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0화 (50/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0화>

15. 가족 여행

"다 안 됐어?"

"됐어요!"

후다닥 스키 점퍼를 들고 방을 나선 종혁은 웃음을 터트렸다.

핑크색 스키복으로 꽁꽁 무장한 어머니.

며칠 전 이 나이에 남세스럽게 무슨 핑크냐며 거절하던 것이 무색하게, 종혁이 나오자 슬그머니 자세를 취한다.

"어때, 괜찮아?"

"와. 스키장 가서 아저씨들이 다 쳐다보는 거 아냐?"

"흥. 이 엄마가 좀 예쁘긴 하지?"

"하하핫!"

엄지를 치켜든 종혁은 평소와 비교할 수 없게 텐션이 높은 어머니의 모습에 짧게 반성했다.

회귀 전후 다 합쳐, 난생처음 아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고 저렇게 기뻐하시는 어머니.

‘정말 잘하자.’

종혁은 어머니에게 다가가 점퍼 지퍼를 내려 주었다.

평소와 달리 화려하게 화장한 얼굴이 참 아름다웠다.

"더워."

"알아. 기분 내 본 거야. 음. 가스 잠갔고, 보일러 외출로 돌렸고. 다 했네. 가자, 기다릴라."

"옙!"

문단속까지 하고 대로변으로 나오니 마침 이쪽을 향해 관광버스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끼이익! 취익!

문이 열리자 작은 키의 현석이 뛰어 내려왔다.

"행니임……."

퍼억!

"억?!"

"비키라! 오빠야!"

종혁은 마치 염소처럼 현석의 옆구리를 받아 버리더니 폴짝 뛰어오르는 현석이네 셋째 현희를 얼른 안아 들었다.

"어이구. 다칠라."

"히, 오빠야. 내 안 보고 싶었나?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나?"

"그랬어?"

뒤이어 나온 강철선과 그의 부인 정미자는 잔망스러운 셋째의 모습에 입을 뻐끔뻐끔 달싹였다.

"저, 저……!"

놀라는 정미자와 달리 정신을 차린 강철선은 흐뭇하게 웃었다.

‘잘한다, 내 딸내미!’

그는 앞으로 나섰다.

"처음 뵙겠습니다, 종혁이 어머님. 강철선이라고 합니다."

종혁과 현희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짓던 고정숙은 얼른 허리를 숙였다.

"죄송해요.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종혁이 엄마 고정숙이에요. 저희 아들이 폐를 끼치지는 않았나요?"

"뭘요. 오히려 제가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하하하."

정말이었다.

1년 365일, 오줌 싸고 손 닦을 시간도 없이 바쁜 강철선이 이렇게 여행을 가게 된 건 모두 종혁 때문이었다.

종혁이 37명의 여성들을 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가족들과 여행을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을 거다.

무려 차장검사의 승인. 강철선의 입은 주욱 찢어졌다.

종혁은 한껏 내숭을 부리는 둘을 보며 어이없어했다.

"야 이 가시나야! 내가 니 큰오빠다!"

"아인데. 내 큰 오빠는 종혁이 오빤데? 그자, 오빠야?"

"종혁이 행님이 우째 니 오빤데, 이 문디 가시나야!"

"욕하지 마라! 엄마!"

악악거리는 둘을 외면한 종혁은 뒤이어 내리는 소영과 수호,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향해 인사를 했다.

"호홋! 우리 소영이 라이벌 생겼네?"

"이모!"

그랬다. 이번 여행은 소영, 수호, 현석, 그리고 종혁까지 네 가족이 모두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다. 권아영, 박태규까지 모두.

*  *  *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아싸, 좋다!"

"우리 셋째 잘한다!"

도로를 달리는 버스가 쿵짝쿵짝 흥겨운 리듬으로 흔들린다.

한 잔 두 잔 술에 불콰해진 어른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신나게 흔들어 재꼈고, 그 흥에 물든 아이들은 마이크를 잡고 재롱잔치를 벌였다.

1997년 말, 찜질방에서 함께 몸을 지지며 친해진 어머님들과 아버님들.

능글맞은 강철선과 어시장 장사로 단련된 정미자가 그들 사이에 끼어드는 건 한순간이었다.

"원래 낚시는 겨울 낚시가 최고 아입니꺼, 교수님. 형님! 배 위에서 쐬주 한 잔이랑 크!"

"오오! 혹시 아는 포인트라도?"

"언제 날 잡아서 당기러 가셔야죠?"

다시 취직하신 수호 아버지도 얼굴을 붉히며 의견을 냈고, 그걸 한심하게 바라본 어머님들은 요새 가장 인기 높은 드라마의 등장인물을 막걸리와 함께 씹으며 대동단결했다.

그러다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러 재꼈다.

"하이고. 우리 정숙이 가수다, 가수!"

"호호. 미자 언니도 잘 부르시던데요?"

"종혁이가 와 저리 잘났나 했더니 정숙이 끼를 물려받았네."

어머님들의 시선이 현희와 놀아 주고 있는 종혁에게로 향한다.

"하이고. 저리 다정한 남자는 찾기 힘든데."

움찔!

"……종혁이가 애를 좀 잘 보긴 해요. 호호."

‘호? 쉽지 않네?’

‘어딜.’

아직은 품에서 떠나보낼 때가 아니었다.

소영의 어머님은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둘을 보다 종혁과 현희 사이에 끼어들려는 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휴, 저 멍청이.’

"자, 술이나 마시죠! 건배!"

"건배!"

지켜보는 이 아무도 없는 버스 안, 그들은 그동안 살면서 받은 모든 스트레스를 이참에 풀어 버리겠다는 듯 신나게 떠들었다.

"현희야. 이제 언니한테 올래? 종혁이 오빠 힘들 거야."

"오빠야, 힘드나?"

"그럴 리가."

"안 힘들다는데요? 헹!"

종혁의 무릎 위에 앉은 현희는 재빨리 종혁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고, 소영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저게?!’

‘연적에게 질 수 없다!’

‘뭐 하는 건지.’

고개를 저은 종혁은 현석과 함께 마이크를 놓지 않는 수호에게서 시선을 돌려 박태규를 봤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는지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 박태규.

그 뒷자리엔 권아영이 누워 있다.

현희를 옆자리에 앉힌 종혁은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등 뒤로 쪼끄맣고 큰 소녀들의 눈싸움이 시작됐다.

"태규 씨도 부모님과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요."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허니문 가셨습니다."

"……예?"

"그땐 못 갔으니 이번에 말 나온 김에 가신다더군요."

"푸핫. 금슬이 아직까지 좋으신가 보네요."

"제가 본가에서 살지 않은 이유죠. 그럼 전 좀 자겠습니다."

조금 더 대화를 할까 했던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둘에게도 휴식은 필요했다.

"헉! 헉! 행님! 행님은 노래 안 부릅니꺼? 함 불러 보이소!"

"그래. 종혁아. 너도 한 곡 불러 봐!"

종혁은 들이밀어진 마이크를 보며 눈을 빛냈다.

‘그러고 보니 노래 부른 지도 꽤 됐네.’

옛날 팀원들과 야유회를 가면 놓지 않았던 마이크.

그때 치솟던 희열이 슬그머니 찾아왔다.

"그럴까?"

"뭐 부를래?"

"1482!"

TV에 ‘붉은 노을-김윤세’란 글자가 떠오르며 경쾌한 전주가 흘러나왔다.

"노래는 윤세 형님이지! 가자!"

"오오오오오!"

종혁도 스트레스를 풀어 재끼기로 했고, 어른들은 자신들을 이렇게 한자리에 모으게 만든 종혁을 기대감 어린 눈으로 지켜봤다. 그렇게 노래가 시작됐다.

*  *  *

"와! 눈이다, 눈! 누나야, 눈이 천지빼까리로 많다!"

"머스마야! 안 서나! 넘어진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온통 새하얀 눈이다.

겨울이 되면 질리도록 보는 게 눈이라지만, 이렇게 도심을 벗어나 순백으로 물든 자연 풍광을 보니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자, 어여쁜 아줌마, 아가씨는 이쪽 방, 술 냄새 풀풀 나는 바지씨들은 저쪽 방! 그리고 애들은 저 방! 아, 처녀총각은 방을 따로 잡아 줘야 하나?"

"미, 미자 언니!"

"아주머니!"

으하핫! 꺄르르!?

무슨 말인지 모르는 현희도 어른들이 웃으니 따라 웃었다.

"스키 탈 사람은 스키 타고, 사우나 갈 사람은 사우나 가고! 저녁 8시에 봐예. 해산!"

종혁은 어머니를 봤다.

종혁이 어딜 갈 때마다 아쉬워하던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가장 먼저 앞장서서 들어가는 어머니.

‘어, 엄마?’

분명 사전에 이렇게 하기로 합의를 보긴 했지만, 묘하게 배신감이 들었다. 종혁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종혁아."

"아, 응. 우리도 들어가자."

드르륵! 철컥!

"와아아!"

그들을 가장 먼저 반긴 건 커다란 창 너머의 스키장 정경이었다. 신식 아파트를 보듯 깔끔하고 넓은 방.

"이 방 우리 방!"

"무슨 소리! 큰 방은 여자들이 써야지!"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남자가 많으니까 당연히 남자가 큰 방을 써야지! 안 그래, 현석아?"

"하모요! 수호 행님, 얼른 짐 푸이소!"

"이것들이 진짜!"

"아이다, 언니야. 저 화상들 큰 방에서 자라 캐라. 안 그러면 거실에서 빤스 바람으로 디비 잘 낀데 그 숭한 꼴을 볼 수 있겠나?"

"빤스? 패, 팬티?"

종혁을 힐끔 본 소영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현희는 소영의 귓가에 대고 뭔가를 말했고, 소영은 이제 종혁을 빤히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 그러는 게 낫겠네. 알았어, 남자들이 큰 방에서 자!"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지만, 여자들은 이미 현관 쪽 작은 방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눈을 깜빡이던 종혁은 어깨를 으쓱이며 창밖의 풍광을 바라봤다.

"스키장도 오랜만이네."

아련한 추억이 그를 자극했다.

담배 한 대와 함께 추억을 곱씹고 싶지만, 겨우 2박 3일 일정이다. 1분 1초가 아까운 종혁은 얼른 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스키를 딱! 멋지게 타면 여자들이 막! 여자들 앞에 촤아악 멈추면 어? 그냥 오늘 밤을 찢는 거지! 아까 봤지? 대학생 누나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있던 거?"

"오오오!"

종혁은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켜는 수호와 현석을 귀엽다는 듯 보았다.

‘그래. 그게 스키장 로망이지.’

혈기 넘치는 나이이니 충분히 이해됐다.

하지만 너무 귀여워서 그런지 놀리고 싶었다.

"근데 너희들. 스키는 탈 줄 아냐?"

"……."

"종혁이 넌 탈 줄 알아?"

"나? 질리도록……."

타 봤다.

가끔 스키장 알바로 가장해서 잠수를 타는 범인들이 종종 있는데, 그놈들을 쫓기 위해 겨울 휴가 땐 무조건 특수부대 출신 트레이너에게 스키를 배웠다. 하지만 말할 수는 없었다.

"처음 타 보지만, 너희보단 잘 탈 자신 있지."

"……뭡니까, 행님. 그게 말입니까, 방굽니까?"

"좀 있다 보면 알아, 인마."

"억?!"

고개가 푹 숙여져 버둥거리던 현석은 겨우 풀려나 숨을 헉헉거렸고, 종혁은 낄낄 웃었다.

"대충 지갑만 챙겨서 나와. 스키 타야지!"

그렇게 말했으면서도 휴대전화까지 챙긴 종혁은 방을 나섰고, 남겨진 수호와 현석은 서로를 보며 의아해했다.

"종혁이 신났는데? 웬일이지?"

"그러게요. 언제나 무거운 행님인 줄 알았는데. 앗! 행님 같이 갑시더! 뭐하노, 퍼뜩 인나라!"

"알았다, 행님아!"

그들은 우르르 스키장으로 향했다.

촤악! 솨아악!

우글우글. 와글와글.

넓어도 너무 넓은 스키장.

그래서 조용할 줄만 알았던 그들은 의외로 시끄러운 소음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종혁은 놀란 개구리처럼 눈을 뜬 빨주노초 형광색 옷을 입은 아이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스키 탈 줄 아는 사람, 손!"

"……."

"강의 예약하길 잘했네. 아, 저 사람인가 보다."

연두 형광색과 검정색이 섞인 스키복을 입은 이십 대 청년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다가온다.

"여기요!"

"아."

‘하아. 또 애들…… 오?’ 고글을 목에 건 소영을 보고 눈을 번뜩인 강사는 재빨리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스키 강의 신청하셨죠? 반갑습니다. 스키 강의를 맡을…… 칵!"

뿌드득! 빠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나는 손.

그 아득한 고통에 강사는 도중에 손을 낚아채 잡은 종혁을 보며 몸부림을 쳤다.

"예, 반갑습니다. 그리고……."

종혁은 그의 귀에 대고 입을 열었다.

"허튼수작 부리면 손목을 찢어 버린다. 알았냐?"

섬뜩!

"예, 예, 예!"

"예, 저도 잠시 동안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종혁은 다급히 물러나는 그를 풀어 줬고, 그때 현희가 다가와 고개를 숙여 달라 손을 까딱였다.

"오빠야. 저 사람 왜 가스 불 위에 올린 오징어맨치로 춤을 추는 기고? 스키 배울라모 저래야 되나?"

"풋. 아, 춤추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가 봐."

"글나? 서울 사람들 이해할 수가 없데이."

큭큭큭 웃은 종혁은 현희를 안아 들며 소영을 보았고, 소영은 밝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크큭."

"그, 그럼 기초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일단 조금 높은 곳으로 이동해 볼까요?"

*  *  *

"이렇게요?"

"어, 네. 그렇게 에스 자를 그리면서……."

촤아악! 촤아악!

강사는 입을 다물었다.

그 자신보다 더 멋진 곡선.

"우와!"

"와!"

"어머. 저 사람 잘 탄다!"

초보자들만 있는 라인. 이제 막 스키를 배우러 온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강사는 얼굴을 구겼다.

‘씨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을 뻔했네. 그리고…… 헉!’

저 밑까지 내려갔던 종혁이 마치 질주하는 코뿔소처럼 두두두 달려온다. 그는 깝치지 않기로 한 번 더 다짐했다.

단숨에 공간을 접은 종혁은 아직 A자 활강도 제대로 못하는 소영에게 입을 열었다.

"봐, 쉽지? 허리랑 무릎만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돼."

"이, 이렇게?"

"아니이. ……하, 잠깐만."

소영의 뒤로 돌아간 종혁은 그녀의 허리를 잡았고, 소영은 마치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퍼드득거렸다.

"아니, 그러지 말고. 중심 낮추고."

"아, 이렇게?"

"그래. 잘하네."

‘씨이!’ 소영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핑크빛 기류에 현희는 소매를 물어뜯었다.

"내 낀데. 종혁이 오빠야는 내 낀데! 안 되겠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에 현희는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이었다.

촤아아아악!

"꺄아악! Step aside! Step aside-!"

뜬금없는 영어에 고개를 돌린 현희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

종혁, 아니, 소영의 뒤를 향해 달려드는 누군가.

파랗게 질린 현희는 다급히 외쳤다.

"언니야, 오빠야!"

"음? 이런 씨!"

어느새 2미터 거리.

종혁은 다급히 소영을 잡아당기며 덮쳐드는 누군가를 막아섰다.

그리고.

퍼어억!

"커허헉!"

"오?"

"와."

사람이 난다.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닌데 누군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마치 차에 받힌 것처럼 옆으로 튕겨 날아간다.

"오."

주위 사람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던 종혁은 쿠당탕 눈바닥을 구르는 그를 보며 눈을 껌뻑였다.

본인이 한 일임에도 썩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은 광경.

설마 이렇게 튕겨 나갈 거라곤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와. 이 미친 몸뚱이가 이런 일도 해낸…… 아? 어? 아!’

종혁은 다급히 그를 봤다.

"으악! 괜찮습니까!"

뒤늦게 사고를 쳤단 걸 깨달은 종혁은 파랗게 질리며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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