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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1화 (51/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1화>

*  *  *

"으하하핫!"

고소하게 삼겹살이 구워지는 남자들 방, 사람들이 오늘 있었던 일을 듣고 웃음을 터트린다.

"살아는 계셔?"

"끙."

"호호호호호!"

다행히 눈밭을 굴러서 그런지 손목을 삔 걸 제외하곤 다친 곳이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병원에 다녀왔다.

"그래도 고맙다. 우리 소영이 구해 줘서."

방금 전까지 놀리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엄지를 치켜들었고, 종혁은 푸근히 웃었다.

"당연한 일인 걸요."

"물론 그래도 내 딸은 못 주지만!"

"아빠!"

"이크!"

다시 웃음이 터졌다.

"잘했다. 그런 의미로 한잔 받아라."

"네?"

"괘안타. 어른이 주는 건 받아도 된다."

종혁은 슬쩍 고정숙의 눈치를 봤다.

못 들은 척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종혁은 피식 웃었다.

"그러면 생애 첫 술은 어머니께 받을게요. 엄마."

놀란 사람들은 이내 곧 응당 그래야 한다며 푸근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고, 고정숙은 못 이기는 척 술병을 받아 들었다.

‘종혁이가 벌써 술을 마실 나이가 됐구나.’

매일매일이 다르게 커 가는 아들을 보니 울컥 눈물이 솟는다.

좋은 사람들과 얼큰하게 취해서 그런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수고했지만, 방심하지 마. 딱 일 년만 더 참자, 아들."

"……옙! 엄마도 꼭 몸 건강 챙기세요."

"그래. 고마워."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받은 종혁은 그녀의 잔에도 술을 따라 줬고, 소영과 수호도 각자의 부모에게 술을 받았다.

"지금까지 수고했고, 앞으로 일 년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노력하자."

"응, 아빠."

"예, 아버지."

방 안에 다른 의미의 온기가 돌았다.

"자자 내 자격은 없지만, 선창 한번 해 보겠심더. 제가 ‘우리 가족의 행복을’ 하고 외치면, ‘위하여’ 하고 후창하시면 됩니더.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채재쟁 술잔이 한가운데서 부딪치며 웃음꽃이 폈다.

"후아."

베란다의 찬바람이 달아오른 볼을 식힌다.

한번 고삐가 풀리니 어른들은 연신 술을 권했고, 종혁은 넙죽넙죽 다 받아먹었다.

‘술이다!’

회귀 전, 위를 들어낸 후 끊다시피 한 술.

참 맛있는데, 한번 마시면 몇 날 며칠을 고생하기에 특별한 날에만 마신 술.

"진짜 몸뚱이 돌았네."

한 세 병을 연달아 마신 것 같은데 취하지를 않는다.

"좋은 사람들과 마셔서 그러나?"

하하호호 떠드는 가족들.

담배 한 모금이 당긴다.

드르륵!

"음? 여 있었나?"

"담배 피우러 나오셨어요?"

"그라기도 하고, 김 교수가 권 이사한테 이상한 소리 하길래 도망칬다. 자기도 힘들어하는 교수 몇 명 안다고 구제 투자받을 수 있냐 말하데? 하이고, 이 좋은 날 뭔 돈 얘기고?"

"아하."

"구제 투자가 뭐꼬?"

"IMF의 선량한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권&박 홀딩스에서 투자를 하는 거예요."

종혁은 그러며 정인철 케이스를 말했다.

"아버님도 주위에 그런 분 계시면 말해 주세요. 정말 선량한 피해자가 있으면."

"글나? 허이고. 나랏님도 못하는 걸 권 이사가 하네."

그렇게 말하면서 누가 있나 생각하던 강철선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 맞다. 그 장부 기억하나?"

"장부요? 아, 그 장부?"

"알고 보니까 그게 김 의원하고 연결돼 있다 카드라."

"김 의원이요?"

"김성령 의원. 2선 시의원."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긴 정치에 관심 없음 모를 만도 하제. 하여튼 이놈아가 어떤 재개발이랑 연관되어 있었는데 놀라운 건 그 김 의원 위에 또 누가 있었다는 기라. 중수부가 원래 노린 게 그 정체 모를 윗선이었는데, 더 놀라운 게 뭔지 아나?"

"뭔데요?"

"김 의원과 그 윗선을 연결하던 중간 다리가 잠수를 타 뿟다는 기다. 그뿐만이 아니라 연결 고리가 싹 사라져쁫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도 안 했다는 듯이."

움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설마?’

갑자기 촉이 선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마침 종혁도 그런 조직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거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그래서요?"

종혁의 상체가 강철선을 향해 기울어졌다.

"그래서는 뭐 그래서고. 놓쳤지. 그 때문에 중수부가 요새 조선족 아들 때리는 거 아이가. 화풀이로. 안산, 가리봉동, 대림. 다 아작이 나고 있다."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전에 한 말 때문인가?’

우연이라고 치기엔 조선족은 중수부가 건드리기에는 너무 작은 판이었다. 평검사 정도가 건드린다면 모를까.

‘이번엔 그곳들도 좀 나아지려나.’

부디 그랬으면 했다.

"그럼 그 김 의원은요?"

"……죽었다. 중수부 조사받고 돌아간 그날 자택에서 목 맸다."

종혁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자살을 당한 겁니까?"

얼굴이 더 딱딱하게 굳은 강철선이 담배를 물었다.

"자살을 당했다라…… 토악질 나올 맨키로 딱 어울리는 말이네. 형사들이 쓰는 말이가?"

"……."

"후우. 모른다. 일단 국과수에서는 자살로 판명 났다."

"약물은요?"

"안 나왔다 카드라. 꼬롬하지만 정말 자살인 기제."

그래도 종혁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검사가 안 되는 약물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자살을 한 건지, 강요에 의해 자살을 한 건지, 아니면 약에 의해 자살로 위장된 건지 지금 상황에선 판가름할 수 없다.

"피울래? 어른이 주는 건 피아도 된다."

"……예, 감사합니다."

치익!

뿌연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후우. 하여튼 그래서 중수부 꼬라지가 말이 아이다. 그 중간 다리도 진짜 우연히 찾아낸 거거든. 아마 장부를 입수한 게 며칠만 늦었어도 그 중간 다리의 존재조차 몰랐을 기다."

순간 종혁의 몸이 흔들렸다.

‘정말 그놈들인가?’

방금 전이 의심이었다면 지금은 반쯤 확신이다.

지독할 정도의 은밀함. 그게 촉을 강하게 자극했다.

"2선 시의원이면 정치인뿐만 아니라……."

"재계 인물이 배후일 수도 있는 기라. 그래서 골치 아픈 기고."

국회의원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기에 스폰서가 필요한 시의원. 그 스폰서는 정치적일수도 있고, 자금적일 수도 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아무튼 그것 때문에 중수부에서 고맙다 카드라. 여차했으면 중간 다리의 존재조차 몰랐을 기라고."

"아."

"……니기미. 정말 자살을 한 건지 당한 건지는 몰라도, 세상 참 험하지 않나?"

종혁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는 안 험했냐마는.’

좁디좁은 대한민국, 편안하게 살던 시기가 없었다.

환한 주황빛 조명으로 빛나는 야간 슬로프를 내려오는 사람들을 응시하던 강철선은 다시 입을 열었다.

"닌 진짜 평생 어무이에게 감사하며 살아야 한데이."

"갑자기요?"

"그 어린 나이에 홀몸으로 이렇게 키워 준 게 어디고? 이런 곳에 버리지 않은 것만 해도 평생 업고 살아야 하는 기라."

맞는 말이다.

그 어린 나이에 친가 외가가 다 반대하는 결혼을 하며 의절한 이후, 이날 이때까지 친가 외가의 도움 없이 종혁을 키운 고정숙.

"당연하죠.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종혁의 단호한 눈을 본 강철선은 푸근히 웃었다.

"에고. 잘하는 놈한테 뭔 신소리를 하는 기고. 진짜 이놈의 직업병은 불치병인 기라. 내 먼저 들어갈테니 다 피우고 들어온나이."

"예, 들어가세요."

종혁은 강철선이 들어가자 방금 전 강철선이 본 풍경을 보았다.

세상 걱정 없이 야간 슬로프를 활강하는 사람들.

"확실히 그런 시기지."

타들어 가는 담배처럼 가슴도 타들어 간다.

IMF의 여파로 고아가 급증한 시기.

버티고 버티다 결국 자식의 손을 놔 버린 암울한 시기.

이때, 가출을 한 게 아니라 가출을 당한 많은 아이들이 거리를 배회했다.

가장 안타까운 케이스는 자식에게 마지막 행복을 안겨 주고자 없는 돈까지 모두 끌어모아 놀이동산이나 스키장에 데려간 후 버리는 거다. 그리고 부모는 이름 모를 야산 같은 곳에서 자살을 한다.

"……그래. 그 어린 것들도 이 시대의 피해자지."

비록 종혁 본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들을 구하고 싶었다.

누군가 오지랖이라 말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마음이 움직였으니 실행에 옮길 뿐이다.

곧 이런 일들이 뉴스를 타며 정부가 기초생활수급자,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의 대책을 마련하지만, 종혁은 따로 움직이기로 했다.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종혁은 계획을 세우며 마지막 한 모금을 빨았다.

"그나저나…… 정말 그 자식들인가?"

‘정말 그렇다면, 이때부터, 이 이전부터 존재한 거라면…….’ 섬뜩.

"니기미 씨빠빠 새끼들."

이를 뿌득뿌득 간 종혁은 따로, 그것도 아주 깊이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돌아섰다.

"그리고 그 새끼."

블랙박스를 뜯어 간 놈.

분명 40대의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현재 또래일 확률이 높다.

‘또래라.’

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다음 날, 아침. 종혁은 해장을 마친 어머니 고정숙을 이끌고 스키 슬로프로 나왔다.

"괜찮다니까."

"왜에. 스키장까지 왔는데 스키 한번 안 타려고? 괜찮아, 가르쳐 줄게."

"그래요, 어머니. 한번 타 보세요. 종혁이 정말 잘 타요."

소영까지 옆에서 거들자 고정숙은 결국 질 수밖에 없었다.

"쯧. 하여튼 일 벌이는 데는 뭐 있어. 어떻게 타는데?"

히죽 웃은 종혁은 기초부터 천천히 가르쳐 주었고, 두 모자는 손을 맞잡은 채 제법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에 자극을 받은 수호 가족와 소영 가족도 말이다.

"아이고, 힘들다!"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 가장 연장자인 수호 아버지가 의자에 축 늘어지자 수호 어머니가 혀를 찼다.

"남자가 힘도 없어서리. 우리 여자들 본 좀 받아 봐요."

움찔.

아버지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똑같이 스키를 탔는데도 여성들은 점심 먹고 뭐 할까 하며 계획을 짤 만큼 생생한 반면, 남자들은 물에 삶은 파김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술 핑계를 대려고 해도 같은 양을 먹었다.

무너지는 가장의 권위에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었다.

"Oh?! Hi!"

옆을 지나가던 무리 중 한 외국인 여성이 종혁에게 아는 척했다.

붉은 머리의 미녀.

사람들은 의아했지만, 종혁은 벌떡 일어났다.

"손목은 좀 괜찮아요?"

종혁의 유창한 영어에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응. 괜찮아. 아, 이쪽은 어제 봤지? 우리 아빠, 엄마."

"어젠 경황이 없어 소개조차 못했습니다. 최종혁입니다."

"하하! 괜찮아요. 스키도 못 타면서 높은 곳에 올라간 내 멍청하지만 예쁜 공주님 잘못이죠. 당신이 할 건 다 했습니다. 코젤 샤크입니다."

"안젤라 샤크예요."

"난 이리나! 친구들은 날 애나라고 불러. 나이는 열여덟 살. 넌?"

"……동갑이네."

미국 나이로 따지면 동갑이었다.

"난 최종혁. 그리고 이쪽은 우리 엄마."

종혁은 고정숙부터 차례로 소개시켰다.

"오, 반가워요. 코젤입니다."

"하, 한국어? 한국어 할 줄 압니꺼?"

종혁도 놀랐다.

"초큼. 초큼. English department professor입니다."

소영 아버지의 눈이 빛났다.

"영어학과 교수? 어디 대학교입니까?"

"Korea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오! 대한외대! 반갑습니다. 한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그렇게 서로 말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합석을 하게 됐고, 이리나는 냉큼 종혁의 옆을 파고들었다.

"너 몸 정말 단단하더라! 나 바위에 부딪친 줄 알았어! 운동해?"

"아, 운동하지. 유도하고 있어. 선수야."

"정말?! 나 유도 선수 처음 봐!"

종혁은 미안해서 맞장구를 쳐 줬지만, 그 밝은 분위기에 소영과 현희는 소매를 물었다.

‘이래서 그 작은 방에 짐을 풀었던 건데!’

‘안 된다, 오빠야! 저 불여시가!’

소영과 현희의 어머니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게 커피를 다 마신 그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했다.

샤크 일가도 함께였다.

"그런데 혁. 인기가 많은데? 눈빛이 아파."

"음?"

종혁의 옆에 선 이리나는 종혁의 왼손을 꼭 붙잡은 채 노려보는 현희와, 뒤에서 노려보는 소영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하하."

말하기 애매한 상황.

화제를 돌리기 위해 주위를 둘러볼 때였다.

"점심 뭐 먹을래?"

"정말 어제부터 왜 이렇게 내 말을 듣는지 모르겠는데…… 돈가스?"

흠칫!

‘이 목소리는?’

종혁은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혁?"

"오빠야."

"잠깐만."

현희의 손을 뿌리친 종혁은 다급히 뒤를 쫓았다.

‘어디냐. 어디야! 이 개새끼야!’

결코 잊을 수 없는 목소리다.

자기 전에도 일어나서도 수십 번 곱씹는 목소리.

그 조직을 쫓을 유력한 단서.

기억에 있는 건 40대의 목소리지만, 그게 어리다면 딱 방금 들은 목소리였다.

휙! 휙!

"아이, 뭐야!"

"죄송합니다!"

일가족. 십 대에서 이십 대 청년이 포함된 일가족.

종혁은 귀신에게 홀린 듯 건물 바깥이나 식당가도 정신없이 확인했다. 그러다…….

"종혁아! 대체 왜 이래?"

"오빠야!"

겁을 잔뜩 먹은 얼굴을 한 채 종혁을 끌어안은 소영과 현희, 뒤따라온 어머니와 수호, 다른 가족들의 얼굴에도 걱정이 가득하다.

‘……빌어먹을. 잘못 들은 건가.’

레스토랑 화장실까지 다 확인해 봤지만, 없다.

얼굴을 쓸어내린 종혁은 애써 웃었다.

레스토랑 안의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었다.

"미안.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놀랐지?"

"엉엉. 다신 그러지 마!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언제나 당당하고 든든하던 종혁의 일그러진 얼굴과 부릅뜬 두 눈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 정말 미안해."

현희를 안아 든 종혁은 종혁은 어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안 좋게 엮인 사람을 본 줄 알고……."

"착각이었어?"

종혁은 어머니 고정숙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엄마. 놀랐죠?"

"……됐어. 밥이나 먹자."

"뭐 멀리 갈 거 있슴니꺼? 그냥 여기서 먹읍시더. 여기 샤크 교수님도 있으니까 서양식으로!"

"그럴까요? 여기요!"

분위기를 수습한 그들은 곧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정의 마지막 날까지 웃고 떠들며 관계를 돈독히 한 그들은 아쉬움을 접으며 스키장을 떠났다.

부르릉!

‘부디 잘못 들은 것이기를.’

"우웅. 오빠야. 다신 그라지 마라."

종혁은 현희의 볼을 쓰다듬으며 이를 악물었다.

*  *  *

-미안해, 아들. 정말 미안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엄마 아빠 없어도…….

눈물과 변명으로 얼룩진 편지가 흙과 눈, 때로 범벅 된 손안에서 구겨진다. 이틀 전 아침 식탁에 놓여 있던 편지.

"어쩐지 그 지랄맞은 사정에 이런 곳에 왔다 했다……."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 혼자 남게 된 걸.

언제나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 그럴 때마다 양 귀를 막던 어머니는 이제 세상에 없다.

"죽을 거면 같이 죽지 왜……."

언제나 비겁하던 둘은 끝까지 비겁했다.

"이젠 어떻게 살지?"

벌써 이틀째 아무것도 못 먹은 소년의 메마른 입이 뜨거운 김을 내뱉는다.

뽀드득! 뽀드득!

흠칫 놀란 소년은 몸을 일으켰다.

‘여기 숨으면 못 찾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젠 이 스키장도 떠나야 할 것 같았다.

모자를 푹 눌러쓴 소년은 모른 척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걸었다. 반대쪽은 높은 담벼락, 도망칠 곳이 없었다.

"어. 김 의원 쪽은 더 이상 걱정할 거 없으……."

화들짝!

"어우씨. 깜짝아."

담배를 문 채 전화를 하던 40대 중년인은 스쳐 지나가는 소년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흙먼지로 더러워진 스키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야. 잠깐 놀란 것뿐이야. 아무튼 어르신이 다시 부를 때까지 들키지 않게 있어. 이왕이면 의심 피하게 가족 같은 것도 만들어 보고. 아이고, 너나 네 새끼들 단속 잘하세요. 어, 그래, 끊는다."

전화를 끊은 중년인은 다급히 소년을 불렀다.

"어이, 소년. 잠깐!"

"뭡니까?"

매섭게 뜬 눈. 중년인은 굶주림과 절망, 체념과 분노가 가득한 그 눈동자를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오? 눈빛 좋은데?"

"……후. 아저씨. 요새 십 대 무섭……."

"됐고. 가출?"

"……."

"아니네. 아, 그럼 버려졌냐?"

뿌득!

주먹을 꽉 쥔 소년은 그대로 달려들었다.

"읏챠!"

콰당탕!

중년인은 소년을 넘어트려 등을 짓눌렀다.

"놔! 놔, 이 씨발놈아-!"

"아이고, 짐승처럼 팔딱대는 거 봐라. 마음에 드는데?"

"죽어, 씨발! 죽어!"

"야, 너 버려진 거면 이 아저씨랑 같이 갈래? 밥은 줄게."

움찔!

소년의 반응에 히죽 웃은 중년인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바깥을 향해 걸었다.

고개를 쳐든 소년은 그 날카로운 등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켜 뒤를 쫓았다.

1월 말, 매서운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의 흔적을 지우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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