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9화 (59/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9화>

18. 잊힌 인재들

파라라라라라!

10층의 주상복합 빌딩의 옥상에서 현수막 두 개가 펼쳐진다.

<경 정혁빌딩완공 축>

고정숙의 ‘정’과 종혁의 ‘혁’을 따서 정혁 빌딩.

<최소 16평. 월세 16만 원, 전세 3000만 원부터. 상가 문의.>

짝짝짝짝짝!

"축하드립니데이, 정쑥 씨!"

"축하드려요!"

강철선 일가, 소영이네, 수호네, 동일고 유도부, 준형이 형네, 김종두 반장과 특수본 형사들 등 종혁과 깊은 인연을 맺은 모든 이들이 참여한 자리.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서 고정숙의 눈가가 눈물에 젖어든다.

지난 약 20여 년간, 남편을 사고로 보낸 후 힘들게 종혁을 키워 왔던 세월이 그녀의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 사람도 이걸 함께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18살 꽃다운 처녀를 홀랑 낚아챘던 못된 남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과처럼 빨개진 얼굴로 수줍게 꽃을 내밀던 모습이 귀엽던 덩치 큰 도둑놈.

"이 좋은 날에 왜 울어."

"울기는 누가. 흥. 이 엄마 그렇게 나약한 사람 아니다."

"알지. 아무렴."

종혁은 어머니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160센티미터도 안 되는 작은 체구임에도, 얼마든지 새사람을 찾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젊은 나이였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키워 준 어머니가 고맙고 존경스럽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이제 꽃길만 걸어요.’

"이제 엄마도 새 출발해야지?"

"……됐어. 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어? 반응이 좀 이상한데? 누구야? 어떤 놈팽이야?"

이제 좋은 분을 만나 엄마 고정숙이 아니라 여자 고정숙으로서 행복해지길 바라지만, 막상 그런 기미가 보이니 울컥한다.

"됐다니까. 이렇게 자리를 빛내 줘서 고마워요, 여러분."

종혁은 도망치듯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어머니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뒤를 파 봐야겠군.’

좋은 사람이라면 인정을 해야겠지만, 아니라면.

‘차라리 죽여 달라고 말하게 해 주지!’

종혁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요! 브로!"

"종혁아!"

"……와 줘서 고마워요, 형들. 음식은 입에 맞아요?"

종혁은 고사 음식뿐만 아니라 아예 호텔 출장 뷔페를 불렀다.

"겁나 맛있어!"

"대빵 맛있어! 와 씨, 이게 얼마 만에 먹는 고기야?"

양념 잘된 갈비 한 점에 세상 기쁘게 웃는 그들.

역시 단순한 형들이었다.

"응? 회사에서 밥 안 줘요?"

"다이어트!"

"우리 너무 먹는대!"

"아아."

드디어 데뷔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쟤는?"

키가 거의 종혁 본인만 한, 짧은 머리에 째진 눈, 물렁살의 덩치가 유도부원들과 함께 음식을 작살내고 있다. 누가 보면 유도부원이라 착각할 만큼 위화감이 없다.

"아, 쟤? 요, 재우-!"

눈을 동그랗게 뜬 재우가 쪼르르 달려왔다.

"재우, 인사해. 여긴 종혀기. 아마 동갑일걸?"

"아, 안녕?"

"몇 살?"

"19살. 빠른이긴 한데……."

종혁은 재우의 어깨를 잡아 힘을 주었다.

"악!"

"형이라고 불러라."

"……네, 형."

준형과 일행들이 피식 웃었다.

"아무튼 감 PD 쪽 앤데, 우리랑 함께하게 됐어. 성격도 좋으니까 우리 빼밀리 하려고! 아, 용준이는 배우로 데뷔하기로 했어! 혀기 연기 대빵 잘해!"

"하하. 그렇게 됐다."

대답하는 용준, 훗날 정혁이란 예명으로 활동하게 되는 이는 시원섭섭하게 웃었다.

‘이런 거였나?’

이 그룹의 마지막 피스였던 메인 보컬 재우가 감진영 대표 소속이었다는 건 몰랐던 종혁이다.

"아, 그래요? 성격이 좋아요?"

"감 PD가 얘한테 우리랑 친해지라는 미션을 줬거든? 그러니까 바로 자기 돈 모두 털어서 까까랑 밥 사 줬어!"

"상경하면서 가져온 전 재산이었대!"

"정말요?"

"형들! 아, 머리 헝클어져요!"

종혁은 놀랍다는 듯 재우를 봤다.

19살 어린 소년이 전 재산을 턴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만큼 간절하다면 믿을 수 있지.’

그 덕분인지 완전히 저들 사이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파이는 나눠 먹는 게 아니지.’

종혁은 조만간 정영탁 대표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배고프거나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네, 형. 근데 저 많이 먹는데."

"괜찮아. 내가 너보다 더 먹어."

언제나 배고픈 십 대, 돈 앞에서 쿨한 종혁의 모습에 재우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머, 멋지다!’

재우는 꼭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를 뒤로한 종혁은 김종두 반장을 찾았다.

"음식들은 입에 맞으세요?"

김종두 반장과 특수범죄수사과 형사들은 대답 대신 엄지를 치켜들었다. 넉살 좋고 수더분한 그 모습에 옛날 생각이 나 절로 웃음이 나왔다.

"크. 몇 년 전만 해도 수입조차 안 되던 오렌지를 이렇게 쌓아 놓고 먹을 수 있다니! 이 년 전에 우리들 고생시키던 맹랑한 꼬마가 이런 호강을 시켜 주다니! 역시 넌 뭐가 돼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하. 가실 때 오렌지 싸 드릴게요."

9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을 어지럽게 했던 야타족과 오렌지족.

그중 오렌지족은 한국에 수입이 안 되는 오렌지를 먹는다고 해서 오렌지족이라는 설이 있다.

"나야 고맙지!"

"특수 일은 좀 어떠세요?"

무슨 일인지 형사들의 표정이 묘하게 어두워졌다.

김종두는 환하게 웃었다.

"잘되지! 걱정 마라!"

‘안 되는구나.’ 대충 그럴 거라고는 예상했다.

대한민국에 발생하는 모든 형사 사건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특수범죄수사과.

본청 광수대와 영역과 컨셉이 겹친다.

이른바 굴러온 돌이었다.

"그렇구나. 잘되는구나. 음……."

김종두 반장이 눈을 빛냈다.

학교 폭력 일진 소탕부터 송양자 사기 미수 사건, 파란 양말 신은 소녀 사건, 한상원 위치 제보 및 검거, 대검의 김 의원 사건과 이번 100억대 주가 조작 사건까지. 거의 사건을 몰고 다니다시피 한 종혁이다.

보통 일이 아닐 게 분명했다.

"왜?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아니요. 바쁘지 않으시면 저기 강 검사님과 공조를 이루면 어떨까 했거든요."

"서, 서울지검의 영감님과?!"

"뭐, 바쁘시다면 어쩔 수 없고요."

턱!

김종두가 종혁의 손을 잡았다.

지리상의 특수성 때문에 정치, 경제적으로 중요한 사건. 급수가 다른 대형 사건만 취급하는 서울지방검찰청과의 공조다.

대검이 아닌 게 아쉽지만, 특수범죄수사과가 본청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였다.

‘이 보물이 또!’

"허흠. 무슨 일인데?"

흐흐 웃은 종혁이 강철선을 봤고, 눈이 마주친 그는 접시를 든 채 다가왔다.

"와?"

"요새 바쁘시죠?"

"누가 부장님 허파에 바람을 넣어서 오줌 싸고 손 닦을 시간도 없제. 와, 쪼매 더 있을라꼬?"

그렇게 말하는 강철선이 눈을 가늘게 떴다.

황종수를 취조한 날, 수사관들을 통해 종혁과 부장검사가 나눈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저도 학교만 아니라면 그러고 싶은데……."

아쉽지만, 정말 아쉽지만 미래를 위해선 학교에 다녀야 한다.

"대신 이분들은 어떠세요?"

"본청 특수범죄수사과 과장 김종두입니다, 영감님."

"서울지검 경제범죄형사과 강철선입니다."

"경제 범죄! 아이고, 어려운 일을 하십니다. 고생하십니다."

"어데요. 일선에서 고생하시는 형사들만 하겠십니꺼?"

둘은 서로를 칭찬하며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었다.

"특수범죄수사과가 광역수사대만큼 권한이 세거든요."

그렇게 말한 종혁의 시선을 받은 김종두가 입을 열었다.

"저희 특수는 범죄의 종류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요?"

강철선의 눈이 빛났다.

"흠. 안 그래도 이놈의 범죄자 새끼들이 작당 모의를 하는 게 눈에 뻔히 보였는데도 인원이 적어가 수사를 못 했는데……."

"저희에게 맡기시죠. 소스만 넘겨주시면 살까지 예쁘게 발라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너무 나만 득을 보는 것 같은데요……."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저희가 꼭 잡아야 하는 놈들이 있으면 검사님께서 도움을 주시는 겁니다."

"꼭 잡아야 하는 놈들이요?"

"뒷배 믿고 설치는 놈들 말입니다."

"……."

잠시 그들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둘의 입이 비틀어졌다. 이 순간 서로의 이해가 일치했다.

"야, 우리 김 과장님 딜 좀 할 줄 아시네요?"

"후후.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둘의 비릿한 미소만 보면 마치 범죄자가 작당 모의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됐다.’

이로써 올해 대한민국을 분탕질할 작전 세력과 사기꾼을 모두 검거할 판이 완성됐다.

이 정도면 이제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일단 적당한 놈으로다가 한 놈 보내이소. 모가지 꺾어다 법정에 앉혀 드리겠심더."

"아이고. 그렇지 않아도 얄미운 놈이 하나 있는데……."

둘은 후후 흑막처럼 웃으며 이야기했고, 종혁은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종혁아, 내 좀 보제이."

눈을 빛낸 종혁이 강철선과 함께 옆으로 빠졌다.

"나왔습니까?"

"……하여튼 눈치는 빨라서."

"흐흐."

강철선은 피식 웃었다가 이내 표정을 굳혔다.

"나왔다. 국가수 인마들이 다 달라붙어서 분해했다. 근데…… 텄다. 지문이 딱 하나 나왔는데, 겹쳐서 뭉개졌다 카더라. DNA는 죄다 오염. 돌아 버릴 일이제."

각오는 했지만 적잖이 실망한 종혁은 이어지는 말에 의아해했다.

"지문은 분리하면 되잖아요?"

"할리우드 영화 이야기하나?"

"아……."

새삼 지금이 1999년도라는 걸 실감한다.

‘그러니까 디지털 포렌식도 없고, 지문 분리도 안 돼?’

미래엔 DNA가 어느 정도 오염이 돼도 검사가 가능하다.

고구마가 명치에 얹힌 듯 답답했다.

지금도 증거가 있어도 검사를 하지 못해 거리를 당당히 활보하는 수많은 범죄자들을 떠올리자 머리끝까지 열이 올랐다.

‘결국 기술이 발명될 때까지 이렇게 답답…… 아니지?’

"아버님, 어떤 기술을 발명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목적성과 개발자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시간과 예산 아니겠나?"

"……그렇죠. 인재와 시간과 예산이죠."

"와? 대학이나 연구소에 투자할라꼬? 그기 복권이라카던데? 한두 푼 들어가는 것도 아이고."

맞다. 기술 개발은 복권이다.

기껏 개발을 해도 효용성이나 대중성이 없다면 망한다.

하지만 100퍼센트 당첨되는 복권을 알고 있다면?

사지 않을 수가 없다.

‘씨부럴. 답답해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개발한다!’

종혁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  *  *

80평의 넓은 집. 아이보리 톤의 인조 대리석으로 벽과 바닥을 채우고,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넓은 거실을 환하게 밝힌다.

명품 와이드 TV 등 모든 것을 새것으로, 최고급으로 채운 보금자리. 베란다엔 고정숙을 위한 작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시대를 앞선 인테리어였다.

"이제부터 여기가 우리 집이야, 엄마."

"그래. 이제부터. 여기가."

방금 전까지 떠들썩하던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며 조용해지고 나니 확 와닿는다.

그녀의 눈시울이 다시금 붉어졌다.

그건 종혁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부터 우리가 살 집이 여기구나.’

이제야 온전히 실감이 된다.

이제야 목표 하나를 이뤘다.

회귀 후 이런 영화 같은 집에서 어머니와 살겠다 다짐했던 목표를.

종혁은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정말 고생하셨어요."

"……아들도. 엄마가 못 해 준 게 많아서 미안해."

‘미안하긴요. 제가 더 미안하죠.’ 그러나 할 수 없는 말.

두 모자는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힘들었던 지난 삶을 위로했다.

"아, 그리고 이거 받으세요."

종혁은 반지 케이스를 내밀었다.

"이, 이건?"

금 모으기 운동 때 내놓았던 결혼반지다.

반지하에 살 적 물이 새거나 하면 어머니 고정숙이 가장 먼저 챙겼던 결혼반지, 청혼반지.

이걸 어렵게 회수한 종혁은 오늘 같은 날을 위해 간직하고 있었다.

"이 뜻깊은 날 아버지도 함께해야죠."

그녀는 결국 오열하고 말았다.

치익! 딱!

부엌, 대리석 식탁에 앉은 둘은 캔 맥주를 부딪쳤다.

식탁 위에 놓인 반지 케이스가 열려있다.

"그런데 너무 화려하지 않아? 재벌들이나 이런 곳에 살겠다."

"왜? 우리 정도면 재벌이라고 할 수 있지?"

"미친. 꼴랑 10층 건물 하나로?"

"푸핫!"

어머니의 욕은 언제 들어도 즐거웠다.

피식 웃은 고정숙은 다시 거실을 바라봤다.

"그렇게 바라던 우리 집도 마련했고, 먹고살 걱정도 없고. 이제 엄마는 원 없다. 너 결혼만 하면 돼."

"결혼은 무슨. 아들 이제 열아홉 살입니다, 아주머니."

"왜? 소영이나 현희 있잖아. 그 스키장 외국인 아가씨도 있고. 엄만 외국인 며느리도 오케이니까 아무나 골라잡아!"

풉!

맥주를 내뿜은 종혁은 당황했다.

"벌써 취했어? 그리고 현희는 초등학교 6학년이야!"

"칠 년만 지나면 스무 살이네."

"엄마!"

"싫으면 마라. 그러다 다 놓치고 후회하는 건 너니까."

"아, 진짜! 그러는 엄마는?"

움찔!

"……시끄러워."

"호오. 진짜였어? 누군데? 어떤 분인데? 단골손님이야?"

그녀의 동선상 단골손님이 가장 유력하다.

"시끄럽다니까."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입을 꾹 다무는 어머니의 모습은 아주 귀여웠다. 종혁은 피식 웃었다.

"누구든 엄마를 행복하게만 해 준다면 찬성이지만, 그래도 잘 알아보고 결정하세요. 아버지랑 사고 쳐서 결혼한 거 말고는 연애 경험 없잖아."

"누가 없대?"

탁!

반지 케이스가 닫혔다.

"……응?"

종혁은 눈을 껌뻑였다.

"엄마?"

"이 나이에 이 외모에, 들이대는 사람 한 명 없을 것 같아? 너 이 엄마를 아주 띄엄띄엄 본다?"

"……잠깐. 아줌마, 그거 자세하게 이야기해 봐."

"우리 쿨하게 서로 연애에 대해선 터치 안 하기 할까?"

"아니, 절대. 빨리 이야기해 봐."

"아, 맥주 달다. 한 캔 더 줘 봐."

"엄마!"

그렇게 새 보금자리로 이사한 첫날의 밤이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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