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6화>
* * *
-니 미칬나! 돈이 썩어 넘치나, 이 문디 자슥아!
종혁은 재빨리 귀에서 휴대전화를 뗐다.
그러다 잠시 후 잠잠해지자 다시 귀에 가져갔다.
"괜찮아요. 어차피 다시 팔면 되는걸요."
-그러다 안 팔리믄? 우짤낀데! 쌩돈 날리는 거 아이가!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정호는 고개를 저었다.
‘쌩돈은 이미 날렸습니다, 검사님.’
그나마 저녁 배달이 되는 식당이나 야식집, 족발집, 모두에 전화를 걸어 근처 경찰서, 파출소, 고아원, 그리고 야자를 하는 고등학교까지 배달을 보내 버렸다. 그 모든 식당 전부 앞으로 몇 시간은 주문에 치어 허덕일 것이다.
배달을 받는 곳들은 모두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오늘이 주문이 안 오면 올 때까지 그렇게 한대요. 이 새끼 진짜 미쳤어요.’
정호는 눈물을 삼켰지만, 종혁은 태연했다.
-닌 진짜 미칬다. 아니,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친놈이다. 겨우 안에 사람 있나 뭐 하나 확인한다꼬 중국집을 인수한다는 게 사람이 할 생각이가?
‘겨우가 아닌데.’
종혁이 노리는 넥스트에 작전을 벌이는 놈들이다.
이건 기회였다.
보통 작전을 펼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이상의 주식을 확보해야 된다. 그래야 허수 주문으로 폭탄을 돌릴 때 추격 매수하는 이들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정도 이상의 주식.
‘폭탄 돌리기의 폭탄은 시한폭탄이지.’
때가 되면 무조건 터지는 폭탄. 이들의 거래를 막아도 비상식적으로 상승한 주가가 폭락하는 건 막을 수 없다.
그때 그 모든 양을 매입한다면?
회수될 주식까지 이쪽에서 모두 먹는다면?
단숨에 넥스트의 대주주가 되면서 개미들의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다.
꿩 먹고 알 먹는 일이었다.
훗날 시가 총액이 조 단위인 넥스트의 대주주.
그걸 생각하면 중국집을 사들인 건 푼돈에 불과했다.
물 먹는 하마처럼 주식을 호가대로 매입하는 것도 말이다.
‘물론 조정은 거쳐야겠지만.’
-내 말 듣고 있나!
"괜찮아요. 정 안 팔리면 임대하면 되죠."
-임대?
"부동산은 불패. 사 놓으면 다 재산이잖아요."
-……글나.
강철선의 성난 목소리가 풀어졌다.
-큼. 다음에는 절대 그러지 마라. 내 부담스러워서 어디 일 시키겠나?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곧 증거 가지고 들어갈게요."
-술 한잔하게 퍼뜩 오래이.
전화를 끊은 종혁은 정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 진짜 우리 검사님은 복 받은 분이다. 너란 복을. 이건 뭐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아니고. 아니, 키다리 아저씬가?"
세상 누가 이런 돈을 투자하며 도울까.
"하하."
종혁은 머쓱해하면서도 아쉬워했다.
‘그 빌딩과 좀만 더 가까웠어도 도청을 하는 건데.’
1999년, 발전이 되지 않은 기술이 아쉬울 뿐이다.
탕탕!
"자자, 간식들 드세요!"
주방에서 고성수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언제 씻었는지, 얼굴이 말끔했다.
매매계약을 맺은 후 원래 주인이었던 노인이 도울게 있냐, 싸게 돕겠다는 말에 그 돈을 자기에게 달라며 나섰던 고성수.
어차피 딱 한 번만 배달 가면 되기에 그러라고 했는데, 앞치마를 입은 태가 제법이었다. 노인이 일할 때 입었던 거라는데 그걸 입으니 아예 딴사람처럼 보였다.
"오, 이게 뭐야? 군만두네?"
"있던 면 반죽을 쓰긴 했는데, 먹을 만할 거예요."
"직접 만들었다고? 이걸? 모양새가 그럴듯한데?"
종혁도 놀랐다.
‘손재주가 좋은데?’
역시 사람은 누구나 특별한 재주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군만두를 입에 가져갔다.
와삭!
마치 페스추리 과자처럼 가볍게 부서지는 만두피.
"……어?"
종혁은 당황했다.
그러다 보니 속내가 그대로 튀어나왔다.
"이거 왜 맛있어요?"
"……그러게. 이거 왜 맛있지?"
둘은 눈을 끔뻑이며 고성수를 봤다.
고성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워했다.
"아, 제가 이십 대 때 호텔 청식당에서 일해서요. 하하."
"엥?"
문을 잠근 중국집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띠리링! 띠리링!
"……!"
화들짝 놀란 종혁이 재빨리 카운터로 달려갔다.
"예, 중국집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오늘은 영업이 끝나서요. 다른 가게 사정이야 저희는 모르죠. 네, 들어가세요."
종혁은 정호를 보며 고개를 저었고, 정호는 혀를 찼다.
둘은 고성수를 보며 눈을 빛냈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언제 배달 주문이 올지 모르는 시간 싸움.
그 시간을 보내는 데는 남의 이야기가 최고였다.
그 포문을 정호가 열었다.
"너 정말 호텔에서 일했어? 어떻게?"
"아, 그게 원래는……."
띠리링! 띠리링!
‘……에이씨.’
중요한 도입부가 끊겼다.
종혁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예, 중국집입니다! 네?! 어디요?"
종혁은 재빨리 손을 저었다.
-603호라고요! 603호!
"네. 죄송합니다. 네. 네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종혁이 전화를 끊자 정호가 눈으로 물어 왔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고성수를 봤다.
"성수 씨, 탕수육도 할 수 있어요?"
……씨익.
고성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유린기, 난자완스, 칠리새우 다 됩니다."
* * *
땅깡, 땅깡.
흔들리는 검은 봉지 안에서 소주병들이 부딪친다.
"으흥."
조용한 복도를 걷고 있는, 안경 낀 30대 초반의 사내는 603호라 적힌 철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덜컹!
뜨거운 공기가 맞이해 주는 컴퓨터 몇 대만이 전부인 사무실.
한구석에 놓인 침대들과 팬티만 입은 채 돌아다니는 8명의 남성이 이질적이다.
그러나 사내는 익숙하다는 듯 중앙 테이블에 봉지를 올렸다.
"배달 시켰어? 어디다 시켰어?"
"짱개."
"점심에 먹었는데?"
"몰라. 다른 곳은 오늘 뭔 날인지 다 두 시간 뒤에나 된대."
"돈을 아주 갈퀴로 쓸어 담는구먼. 선배님은?"
"오늘 못 온대."
"또?"
"일이 있나 보지."
컴퓨터를 하고 있는 사내 중 한 명의 말에 술을 사 온 사내는 이죽거렸다.
"일은 개뿔. 또 어디서 아가씨 끼고 양주 빨고 있겠지. 이거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우린 사람 아니야? 확 씨발, 그냥 지금 던져 버리고 튀어?"
"돈은? 안 받으려고? 이거 던져도 우리가 출금 못 한다."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일이 끝난 후 준다는 돈이 무려 5천만 원이다.
30대 초반에겐 너무도 큰돈.
또 이번뿐만 아니라 다음에도 계속 불러 준다고 했다.
백수인 그에겐 너무 큰 유혹이었다.
‘범죄면 어때. 걸리지만 않으면 되지.’
걸리지 않은 선에서 끝낼 테니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
부모에게 일하고 있다고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하, 동아리 선배만 아니면 진짜. 아, 나도 얼른 그런 술집에서 술 마시고 싶다!"
"나도!"
모두가 똑같이 외치자 그는 키득키득 웃으며 옷을 벗었다.
‘두고 봐. 내가 돈 벌면 보자.’
아직도 백수냐며 무시하던 대학 친구들.
그 좋은 대학, 좋은 학과 나와 놓고도 백수냐며 무시하던 친구들. 여태껏 IMF 핑계를 대며 애써 자존감을 지켰지만, 이젠 아니다. 돈 앞에서 변할 그들의 눈빛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짜릿했다.
쿵쿵쿵!
"왔다!"
그는 황급히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그건 철가방을 들고 있던 종혁도 마찬가지였다.
팬티 바람.
‘사무실인데 팬티 바람?’?
마스크를 쓴 종혁은 뒤로 물러나 문에 박힌 호수를 다시 확인했다.
"배, 배달시키셨죠?"
"……중국집? 전에 오셨던 분이 아닌데? 워씨, 뭐 이렇게 커?"
"아, 그 형님 그만뒀어요. 아무튼 603호 맞으시죠?"
"어어. 들어와."
안으로 들어간 종혁은 더 어이가 없어졌다.
‘이건 또 뭐야? 여기가 니들 집 안방이야?’
"여기다 내려놔."
종혁은 테이블에 철가방을 올려 그릇을 뺏다.
회귀 전, 하도 해 본 일이라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내뱉는 말도 말이다.
"그런데 여긴 무슨 회사기에 이렇게 늦게까지 일해요? 다른 곳은 다 퇴근했는데."
사내들의 표정이 굳었다.
"왜?"
목소리에 날이 섰지만, 종혁은 태연했다.
"아니.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시는 게 부러워서…… 저도 검정고시 따면 이런 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요?"
"……검정고시? 자퇴?"
사내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풀렸다.
풀리다 못해 어깨까지 펴지고 종혁을 한심하다는 듯 보았다.
‘그래. 내가 이런 놈보다는 낫지.’
종혁은 모른 척 말을 이어 갔다.
"아, 혈맹게임 작업장인가?"
"뭐 작업장?"
종혁은 사내 세 명이 앉아 있는 컴퓨터를 가리켰다.
요새 가장 인기 있는 온라인 게임인 혈맹 속 기사 캐릭터가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몇 랩이에요? 몇 검에 몇 세트예요? 쩔 해 줄 수 있어요?"
‘저 새끼들 때문에, 아오!’ 방금 전 선망으로 가득했던 눈이 ‘너희도 나랑 똑같구나’ 하는 동급으로 취급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놈이.
"저건 그냥 쉬는 시간에 하는 거고!"
"근데 왜 이런 차림으로……."
"어후. 너 주식이라고 아냐?"
"네?"
"우리가 몇 백 억을 움직이는지 알면…… 아니다. 됐다. 너같이 무식한 놈한테 뭘 말하겠냐. 가라."
"……맛있게 드세요. 그릇은 밖에 두시고요."
얼굴을 일그러트린 종혁은 씩씩거리며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건물을 빠져나온 순간, 종혁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예. 확인됐습니다. 여기 맞아요."
-……이럴 거면 와 중국집을 인수한 기고. 하이고, 아까버라.
‘문안까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중국집뿐이라서요.’
대부분의 배달 요리는 문 앞에서 넘겨받는다.
종혁은 이것까지 감안해서 중국집을 인수했다.
"하하. 운이 좋았죠. 아무튼 내일 장 열릴 때 덮치면 될 것 같습니다."
-수고했데이. 언능 온나. 밥 묵자.
"옙!"
전화를 끊은 종혁은 중국집으로 향하다 멈췄다.
"근데 이 새끼들. 바본가?"
조심성이 중학교도 졸업 못 한 조폭보다 못하다.
종혁은 어이없어하며 발을 뗐다.
* * *
다음 날 아침, 건물 6층 복도에 정호를 위시한 이십여 명의 수사관들이 섰다.
"다들 방검복 챙겼습니까?"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수사관들.
"들어가면 본체부터 확보하는 겁니다."
"예."
603호 철문에 귀를 가져다 댄 정호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6층 두꺼비집 내리세요."
곧 복도 천장의 전등이 점멸했다.
악! 뭐야!
씨발, 이거 왜 이래! 정전이야?
정호는 철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그릇 가지러 왔습니다!"
"뭔 개소리야! 어제 내놨는데!"
"없어서 그럽니다! 문 좀 열어 주십시오! 장사해야 됩니다!"
"에이씨……."
끼이익!
정호는 문을 여는 사내의 눈이 점점 커져 가자 그 목을 후려쳤다.
"켁?!"
목을 잡으며 쓰러지는 사내.
정호는 그의 머리를 옆으로 젖히며 문안으로 뛰어들었다.
"덮쳐!"
"뭐, 뭐야!"
우르르 몰려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에 사내들은 엿 됐음을 직감했다. 그들은 재빨리 컴퓨터로 달렸다. 정호는 기겁하며 외쳤다.
"컴퓨터 지켜요!"
"으랏챠!"
몸을 날리며 사내들을 걷어 내는 수사관의 무자비한 발길질.
"아아악!"
20여 명의 수사관들의 주먹에, 사내들은 순식간에 제압되어 무릎이 꿇려졌다. 곧 불이 다시 들어오고 컴퓨터를 켠 정호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예, 검사님. 컴퓨터 확보했습니다."
* * *
"오야, 수고했데이."
전화를 끊은 강철선이 한울증권 건물을 올려다본다.
그의 뒤로 10명의 수사관들과 종혁이 서 있었다.
"갑시다."
저벅, 저벅, 저벅.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사람들이 로비를 진입하자 경비원이 다가오다 수사관이 내미는 수사관증을 보곤 물러서며 다급히 무전기를 든다.
"저 있네."
넓은 사무실.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이 그들의 등장에 동작을 멈췄지만, 안쪽 황종수는 전화하기 바빴다.
종혁과 강철선은 사무실을 가로질렀다.
"아씨, 장 시작인데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이 새끼들 어제 술 펐나?"
강철선은 등을 보인 채 발을 동동거리는 황종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황종수 씨?"
"누구……."
"서울지방검찰청에서 나왔습니다."
눈을 부릅뜬 황종수는 다급히 키보드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보다 종혁이 빨랐다.
"어딜."
종혁이 황종수의 뺨을 후려쳤다.
쩌억! 쿠당탕!
종혁은 어이없어하는 강철선을 향해 씩 웃었고, 좀 있다 보자며 눈을 부릅뜬 강철선은 황종수의 초점 없는 눈앞에 영장을 내밀었다.
"황종수 씨. 요 영장 보이지요? 지금부터 당신을 체포합니데이.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대박을 꿈꾸던 황종수는 그렇게 체포되었고, 황급히 달려오던 한울증권의 임원들은 망연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