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0화 (60/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0화>

*  *  *

"흑! 이제 무슨 재미로 일해?"

"종혁아. 안 가면 안 될까?"

치이익.

삼겹살이 구워지는 식당. 강철선 사무실의 여성 사무관들이 종혁의 소매를 잡은 채 눈물을 그렁거린다.

"일감이 쏟아지니까요?"

부장검사도 이해하는 판이 깔렸겠다, 종혁은 2월 이 시기의 작전 세력들을 죄다 알려 주었다. 그렇다 보니 지금 이 삼겹살집도 저녁 식사 명목으로 겨우 시간을 뺀 거다.

사무관들의 얼굴이 굳었다.

"쳇. 이래서 눈치 빠른 애들은 싫다니까."

"뭐, 우리 종혁이가 애는 아니지만."

"허벅지 만지면 직장 내 성추행으로 고소합니다."

"……왜! 좋은 건 나누자, 좀!"

"싫어요."

단호하게 뿌리친 종혁은 킬킬 웃고 있는 강철선에게 다가갔다.

"곧 미성년자를 불법 취직시킨 유흥업소들을 상대로 일제 단속이 벌어질 끼다."

대검찰청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언론에서 그렇게 때려 댔는데, 대검이 움직이지 않을 리 없다.

이제 대한민국 모든 검찰이 움직인다고 봐야 했다.

"부탁드릴게요."

법의 테두리 안에 있음에도 착취당하는 미성년자들.

암묵적이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회의 인식에서 잊힌 아이들. 지금도 도움의 손길을 바라며 고통받고 있을 아이들.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해 주세요. 그리고 아이들을 보호해 주세요."

"……오야. 걱정 마라."

대검과 검사장이 허락한 일이다.

지검장을 웃도는 빽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법망을 빠져나갈 수 없다. 그게 설사 그런 놈들에게 돈을 먹은 공무원이라도.

"그리고 수고했데이!"

"수고했어!"

정호부터 방금까지 장난친 두 여성 사무관들도 박수를 쳤다.

종혁은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동안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렇게 종혁의 서울지방검찰청 인턴 생활이 끝을 맺었다.

‘그럼 이제 시작해야지.’

개학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최대한 바쁘고 알차게 움직여야 했다. 종혁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  *  *

짜악! 짝!

거실에서 찰진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악! 억!"

고정숙은 무표정한 얼굴로 종혁의 등짝을 때리고, 공벌레처럼 몸을 만 종혁은 맞고만 있다.

맞을 짓을 했기 때문이다.

"니가. 사람이니. 이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여행을…… 가?!"

"그땐 진로를 정하기 위한 여행이었잖아! 이번엔 목적이 달라요! 더욱이 혼자 가는 것도 아니잖아!"

"……."

종혁은 손이 멈추자 빼꼼 고개를 들었다.

고정숙이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다.

"본격적인 고 3 시작 전에 머리 터지도록 놀고 싶다고?"

"넵. 미련을 털어 버리고 와서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하려고요."

"……핑계 좋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수능생들이 꽤 됩니다, 어머니. 그리고……."

종혁은 재빨리 고정숙의 팔짱을 꼈다.

"나 며칠 전까지 서울지검에서 인턴으로 일했잖아. 응?"

"……몰라. 하루에 한 번씩 연락만 안 해 봐라."

"사랑합니다!"

퍼억!

팔꿈치가 명치에 박혔다.

"좀 있다가 씻고 밥 먹으러 와."

"넵!"

어머니 고정숙은 하숙집이나 고시원처럼 세입자를 위해 2층에서 뷔페를 운영하기로 했는데, 종혁은 적극 찬성했다.

문을 닫고 나가는 어머니를 보던 종혁은 머리를 긁었다.

웅성웅성.

들어가고 나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김포공항.

방콕 아시안게임 때 이용하긴 했지만, 인천국제공항이 아니라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

-재우를 말입니까?

"힘들까요?"

-음. 감 PD가 내놓을지…….

김재우는 감진영이 직접 캐스팅했다.

-그 사람 겉보기와 달리 인재 욕심이 많습니다. 저도 넌지시 말을 건네봤지만…….

단호하게 거부했단 소리이다.

툭툭.

종혁은 발을 까딱였다.

준형의 그룹은 데뷔곡부터 대박을 터트린다.

그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메인 보컬인 재우이고, 그로 인해 천문학적인 수익이 발생한다.

그걸 감진영과 나눌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앞으로 나올 대박 곡들이 감진영 손에서 탄생한다는 건데…….’

이래서 처음에 그들이 감진영 소속이라 생각한 것이다.

일이 어그러지면, 후에 레전드라 불리는 그룹도 탄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감진영 씨는 왜 그런 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는 겁니까? 차라리 비싼 값 주고 팔아 버리면 될 텐데요."

-이번에 사세 확장과 가수 한 명을 영입하면서 큰 출혈이 있었습니다. 재우는 긴급 수혈과 같은 의미일 겁니다. 어쩌면 예상하지도 못한 당첨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럼 재우를 영입하는 건 더 어려워지겠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종혁은 혀를 찼다.

"음악 사업에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는 몰랐군요. 행사도 많이 돌릴 텐데…… 허."

이 시기엔 그랬다. 사회 전체적으로 인권이란 걸 그리 중요히 여기지 않은 시대이다 보니, 이 시기의 연예인, 특히 그중 잘나가는 가수는 6시간 자는 게 꿈이라 말할 정도이다.

-아, 그건 투자자들 때문입니다.

"투자자요?"

-감 PD 자기 지분이 30퍼센트도 안 될 겁니다.

‘고작?’

종혁의 눈이 빛났다.

이 골치 아픈 상황에서 활로가 보였다.

"어쩔 수 없군요. 지분을 사 드리죠."

-예? ……예에?!

"그만큼 사정이 어렵다면, 아마 배당금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상황일 겁니다. 두 배 가격으로 사 드립시다.

두 배를 주고 사도 10년 후를 생각하면 남는 장사이다.

-최 자문님!

종혁은 정영탁에게 투자 자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룹 활동에 있어서는 소속감이라는 게 중요하잖습니까. 대박이 터져서 축하를 해야 하는데 서로 한자리에 모이지 못한다면 좀 서운하지 않을까요?"

-아니, 허어…… 그런 이유였습니까? 후. 자문님의 쭌이들 사랑은 정말 대단하시군요.

"반지하에서 고생할 때부터 알았던 형들이니까요. 하하."

-……알겠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역시 정영탁은 좋은 사람이었다.

종혁은 쐐기를 박았다.

"이번 일에 한해선 자금이 무한대로 투입될 겁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헉!

"그럼 끊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종혁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대박 복권을 하나 더 긁을 수도 있겠군."

훗날 시총이 수천억에 달하는 JYK다.

로또를 넘어 거의 미국 파워볼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절로 기분이 좋아진 종혁은 콧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확인했다.

"올 때가 됐는데……."

"종혁아!"

큰 배낭을 흔들며 달려오는 두 남녀.

수호와 소영이었다.

이번 여행을 함께할 동반자는 이 두 명이다.

종혁은 그런 둘, 아니, 수호의 옷차림을 보곤 눈을 껌뻑였다.

"방학 때 알바한다더니, 정비소에서 일했냐?"

정확히는 점프슈트라 불리지만, 정비사 옷이라는 인식이 박힌 옷을 입고 있다. 그것도 찬란한 은색으로.

"이건 뭐 은갈치도 아니고……."

"최신 패션이거든! 우승현 몰라?! 나나나나 나나나, 엉? 아끼고 아끼던 걸 해외여행 간다고 겨우 꺼내 입은 건데!"

"아, 그래…… 우승현."

딱히 좋아하는 인물은 아니다.

종혁은 소영을 봤다.

아직 추운지라 코트와 청바지를 입은 그녀.

"예쁘네."

"진짜? 헤헤."

"가자. 늦겠다."

그들은 공항 안으로 향했다.

*  *  *

나리타 국제공항.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수호의 어깨가 축 처져 있고, 소영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하다.

"한 번만 더 그 옷 입어 봐! 가위로 찢어 버릴 테니까!"

생애 첫 해외여행에 잔뜩 기대했던 그녀는 초장부터 사고를 친 수호를 보며 이를 갈았다.

‘현희 고것도 없는 여행이라서 얼마나 기대했는데!’

방해꾼이 없는 여행.

종혁과의 여행.

"미안하다니까……."

입국 목적을 관광이라고 말했지만, 옷차림 때문에 취업이 아니냐 의심을 받은 수호.

"진짜 종혁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종혁이 유창한 일본어로 한국의 최신 패션이라고 대변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다.

"영어가 안 통할 줄은 몰랐지…… 반 친구가 영어는 만국 공통어라고 했는데……."

"하! 영어로는 설명할 수 있고?"

"그, 그건……."

못 한다.

"그러는 너는? 너는! 너도 종혁이가 가르쳐 준 일본어 단어 몇 개만 외운 것뿐이잖아! 자기도 못 하면서!"

"그래도 난 무사통과였지!"

"이게 진짜!"

‘괜히 같이 왔나.’ 하지만 이번에도 혼자 여행을 간다고 했으면, 그것도 해외여행이다 보니 절대 허락을 못 받았을 것이다.

종혁은 한숨을 쉬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여행 첫날부터 싸울 거면 돌아가자."

"흡!"

"……."

"안 싸울 거지?"

끄덕끄덕!

"좋아. 가자."

그들은 미리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와!"

"우와!"

족히 20평은 될 바닥엔 다다미가 장판처럼 깔려 있고, 벽엔 산수화와 산문이 적힌 족자들이 걸려 있다. 한국에선 보지 못한 이국적인 인테리어에 수호와 소영은 언제 싸웠냐는 듯 함께 방 안을 헤집고 다녔다.

"TV를 이용하시는 방법은……."

종혁은 방 안 시설물 사용법을 설명하려는 종업원을 말렸다.

"대충 알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아, 저희 료칸을 이용하셨나 보군요!"

"네. 예전에."

회귀 전 도쿄로 도망친 부산 밀수 조직 두목을 잡기 위해 도쿄를 헤집고 다닌 적이 있는데, 그놈이 몸을 숨겼던 곳이 바로 이 료칸이다. 일본 경찰도 노리던 놈이라 공조를 하지 못해 직접 숙박을 하며 기회를 노렸는데, 다행히도 이틀 차에 태평하게 온천을 즐기던 걸 덮쳐서 잡았다.

"여긴 여전히 좋네요."

다다미 냄새가 상쾌하다.

여종업원의 얼굴에 자부심 어린 미소가 번졌다.

"칭찬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종혁은 그러며 만 엔을 내밀었다.

"핫! 티, 팁을 이렇게 많이 주시면……."

"전 괜찮지만, 쟤들은 일본에 대해 잘 몰라서요. 아마 시끄러울 겁니다."

수호와 소영이 첫 해외여행이다 보니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제어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그녀는 다부진 표정을 지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전화로 하네코를 찾아주세요. 저희 료칸과 도쿄의 모든 것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부디 편히 쉬시길."

허리를 공손히 숙인 그녀는 뒷걸음으로 물러났고, 복도에서 무릎을 꿇고 문을 닫는 그녀의 모습에 수호와 소영은 잠시 얼어붙었다.

종혁은 입을 뻥긋거리며 문을 가리키는 둘을 보며 푸핫 웃었다.

"일본은 원래 서비스 정신이 강하니까 신경 쓰지 마."

"……일본에 자주 와 봤나 봐?"

"맞아. 일본어도 엄청 유창하고."

종혁은 택시 안에서 택시 기사와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마치 우리말을 하듯 유창했다.

"국제 대회 때문에 몇 번 와 봤지. 일본어는 따로 익혔고."

"따로……."

둘은 종혁은 대단하다는 듯 보았다.

그러다 소영이 박수를 짝 쳤다.

"아, 맞아! 종혁아, 아까 택시비 얼마 나왔어? 여기 숙소는 너 후원해 주는 회사가 계산해 줬다 쳐도 그건 각자 계산해야지."

정확히는 이들 주머니 사정을 걱정한 종혁이 그렇게 꾸몄다.

소영과 수호는 종혁의 후원사가 권&박 홀딩스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97년에 수호를 도와준 적이 있기에 혹여 자존심이 상할까 숨긴 상태였다.

"응? 아냐. 됐……."

"됐다고 하기만 해. 다신 너랑 여행 안 올 테니까."

정색하는 소영의 모습에 종혁은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수호도 그건 아니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 야무지다니까.’

종혁은 피식 웃으며 액수를 말했고, 둘은 입을 떡 벌렸다.

"……비, 비싸네. 그, 그래도 그 정도는 예산 안이니까…… 응."

"나 아키하바라에 갈 수……."

퍼억!

옆구리를 걷어차인 수호가 데굴데굴 굴렀다.

"야 이 폭력 마녀야!"

"시끄러워! 여행 계획표나 내놔! 네가 만든다며!"

"아!"

수호는 얼른 메고 온 배낭에서 연습장을 꺼냈다.

셋은 방 중앙, 앉은뱅이 의자가 있는 탁자에 둘러앉았다.

"일단 오늘 저녁은……."

"저녁 식사는 빼. 가이세키라고 일본 전통 요리가 석식으로 나오거든."

"아, 그래?"

수호는 저녁 식사에 줄을 죽죽 그었다.

종혁은 얼른 덧붙였다.

"그리고 내일 아침 스케줄도 빼 줘."

"응? 무슨 일 있어? 아니면 늦게 일어나려고?"

"아니.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만나야 할 사람?"

"응."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 비운의 천재.

지금도, 미래도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누군지도 모르지만 한국 과학수사에 큰 족적을 남긴 존재.

일본에서 만나야 할 사람은 바로 그였다.

‘곧 만나러 가겠습니다, 교수님.’

종혁은 씁쓸하게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