 취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피식 웃은 종혁은 탕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탈의실로 향하는 문 옆에 달린 내선 전화기를 들어 방금 전 일을 설명해 줬다.

    긁어 부스럼일 수 있지만, 이런 일은 확실히 해 둬야 했다.

    "아, 그렇습니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다 전해 주시고, 저희 쪽 실수가 크니 그분들에게 여기 료칸에서 파는 장난감과 화과자 등 부식품 종류별로 전부와 샴페인도 한 병 보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종혁은 돌아와 수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끄억!"

    "잘 마무리됐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쪽도 종종 겪는 일이라며 이해해 준다더라."

    "진짜? 나 안 잡혀가?"

    "잡혀갈 거 무서운 놈이 남탕엔 또 어떻게 들어왔냐?"

    "잡혀 들어가면 마지막일 테니까……."

    "또라이냐."

    "몰라. 술기운 때문에 제정신 아냐."

    수호는 다시 입까지 몸을 담갔다.

    귀엽다는 듯 피식 웃은 종혁은 하늘을 봤다.

    "이제 정말 마지막 날이네."

    "응. 그러네……."

    수호의 눈에도 짙은 아쉬움과, 이번 여행 동안 같이 돌아다니며 쌓은 추억이 스쳐 지나갔다.

    "서울 가면 어떻게 할 거야? 개학까지 시간 남았으니까 다시 알바……."

    "아니, 공부할 거야."

    종혁은 단호하게 말하는 수호를 멍하니 보았다.

    "종혁이 너 오늘 그렇게 나이 많은 어른이랑, 어른에게 꿀리지도 않고 말하며 똑같은 눈높이에서 계약하는 거 보니까 생각이 많아지더라."

    나지막하게 울리는 말은 얇은 대나무 벽이 가로막는 옆의 여탕에도 닿았다.

    종혁은 놀랐다.

    "그랬어?"

    "응. 그 교수님 만날 때도 이번만큼은 아니지만 그랬었지. 아, 법대나 경찰대를 준비하는 종혁이는 나랑 많이 다르구나."

    "야, 그건. 음, 그래서 갑자기……."

    수호는 볼을 붉혔다.

    "그래서 공부할 거야."

    "나도-!"

    종혁과 수호는 여탕 쪽을 보았다.

    소영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

    ‘꼭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야. 아니, 더 잘나질 거야.’

    종혁은 그 다짐하는 표정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내 행동이 얘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니…….’

    쑥스러웠다.

    "그래도 다행이네. 내가 너희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서."

    "나도 네가 친구라서 고마워."

    "……그래. 나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이었지만, 가슴은 뻐근할 정도로 좋았다.

    "아, 그런데 종혁이 넌 한국 돌아가면 어떻게 할 거야?"

    "나? 합숙 참가해야지."

    서울지방검찰청 인턴과 이번 일로 한 달 합숙 중 2주를 빼먹었다.

    "너도 참 바쁘네."

    "그러게."

    그래도 이렇게 바쁜 삶, 나쁘지 않았다.

    과거와 다른 길을 걷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종혁, 소영, 수호 셋의 일본 여행 마지막 밤이 저물어 갔다.

    *  *  *

    ‘살려 줘.’

    누가 좀 살려 줬으면.

    누가 구해 줬으면.

    왜 가출했을까. 아니, 왜 속았을까.

    힘들어도 참을걸.

    몇 년 전 험한 꼴을 겪고 집에 돌아갔지만, 가족들과 이웃들의 시선을 못 이겨 다시 가출한 소녀의 심장이 찢어진다.

    닭장보다 허름하고 더러운 탈의실, 화장대 앞에 앉은 18살, 19살 소녀들이 거울을 보며 화장품을 든다.

    이제 화장을 하면 영업 시작이다.

    모르는 어른에게 안겨 몸이 만져져야 한다.

    벌레가 기어가는 끔찍한 감촉.

    하지만 웃어야 한다.

    "웃어야……."

    주르륵!

    억지로 웃던 거울 속 소녀가 눈물과 함께 무너졌다.

    "누가 제발……."

    쾅!

    "뭐 해! 곧 영업 시작인데 아직까지 화장도 안 하면 어쩌자는 거야! 오늘 한 따가리 할까! 엉?!"

    "죄, 죄송해요!"

    화를 내는 사람은 고작 한 명이지만, 반항할 수 없다. 저번에 한 언니가 반항했다가 맞아서 지금도 침대에 누워 있다.

    황급히 손을 움직이려던 그때였다.

    빠아악!

    "컥! 어떤 씨발놈이!"

    뒤통수를 잡으며 고개를 돌렸던 사내는 하얗게 질렸다.

    "검찰이다, 씨발놈아."

    ‘거, 검찰?’ 삼십대 후반, 정장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검사가 미성년자들을 보며 푸근히 웃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얘들아."

    주르륵!

    소녀들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이번엔 다른 의미였다.

    이건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대한민국 검경이 유흥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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